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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입은 종(insik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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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을 당한 자와 죽인 자, 누가 복 있을까?
11/05/201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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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죽음(마14:1-12) 1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 그 속에서 운동하는 도다 하더라 3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6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8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10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11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12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죽은 것과 사는 것 중에 무엇을 좋은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냐고 할 겁니다. 당연히 사는 것이 좋고 죽는 것은 싫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세례 요한의 죽음을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은 세례 요한의 죽음이 예수님의 정체성과 그 사역에 대한 이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세례 요한의 죽음을 통하여 배우게 되는 몇 가지 사실을 함께 나누며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진리가 불편한 세상

세례 요한의 죽음을 통하여 세상은 진리를 배척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선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6-7) 말씀에 의하면 그는 빛을 증거하려 온 자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라고 친히 증거 받은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세례 요한이 헤롯에 의해서 목이 베어 죽게 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옳은 것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3절에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절에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참으로 충직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헤롯왕이 그의 이복동생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은 일에 대하여 그것이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세례 요한의 옳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로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헤롯의 생일에 세례 요한을 목을 베어 처형합니다. 그 과정을 본문6절부터11절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죽음 과정은 복음에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헤롯의 모습이 바로 세상이 진리를 어떻게 대하고 취급하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헤롯에게 있어 세례 요한은 참으로 불편한 존재인 겁니다.

 

세상이 진리를 왜 이토록 싫어 할까요? 진리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진리와 세상 종교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교를 좋아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어떤 사람들이 종교를 비방한데 해도 세상의 사람들은 종교처럼 성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인간의 입맛에 맞기 때문입니다. 세상 종교는 인간에 의해서 인간을 위해 고안해 낸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교로 위안을 받습니다. 종교로 돈 벌이도 됩니다. 마음의 안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자기가 가진 종교가 마음에 안 들면 버리고 다른 종교를 가지면 됩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내 입맛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내 마음대로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인간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는 인간의 죄를 들추어 냅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편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옳은 것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진리는 인간에 불편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진리를 싫어하고 배척하는 이유입니다. 당장 보십시오.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만 참신이라는 겁니다. 다른 것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익이 되는 신이 있다면 다 섬기고 싶습니다. 내게 이득이 된다면 고무신이라도 섬기는 것이 인간의 종교심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상태입니다.

 

죄의 노예인 인간

세례 요한의 죽음을 통하여 인간은 죄의 노예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헤롯에게도 양심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헤롯은 자신이 세례 요한을 죽은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1절에 보면,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절에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고 그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헤롯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를 3절부터 전에 헤롯이…”라고 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헤롯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두려웠던 겁니다. 아마도 헤롯은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에 대한 소문을 듣고서 세례 요한의 환생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머리가 복잡합니다. 아마도 선지자로 존경받았던 세례 요한을 죽인 일에 대하여 그 마음에 편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가책이나 양심이 그가 하나님께 나가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양심이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회개하지는 않습니다.

 

양심으로 구원받지는 못합니다.

인간에게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겁니다. 인간의 양심은 인간의 행동을 억제하고 죄를 방지하는 좋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양심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그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아무리 양심적이라고 해도 양심은 타락한 인간의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그 기준의 자기의 도덕성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옳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습니다. 나에는 양심적인 것이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양심을 작용하게 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세상은 무시합니다. 양심에 가책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회개를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아서지 않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비극입니다.

 

옳은 것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이는 과정속에서 보여지는 헤롯은 죄의 노예 된 자의 무력한 모습입니다.

헤롯은 자신의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의 눈치를 봅니다. 민중의 눈치를 보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을 죽이고 싶지만 민중이 두려워서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와 그 딸에 술책에 넘어가서 9절에 보면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하고 합니다.

옳은 것은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는 결코 옳은 것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편한 것, 이득이 되는 것만 합니다. 그게 헤롯이 할 수 있는 결정입니다

이와 같이 죄로 타락한 인간은 죄의 노예입니다. 결코 옳은 것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

이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안타까운 죽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 충성된 하나님의 종 된 자의 죽음입니다. 그 죽음이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안타깝고 참담합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 충직한 종이 이러한 참담한 죽음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세례 요한은 옳은 일을 말하기 때문에 잡히고, 또 그 주장을 꺽지 않기에 결국 어린 소녀의 춤에 현혹되어 술 취한 군주에 위하여 세례 요한은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하고 꼭 분명하게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불행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에 대하여 기쁘게 믿음으로 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이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세례 요한과 헤롯, 이 둘 중 누가 복 있는 자입니까? 누구에게 참 소망이 있습니까? 죽인 헤롯입니까? 죽임을 당한 세례 요한입니까? 다시 묻습니다. 누구입니까? , 세례 요한이 복 있는 자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죽음을 당했지만 헤롯과는 비교할 수 없이 복된 사람입니다.

누가 참으로 산 자입니까? 누가 죽은 자입니까? 세례 요한이 참으로 산 자이고 헤롯은 죽은 자입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의 실패가 아닙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무슨 질병이 아닙니다. 무슨 외로움, 이런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평생 당해도 100년입니다.

인간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다른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되는 겁니다. 이것은 영원한 일입니다.

오늘 말씀 마지막12절에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고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참 의미심장합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이 예수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죽으실 겁니다. 세례 요한은 한 충직한 선지자의 죽음이었다면, 이제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임이 세상의 죄 된 비참함을 보여주었다면,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참 소망을 주는 죽음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죽은 자가 산 자보다 복됨을 봅시다. 세례 요한이 복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복의 근원이시며, 예수 안에서 죽게 될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됩니다.

미주서부교회, 김인식 목사 Fullerton, California. www.seoboo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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