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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위직 은퇴자의 비애…아침마다 넥타이 매고 서재로 출근
01/19/201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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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맞으면 자리의 고하를 막론하고 추락하는 느낌이 든다. 높은 자리에 있다 떨어지는 경우 추락감은 더욱 심할 수 있다. 현직에서 많은 것을 누린 사람일수록 그 자리를 잃었을 때 느끼는 박탈감은 더 뼈저리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학맥과 인맥이 두터운 고위직들은 퇴직 후에도 적당한 ‘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비록 옛 자리만 못하지만 옛날의 영화를 잠시 접어둔다면 하향조정으로 어느 정도 기간은 더 버틸 수 있다.

지난해 말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 대통령 내각에서 밀려난 각료들이 ‘전직장관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가끔 만나 현직 시절을 반추하며 서로 위로한다는 언론 보도가 화제가 됐다.

이들은 경질 당시의 심경을 나누고, 이후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르코지 내각의 실력자였던 국회담당 장관 로제 카루치는 경질 사실이 알려진 직후 “지나치다 싶게 굽실거리던 관저의 집사가 갑자기 내 앞에서 거만한 인간으로 돌변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것이 권력이고 인생임을 깨달았다”는 그는 집을 구하는 데만 6주를 보내야 했다. 기사를 읽은 프랑스 중년들은 ‘높은 사람들도 밀려나면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은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남의 일 같지 않다”고 공감했다고 한다. 항용유회(亢龍有悔).

‘높이 오른 용은 후회할 일이 있다.’ 절정기를 지난, 상왕 같은 자리는 적응하기 어렵다. 이름은 화려하고 지위는 높지만 실권이 없다. 자칫하면 후회에서 그치지 않고 흉(凶)이 될 수도 있으므로 처신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높이 오른 용은 처신하기가 무척 곤란한 지경에 빠지기 쉽다고 <주역(周易)>에서는 경고한다.

평생 일해온 직장에서 드디어 나오게 되었을 때, 그동안 지켜온 자리가 높든 낮든 누구나 허전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어쩌면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끈 떨어진 연’이 된 신세를 더욱 분명하게 느끼게 되는지도 모른다. 퇴직 이전과 이후가 그만큼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인이 된 전 국민은행장 이상철 씨는 퇴직한 뒤 친구들에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동안 늘 누군가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러주었기 때문에 스스로 눌러본 기억도, 습관도 가지고 있지 않던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섰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달라진 자신의 처지를 실감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몸에 밴 오랜 습관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는다. 한국은행을 거쳐 한미은행장을 지낸 성준경(73·한국알앤씨) 회장은 은행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아침에 습관처럼 넥타이를 맸다고 한다.“처음에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실감이 전혀 안 났죠. 그래서 아침에 나가려고 넥타이를 매고 있는데, 문득 이 넥타이를 매고 갈 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안 움직인다”

남자들에게 넥타이는 곧 사회생활을 의미한다. 특히 고위직들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 날이 없다. 그래서 김기춘 전 검찰총장은 퇴임한 뒤 아침마다 넥타이를 매고 서재로 출근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김 전 검찰총장은 아마도 퇴임 후의 충격 여파를 줄이고, 갑자기 늘어난 여유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스스로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는 뜻에서 넥타이를 맸을 것이다.

기업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거나 고위공직자였던 사람들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익숙하다 어느날 갑자기 주변의 관심이 뚝 끊기는 공백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퇴직자와 이직자의 재교육과 컨설팅을 맡고 있는 성준경 회장은 고위 공직에 있었던 한 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친구가 퇴임하고 어느 날 한 건물 현관에서 만났는데 표정이 우울하면서도 넋이 나간 듯 멍한 상태인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더군요. 항상 사람들의 시선을 받다 갑자기 그 시선이 끊어져버려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유명 배우 같은 스타는 아니지만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도 줄곧 매스컴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하다못해 작은 회사 사장도 잠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부하직원들의 눈길과 인사를 받는다. 복도에서든 엘리베이터 안이든 현관에서든 어디서나 사람들이 알아보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반응한다.

이런 관심과 주목이 갑자기 끊어지면 스스로도 적응이 안 된다. 옛 장관들의 경우 퇴임했다는 사실을 가장 실감할 때가 청와대와 직통으로 연결된 ‘핫라인’이 끊어질 때라고 한다. 퇴직하자마자 사람들이 와서 전화선을 철수해가면 ‘이제 정말 끊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는 것이다.

‘고급 정보’에서 차단된 것 실감

고위직들 역시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다른 모든 퇴직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느낌이 가장 크다. 퇴직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이 박리감(剝離感)이,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일 경우 자칫 박탈감(剝脫感)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기관이든 최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책임감의 무게는 상당하지만 혜택과 관심, 재량권도 그만큼 크다. 아침에는 회사가 제공하는 승용차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운전도 기사가 대신해 회사까지 모셔다 준다.

집 앞에서 만나는 기사의 인사부터 회사 현관의 수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는 직원들, 자신의 사무실 앞을 지키고 있는 비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관심과 인사를 받으며 사무실에 들어서면 국내외 신문이 탁자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때로 비서가 스크랩해둔 기사가 책상에 올라와 있기도 하다.

신문을 대충 훑어본 다음 사람들과 ‘모닝커피’나 한잔 마실 겸해서 비서에게 “임원들 좀 모이라고 하지” 하면 그게 곧 아침 임원회의 소집이다. 모든 사람이 그의 뜻대로 움직이며,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고위직 가운데는 인터넷 사용법을 모르고, 복사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꽤 있다.

회사에서 이런 ‘무소불위의 신적 존재’로 군림하던 사람이 아무도 주시하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 존재가 되었을 때 느끼는 충격의 여파는 의외로 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특권에서 멀어진 것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박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정보에서 차단된 느낌’이라고 한다.

검사장을 지낸 K씨는 “검찰 보고서만 세 가지, 또 대기업과 금융기관 등 온갖 정부보고서가 수시로 올라온다. 일부 비공식 보고서까지 합하면 정보의 양이 엄청나다”고 회고했다. 물론 비공식적인 정보 가운데는 믿을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고위직은 보통사람들이 접하지 못하는 ‘고급 정보’를 항상 공급받는다.

성준경 회장의 경우도 퇴직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변화로 “인쇄된 보고서가 없어졌다”는 점을 꼽았다. “현직에 있을 때는 열 가지가 넘는 신문을 보고, 홍보담당자가 최신 정보를 수집해 보고했습니다. 은행장으로 있을 때는 여러 기관의 금융 관계 보고서도 빠짐없이 챙겨보고는 했고요. 또 다른 고위직 인사들을 만나 얻는 정보도 많았죠. 정보량도 양이지만, 질이 달랐지요. 그런데 현직에서 물러나면 이런 공식, 비공식 정보에서 차단됐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후배들을 만나도 그런 정보를 캐묻기가 쉽지 않지요. 이제는 집에서 서너 가지 신문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대신 책을 많이 읽지요.”

퇴직 직후 심리적 허전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때 대단했던 자신의 성과가, 이제 되돌아보면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는 상실감이 찾아온다. 사업가에게는 성장한 회사라는 결실이 있고 예술가에게는 작품이 남아 있지만, 조직에서 일한 사람은 제 아무리 큰 실적을 쌓았다고 해도 ‘나만의 것’으로 남는 것이 없다. 그 조직의 성장수치 속으로 모두 사라져버린 인생인 것이다.

고위직에게 제공되던 비서·자동차·기사 등 혜택이 사라지는 것도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한 요소다. 어느 정도 자산이 있는 고위직들에게는 월급이나 연봉이 끊어지는 것은 두 번째 문제이고, 그동안 누려온 부대적 혜택이야말로 후광이 사라지는 듯한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외국계 광고회사에서 부사장을 하고 있는 G씨(55)는 “월급은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다만 그동안 제공되던 업무추진비·승용차·기사, 그리고 골프를 즐기던 생활이 퇴직과 함께 사라지면서 생활수준이 갑자기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도 바뀔 것이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유난히 퇴임 시기가 빠르고 인사이동이 잦은 광고계에서는 언제 자리에서 물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갑자기 ‘사회적 지위’가 바뀔 위험도 크다.

그래서 G씨는 늘그막에 새삼스럽게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재임 시절 누리던 갖가지 혜택이 사라지면 갑자기 초라해지는 느낌을 피하기 힘들다.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사뭇 달라진 듯 느껴져 더욱 작아진다.

그래도 옛 동료나 후배들, 그리고 재임시절 ‘배려’해준 사람들이 있어서 당분간은 대접을 받는다. “밥이나 먹자” “골프 치러 가자”는 초대가 간간이 이어져 그런 대로 약속이 생긴다. 그러나 이렇게 인맥으로 대접받는 기간도 한계가 있다. 보통 ‘사장은 1년, 전무는 반 년, 상무는 석 달’이라는 것이 퇴직자들의 자조 섞인 농담이다.

개인 ‘스펙’ 좋으면 자회사로

하지만 이나마 대접도 대기업 출신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임원이 100~200명씩 되는 대기업으로서는 퇴직한 임원들을 인간적으로 일일이 챙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신 대기업은 제도적으로 챙긴다. 퇴직 임원들이 ‘놀이터’라고 부르는 사무실이 마련돼 있어 하루 종일 바둑 두고 카드놀이나 독서를 할 수 있다.

대부분 ‘놀이터’는 옛 직장 근처에 마련돼 있어 점식도 회사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이런 사무실에 나가는 것은 나이가 한참 든 다음 이야기이고, 당장 퇴직한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게 마련이다. 대기업 임원 출신 가운데 개인적으로 ‘스펙’이 좋은 경우는 자회사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기업으로서는 내부 정보를 꿰고 있는 임원이 금방 다른 경쟁업체로 ‘팔려가는’ 사태를 막을 수 있고 배려도 할 겸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전문 분야에 따라 연구소 또는 납품제조업체로 가거나 카드회사로 갔다 다시 리스회사로 가는 식이다. 조금씩 하향조정이 된다고 할까?

그렇게 2~3년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알아서 그만두게 된다. 국민카드 사장을 지낸 이기용(73) 씨도 “더 능력 있는 후배들을 위해” 미리 자리에서 물러난 경우다. “재임기간 IMF를 맞아 내 손으로 직원들을 많이 자른 ‘죄 많은 인생’인데, 어떻게 혼자만 버팁니까? 3년 임기를 채우고도 2년 반이나 더 있었으니 그나마 혜택받은 편에 속하는데…. 섭섭하지만 때가 되면 내놓고 나오는 것이 순리지요.”

고위직 출신들은 퇴임 후 운이 좋으면 모기업을 완전히 떠난 다음에도 새로운 기업체의 사장이나 고문으로 초빙되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학벌이 좋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무엇보다 인맥이 좋기 때문에 중소기업체에서는 대기업에서 ‘놀던’ 사람을 초빙하면 대출이나 영업 쪽 판로를 뚫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팔리는’ 기간도 한계가 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인맥도 다 퇴직하면 더 이상 효용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요즘에는 퇴직연령도 낮아지고 또 한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다 더 이상 가능성이 없는 경우 스스로 회사를 옮기는 경우가 더 많다. 큰 광고회사 상무 출신인 H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광고계 선배가 세운 신생 광고회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사장의 가장 큰 업무는 광고주를 ‘물어오는’ 것인데 2~3년이 지나자 자신의 인맥을 다 동원해도 끌어들일 광고주는 다 끌어들이고 서서히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고위직들이 대기업에서 물러나는 가장 큰 이유는 ‘라인’ 간의 암투다. 부장까지는 열심히 일하면 승진할 수 있지만 일단 임원이 되면 ‘줄을 잘 서야’ 한다.

자신이 모시는 상사가 잘나가야 계속 승진이 보장되는데, 안 그러면 상사와 함께 회사를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 줄을 바꿔 타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은 ‘타잔’으로 불린다.

같은 줄 안에서도 임원급이 되면 서로 경쟁이 치열해져 견디기 힘든 경우도 생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본부장을 지낸 S씨는 해외 지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능력을 인정받아 최고위층의 든든한 후원을 받았지만, 동료 임원들의 견제에 따른 스트레스에 건강까지 악화되어 사퇴했다고 한다.

“사장까지 바라보고 꿈을 키웠는데,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가는 건강까지 크게 다치겠습디다. 좋은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고 주위에서도 말리고 상사도 붙잡았지만, 내가 제대로 살려면 나오는 편이 낫겠다 싶더라고요.”

퇴직 후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S씨는 처음에는 대기업과 달리 모든 조건이 열악하기만 한 중소기업의 사업환경이 “찬바람 부는 벌판에 선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또 거래처를 뚫기 위해 대기업의 낮은 직책에도 머리를 숙여야 하는 처지도 낯설었지만, 그래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자기사업이 훨씬 할 만하다고 말한다.

자기사업을 하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하는 편이 낫다. 하우스에이전시 출신으로 광고기획실을 연 박태준(51) 씨는 나이가 들어 창업하면 어렵다는 데 100% 동의한다.

“일감을 따러 회사를 찾아가면 후배 담당자들이 퇴직한 선배들에게 일을 잘 안 주려고 합니다. 광고라는 것이 창의성이 중요하고 각자 시각이 다른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선배에게 함부로 다시 하라거나 막 부리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차라리 학교로 진출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광고 쪽과는 정반대로, 기업에서 회계부서 출신이나 은행원처럼 숫자를 다룬 사람들은 회계사가 되어 인맥이 닿는 회사에서 일감을 따는 데 유리하다. 또 엔지니어 출신들은 회사에 대한 소속감보다 고속도로팀·아파트팀·철교팀 하는 식으로 ‘프로젝트’를 함께한 팀으로서 유대감이 더 강하고 기술 노하우도 있어 전직에 유리하다.

젊어 퇴직한 사람들은 창업할 수도 있고, 또 회사를 옮기는 데 적극적이고 비교적 기회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모두 그런 행운을 잡을 수는 없다. 자금도 부족하고 아무도 불러주는 이가 없으면 처음에는 헤드헌터에게 명함도 내밀어 보지만, 결국 소식이 없으면 골프로 소일하거나 옛 동료를 만나 옛 직장을 ‘씹으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경력관리 컨설턴트업체를 꾸리고 있는 성준경 회장은 직장을 - 그것도 고위직으로만 - 스무 군데나 거쳤는데, 새 직장을 얻는 비결은 “화려한 과거는 빨리 잊고 새로운 상황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호기심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충고한다.

일 대신 자신만의 세계 찾기도

아예 일자리를 찾지 않고 여유를 즐기거나 자신만의 세계를 닦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사람도 있다. 외무부에서 대사까지 지낸 N씨는 잠깐 경제단체 고문 자리를 맡았지만 “체질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집 가까이 오피스텔을 얻어 책 읽고 동료들과 한담하며 조용하지만 즐겁게 지낸다. 또 문공부와 청와대에서 일했던 Y씨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사진에 도전해 다큐 사진을 찍는다.

재직시절부터 산을 사랑했던 이승용 씨는 1주일에 두세 번 산을 오르고 동네 공원을 산책하며 ‘과분했던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살고 있다. 아직도 후배 직원의 개업식과 경조사를 챙기며 끈끈한 정을 나누는 그는 스스로 ‘질경이’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다.

“질경이는 땅에 딱 붙어 살죠. 자기를 한없이 낮추며 살지만 소가 밟고 지나가도 죽지 않고, 이파리는 나물이 되고 뿌리는 약이 되죠. 어떤 연유로 직장을 나왔든, 또 아무리 섭섭한 마음이 들어도 옛 직장을 욕하지는 말아야 해요. 그 직장 덕분에 자식 공부시키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으니까요.”

글 한경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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