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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McDonald
07/08/2020 10:41
조회  853   |  추천   25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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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3


아침에 커피를 내리는 일은 제 몫입니다. 한잔의 커피로 시작하는 하루가 제게는 더 없는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인 탓입니다.

아침도 당신이 해 주면 좋을 텐데

커피 잔을 건네는 제게 아내가 건네는 말입니다.

 

저희 집 아침 메뉴 중에 Breakfast Taco(얇은 밀가루피에 달걀, 작게 썬 소고기, 토마토, 양파, 씰란트로, 아보카도 등을 넣고 타파티오나 취향에 맞는 소스를 넣어 먹는 음식)가 있습니다. Breakfast Taco좋은 점은 큰 프라이 팬에 약간의 버터를 올리고 치즈를 얹은 밀가루피를 구우며 다른 한편의 작은 팬에서 Scrambled Egg를 하는 과장을 빼고 대부분의 재료는 미리 준비된 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조리가 간편 할 뿐 아니라 나름대로 영양의 균형을 갖춘-이른바 Balance Food입니다. 적당한 버터의 향과 달걀, 숯불에서 구워낸 고기의 맛이 커피와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먼저 할 일은 양파와 토마토를 적당한 크기로 썰고 그 위에 다진 씰란트로 얹은 후 간을 하는 일입니다. 모든 재료가 혼합되기 전에 간을 해야 제 맛이 납니다. 양파를 써는데 문득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1불짜리 McDonald치즈버거와 노인 우대 커피 한잔이면 행복하시던 어머니를 장미의 언덕에 묻고 돌아오는 -영정 사진을 모신 큰애는 울기를 멈추지 못했었지. 누구보다도 할머니를 사랑했던 큰애, 말라버린 가슴엔 가눌 없는 슬픔만 남아 한 동안 식음을 전폐하였었지. 기억이 기억을 물고 세월을 거스릅니다.

 

저는 살면서 어머님이 주무시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늘 나보다 먼저 일어나시고 나보다 늦게 주무셨기 때문입니다.

한때 을지로에서 양복점을 운영하시며 건설에도 손을 대신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시절에는 두 집 살림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처럼 Me too 사건이 만행하고 여권이 신장된 시기에는 엄두를 내어 서는 안되 일이지만 당시에는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4살의 나이에 아버님을 여읜 제 게 많은 기억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은 또 다름 슬픔의 한 단면입니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돌아오신 아버님은 불치의 병을 앓고 계셨습니다. 아버님의 병 수발조차 오롯이 어머님 몫입니다.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던 어머님은 바느질 가게를 운영하며 저희 6남매를 대학 공부까지 시키셨습니다.

 

많은 시골 처녀들이 저희 집 살림 도우미가 되었고 어머님은 그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치셨습니다(당시만 해도 서울에는 침식 제공만으로 기꺼이 식모되기를 원했던 시골 아낙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3-4, 바느질을 배우고 나면 자신들의 가게를 차렸습니다. 명절이 되면 바리바리 선물 보따리를 든 누이들이 기억 납니다. 어쩌면 식모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자신들을 어엿한 바느질 가게 주인으로 만들어 주신 어머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넓은 바느질 가게, 마루 방은 잔치 마당이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의 세월의 무게를 어느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종로 한 복판에 있던 기와집은 이사를 할 때마다 작아져 갔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먼저 미국 땅을 밟으신 어머님의 권유로 저도 이민을 왔습니다. 어머님께 남은 아들은 저 혼자였기 때문에 남아 선호 사상이 계셨던 어머님께 고국에 남아 있는 아들은 물가에 두고 온 어린 아이일 뿐입니다. 저희는 3여 개월 함께 살았습니다.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자존심이 강하셨던 어머니는 스스로 노인 아파트로 이주하셨습니다. 각자의 생활이 있는 이민 생활에 어머님을 자주 찾아 뵙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아픔을 그저 자신의 운명이려니 감수하며 사셨던 어머니는 지난 세월의 아픔도 멀리 하시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아들만을 걱정하셨습니다.

제 어머님은 만 96세에 영면하시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호상입니다. 하지만 어머님을 여읜 자식에게 호상은 없습니다. 세상에 회자하는 말들은 상을 당한 상주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일 뿐입니다. 따뜻한 진지 한번 해 드리지 못한 자식의 못남도 그렇게 세월을 따라 갔습니다.

 

"여보 아직 않됐어?"
아침을 재촉하는 아내의 목서리가 거실을 넘어 주방에 닿습니다. 칼질하던 손목에 힘이 빠집니다.
타코, 한번도 해드리지 못하고 보내 드린 나의 어머님.
"
기다려"

볼멘 소리가 거실을 건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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