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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vs 이상의 권태
06/18/2020 09:39
조회  266   |  추천   2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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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차라리 어둬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아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

아침 5, 새벽이라 부르지 않는 것은 이미 밖이 훤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명종처럼 대략 5분 정도의 오차를 무시하면 언제나 같은 시각.  커피를 내리고 화장실로 가서 배변을 하고 내려진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서재로 간다. 서재라야 차고를 개조해 책장과 책상 3, 컴퓨터를 들여 놓은 정도. 그나마 사적인 공간을 제공해 주니 불만은 없다.  컴퓨터를 켜고 한쪽 모니터로는 일기를 쓰고 다른 한편 모니터에서는 음악을 듣는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시작된다. 축적된 단조로움, 권태가 외로운 불만이 되는 이상의 권태 첫 마디를 닮았다.


이 마을에는 신문도 오지 않는다. 소위 승합 자동차라는 것도 통과하지 않으니, 도회의 소식을 무슨 방법으로 알랴? 오관이 모조리 박탈된 것이나 다름없다. 답답한 하늘, 답답한 지평선, 답답한 풍경, 답답한 풍속 가운데서 나는 이리 디굴 저리 디굴 굴고 싶을 만치 답답해하고 지내야만 된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병석에서도 생각한다. 아니, 병석에서는 더욱 많이 생각하는 법이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나는 이런 실례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오늘 아침에는 Andre Previn이 지휘하고 정경화가 연주하는Brahms violin concerto #1을 듣는다.  베토벤이라는 큰 산에 가로 막혀 늘 괴로워 했던Brahms. 그는 그 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포근함과 편안함을 잊고 살은 듯하다. Brahms의 장점과 정 경화의 명 연주가 잘 어우러진 명반.

반쯤 감은 듯, 뜨고 있는 듯 음악에 몰입하는 정 경화의 모습과 더불어 간간히 훑어 내리는 듯한 강렬한 지휘자를 향한 눈빛. 확대해 보여주는 운지법을 쫓아가며 서양음악의 구조와 합리성을 읽는 묘미. 그 절충, 양보가 아름답다. 그러나 이내 시들 해진다. 예전 같으면 능히 4~5시간을 견딜 수 있었지만 Covid19으로 누적된 제한적 생활은 참을성마저 흔들어 놓았다. 남들은 어떻게 견딜까?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 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이냐?

밤 마다 불을 찾아 헤매는 마음

차라리 재가 되어 숨진다 해도

아 아! 너를 안고 가련다 불 나비 사랑.

옛날 가수 김 상국의 불 나비 가사. 불에 타 죽을 지 언정 너를 안고 가 고픈 불 나비의 사랑. 이상에게는 뛰어들 불조차 껴안을 사랑조차 없었 나보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작은 서재안에서 온전히 보내야 하는 하루 하루. 오늘의 답답함은 이상의 권태를 닮았다.

    

이상 하면 떠오르는 그의 소설 날개.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 첫 구절은 아무리 되풀이해 읽어도 질리지 않는 명구다. 이 구절 하나 만으로도 충분하다. 천재는 천재인데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천재가 가져야 할 모든 기능은 상실된 체 외모만, 그것도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박제 특유의 무 표정과 메마르고 딱 딱함이 주는 참담함을 간직한 채 벽에 걸린 자신의 모습. 그의 영혼이 바라 본 현실의 모습은 얼마나 기막히고 암담했을까?

그리고 마지막 구절;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해야 하나? 망설이는 그대에게, 무료함의 벽을 헐고 다시 날고자 하는 천재의 간절함을 드립니다. 지금 답답한 모두에게!

Covid19 이여 안녕!

*italic체는 이상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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