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asong
우인(iamasong)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4.20.2019

전체     10223
오늘방문     7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1
02/02/2020 09:22
조회  384   |  추천   3   |  스크랩   0
IP 76.xx.xx.160

오늘은 고등하교 동기들의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예전에는 집을 돌며 모임을 가졌었습니다. 시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고 즐기는 술도 준비하느라 하루 이틀, 법석을 떱니다. 그만큼 일할 여력도 있었고 젊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짝들을 찾아 떠나는 사이에 우리도 조금씩 늙어 갔습니다.

 

요즈음은 식당에서 모입니다. 음식을 정성으로 장만하던 시절은 이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이런 모임을 30 가까이 지속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모릅니다.

 

오랜 세월 같이 하다 보니, 서로의 처지도 많이 변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이혼한 부부가 많다는 것입니다. 개중에는 재혼을 친구도 있고 아직도 Single 고집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본처와 다시 결합을 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듣습니다. 아마도 2부인과 헤어진 그래도 조강지처가 낮다고 생각 했나 봅니다.  이래저래 세월의 흔적이 친구들의 모임에도 끼어드는 형국이 됐습니다.

 

조강지처라는 사자 성어는 중국, 후한 시대 광무제의 누이, 호양 공주의 고사에서 유래합니다. 과부인 호양 공주가 광무제의 신하 송홍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을 아는 광무제가 어느 송홍 마음을 떠보려고 물었습니다.

 

"사람이 출세하면 아내를 바꾸고 부유하게 되면 친구를 바꾼다는데 자네는 어떠 한가?" 말에 송홍 "신은 가난할 친했던 친구는 잊어서는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臣聞 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대답했다는 고사입니다.

조강 지처라는 말의 본래의 의미는 먹을 것이 없어서 술지게미(조-) 쌀겨(강-) 먹으며 고생을 함께  아내라는 말입니다. 물론 봉건주의 사회 풍습아래 남자의 권위가 여자에 비해 월등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혼을 남자는 가난해집니다. 물론 예외가 있습니다. 소위 수저를 물고 나온 재벌 가는 사정이 다릅니다.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라는 말처럼 그들은 예외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다 하여도 그들이 행보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얼마전에 아내의 전시에서 만난 여자분이 저희 집을 오고 싶어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순간도 소위 풍요로워 본적이 없는 저희 살림 살이는 집의 모습에서도 적나라하게 들어 나게 마련입니다. 한국식 중정의 개념을 도입해서 집의 어느 부분에서도, 심지어 화장실에서조차 밖을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집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희 집을 오면 편안해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있습니다. 저희 만이 가진 소박함이 이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칭찬을 늘어 놓을 때마다 저는 이솝의 우화 올립니다. 왜냐하면 저희도 그들의 집을 방문해 경험이 있고, 부분 그들의 집이 가진 호화로움을 저도 알기 때문입니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모는 사람이 코로라를 칭찬하는 것은 아무래도 패가 있습니다.

 

어느 날 호화로운 부자에게 초대를 받은 이솝이 집안을 구경하던 중에 침을 주인의 얼굴에 뱉습니다. 당황한 부자가 이솝을 꾸짖으며 묻습니다.

도대체 눠 하는 짓이요

이솝이 답을 합니다.

이 집에서 가장 더러운 곳은 주인의 얼굴밖에 없군요

물론 우화입니다. 하지만 우화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화가 상징하는 것들-사람과 사람의 만남의 의미, 행복의 조건, 우리가 사는 이유들이 물질 만능 주의에 가리워지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입니다.

방문하셨던 그분이 헤어지며 아내에게 남겼다는 말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얼마나 함께 사셨어요

함께 세월이 족히 40년은 되지요아내가 했답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있나요? 지루하지 않으세요?”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의 삶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소 무거운 주제입니다 마는 피 할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진솔하게, 현학적인 사유를 가능 하면 멀리하며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글은 그 첫 단추를 끼우는 일에 해당합니다.

 

늘 미학적 완성을 꿈 꾸던 몽테를랑은 세상을, 인생을 오래도록 들여 다 보고 나면 신 또는 자살 중에서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덕분에 나에게는 신이 있다라고 말 했습니다. 그렇게 말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몽테를랑은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합니다. 분명히 모순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신의 존재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가깝게 멀게, 우리는 종종 자살 소식을 접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연의 사태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재벌과 전직 대통령의 자살, 정치 지도자와 어느 유명 교수의 자살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들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산 그들이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궁금 합니다. 그리고 삶의 무게에 눌려 자살하는 많은 사람들, 어린 학생등 연예인들....... OECD국가중 단연 자살 율 1위. 우리의 고국 그리고 그안에 사는 내 형제 내 친구들. 

 

GMC-Grand Master Class에 진 중권 전 동양 대 교수가 나왔습니다. 철학을 전공한 그가 어느 날부터 정치 평론을 하며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을 늘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제게 진 교수의 학문으로의 회귀는 반가운 일입니다. 물론 지식인의 사회참여, 흔히 말하는 앙가쥬망도 중요 합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각자가 해야 몫의 일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농부는 농사 일을 통해서, 화가는 그림을 통해서, 음악가는 음악을 통해서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 가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능률의 문제에 입각하여 생각해 봐도 자명한 일입니다. 정치인이 짓는 밭 농사가 얼마나 소출을 올리겠습니까?

 

강연의 주제는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가?” 입니다. 

짧은 강의 시간내에 결론을 내기도 어렵고 이런 본원 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 자체가 모험 일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피해 가지 않는 것, 그 자체가 학자로써 당연한 일이고 해야 할 사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마무리에 아쉬움이 있지만 제 모습(?)을 찾은 진 교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진 교수의 매력은 무엇 보다도 솔직한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리 정연한 진 교수의 강연 내용 도 중요하지만 제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로 돌아온 진 교수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어눌한 저의 글이 아니라 직접 Grand Master Class로 들어가 진교수의 강의를 듣는 것은 어떨까요?

  

힘들고 어려워도 직시해야 할 문제들 앞에 떳떳하게 마주서서 고민을 하는 것. 설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지라도 의연하게 마주하는 것. 그리고 마음의 빗장을 열고 서로에게 닥아 가는 것.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명제 앞에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기본폴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블로그의 인기글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