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asong
우인(iamasong)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4.20.2019

전체     7158
오늘방문     17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11/26/2019 08:07
조회  202   |  추천   1   |  스크랩   0
IP 76.xx.xx.160

고난에 관하여-1

 

책장 앞을 서성입니다. 눈에 들어오는 낯 익은 얇은 책. 무심코 펼쳐 봅니다. 페이지 마다 빼곡히 써넣은 메모들. 내가 써넣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읽을 수 없습니다. 책을 살 때마다 습관처럼 써넣은 구입 날짜는 2002. 17년 전에 구입해서 읽은 것 같습니다. The Bible Jesus Read(하나님, 나는 당신께 누구입니까?). 책 갈피마다 까맣게 써 놓은 메모들이 눈에 뜨입니다.

Philip Yancy는 인간의 고통라는 주제를 가지고 3편의 연작을 썼습니다. 책의 제목이 작가의 집필의도를 웅변적으로 말해 줍니다. Where is the God when it hurts,(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Disappointment with God(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The Bible Jesus Read(하나님, 나는 당신께 누구입니까?)

 

무슨 아픔이 이토록 치열 했을까? 문득 망연 해지며 오늘의 나를 바라봅니다. 나의 영혼은 지난 20여년, 전혀 자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모습이 그 모습. 전혀 자라지 못했습니다. 자라기는 커녕 낡아 지기만 했습니다. 바래고 퇴색해 곧 바스라 질 것 같습니다. 책갈피 사이에 냅킨위에 적어 넣어둔 글이 눈에 뜨입니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잠하라.

햇살이 너를 비출 때까지.

 

네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

아무도 아픔을 이해하지 한다.
슬플 때는 스스로를 위로해야 한다.

그마저 못한다면 어찌 견디랴!


살아남는 일은 모진 일이다.
부끄러움도 도망치고 싶은 유혹도
버리지 바엔 안고 살아야 한다.

 

일어나 앉으면
둘 곳조차 없는 공간

잃을 것이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때는 사는게 아파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산발적으로 써 놓은 글을 보며 고통(고난이라고 해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고통의 문제는 다루기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그의 극복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결론은 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채 마무리됩니다. 명쾌한 결론으로 답을 준 적이 없습니다.  지금,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데 많은 경우 피안의 세계를 운운하며 달아납니다. 어쩌면 그 외에는 답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통의 문제는 오늘의 문제이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하는 본원적인 질문입니다. 억만금을 쌓아 놓고도 재화를 쌓아 놀을 광을 짓고 있는 부자에게 그리스도가 말합니다. 오늘 너를 데려갈 것인데 광이 무슨 소용이냐?

 

오늘은 고통의 문제를 바라보는 기독교적 접근을 간략하게 들 여다 보기를 원합니다.

기독교적 입장은 대개의 경우 2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고난이 너에게 유익하다는 입장입니다.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고난을 통해 성숙한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크게 쓰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욥기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 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하는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통은 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입니다. 죄에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원죄자본 죄입니다. 원죄를 말하면 바로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슬리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의 뿌리 자체가 내 안에 있다는 것도 원죄에 해당합니다. 자본죄는 살면서 스스로 짓는 죄를 말 합니다. 살면서 짓게 되는 죄조차도 살펴보면 그 뿌리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결국 뿌리는 원죄에 해당하므로 굳이 분리해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통이 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비로서 고통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성직자들, 카톨릭을 비롯한 기독교의 대학 교수들….. 실로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지만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고 떠났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제시는 하지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하는 구체적인 답변은 비껴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글이 무거워졌습니다. 오늘은 큰 숨 한번 들이쉬고 도 종환 시인의 시 한편 나누며 나갑니다. 때에 이르면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 하는 문제에 대한 다른 시각들도 살펴보려 합니다.

 

가지 않을 없는

가지 않을 없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어떤 길은 정말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것이다.

 

한번쯤은 다시 걸어 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때문에 눈시울 젖을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나서는 새벽이면

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있는 길은 없었다.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길은 없었다

길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때 있지만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가지 않을 없는

오늘 가지 않을 없던

"기본폴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블로그의 인기글

가지 않을 수 없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