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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나의 목사님
06/19/202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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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물 줄기는 막을 방법이 없는데, 들어오는 물줄기가 메 말라 간다면 언젠가는 못의 물은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물이 흐름을 멈추고 정체되면 고인 물이 되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기독교의 전도 내지 선교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리라는 나의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많은 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헌신과 노력을 자본주의에 이미 물들어 있는 기독교가 해내리라고 믿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성전, 한해 헌금이 수백억을 넘는 대형 교회, 대통령이 다니 는 교회…..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한때 일을 위해 이슬람 권에서 1년이상 살아 본 경험이 있다. 이슬람 권에서 뇌물이 아니라 마음을 담긴 선물 중 하나는 작은 양탄자 선물이다. 대략 2ft. x 5ft. 크기의 작은 양탄자 - 그들이 매일 드리는 메카를 향한 기도를 위한 깔개이다. 선물을 받은 이가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른 하나는 티벳 불교를 믿는 국민들의 오체투지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의 평생 소원이 갠지스 강가의 작은 도시, 바라나시에서 목욕을 하는 것을 소원하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이 평생을 통해 드리는 봉헌의 노력은 개신교 인들이 상상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우리의 오늘날의 모습은 어떠 한가? 이들의 인내와 헌신, 이들이 기울이는 노력의 흉내라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많은 반론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귀한 것은 피와 땀의 결실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고 우리의 숨은 속내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는 분명 점검해야 할 대상이다.

 

결국 기댈 곳은(늘 되풀이 되는 것처럼)기도 하세요, 말씀을 보세요,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세요 일 텐데, 변질된 바울의 신학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보다 솔직한 생각은 개인의 노력과 깨달음보다 심히 부패되고 잘못 강조되어 있는 성령의 도우심-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교리는 결국 기복 신앙과 성직자들의 타락을 방조하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 다음 생각해 볼서 있는 것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과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적 믿음과의 갈등인데 AW의 지적처럼 우리는(정확히 말해 기성 성직자들의 의도된 선택으로 말미 암아 형성된 현재의 상황)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성의 무게를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다는 우려를 금 할 수 없다.

 

우리는 사색하여야 한다. 인간의 사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색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진리가 저장될 수 없다. 현재의 복음 주의는 두 진영으로 나뉘는 것 같다. 한쪽에는 인간의 이성을 너무 믿는 나머지 이성주의에 빠진 사람들이고, 다른 한 쪽은 지적인 것이라면 모두 의심스럽게 여기면서 사색을 시간 낭비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 두진영이 모두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 자의식이 너무 강한 주지주의는 사람에게나 하나님에게 불쾌한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계시들은 전부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 졌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선지자라 불리우는 A. W. 토져(Aiden Wilson Tozer)의 말이다.”


나는 왜 기독교 인이 되었는가? 그 연유를 일일이 열거하는 일은 세계적 지성인 버트란드 러셀 경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만큼이나 길고 뚜렷하다. 하지만 이 글의 논제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그 사유를 일일이 나열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지금 나의 글이 종교 개혁 이전의 기독교 사회에서 종교 재판 회부를 생각할 만큼 위험하고 심각한 일임을 모르지 않는다. 더불어 서로를 인정하고 조화로운 삶을 지향해야 하는 이런 노력이 얼마다 커다란 반대에 직면하리라는 상상도 그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현재 한국, 내지는 이민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교리와 분위기 속에서는 요원한 일임은 자명하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개신교의 모습은 근본 교리부터 검토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고 있으며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는 성직자들과 더불어 우리 성도들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절망에 빠져 있는 성도들에게 전혀 힘이 되지 못하는 종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직 일부성직자들의 간악한 치부의 수단이 되어버린 현재의 교리와 설교들. 대한 민국 큰 교회들 중 단 한군데도 이 사실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

부조리와 외로움 속에서 힘이 되는 신앙.
빛과 소금의 역할을 능히 감내하게 하는 신앙.
오체 투지를 할 만큼 희생과 인내를 견디게 하는 신앙.

숨겨진 속내가 없는 신앙.

부끄러움이 없이 자랑이 되는 신앙.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신앙.

거듭남이 확실한 신앙.

능히 나를 죽여 내 안에 주님이 정좌하시길 기뻐하는 신앙.

그리고 무엇 보다도 나는 왜 크리스찬이 되었는가?”를 떳떳이 밝힐 수 있는 담대한 신앙

 

이를 위해 오늘 개신교가 할 일은 하나님 위주의 강해 설교와 더불어 인간의 실체를 바라보고 구체적인 인간에 대한 성찰과 이해를 통해 거듭남이 비밀을 밝혀 내는 일이다. 일례로 Open book test를 하듯 이미 결론 지어진 QT를 하며 마치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자만하는 모습은 역겹다. 모 교화가 성공한 프로그램(예를 들어 제자 훈련)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우리 교회에 적절할지? 그 교회처럼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훈련 자체도 문제다. 대충 대충 모양새만 갖추어 가지고는 안 도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구태의연하고 매너리즘에 빠져 어제 한 말씀 오늘 되풀이되는 말씀. 지겹지 아니 한가? 이는 성직자들의 문제라 기 보다는 성도 개인 개인, 우리 모두 가 함께 지고 갈 십자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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