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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께 드리는 글- 두번째
02/15/202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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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사도 행전 1:8의 말씀을 잡고 묵상합니다. 목사님과 함께 나고 싶은 오늘의 구절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면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기도 하고 우리 교회의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말씀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먼저 생각하는 것은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말씀은 두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부족을 아시는 하나님, 그것을 채우시고 싶으신 하나님입니다. 이 부분에서 기독교의 교리(삼위 일체)를 재삼 설명하는 것 보다는 본인을 내어 주시고자 하시는 의지와 목적에 우리의 시선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봐야 할 것은 손이 아닙니다. 달을 봐 야지요. 손을 보고 싶은 유혹과 무지를 떨구고 달을 보려는 노력 - 하나님의 은총에만 매달리고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도외시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는 일입니다.  

두번째 “…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대목입니다. 주시고자 하는 것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살면서 느끼는 인간의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도 그 한계로 인하여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마음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 보다도 나와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진 다름 종족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일은 불가능 하게 보여집니다. 따라서 권능의 본질은 내게만 주어지는 무엇이 아니라 나를 통해 나타나는 모든 것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아집, 나의 틀, 나만의 생각으로는 증인이 되기는 커녕 말 한마디 제대로 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나를 버리고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의 성품을 내가 있던 그 자리에 앉혀 들리는 일. 아마도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권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는 당연히 지정학적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 마을, 그 건너 이웃 마을, 다른 나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나, 이 외로운 항성 모든 곳을 가리키는 말이라 사료됩니다.  더불어 아직도 삶의 본질을 모르는 미명의 혼돈 속을 사는 인간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다음에 마음에 와 닿는 대목은 “…..이르러입니다. 이른다는 것은 어느 지형학적인 지점에 다다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리적인 행동이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요즘처럼 SNS가 발달하고 달라진 세상에서는 달리 생각 해 볼 수 있겠지만 여전히 문명의 이기가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오지가 존재합니다. 그곳까지 가기 위한 노력, 인간의 의지를 말 합니다.

증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왜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증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르튀스(μ?ρτυ?)라고 합니다. 이 단어에서 순교자를 뜻하는 영어단어 마터(martyr)가 나왔다고 합니다. 증인 이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순교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땅히 순교자적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작금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증인으로 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에게 묻고 싶은 대목입니다.

단순히 입으로 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을 잘 알고 계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은 행동으로, 일상의 그들의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서의 삶을 살려면 우리의 삶, 자체가 정직하고 책임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교회가, 기독교 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습관으로, 또는 교회를 안가면 왠지 찜찜하니까 다니고 있지는 않은 지 모릅니다. 정직한 증인이라면 당연히 삶의 우선 순위가 신앙 공통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불가에 無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움이 없다 거나 무식하다는 뜻은 당연히 아닙니다. 마치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아니하듯이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를 말 합니다. 미리 짜여진 각본에 의하여 인간의 의지를 강요하는 교육이나 강의, 훈련은 이미 그 자체로써 무의미 합니다. 말을 물가로 데려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 없는 이치와 동일합니다. 자발 적인 참여,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결정, 정직한 고뇌 ?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결핍된 사안들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언제부터 인지 우리(기독교)는 많은 Program을 쏟아 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일부 Program은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목적을 위하여 보다 중요한 근본적인 사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마치 Open Book Test를 하 듯이 진행되는 QT의 경우입니다. 마치 일제의 잔재인 주입식 교육 현장을 보는 느낌입니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목적에 이르게 하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특히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루는 분야에서는 과정의 투명성, 정직성이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QT의 가장 중요한 점은 먼저 마음을 바라보고, 고요한 상태에 이르러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만남을 하는 것 일 것입니다. 계획된 무엇이 숨어 있다면 下策입니다. 만들고자 하는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굳이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본성(?)중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가 자유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래전 모 철학자가 장자 강의를 하며 던진 말이 생각 납니다. 그는 청중을 향해4가지는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1.     남이 하는 밥 먹는 연예 Program.

2.     남이 하는 여행 보는 연예 Program.

3.     남이 하는 낚시 연예 Program.

4.     남이 하는 애 키우는 연예 Program.

이유는 가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우스개 소리를 들으며 작금의 우리 신앙의 현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모 철학자의 우스개 소리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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