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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in Nigeria Zoo
01/27/2020 12:09
조회  277   |  추천   1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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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충격적인 뉴스가 2개나 있었습니다. 모두 슬픈 소식입니다. 하나는 헬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천재 농구인, Kobe Bryant 사망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Death in Nigeria Zoo-나이지리아 동물원 사자 이야기입니다.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생생히 담은 영상물이 제게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갈비뼈는 물론이고 등뼈마저 송두리채 드러나는 참담한 모습입니다. 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힘에 겨운 사자는 들어 눕습니다. 곳에 상처는 방치되어 있고 극성스러운 파리때가 상처와 눈가를 괴롭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응을 없는 사자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백수의 왕이라는 용맹스러운 사자의 모습을 찾아볼 없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2012 시월달에 방영된 영상이 이제야 우리에게 전해지는가? 하는 의구심입니다.  마지막 사자에 대한 소식은 2018 4월에 제작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소식을 전해준 한국 미디어는 독일의 공공 매체, DW 2018 4월에 제작한 영상물을 근거로 한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영상물의 주인공 사자는 유명을 달리 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생기는가? 자연 재해 탓으로만 돌리는 일이 타당한 일인가? 자문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부지불식간에 선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서양의 인본주의적 사상에 물든 탓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양은 근본적으로 생명 존중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정복자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잠시 땅을 빌어 생명을 유지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함께 살아 뿐입니다나무, 포기, 공중의 새나 위의 동물, 모두가 함께 사는 살아 갑니다. 하나 하나가 각기 존재의 이유릏 가지고 있습니다. 높고 낮음, 우월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세상의 어느 하나도 소홀히 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평소 존경하던 K 목사님이 은퇴를 하시고 새로운 사업에 착수하신 모습을 최근 들어 방송을 통해 적이 있습니다.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K목사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남은 인생에 일중에 하나는 베푸며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베품과 나눔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품이란 말 속에는 나는 보다 가진 것이 많다는 우월감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나눔은 발상 자체가 베품과 다릅니다. 공생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엠마우스 공동체의 창시자 아베 피에르 (L’Abbi Pierre)신부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신부님은 그의 유언을 통하여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와 K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베품 나눔 차이를 명쾌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이유와 방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 없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았을 비로서 삶의 기쁨과 희망은 새싹처럼 자라날 것이다. 또한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는 자들을 먼저 보살피라고 말하고 싶다. 나눔은 자선이 아니라 더불어 살고자 하는 당신과 나의 마음이다.”

 

엠마우스 공동체의 규칙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 됩니다.

첫째, 우리는 스스로의 노동으로 생계를 꾸린다.

둘째, 우리는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나 우리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행위가 자선 행위가 되게 하여서는 안된다.

셋째, 우리는 일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부유하게 만들지 않는다. 

규칙을 넘어서는 결단이요 자기성찰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 ?  역설 적으로 말하면 무엇이 우리를 사람답게 살게 하는 ?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초지 일관해야 하는 것이지요. 더불어 깨어 있어서 자신을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기 성찰이 게을러 지면 딱딱 해집니다. 딱딱해 지면 부드러움을 잃게 되고 관념론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관념론 자는 논리로 치닫게 되고 생동감을 잃게 되지요. 특히 나이가 들어 가며 조심해야 덕목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자연과 더불어, 인간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욕심이 화를 부릅니다.  모든 것을 경제 논리로만 파악하는 인간의 오만은 자연을 훼손시키고,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 세대가 이미 겪고 있는 사실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 기후 변화로인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불, 아프리카의 가뭄과 기근…… 이루 헤아리기조차 힘든 사태가 외로운 항성, 지구를 괴롭히고 있지 않습니까? 일일이 이로 인한 피해 상황을 재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하지만 조만간 우리 자신이 격어야 직접적인 피해는 보듯 뻔합니다.

 

모든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류의 자산을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입니다.   

 

절망을 이야기하는 거칠고 마른 , 이제라도 당장 찢겨 나갈 것같은 윤기를 잃은 피부와 , 슬픈 사자의 눈망울이 아른대는 화창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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