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부총리 내 월급을 가불해서 보내시요"  


박대통령께서 1962년 대통령에 취임하시고 나서 다짐하셨던 것이

내치와 외치를 모두 성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행정부의 수반과 국가원수의 직위에서 내치에 성공하고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지위에서 외치에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하신 것입니다.

사실 역사상 내치와 외치를 모두 성공한 대통령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일본과 호주는 외치에 실패 했지만 내치에 성공해서

근대화한 경우이고 미국은 세계대전에 승리 함으로서 외치에 성공한 경우 입니다.

 

한국은행 총재가 꼽은 6.25이후 우리나라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때가 1960년대 였다고 합니다.

이시절을 제대로 극복 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겠지요 

박대통령께서 외치에 성공하기 위해서 대외적으로 가장 염두에 두신

것이 수출입국의 기반을 닦는 것이며 선진국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었읍니다. 당시 박대통령께서 정부 관료들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

"국민을 배신 하지 맙시다."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 라는 자신감을 줍시다" 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GATT 가입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소개 합니다.
대통령과 당시 정부의 외무. 재무의 관료들이 수출국가로서 발돋음을

하기 위해 GATT가입을 추진 했는데 이GATT가입 준비만 4년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GATT 가입이란게 그냥 신청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입

신청을 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무엇을 생산 하는 나라인지에 대해

GATT 본부에서 심사를 하고 기존 회원국의  GATT 본부에서 심사를

하고, 기존 회원국들의 대표들이 투표를 해서 결정하는데 회원국의

3분의2가 찬성 해야 가입 허가가 됩니다.

한국이 GATT 가입을 하기위해 테스크 포스팀이 만들어 졌고 치밀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196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GATT 총회에서

가입신청을 하기 위해 이 팀이 출국 하게 됩니다.

그런데 GATT 가입을 하기 위해서는 GATT 위원들과 많은 협상을 해야

했었고 기존 GATT 회원국의 대표들애개 한표 부탁 한다는 로비도

해야될 필요가 있었겠죠,  

그런데 그 당시 대한민국이 무슨 돈이 있었겠읍니까?

GATT 가입을 위한 태스크 포스트팀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5개월을

채제하는 동안 여관에서 머무르고 여관방에서 직접 밥을 해 먹으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이분들이 GATT 위원들과 기존 가입국가 대표들에게 식사라도

대접 할수 있도록 본국에 돈을 보내 달라고 요청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재정은 너무나 가난 했읍니다. 부총리 에게서 이

보고를 받은 박대통령이 하신 말씀이....


"부총리!"...내 월급을 가불해서 보내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