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ctor
배낭이(hector)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9.16.2011

전체     611282
오늘방문     53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99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블로그 뉴스 시민 기자
2015 Koreadaily Best Blog
2014 Koreadaily Best Blog
2013 Koreadaily Best Blog

  달력
 
알로하 하와이의 음악과 함께..
09/01/2016 09:30
조회  2534   |  추천   9   |  스크랩   1
IP 73.xx.xx.4

하와이제도는 

약 2천800년전에 화산폭발로 생겨났으며, 

8개의 큰섬들을 포함하여 

약 130여개의 크고작은 섬들과 

산호초로 이루어진 곳이며

1788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상륙하여 

비소로 세계에 알려지게된 하와이 제도는

당시 여러 왕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하와이섬의 한 추장인 카메하메가

 이 섬들을 평정하여 통일하고 1795년 이후

 약 100년간 8대에 걸친 왕조의

 기틀을 세웠다.


그 후 1850년대부터 시작된

 이민 정책으로 쇠퇴해진 하와이 왕조는

 1894년에 공화국이 되었다가 

1898년에 미국과의 합병 조약을 체결,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로 흡수 승격된다


하와이의 주도는 호놀룰루이며

 하와이의 제일 큰 도시

역시 호놀룰루시다,


위는 하와이를 통일시킨 카메하메아 1세의 동산이며 

아래의 글 내용은

하와이 홈페이지(The hawaiian islands)에서 가져온 글 .

하와이 역사

"알로하 주"는 1959년에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지만, 하와이의 역사는 그 보다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약 1,500년 전에 마르키즈 제도의 폴리네시아인들이 하와이 섬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별자리에만 의지해 길을 따라온 폴리네시아인들은 카누를 타고 기적적으로 2,000마일(3,218km)을 항해한 끝에 하와이 제도로 이주했습니다.


그로부터 500년 후 타히티 사람들이 뒤이어 들어오면서 이들이 믿던 신과 반신반인 개념도 같이 따라왔고, 카푸(금기) 제도를 기반으로 한 엄격한 사회 계층이 형성되었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하와이 문화가 번영하면서 훌라 예술과서핑 스포츠가 탄생했지만, 한편으론 부족간 영토 분쟁이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1778년에 제임스 쿡 선장이 와이메아 베이를 통해 카우아이에 상륙했습니다. 샌드위치 백작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이 군도를 "샌드위치 제도"라 명명하고, 쿡 선장은 서양에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하지만 쿡 선장은 그로부터 일 년 후에 하와이 섬의 케알라케쿠아 베이에서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1791년 노스 코할라 태생의 카메하메하 왕은 하와이 섬의 숙적인 부족을 무찌른 후 계속해서 하와이 제도를 통일해 나가 마침내 1810년에 하와이 왕국을 세웠습니다. 1819년 카메하메하 왕이 세상을 뜬 지 채 일 년이 못 되어 그의 아들 리홀리호는 카푸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1820년에 신교도 선교사가 처음으로 하와이 섬에 도착하면서 막을 내린 카푸 제도의 빈 자리를 채우게 되었습니다. 하와이는 뱃사람과 상인, 고래잡이 선원들이 들르는 항구 기지가 되었습니다. 마우이의 라하이나 하버에서 포경 산업이 번성했습니다. 이렇게 발전하는 동안 서양의 질병이 퍼지면서 하와이 원주민 사망률이 상당히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서구의 영향이 늘어가는 와중에 하와이 경제를 대부분 장악한 미국 식민지 개척자들은 1893년, 비록 평화적이었지만 논란이 많은 정변으로 하와이 왕조를 전복시켰습니다. 1898년에 하와이는 미국 영토로 흡수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이 하와이 경제에 박차를 가하면서 일본, 중국, 필리핀, 포르투갈의 이민자들이 유입되었습니다. 제임스 돌의 통치 하에 있던 라나이는 세계적인 파인애플 수출지가 된 후부터 “파인애플 섬”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민자들의 여러 인종이 섞인 덕분에 오늘날 하와이의 인구 구성은 매우 다양합니다.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이 오아후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1945년 9월 2일에 일본이 USS 전함 미주리에서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끝났지만, 이 전함은 지금까지 진주만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959년에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와이는 방문객과 알로하 정신을 나누는 세계적인 관광지입니다. 햇살과 서핑뿐만 아니라 하와이의 풍부한 문화 역사도 배우며 여행의 깊이를 더해 보세요.




요즘은 어느 중요 여행지를 여행하면 

그곳엔 관광객 전용 투어버스가 있다, 

하와이에서 두 번째 날

 우리도 투어버스를 이용해 

종일을 구경을 다녔는데

 가격은 저렴해서 좋긴 좋으나,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되는 

단점이 있어 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편한 것은 6명 정도의 

인원이면 한인 여행사에 문의해서

 일일 관광 가이드을 통해 여행 코스를 잡아 돌아보는 것이 

이곳 하와이에서 내가 경험한 좋은 방법이다,


와이키키 해변을 걷고 있을 때였다, 

나이 많은 미국 할머니가 

한국 어린이로 보이는 애한테

 뭐라고  말을 하는데 

어린애가 통 알아듣질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한국에서 온 애들이었다, 

우리 일행이 마침 그 옆을 지나가다

미국 할머니에게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어린 아이들 4명이 보호자 없이 

놀고 있었던것을 이 할머니가 

1시간 이상 지켜보다가

  보호자 없이 놀고 있는 이 애들이 걱정되어

 하와이 경찰을 불렀다고 한다, 


조금 있으면 하와이 경찰이 온다며

 그 한국 애들한테 부모를 빨리 오라고

 하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어린애들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며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던 순간에

 우리가 그 앞을 지나간 것이었다, 

4명 중 한 남자아이는 

약 10살 정도였고 나머지 

애들은 4살 5살 정도로 보였다, 

10살 먹은 이 큰 아이가 나머지

애들을 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할머니의 눈에는 

당연히 그 10살 배기 어린애도 

애들로 보였던 것이었다, 

아무튼 경찰 한무리가

 이 어린애들에게 왔고 

어리둥절 못하는 이 애들은 우리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구경군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나도 많이 당황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빨리 부모가 와야 했는데 

그 시간 부모는 애들만 놀게 해 놓고

 쇼핑을 하는 중이었다, 


이들 부모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도 

이들은 한국 전화만 갖고 있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구경을 하던 무리 중에 

한국 여행객이 자기 전화로

 애들 부모에게 전화를 해 주었다, 

다행히 이 애들은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쇼핑을 하던 애들 부모들이 

30여 분 정도 기다리니 급하게 이곳으로 왔다, 

애 엄마들은 아주 젊어 보였다, 

경찰들은 부모들을 데리고

 아동 방치 혐의로 경찰서로 가야 한다는 등

 이런 경우 애들을 부모에게 돌려줄 수 없다는 등의 말을 하며

 이들 철없는 30대 초반의 한국의 애 엄마들을 위협했다,


 애들 엄마들은 눈에서 

커다란 눈물을 떨어뜨리며 경찰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경찰들은 너무나 단호하게 경찰서에 

가서 애들하고 엄마하고 분리를 시켜 놔야 한다고 했다, 


난 속으로 경찰이 너무나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더 세게 애들 엄마를 혼내고 나서야

 다시는 애들을 따로 놀게 하지 말라는 

훈계를 듣고 경찰은 그곳을 떠났다.,


 붉은 노을이 와이키키해변을 물들이고 있었고

호텔쪽으로 걸어가는

 이들 애 엄마들의 뒷모습에도 노을이 비졌다,

 좀 철이 없어 보이는듯한 젊은 애들의 엄마들도

10살먹은 애들처럼 위태롭고 아슬하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도 많이 들었나보다,,,



조금은 평범해 보이지만 

아주 독특한 지형과 문화가 살아있는 곳 하와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분화활동을 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바다가 있는 곳이 하와이다,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왕국이 존재했으며 

지금도 왕궁이 있는 곳,, 

최근에 미국의 주로 편입된 곳이다, 


알로하라는 영어가 아닌 

독특한 인사를 사용하고 있는 곳  하와이…. 

 이것 만이라도

 하와이를 여행하며

 와이키키를 걸어보고 싶은 매력은 충분히 있는 곳이다








한국지도 모양의 이곳 언덕에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이번 하와이 여행 때는 

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오전에 시간을 내어 이곳 부동산에 대해 좀 알고 구경을 하고 싶어

 어느 식당에 놓여있던 명함에 적힌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같이 하와이를 여행했던

 사람 중에 주유소와 마켓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곳 하와이에서도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덩달아 같이 구경을 하자고 했고

 나머지 일행들은 바닷가를 거닐었다,, 

여행 중 부동산 전화를 걸어본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몇 군데를 신통치 않게 구경하다

 마지막으로 제일 멀 게 있었던 

어느 주유소와 마켓을 함께 하는 곳을 들렸다,


주인은 한국 사람이었고 위치는

 와이키키 바닷가에서 1시간 정도를 한참 가야 했다, 

도중에 유명한 파인애플 농장도 거친 것을

 보면 많이 온 것이다, 

주변엔 사람이 사는 집도 없었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은 외진 곳이었다, 

이 부동산업자가 왜 이런 곳을 데리고 올까 

이상했지만 호기심에 그냥 둬 보기로 했다, 

같이 간 내 일행분을 너무 떨어진 외진 곳인데 

그냥 돌아갑시다를 몇 번 했지만

 내가 아니야 그냥 가봅시다 하고 우기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하와이의 구석진 곳을 

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농장지대를 한참 가더니

 이상한 외진 곳 어느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주유소는 그렇다 치고 마켓안을 구경했는데 깜짝 놀랐다 

마켓안은 물건들이 별로 없었다, 


커다란 공간 안에는 거의 아무것도 있지 않은

 너무나 썰렁한 상점이었는데 

마켓 주인은 우리를 보더니 

마켓 안쪽으로 안내해주면서 끝쪽에 있는 문을 열어 보여주었다, 

그 문을 열자마자 다시 한 번 놀랬는데 

자그마한 도박장이 그곳에 있었다, 


불법으로 도박장을 하고 있었고

 그 안에는 동양사람, 

더 정확히 말하면 필리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어두컴컴한 곳에서 흐릿한 조명 하나만

 비추면서 도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를 마켓 주인인 한국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곳 하와이는 도박이 불법이지만

 이렇게 변두리에서는 사설 도박장을 하는 곳이 많으며

 관공서에서도 알고 있지만

 눈감아주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불법 도박장이 있는 것을 어떡해 살 수 있을까,

  맥주 한 병을 그곳 상점에서 먹으면서 

그곳 주인과 많은 설전을 

버렸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하와이는 우리나라 근대사와도

 밀접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하와이주의 상징꽃인 

노란색 무궁화 일리마(Ilima)는

우리나라 국화와 인연이 있으며,

 우리나라 일제 점령기에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머물면서 독립자금을 모아 고국에 보내는 등

 우리나라 독립을 지원하기도 하였고, 

한인 동지회에서 인천에 기부한 돈은 

나중에 인천과 하와이의

 첫 글자를 딴 인하대학교 설립의 초석이 되었다.



우연히 찾은 저렴한 가격의 한국식당


6명의 사람이 여행을 했기에 

밤이면 느긋하게 술자리가 이어지곤 했다, 


관광지역 중심의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자연스레 

소주를 시켜 먹게 되었는데 

저녁 식사값은 그렇다고 치고

 소주 2병 값으로만 50여 불을 내야 했다, 

안주는 반찬이 있어서  시키지 않았기에

 몇번이나 확인을 했다,


여태 한국을 비롯해 

소주 2병을 50불을 내고 먹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녁으로 한국 음식가격도 너무나 비쌌다,


이후 가격표를 꼭 물어보거나 확인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물가가  비싸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이리 실감 날 정도로 

많은 차이가 날줄을 몰랐다, 


그런데 월마트를 갈 일이 생겼다, 

버스를 타고 월마트를 찾아서 살 것을 사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이곳저곳을 전화기로 찾아보고 있는데 

월마트 가까운 곳에 한인 식당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와이키키 주변의 한인 식당에서

 너무나 비싼 한국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한국 음식이 먹고는 싶었지만,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게 되었다, 


그 한국 식당 주변에는 

여러 식당이 있는 것이 검색되었다, 

월마트에서 약 1㎞를 걸어서

 한국 식당 주변을 보니 정말 많은 크고 작은 식당이 보였는데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한국식당을 보면서 이 식당은 

"관광지의 식당이 아니라서 좀 싸고 괜찬을것 같은데",,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가서 물어봤다, 


그러고 얼마후 물어보러 들어갔던

 그분이 기뻐하는 얼굴로 우리를 불렀다, 

그 식당은 엘에이의 가격처럼

 저렴하고 맞 좋은 식당인 것이었다, 


가격표가 8불 9불 정도로 저렴했다, 

전날 먹었던 그 와이키키 관광지의

 서울식당보다 세배는 저렴한 것 같았다, 

주인아주머니도 맘씨가 좋아 보이셨다, 


역시 하와이의 한국 음식도 비싸지가 않았고 

이렇게 받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와이키키 주변의 그 식당들은

 자릿값 때문일 수 있지만 

소주 2병을 안주도 없이 50불이면 너무 했던 거 아닌가,


호텔에 들어오고 모처럼 포근하게 

전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하와이 음악을 들었다, 


와이키키가 있고 

하와이의 독특한 음악이 있던 이 밤은 

왠지 잠들기가 싫었던 밤이었다,




하와이제도,카메하메아,배낭여행,세계여행,
이 블로그의 인기글

알로하 하와이의 음악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