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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ong(몽)족의 새해 페스티벌
01/04/2015 11:11
조회  7427   |  추천   32   |  스크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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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즈노에는 동남아시아 사람들 중에

Hmong(몽)족 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프레즈노의 아시아 인종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프레즈노의 아시아인 비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 몽족은 

1993년도에 이곳 신문과 TV에 다큐멘터리식으로 

크게 공개된 적이 있었다,
그 몽족 사람들의 새해 축제가 이곳 프레즈노에서 일주일간이나 열렸다

 

오늘은 몽족에 대해  설명를 하고 싶다,


12/26/2014 to 01/01/2015
           Hmong International New Year Celebration
           Fresno Fair Ground
           1211 South Chance Ave., Fresno CA 93702
           Contact Info: (559)803-1026

 

 이 축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몽족들의 축제 중

가장 크며 가장 화려한 축제로 전 세계에서 이곳 프레즈노로

 몰려드는 몽들의 숫자도 이 기간에 제일 많다.,


 

 

 

1977년도부터  프레즈노로 이주하기 시작한 몽족은 

1989년 약 26,000명의 숫자로 기아 급속으로 늘기 시작했다, 

1993년 35,000명의 몽족이 이주했으며 

현재 약 50,000명의 몽족이 살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이 프레즈노에서 차지하는 

인구의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들 몽족은 어느새 이곳에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무서운 세력으로 커져만 가고 있으며

이곳에서 동양사람들 대부분이 몽족 으로 취급받고

넘어가기가 일수다, 


미국 프레즈노에 이민을 온 이들 몽족은 

다시 다른 주로, 유럽, 남미로 제 이민을 하는 그룹이 많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의 이민역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처음 도착한 이민자 몽족들은

 대부분 정부의 보조금으로 받고 살았지만 

1980년도에 도착한 대부분의 그룹은 농장일을 하면서

 삶의 터전을 잡아가고 있다, 


이곳 프레즈노에서 출생한 2세들의 역량에 힘을 얻은 이들의 삶이

 현재 많이 좋아져  은행,병원,관공서,등을 가 보면 

많은 동양인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 거의 다가 몽족들이다

 

1980년 후반부터 2014년도 까지

 40여 명의 청소년이 자살한 것으로 보면

 이들의 이민 생활도 남다르게

 많은 고민과 고뇌가 따랐음을 알 수 있다,

 
동양적인 사고와 미국적인 사고가 부딪친,,

나라 없고 뿌리 없는 민족의 고충을 살펴볼 수 있다

 

 

 

 

2013년부터 공식 발족된 몽족의 금융시스템도

 활발히 움직인다고 한다,
힘없고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시스템은 이곳 로컬 신문에도  보도 된 적이 있다


 엘에이의 한인들이 시작했던 것 처럼 이들도 

스스로 뭉쳐 은행도 만들고 커다란 상점도 만들며

진정한 몽족 타운을 건설 하려 하는것 같다,

 

 

 

2006 년에는 Blond Xiong은 프레스노 시 의회에 선출되어

 이들 몽족들의 커다란 자랑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라디오 방송국 KBIF 900AM,에서는

프레스노에 있는 몽 사람들을 향한 지향 프로그래밍을 방송해. 

2004년 부터는95%가 몽족 출신으로 일을 하고 있다,


 

 

몽족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고 

어림잡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숫자도 9백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중국에서 사는 몽족이 제일 많으며 중국에서는 

그들을 묘족이라고 불린다


 몽족의 근원은 중국의 윈난성 부근이라고는 설도 전해져 내려오지만

 하도 많은 설이 전해져 어떤 것이 정학하였는지는

 이들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고 한다, 


묘족(몽족)은 현재 중국의 귀주성에 

약 350만 명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데 이 규모가 제일 크다,
베트남에 80만 라오스에 50만 유럽에 100만 

미국에 26만 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몽족을 바라봐야 할 것은 

몽족이 과거 한반도의 고구려 유민이었다는 설이

 여기저기서 솔솔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책이 고구려 유민이라는 김인희 씨가 쓴 책이다,

몽족은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여러 가지의 예를 들면서

 강하게 자기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적어 놨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 생각은 좀 더 정확한 학문적이고

 과확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 윈난성에만 

60여 개의 다른 종족이 산다고 하며 

그중 가장 인구수로 5위에 묘족(몽족)이 등록되어 있다, 


아주 많은 애를 낳기로 소문난 이들의 뿌리를 두고

 중국과 한국의 일부 대학에서는 

그 뿌리에 대한 확인 작업을 20년째 진행 중이다,

 하지만 확실한 뿌리에 대해 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 


된장을 먹는 민족, 이씨 최 씨 성을 가진 민족,

 그리고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를 가진 민족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알에 대한 설화를 가진 이 이야기만

 중국에서만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2013년 5월에 나는 배낭여행으로 라오스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우연히 내가 사는 프레즈노의 몽족과

 라오스에 사는 몽족이 같은 민족임을 알고 매우 친근감을 가지며

이들의 마을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나라가 없이 떠도는 이들의 입장이 아주 비참한 것을 알 수가 있었는데 

라오스라는 나라가 그리 잘 사는 나라가 아님에도 

그 안에서 더욱 차별을 받고 사는 이들 몽족의 비참함에 마음이 아팠다,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의 법에 따라 보호를 받고 있는 이들 몽족은 

그야말로 천국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

다음은 2013년에 다녀온  Pablo의 배낭여행, 동남아 여행의

 라오스편  불쌍한 몽족의 아이들에 기제했던 

불로그 내용을 카피해서 올려 봤다,

http://blog.koreadaily.com/hector/694726

 
인도차이나 반도의 지도를 보면 
베트남과 라오스 태국의 국경이 
붙어 있는 것을 본다, 
이들이 원래 살아왔던 고향은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의 산 꼭대기 산맥 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은 이들의 독립을 전제로
 미국을 도와줄 것을 강요했고 
몽족은 실제로 미국을 도와 
라오스를 통해 들어오는 베트남의 보급로를 방해 공격했으며
 상당히 많은 타격을 입혔다고 한다, 

배트남전쟁때 어린아이 포함해 남자의 상당수가 죽었다
그 숫자는 공식적으로 5만명에 이른다,

전쟁에서 패한 미국은 이들 몽족이 베트남으로부터
 보복 탄압을 받는 것에 대한 비난을 막기 위해 
정치적 망명을 허가해 주었고 그 상당한 숫자가
프레즈노와 필라델피아로 이주했다



 



아직도 이들 몽족은 독립을 원하고 있고
이들의 임시정부는 미국에 있으며
현제 미국에 살고 있는 몽족의 수는 26만명에 이른다
 




1960년도 베트남전쟁때
CIA는 라오스 공산반군인 파테트 라오군에 맞설 
집단으로 몽족을 지목하고 적극 지원했다.

 

라오스의 몽족은  라오스 중부와 북부 산악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심폐기능이 발달하고 지구력이
좋아 산악작전에 유리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라오스 정규군도 존재했지만
 장비나 훈련이 열악했고 특히
 정신무장이 안된 나약한 군대였기
때문에 밑빠진 독에 물 붙는것보다는 
몽족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훈련시켜 
정예부대를 육성하는것을
선택한 것이다.



1962년 CIA는 라오스 북부 롱청(Long Cheng)에 
처음 기지를 세우고 몽족을 지원했는데
몽족의 지도자 방 파오 장군(General Vang Pao)이 
조직한 게릴라 부대는 롱청을 근거로
활동하며 북베트남 정규군과 파테트 라오군에
 맞서 큰 활약을 하게된다.



 몽족용병들은 북베트남 후방지역의 

교란과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미군포로를 구출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 하였다.
작은 키에 다소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매우 용맹한 전사들 이었다고 한다

 


족군이 주둔했던 롱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라고 할 만큼 오지였다


CIA의 지원으로 1964년 1260미터 길이의 활주로가 완성되고
1966년 세계에서 가장바쁜 공항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것은 미국이 당시 해외에 건설한 
최대규모의 시설중에 하나였다.

공항과 학교,은행등 사회기반 시설이 건설되고
 약4만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몽족 최대의 도시로 번성하였다.
당시 몽족들은 미국인 조종사들과 구호요원들을 
위한 부대시설 운영이나 라디오 수리,옷수선,구두수리등을
하면서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1973년 미군이 철수하자
 상황은 악몽으로 바뀌었다.

1975년 몽족은 라오스에 들어선 공산정권에 표적이 되어 
수천명이 보복살해되거나
 재교육 수용소에서
사망하고, 4만4천여명이 고향을 떠나 태국으로 탈출했다.

방 파오 장군을 비롯한 일부 몽족들은 미국,호주,프랑스로
 정치적 망명을 할 수 있었지만
5천여명의 몽족은 라오스에 남았다.


현재 라오스 밀림지대에는 몽족용병들과 
자손들이이 아직도  숨어 살고있다고 한다

 

이곳 프레즈노에 사는 
몽족의 국적도 다양하다, 
국적이 어디냐 물어보면 라오몽 어떤 이는 베트남몽 
어떤 이는 타이몽이라고 소개한다, 
각각 떠돌다 정착한 나라의 이름이며 
그 나라도 다양하다, 

지금도 몽족은 많은 수가 미국으로 이주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의 정치적 망명과
 가족 초청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 수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여행지를 가다 보면 그 나라 음식이

 어떤 것이 있나 궁금하고
호기심도 나며 카메라에 담아서

 나중에 꺼내 보기도 좋다, 


나는 세계 각국의 음식 모양을 

한 폴더에 모아 두고 있기에 언젠가 블로그에
내가 먹어본 세계 각국의 음식이란 제목으로

 포스팅하려고 생각 중이다, 


그러기에 이곳에서도 

이들만의 음식이 어떤 것이 있을까 많은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어 구석구석을
자세히 돌아봤는데,
이들의 전통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식당이 없었다,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 있지만, 

아무튼 이날 나는 일부러 점심때 이곳을 찾았고
점심으로 이들의 전통 음식을 찾았었다, 


중국음식, 스파게티, 숫불양고기, 우동, 한국갈비, 햄버거등의

 식당은 너무나 눈에 자주 띠었는데
이들 몽족들의 전통음식이랄 수 있는,,

 내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은

 없었던 것이 이상했다,


아마도 저녁때 나왔을지 몰라도

 점심때, 내가 2시간 동안

 이곳을 돌아 다닐 때는 없었다, 


이날 나는 따뜻한 우동국수를 먹고 왔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접한 31일 수요일 

크리스마스 대목도 지나갔겠다,......


 한가한 틈을 타서 몽들의 축제판이 열리는

 프레즈노 페어 운동장을 찾았다, 

몽족들의 축제는 해마다 크게 열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곳을 찾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가고 싶지 않았는데 

우리 직원으로 있는 몽 아가씨가 한번 구경을 해 보라고

 2.3주 전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었다, 


이들의 축제는 몽 미인대회 몽 축구대회, 배구대회, 음식대회등, 

짜임세 있는 일정으로

 일주일을 채우고 있었다, 


이곳에 살면서 처음으로

 몽들의 축제를 구경했다, 


난 그전에 배낭여행으로 라오스의 몽족 마을을 

가본 적이 있는데 이들이 라오스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개인적으로 

이웃의 몽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친근감이 있었다, 


고구려의 후손일 수 있다는 주장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었다,

고구려의 후손이면 어떻고 아니면 뭐, 어떠랴..

 

 

관심이 있는것은 아마도

일부 한국 사람한테만 국한된것 같다,

이들 몽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한반도의 고구려라는 나라를 들어 본적이 있냐"

물어보면 거의 전부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좀더 고구려라는 뿌리를 두고

이 축제를 관심있게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이 전통으로 입고 있는 

복장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난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이들의 생김새와 이들의 전통 복장으로는

 우리 고구려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완전 나만의 생각) 

사실 어떤 복장이 고구려때의 복장이며

어떤것이 우리 옛날 고구려의 음식인지도 모른다


생김세는 동남아 쪽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고

 옷의 전통 문양도 완전 동남아쪽인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추운날 약 2시간 정도 이들 축제를 구경했다,

그리고 이곳을 나가기전에 

  장사를 하는 

어떤 몽족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밖으로 나가는 입구가 어디냐" 라고 하니

 유창한 미국식 영어로 "나가는 출구는 저기서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고 가르켜 주었다..

 추운데 장사는 잘 되느냐 하니 추워서 그런지 

잘 안된다 하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 웃음은 이미 미국식으로

동화 되어버린 고구려,, 아니 동양인과 멀어져 버린

이국적 웃음으로 보였다,

나이는 약 30이 되어 보였는데 

이들은 이미 몽족이지만 몽족이 아닌 것 같았다, 


유창한 영어와 미국식 사고방식으로 

이들이 확실하게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자신만만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던 순간이었다,


왠지 이들 부모들의 고생에 가슴이 아펐다

 아시아 어느 구석에서

외롭게 국적도 없이 살아온

 이들 부모들은 이들 후손들에게

 확실한 밝은 미래를 만들어 주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이들의 부모 세대가 갑자기 위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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