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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사이와망' 의 전투 (Sacsayhuaman,쿠스코,페루) 07 SEP 2019
10/24/20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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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삭에서 돌아오는 버스가 쿠스코에 가까워지자,차창 너머로 "Sacsayhuaman" 이라는 표시판이 보인다.

삭사이와망은 쿠스코 광장에서 약 2 km 북쪽 가파른 언덕위에 위치해 있어,광장으로부터는 약 30분동안 

꽤나 힘들게 걸어서 올라갈수도 있지만,버스나 택시로도 쉽게 도달할수 있다.

나는 아직 해가 남아 있고,마침 버스가 그 입구 가까운 도로를 지나가므로 급히 운전사에게 여기서 내리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승객들이,나 대신 운전사를 큰소리로 부르며 정지 시켜준후,

손짓으로 여기서 내리란다.. 참 친절한 사람들이다.

아직 얼마간 남아있는 쿠스코 오후의 태양의 열기가,유적지 입구로 걸어가는 포도위를 덮고있어,나는 근처

카페에 들어가 오랜만에 커피 한잔을 시키며 땀을 식힌다.

오후라서 그런지 한가한 매표소 입구에서,아까 피삭에서 산 10일 통합 입장권을 보여주며 안으로  들어갔다.

쿠스코 가까운 북쪽,3700 m 언덕에 위치한 삭사이와망은 AD 900년경부터 이곳을 점령했던 Killke 문명기간

중인 1100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9 대 잉카왕인 Pachacute 와 그의 아들인 Tupac Inca Yupanqui

그리고,Huayna Capac 에의해 15세기 완성되었다고 하는데,1983년 쿠스코와 함께 UNESCO World Heritage
List 에 포함되었다.

입구를 지나 오른쪽 낮은 야산으로 향하는 표지판을 따라 가면서 바라다본 유적들.
잉카가 숭배하는 땅의 신 인 퓨마의 머리쪽 위치에 건설되어 있고,지그재그형 테라스 사이에 해가 떠오르면서
삼각형 모양의 그림자가 형성되면서,뒤 산맥의 봉우리와 계곡이 삼각형 그늘을 만드는것을 맞추도록,주위 환경과 
조화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군데군데,마치 야외 석물 전시물처럼 산재해 있는 바위들..

이곳에서는,현재 보이는것보다 훨씬더 많은 커다란 바위들이 있었는데,쿠스코 도시를 세우면서,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바위들을 운반해 건축에 사용하였다고 하며,너무 커서 운반이 어려운  돌들만 이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Chinkana chica : 일설에는 이곳이 잉카시대에 미이라를 두었던 장소라고도 하고,혹은 근처 물웅덩이로부터 

물을 빼던 물길 이라고도 한다.

혹은 이곳에서 쿠스코의 코리칸챠까지 2 km 정도로 연결되는 지하터널의 입구라고도 하는데,이곳에 스페인 

군대의 약탈을 피해 금 을 숨겨 놓은 장소였는데,왠일인지 이곳을 을 탐험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고통속에서

죽어갔다는 전설도 있다.

하지만  1950년의 지진으로 인해 입구가 막혀버렸다.


안데스의 한 부족이었던 잉카 부족은,파챠쿠티 왕(Pachacuti  : 재위 1438-1472 ) 때에 주위의 다른 부족을 

물리치고 정복 전쟁 30년만에 실질적으로 서부 남 아메리카의 거의 전부를 잉카제국으로 확장시킨 왕으로 

도시의 주요 광장에 그의 동상을 세워  추앙을 하고 있다.

이후에는 그 아들 Topa Inca Yupanqui (1471-1493)가   아버지를 이어 잉카를 현재의 에쿠아도르까지 확장 

시켰으나,이후 아타우알파(Atahualpa) 왕때에 스페인군이 쳐들어와 잉카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역사는 스페인군이 침입하여 잉카가 몰락한 아타우알파 왕 이후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아타우알파(Atahualpa, 1497년 3월 20일 - 1533년 7월 26일)는 잉카 제국의 14대 황제이다. 

현 에콰도르 지역에서 11대 황제 와이나 카팍의 서자로써 출생하였다. 1527년 형제 와스카르가 황제로써 

즉위하자 이에 반발하여 키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5년간에 내전 끝에 아타우알파는 와스카르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데 성공하였는데, 이를 기념하여 와스카르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황제로써의 생활은 얼마 가지 못하였다. 1527년 남아메리카에 상륙하여 잉카 제국을 침략할 

기회를 노리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아타우알파가 내전에서 승리한 후 수도 쿠스코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접근하여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아타우알파가 거부하자, 피사로는 이끌고 온 

180명의 군대로 아타우알파의 행렬을 습격하였다. 아타우알파 일행은 7천 명에 달하였으나, 대부분이 

비전투원이어서 피사로의 습격을 막아낼 수 없었고, 결국 아타우알파는 타고 있던 가마가 붕괴하면서 

피사로에게 체포되었다.

아타우알파는 몸값으로 자신이 감금된 방 안에 자기 어깨 높이에 이르는 금을 가득히 채워줄 것을 약속하였고, 

그의 명령 하에 잉카인들은 대량의 금을 방안으로 수송하였다. 

황금을 방안 가득히 채워 줌으로써,풀려날것을 기대했던 아타우 알파는,잉카족이 반란을 일이킬지도 모른다는 

상에 빠진 피사로에의해  스페인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않는다는 반역죄를 받아,목뼈를 부러뜨리는 형을

당하면서,잉카제국의 마지막 왕이 된다.

이후 스페인군은 그의 다른 형제 망코잉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꼭둑각시 황제로 만든후,200명이 안되는 

인원으로 그 큰 잉카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피사로의 막내동생 곤잘로가,망코잉카의 부인까지 빼앗아 감을 계기로 탈출한 망코 잉카는 스페인군과의

항쟁을 시작하게된다. (일부 위키피디아 에서 참조)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스페인군과의 격전지였던 삭사이와망을 둘러보게되면 특별한 감정을 느낄수 있다,

삭사이와망은 산위의 10명이 산 아래 1000 명을 대항 할수있을 정도로,전략적인 요충지 인데,무시무시한

화력을 가진 스페인군에 돌팔매 수준으로 대항하고,전쟁은 태양의 신이 있는 낮에만 하고,방에는 악마가 있다고 

하여 전투를 중지하는바람에 전투력이 떨어진데다가,설상가상으로 군인들사이에 천연두가 돌아 수많은 병사가 

죽게된다.그러나 결정적인 패인은 그동안 잉카족의 정복전쟁중에 희생을 당했던 주위의 다른 부족들이 

스페인편에 서서 연합작전으로 공격을하는 바람에 결국 삭사이와망 전투에서 패한 망코잉카는 남은 병력을 

이끌고,후일을 도모하며 빌카밤바로 피신한다.

아무도 찾지못하도록 도망간 열대우림소 빌카밤바가 잉카제국의 마지막 저항기지로써 알려지고 그곳에는 수많은 

황금이 아직도 남아 있을것이라는 소문을 믿고,황금이 있는 그  빌카밤바를 찾아가는중에 1911년 미국의

예일대학 라틴아메리카 역사학교수인 하이럼 빙험에(Hiram Bingham)의해 공중도시 마추피추가 발견된것이다.



언덕을 오르면 평평한  지대가 나오고

걸어 올라온 길 아래로,군데군데 돌로 뒤덥힌 지역과 평지가 보인다.

거대한 바위산 위 정상에서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500 년전 스페인군과 의 전쟁의 함성이 들리는듯 하다.

석기시대에나 쓰이는 돌,칼,창으로 무장한 잉카군이,화승총과,청동갑옷,투구를 입은 스페인군에 대항한 전쟁은,

4000년간의 간극이 있는 문명싸움으로 결과를 말해 무엇할까?


삭사이와망 언덕 넘어,가까이 쿠스코 시내가  보인다.

멀리 하얀 예수상이 있는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드디어 넓은 광장이 나오고 주위를 둘러싼 석벽이 보인다.



광장은 수천명의 군중이 모일수 있는 축제의 장소로 만들어져 있는데,이곳에서 매년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6월 24일 에 열리는 태양의 축제인 Inti Raymi 는 남미 3대 축제중의 하나 라고도 한다.

광장과 주변으로,적들의 공격에 대항하기 쉽게 지그재그형식으로 서로 안쪽으로 맞 물려 있는 석벽은,사이에 

종이 한장도 들어갈수 없을정도로 정교하게 짜 맞추어져 있어,그동안 지나간 몇 차례의 지진에도 끄덕없이 

살아 남아있다.

한쪽의  가장 긴 벽은 18m 높이의 긴 벽이 지그재그 형식으로 540m나 이어져 있고 있고,그중 가장 큰 돌은 

128-200 톤이 되며 그중 몇개의 큰 돌은 제사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가까이 잡아본 창고

석벽 중간에 보이는 창고에는 침입하는 적과의 전쟁을 위해 필요한 무기,철제도구,식료품,도자기,옷감까지 보관

하였다고 한다.

주요 건축물은  파챠쿠테 왕 재위시 세워졌는데,이처럼 거대한 돌을 운반하기위해서는,돌을 끌고 오기전에 우선

대강의 각도로 모양을 낸후,돌 아래에 통나무를 깔고,모서리에 로프를 감아 6000명이 끌고,4000명이 도로 기초를

놓으며 운반하여 제자리에 놓은후 마무리 조각을 하였다고 한다.

석공들이 워낙 훌륭해서 돌사이를 잇는 모르타르가 필요 없을정도였다

의 침입에 방어하게 좋게 안쪽으로 들어가는 테라스의 입구를 좁게 만들었다.

Muyuqmarka :Temple of the sun  20 m 4층 높이까지 건축되었을것으로 여겨지는 태양의 신전 터.

수로를 내어 중앙에 분수대를 만들고,주위를 빙 둘러가며 원형으로 신전을 지었을것으로 추측한다.

기독교를 믿는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파괴된것으로 알려진다.

아래로는 테라스 형태의 주거형태가 아직도 남아있다.


언덕아래 쿠스코 시내가 손에 잡힐듯하고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무슨 축제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음악소리가 이곳 언덕까지 들려온다.

하얀 예수상 Cristo Blanco : 2 차 세계대전후 쿠스코에 자리를 잡은 아랍팔레스탄인들에 의해 기증된 예수상으로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의 예수상의 Miniature 라고 볼수있다.

그곳까지 갈려다가 포기하고,시내로 내려가기로 한다

아직도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군중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려가는 길 풍경..

내려가는 길 안쪽에 정교하게 짜 맞춘 돌벽이 보인다.

이곳에 사다리를 올려 공격하는 스페인 군대와 위에서 필사적으로 항전하는 망코잉카 군대와의 전쟁을 

떠올려 본다

언덕을 내려오는길에 만난 San Cristobal 성당..

광장으로 내려가는 골목길이 아름답다

광장에 가까워 올수록,군중의 함성소리,음악소리가 크게 들려 마음이 바빠진다.

드디어 광장에 내려오니,수많은 사람들이 축제 퍼레이드를 지켜보고 있다


무슨 축제인지 모른채 나는 쉴새없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였다..

광장에서 이런 광경을 만나다니 행운이다..


각기 다른 모습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조를 이루어,일정하게 반복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추며 광장 주위를 돌고있다

춤추며 돌고있는 원주민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한가득하고,이를 보는 군중들도 역시 덩달아 행복한 모습이다.








맨 마지막 조는 젊은이 들로 이루어져 있는데,굉장히 역동적인 춤으로 바라보는 우리 마져도 힘이 복돋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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