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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진기행(통리,동리,Tongli 27NOV 2017)
02/15/202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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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리는,북경과 항주를 잇는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구간중 소주 부근의,대표적인 네개의 수향고진

(水鄕古鎭:통리,오진,서당,주장) 중의 하나로 물의 도시로 불리는 소주관광의 백미인 수향(水鄕)마을이다.

나는 오래전부터,금세기 들어 급속히 발전한 산업화된 중국의 모습이 아니라,천년이 넘게 이어져온 운하와,

그 운하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중국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통리 관광은 무엇보다도 더 큰 기대를 

갖게했다

오늘아침 상해에서 당일치기로 소주를 다녀오려는 계획으로,돌아오는 기차편까지 이미 왕복으로 구매했기

때문에,소주 시내 남쪽 18 km 통리마을 까지 다녀 오려면,부득이 시내의 또 다른 유명 정원들은 건너뛰어야 

해서,호구산을 본후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통리 마을로 향하였다.

원래는 이곳 소주에서 하룻밤을 잔 후에,항주를 거쳐오는 2박 3일의 여행을 예정 했었지만,기차로 불과 40분의

가까운 거리인 상해의 아들집으로 돌아가,다음날 항주도 일일관광으로 기차로 다녀오는것으로 획을 변경했다

소주에서 통리로 가려면,소주 기차역 근방 중앙 버스터미널이나,남,북 버스 터미널에서 수시로 있는 버스를 

타면 1시간 남짓만에 통리마을로 도달하게되고,상해에서도 버스를 이용한다면 약 2시간 걸린다고한다.


통리를 소개하는 팜플렛.

중국에서는 관광지마다 여러가지 환경을 고려하여 A 부터 AAAAA 까지 등급을 매기는데,통리는 그중,

최고의 등급인 5A 를 받았다는것과 세계문화유산이라는것을 자랑삼아 소개하고있는것을 볼수있다.



통리 마을 한 가운데에서 택시를 내린 우리는,늦은 점심을 먹기로하고,많은 현지인들 식당중에서도 

좀 청결해 보이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많은 음식 메뉴중 어느것을 고를지를 모르겠다.

결국 옆 테이블에서 먹고있는 음식이 괜찮아 보여,손짓으로 같은것을 주문했지만,막상 맛을 본 우리는 ,

몇술 뜨지않아 수저를 놓아야했다.

이곳 운하에서 잡은 물고기 찜 같은데,영 우리 입맛에 안맞는다.

 


관광은 이곳 대로변 마을이 아니라,다리 하나를 건너 수로를 따라 지어진 마을을 중심으로 이루어 지는데,

여행자들은 다리 입구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한다(100위안)

매표소는 아침 7시반에서 오후 5시반 까지만 운영을 하는데,현지 마을사람들은 물론 무료로 자유롭게 

다니고 있고,표 검사원이 다리 입구에서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만 표 검사를 하고 있는데,좀 형식적으로

보인다.오후 5시반 넘어 검사원이 없는 저녁시간에는 무료로 들어가 밤의 풍경을 즐길수도 있을것 같다.


마을로 들어가기전 대로변의 풍경들..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대 운하지류,

지금도 이용할수있는 이 지류를 따라 배를타고 상해로 나가려면 4일이 걸린다고 하는데,

이제는 기차로 40분이면 된다.

통리의 이 마을은 역사가 길게는 1500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조시대를 끝내고,581년 수나라를 세운 수문제에 이어,604년 수나라 2대 황제가 된 양제는 수도를

장안(시안)에서 낙양(뤄양)으로 옮겨 6년동안 대 토목공사를 벌여 대운하를 파기 시작한다.

항주로부터 북경까지 전체길이 2700 km를 물길로 연결하는 대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당나라와,명나라를 거치면서 더욱 확대되고,19세기에는 몇 차례 홍수로 제방이 무너져 큰 문제가 

일어났으며, 1934년 국민당 정부가 청강과 장강 구간의 운하를 수리했다. 

1958년에는 공산당 정부가 600 t 선박이 지나갈 수 있도록 다시 수리했고 근대식 갑문과 64 km의 새로운 

운하를 연결한후,여러 번 준설하고 보강하여 지금의 대운하가 완성되었다.

대운하 건설전에는,중국의 대표적인 양자강과,황하강은 둘다 서에서 동으로만 흐르고 있어,강남의 풍족한 

농산물등 물자를,정치,군사 중심지인 낙양과 북경까지 운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요즘의 고속도로와 같은 개념의,남북으로 흐르는 물길 건설이 절실히 필요했던것이다.

그런 단순한 경제적인 이유뿐 아니라,정치 중심지인 수도 낙양에서,강남의 경제와,북경의 군사를 아우르는 

제국통일을 꾀하려는 수양제의 원대한 야심에서 시작했던것이다.

대운하가 개통된후에는,경제적으로 우월했던 남쪽이 북쪽과 연결되어 중국 전체의 유통이 원활해지고,따라서 

그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인 영향은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6 년동안의 힘든 대 토목공사에 국민들이 크게 지치고,군사도시 북경을 넘어 고구려를 정벌하려던 

수양제의 계획이 3차례나 실패로 되돌아 가면서,민심이 이반되어,지방 군웅할거 호족들의 반란이 일어나,마침내,

618년,당나라를 세운 '이연'에게 망하게 된다.

이후 당나라는,자체 생산력으로는 식량을 충당할 수 없었던 장안(長安)이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운하를 통한 물자 수송 덕분이었으며,대운하의 개통으로 말미암아 '개봉'(Kaifeng)이 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경제적인 중요성이 높아지고, 이후 북송의 수도가 되었다. 

개봉 성의 성곽 중심을 운하가 관통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 운하는 이후,중국의 남북을 관통하는 경제의 젓줄이 되고,대 운하를 따라,무역이

형성되면서,부와 문화가 이동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군데군데 상인들이 쉬어가는 수향마을이 형성되게 된다.

비록 이제는 현대의 초고속열차가 대운하길을 따라 대신하고 있지만,그사이에 우리가 잃어버리는것은 없는지

다시한번 되새겨 볼일이다.


부자들의 땅 이란 의미의 부토(富土)가 통리의 옛날 이름이었던 것처럼,이곳,항주와 소주를 중심으로 한 

수향마을들은,부와 문화가 함께 어울어져서 지금까지도 옛것을 찾아나서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묶어놓고있다

이 작은 통리 마을에는 3개가 많은 것이 있는데,하나는 물과 다리가 많고,두번째는 큰  개인주택이 많으며

세번째는 인물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인재는 송나라 이후 근대까지 과거에서 장원 1 명,진사 42명.문무에 

걸쳐 93명의 거인을 배출했다한다.

총 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는 이 마을 사이사이를 15개의 수로가 길을 내고,총 49개의 다리가 마을들을

이어주고 있어서,건너 마을로 갈때 마다,작은 아치형 다리를 이용하게 된다.


허리를 조금만 수그리면 되는 이 개울가에서 사람들은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고 있다.

옛날에는 이 물로 밥까지 해 먹었다고 하는데,지금은 많이 오염되어 있어서,설겆이 정도만 한다고 한다

이런 배경을 줌심으로,'홍루몽’, ‘건륭황제’, ‘신난세가인’ 등 80개가 넘는 많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우리 영화 ‘비천무’를 찍은 곳도 여기라고 한다




수로를 따라서,많은 관광객들 대상의 식당과,앙증맞게 예쁜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만일 내가 재능있는 시인 이라면,노인 한분이 양지에 앉아 바느질 하는 모습에 한시 한구절이 나올수

있었을만한 평화로운 풍경이다..

우리는 그냥 종횡무진,발길 닫는대로 이리저리 돌아보는데,좁은 동네라서 왔던 데가 다시나오고,건넛던 

다리를 다시건너게 되지만,다시 보는 새로운 풍경에 시간 가는줄을 모르겠다.

특히 아치 다리를 건널때의,동그란 반영은 정말 아름답다. 

이곳의 가옥중 3분의 1은 명,청나라 시대의 가옥들.

마치,수백년전 마을 안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옛날에는,이곳에서 술을팔고,뱃놀이하며,마을 사람들의 놀이장소로 이용되었을것 같은데,지금은

호기심으로 들어온 관광객을 대상으로한 카페 혹은 식당으로 보인다. 

낚시에 이용된다는 가마우지 새들이 오늘일이 다 끝났는지,주인없는 배를 점령하고 있다.

어둠이 점점 다가오자,붉은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바로 아래 수로에 비친 빨간 등불이 정말 아름답다.

통리의 핵심 볼거리로  퇴사원,숭본당,가맹당 외에 위 사진에서 보는 Y 자 형의 수로가 많나는 곳에 

각 수로 방향으로 태평교,길리교,장경교 로 불리는 3개의 다리가 있다.

속설에는,이곳에 들러 태평교를 건너면 신체가 건강해지고,길리교를 건너면 사업이 번창하며,장경교를 

건너면 영원히 늙지않고 청춘을 즐길수 있다고 하여,많은 사람들이 즐거이 세개의 다리를 건너 다닌다.


다니다 보면,부유한 사대부 관리의 집처럼 보이는 집이 나오지만,안으로 들어가 찬찬히 살펴 볼만한

시간은 없어 바깥구경만 하며 돌아다닌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가이드와 함께 들어가 일일히 역사를 들으면 매우 흥미로울텐데..

이런 좋은 보석을 우리는 그냥 외양만 훑고 지나가는 겉멋만들은 딜레탕트일 뿐이다.

이런 가게,이 길,이 수로가에 수천년 이어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어왔음에 틀림없다.

시간이 늦었는지,우리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관광객 마져 많지 않아,보트들이 모두 비어있다.

이곳이 보트를 이용한 수로 관광이 시작되는 선착장으로 보인다.



소주로 돌아가야할 시간이 다가와,마을을 빠져나오기위해,아마도 넓은 공회당으로 보이는 넓은 공터로 

빠져 나가는데,유달리 선물 가게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공터 한켠에 아마도,경극 같은 공연을 하는 자리로 보이는 무대를 가진 누각이 서 있고,

광장을 중심으로 통리마을을 소개하는 안내판과 깔끔하게 보이는 가게들을 지나

멀리 다리 위에 세워진 누각 조형물 너머로 해가 넘어가는것을 보며,우리는 통리 마을을 떠나,소주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정말 아름답고 운치있는 중국의 옛마을 관광이었다.

좀 아쉬운것은,이곳의 야경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하는데 즐기지 못한것..

하룻밤을 여기서 자면서,보트를 타고서 수로를 다녀보고,밤에 저 줄줄이 이어진 수로가 붉은 등불 아래 

카페에서,정담을 나누어 본다면 더할나위 없는 완벽한 여행이 될것 같다.

특히 옛것에 대한 향수를 찾아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적극 추천하고 싶은 장소이다.

또한 이곳은 많은 좋은 피사체들을 발견할수 있는장소라서,많은 사진가들이 출사 여행지로 이곳을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website 를 참고하도록 한다.


http://www.tongli.net/





통리,동리,소주,수저우,항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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