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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로 가는 길- 이스터 섬
06/02/2020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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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케나 비치에서 빠져나와 통가리키로 가는 도중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오바헤(Ovahe)비치로 들어가는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표지판도 없어서,사전 조사없이 온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곳인데,들어가는 초입부터 깊이 패인 

웅덩이들이 많아서,낮은바퀴를 가진차라면 잘못하면,차 밑부분이 땅바닥에 닿아 손상을 입거나,웅덩이에 

빠져 버릴수 있을것 같다.

도로에서 불과 2 km밖에 안떨어진 가까운곳을 ,극도로  조심하며 운전을하여 들어가니 조그만 비치 

표지판이 나오고 서너명의 사람들만 보인다.

이렇게 차를 이용하는대신,아나케나 비치에서 약 1 mile밖에 안떨어져 있어,해안선을 따라 하이킹으로

약 15분 정도면 도달할수있는,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않는 외진 해변이다.




짙은 옥색 바다를 바라보고 붉은색 화산암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싸여 있는 이 비치는 해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작은 만(Cove)라고 하는 말이 더 가까울것 같다.


아나케나 비치와는 가깝지만,사람들이 잘 찾지않는 비경을가진 한적한 곳이라서,조용히 하루를 지내다 가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장소로 보이지만 화장실이나 음식점도 없을정도로 외진 곳이다.


수온도 따뜻하고,아나케나 보다 더 투명한 바다속에,아름다운 산호와,형형색색 물고기도 많고,바다 거북도 있어,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에 더 좋아 보인다.

하지만 아나케나에 비해 파도가 높고,해류도 강해서 해수욕에는  좀 위험하다고 한다.

조심하면 문제 될것은 없지만,접근이 약간 불편하고,그러기때문에 좀더 프라이버시를 취하고자 하는사람에게는

하루 조용히 놀다 가기에 아주 좋은 장소로 보인다.


때로는 높은 파도가 안쪽으로 밀려 들어와  옛날 원주민들이 살던 흔적을 파괴하기도 했는데,

2012년에는 거대한 파도가 유적지를 덮고있던 돌을 분리 시키면서,200여년이나 된 사람 뼈가  

발견 되기도 했다고 한다.

초기 원주민들이 살았던 장소라서,아직도 절벽 중앙에 동굴과,죽은사람을 매장한 흔적이 남아있다.


또한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Boerhavia acutifolia 라는 보호 식물이 있으며

해변을 앞으로 굽어보고있는 절벽은,붉거나,검고,노란색을 띠고 부드러워 부스러지기 쉬운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가끔 예고없이 오래된 바위들이 허물어져 내리기도 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바닷가 오바헤 비치에서 조금 걸어 올라오면,해안선을 따라 돌무더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사잇길로 올라가면 

 Ahu Te Pito Kura 라는 표지가 나오면서 땅바닥에 누운 거대한 모아이가 보인다.

                                                                          (Ahu Te Pito Kura)


                                                                        (Moai Paro)

10 m키에,귀의 길이만 2m,그리고 무게가 80톤에 이르는,Rano Raraku에서 옮겨온 가장 큰 모아이였으나,

200년전 얼굴을 땅에 묻고 몸은 두동강이가 나 무너진 상태로 누워 있다.

남편을 잃은 과부가 죽은 남편을 기려 세운 모아이라는 말도 있다.


                                                             (Te Pito Kura)  


둥그렇게 둘러 친 돌담 안에 마치 큰 달걀처럼 매끄럽게 갈아 만든 돌이 들어 앉아 있다.

Te Pito Kura 라고 이름 지어진 곳인데 그 의미가 세계의 배꼽(Navel of Light,Navel of the World) 이라고 한다.

전설에따르면 이 둥근 돌은 맨 처음 이곳에 도착한 Hotu Matu 왕이 고향에서 가지고 온 돌로,철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다른 돌보다 쉽게 데워지며 방향을 가르키는 자석 성질을 가진 마력을 가진 돌이라

부족을 향하여 신령한 Mana가 나오는 돌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돌에 손을 대어 그 기운을 느껴 보기도 하고,또 다산을 하게 만드는 신령한 돌로

여겨져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이 돌에 불경한 몸짓을 하는 일이 있다고 하여,더이상 관광객의 접근을 

막기위해 주위를 돌담으로 막아 놓았다. 

 


올라오는 중에 아시안으로 보이는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말을 걸어보니 중국 본토에서 온 가족 관광객들인데,옷차림이나 행동거지가 매우 부유하게 보인다.

이렇게 먼곳까지 어린이까지 대동하고 관광을 하는 것을 보면 이제 세계 어디서나 중국인 관광객이 

안보이는곳이  없을정도로 차이나머니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다시 도로로 빠져 나와 통가리키로 가는 길.


도로가에 몇개의 구멍이 뚤린 바위가 있고 그 주위에 팻말이 있다.

Pu O Hiro : Trumpet of Hiro라는 의미로 Hiro 는 고대 비(Rain)의 신 이름 

바람이 세게 불때면,중앙의 구멍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가 마치 트렘펫 소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리가 클때는 3 km나 떨어진 해변가까지 들려,그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물고기를 잡았다는 말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이것은 섬 반대편에서 가져온 전쟁 승리 기념물이라고도 한다.

돌 겉면에는 다산의  상징인 여성의 성기 모양의 조각되어 있어,그와 연관된 주술의식을 행하기도 했다고 하고,

혹은 가뭄때에 비의 신인 Hiro를 부르는 의식을 하는데 사용 되었다고도 한다.



왼쪽으로 Poike Volcano산이 완만하게 이어져 있다.

정상이 460m높이의 언덕으로 동서 4.5km.남북 3.5km 의 광활한 언덕이 온통 초원으로 덮여 있다.


Poike (Hill)이라는 의미의,3백만년 전  이스터 섬의 세개의 화산중 맨 처음 분출되어 가장 오래된 화산 분화구로

원래는 따로 떨어진 섬이었는데 나중에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서로 붙어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긴귀(Long ears)를가진 부족과 짧은귀(Short ears)를 가진 부족들과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산 정상 분화구는 나무로 덮여 있고,남쪽으로  완만하게 언덕을 내려와 해변가의 만을 이루는 곳에 이르러서는

100 m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이 바다로 연결되어 있다.

멀리 Rano Raraku 산을 배경으로 한 목장에 들러 잠시 평화로운 모습을 즐긴다.

내륙을 가로지른 도로가 끝나는곳에 드디어 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멀리 Ahu Tongariki 의 15개의 모아이가 오른편에 Rano Raraku 산을 바라보며  서 있다.


Tongariki는 동풍 즉 'Easterly Wind'라는 의미로 이곳 Ahu Tongariki는 이스터 섬 전역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큰  거석문화를 보여주는 장소다

이스터 아일랜드 즉  라파누이를 대표하는 15개의 모아이 석상은 그동안 책이나,잡지,도큐멘트리를 통해 

많이 소개되어  이를 보고싶어하는 많은 해외 방문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바다를 등에지고 라노 라라쿠를 향해 말없이 서 있는 모아이들의 무언가 신비한 전설을 가지고 있을것 같은 

모습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먼 태평양 바다를 건너게 만드는 요인일것이다.

모아이가 바라보는 맞은편은 전체가 화산암으로 덮힌 Rano Raraku 산으로 대부분의 모아이가 이곳에 있는 

부드러운 돌로 조각된후 운반 된것이다.



모아이 석상들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둘러보기 시작한다.

총 200m길이의 중앙 제단위에 세워진 모아이는 하지날 떠오르는 태양과 축을 이루도록 설계되고


제단 앞에는 Boat House,벽난로 혹은 요리에 사용되었을것으로 추정되는 돌판,그리고 암각화 가 있는

바위가 있어,이곳에 살던 부족들의 사교,종교적인 주요 장소로 이용되었을것으로 보인다.


google image 에서 빌려옴


이곳은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초기 원주민들의 정착과 부족간의 전쟁등 에 관한 전설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AD 900년경부터 살았던 부족들은 처음 이곳에 제단을 쌓은후 조각이 능숙해지면서 대를 이어 가며 후손들이 

모아이를  확대하고 정교하게 보강해 나간것으로 보인다.


통가리키의 모아이는 모두들 자기의 조상들을 본딴것으로 형태와 크기 면에서 앞에서 둘러본 모아이들과는 

좀 달라 마르고 뚱뚱하고,키가 크고 작고,얼굴 표정도 각기 다르다.

이 모든 모아이가 5.6m에서  8.7m 키인데 오른쪽에서 5번째 모아이가 가장 크고 무거운 (86ton) 모아이로

1 km 떨어진 앞의 Rano Raraku 산에서 이처럼 무거운  돌들을 어떻게 이곳까지  운반한것인지에는 많은 

이론들이 있다.



하지만 AD1500년 경 부터 시작된 부족간의 전쟁이 17세기 말 정점을 이루면서,모아이는 제단 위로부터 

굴러 떨어지기 시작해 결국,18세기 초 유럽 선원들이 이곳에 도착할 무렵에는,이미 많은 모아이들이 

훼손되고,이후 19세기 후반 카톨릭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곳은 묘지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1960년,리히터 지진계로 9.5 라는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이 섬에서 동쪽으로 약 3700km떨어진 칠레에서 

일어나 칠레의 중부와 남부에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그 여파로 일어난 쓰나미가 불과 6시간만에 이곳을 덮쳐

라파누이 섬 전체를 치마처럼 둘러싸며 많은 피해를 입힌게 된다.

다행이 섬 서쪽에 위치한 항가로아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이곳 아후 통가리키 지역은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아

10m 높이로 내륙 500m까지 밀고 들어와 라노 라라쿠 입구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쓰나미는 15시간만에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의 힐로를 덥쳐 수십명의 인명 피해를 낸후,서부 일본과 

뉴질랜드까지 피해를 준것으로 보고되었다.


쓰나미가 지난후 수일만에 이곳에 도착한 주민들은 모아이 석상들이 파도에 밀려 100m나 안으로 밀려 

들어오고 돌무더기 제단아래 의 무덤에서 파 헤쳐진  조상들의 뼈가,바다 생물,죽은 가축들과 뒤엉겨 

있었다고 한다.

쓰나미 전에는 이곳이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있으나,이후에는 모든것이 사라져버려 이곳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더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었다.

쓰나미 직후의 폐허화 된 모습 (google 에서 빌려옴)


이후 30년이 지난 1988년경.

일본의 한 TV회사가 라파누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이지역의 지질,고고학자인 Sergio Rapu가 

크레인 한대만 있으면 무너진 통가리키를 쉽게 복원할수 있을것이라는 말을 한것을 본 일본의 Tadano 

크레인 회사 직원이 크레인을 한대 기증할것을 건의하게된다.



그 일을 계기로 칠레를 비롯한 다국적 조사,연구 학자들이 팀을 이루어 일본정부와 Tadano크레인 회사의

Funding으로 복원을 시작한다.

이후 시행착오를 거쳐 2003-2006년 유네스코와 일본의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다시 복원 작업을 

마무리 하게되어 드디어 현재의 방문자들은 ,최초 모아이들이 세워진것과 똑같은 모습의 모아이를 

감상하게 된것이다.


이 15개의 모아이는 100m 제단위에 당당한 모습으로 바다를 등지고 앞에 있는 마을을 향해 마나(Mana)를 

발하며 서 있다.


이곳에 서 있는 모든 모아이들은 이처럼 붉은빛의 모자 Pukao를 썼을것으로 추정되는데,복원 중에 하나만 쓰고 

나머지는 없어졋거나,부식되어서 머리에 올리지 않은것이라고 한다.

Pukao를 만들기위해 Puna Pau 화산에서 가져온 사용되었던 붉은색의 돌 

모아이 석상 군으로 들어가는 매표소 입구에 큰 모아이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마치 자기만 왕따당해 저 아래 제단위에 올려주지 않은것에 대해 화난 표정으로 서 있다



모아이 구경을 하고 매표소 입구,도로가로 나오니 관광객을 대상으로 간단한 스낵을 파는 리어카 행상이 서 있다.

이때쯤 되어,관광객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한다.

점심때도 다 되어 배가 출출해 도로 아래 음식점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는다. 

육지 안으로 들어온 바닷길 맨 마지막에는 Hanga Iti 포구에 있는 집인데 한 어부 가족이 살면서,관광객 상대

음식점도 겸하고 있다.

집 건너편에는  부족간의 전쟁중에 족장의 거처였던것으로 보이는 몇개의 동굴이 보인다





이제 Rano Raraku 산으로 올라가는 도중 높은 위치에서 통가리키 전체 모습을 잡아 본다.

왼편,섬에서 가장 오래된 Poike 화산이 바다로 절벽으로 떨어지는 모습과 망망한 대해를 등에 지고,부족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말없이 서 있는 모아이들의 모습이 형언할수없는 신비한 대조를 이룬다.


원래 예정했던대로  아침 일출을 배경으로 이런 사진을 얻을수 있었더라면 ...(from google)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Easter Island,Ovahe B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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