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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Moai)와의 대화,이스터 섬(Easter Island)에서 13DEC 2019
05/07/202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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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한 가운데 절해 고도,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곳에 위치한 이스터 섬은 온통 신비로 가득차 있다.

언제 이곳에 사람이 살기시작했고,또 그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그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론이 분분하다.

특히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아이'(Moai)라고 일컬어져온 돌 석상의 유래와,그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궁금함과 함께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 왔다. 

나 또한 어렸을때부터 동경해 마지않던 이스터 섬의 그 모아이와의 해후는 그저 상상함으로만 그쳤지,

설마 내가 그 모아이를 직접 대면하여 대화를 할줄은 몰랐다.

이번 파타고니아 여행중에 즉흥적으로 결정한 이스터 섬의 여행은 한가지 더 추가된 내 버킷리스트에 

'Completed'라고 표시를 하며 또 하나의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대체 이곳 이스터 섬,즉 라파누이의 원주민들은 어쩌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남태평양에 흩어져 살고있는 폴리네시안들의 연구에 일생을 바친 Heyerdahl 이라는 노르웨이 과학자는 

이곳에 맨 처음 도착한 원주민들은 남아메리카에서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는 그 주장을 증명해 보이기위해 1947년 페루 해안을 떠나 'Kon Tiki; 라는 이름의 나무로만든 

배를타고,옛날 원주민들이 하던대로 해류를 따라서 현재의 프렌치 폴리네시아 에 도착 하게된다.

비록 그 섬은 현재의 이스터 섬 보다는 훨씬 위쪽 이었지만,그는 이걸 근거로 항해술을 잘 세팅만하면 

남쪽에 떨어진 이스터 섬에 닿을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 DNA 테스트를 해본결과,현재 라파누이 사람들은 남아메리카보다는,

폴리네시아인의  유전자를 더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그의 주장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가장 일반적으로 폭 넓게 받아들여지고있는 이론은 다음과 같다.


1.폴리네시아인 들의 이동.


BC 2500년 전부터,언어와 DNA 로 보아,현재의 동남아시아(특히 타이완 근방)와 ,멜라네시아

(현재의 파푸아뉴기니)에 살던 서로 다른 두 그룹의 폴리네시아인들은 멜라네시아  섬들로

이동을하여,그들만의 멜라네시아 Lapita  문화를 만들어내며 살기 시작한다.

이후에도 계속 많은 부족으로 갈라져,바다 한 가운데 각각 흩어져 있는 다른 섬들로 진출하면서 

BC1200-BC900 년경에는 현재의 사모아,하와이,피지,타히티 등  Micronesia 의 무인도까지 

사람이 살기에 이른다. 

그리고는,고향에서 가지고 온 가축,농작물,농기구등을 이용해 농사와 어업으로 생활을 하며 그들만의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내 왔다


2.이스터 섬으로의 이동


타히티 동북쪽 약 900 mile 떨어진 곳에 Marquesas Island 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은 현재 남 태평양,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있는 화산섬으로,이곳에 살던 Matua 라는 왕이 AD 6-8 세기경 

약 100명의 부하를 이끌고 현재의 라파누이 Anakena Beach 에 도착한것으로부터 라파누이 섬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당시 라파누이 섬에는,울창한 종려나무 숲과,식용 식물,바다 새와 물고기가 많아서 살기가 좋았는데,

나무를 베어내서,가지고 온 씨앗종자로 농사를 짓고,가축을 키우기 시작하며,점점 인구가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집들이 지어지고 또 나름대로 사회적인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있던 종교적인 신념에 따른

기념물들과 함께 모아이 건설이 시작 되었다.

고향 폴리네시아에서처럼,조상을 숭배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Mana 라는 영적인 에너지가

조상이 죽은 후에는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믿음을 가지고,죽어서도 자기들을 보호해 달라는 염원을 담아

당시 힘있던 부족장이나,조상의 모습을 닮은 모아이를 세우게 된다. 

 이런 종교와 같은 믿음으로 그들은 화산석으로 제단(Ahu)을 만들고,그 위에 거대한 모아이 석상을 올리는데,

크기가 클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하여 경쟁적으로 더 큰 모아이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모아이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폴리네시아 신들의 정치,종교적인 상징물인 그들의 석상과 디자인면에서 

유사하여,이들의 조상이 남미계통이아닌 폴리네시아 인들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더 실리는 것이다.


그들은,한 부족의 우두머리나,중요한 인물이 죽으면,화산암이 많은  Rano Raraku 돌산에서 조각을 한후,

통나무를 아래로 깔아 굴려가며,각각의 부락으로 운반한후,얼굴을 바다가 아닌 후손들이 사는 부락을 향해 세웠다.

그러면 모아이로부터 Mana 라는 초 자연적인 영적인 힘이 나와서 그들을 보호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조각하고 운반하는데에 숙련되어감에따라  그들은 경쟁적으로 모아이를 크게 만들기 

시작하였는데,큰것은 하나 만드는데 10-20년이 걸릴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모아이는 9세기 에서 15-18세기 사이에,인구가 과잉해지고,더 큰 모아이를 만들려는 야심때문에 

모아이를 운반할 나무를 베어내는 바람에 삼림이 황페화되면서 식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1860년대 기근으로 인한  12 부족간에 전쟁이 있을때까지 1000년 이상을 우상처럼 받들어 왔던

모아이가 더이상 전쟁과 기근으로 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급기야는 그동안 그들이 그렇게 신봉해 마지않던 모아이를 더 이상 만들기를 중지하고 이미 만들어진 

모아이 조차도 훼손하기에 이른다. 

특히 이즈음에 모아이를 신성하지 않게 여기는 탕가타마누 혹은 버드맨이라는 부족이 점점 강성해지고,

버드맨 축제때,오롱고 남쪽 모토누이 섬에서 Manatura 라는 새의 첫 알을 탈취해 오는 사람이 그해의 

부족장이 즉 Ariki 가되어 부족을 이끌면서,모아이를 배척하게 되었다.

이 버드맨 경기는 1864년 카톨릭 선교사가 도착할때까지 매년 열렸다고한다.


                              (Ahu Ta Hai 에서 Ahu Ko Te Riku로 올라가는 길)


이렇게 우리가 알고있는 이스터섬의 역사는 이스터섬에 처음 도착한 유럽사람들의 전승에 유래된다.

1722년 4월5일 네델란드 탐험가,Jacob Roggeveen 제독은 항해중,지도에도 없는 섬을 우연히 발견하여

섬에 올라보니,그 땅에는 보통키에 검고,붉고,하얀 세가지 다른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붉은 머리를 

땋아 살고 있었는데,그들을 향해 Rapa 뒤에 크다 Nui(Big) 라는 의미의 폴리네시안 이름을 붙여 준후

도착한 그날이 마침 부활절이라서 그 섬 이름을  Easter Island 라고 칭한후,바람이 너무 심해 하루만 

머므르고 타히티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 50년이 흐른후 1770년,또 다른 유럽 스페인 원정대가 페루로부터 도착 ,그섬을 당시 스페인 왕 

Carlis 3세의 이름을 따 San Carlos 라고 이름을 지은후 떠났지만,원주민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스페인령이라는 계약에 사인도 하지않았고 ,또 오랫동안 아무도 스페인 땅 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4년이 지난 1774년 영국 탐험가 James Cook 이 식량과 물을 얻기위해, Anakena 해변에 도착 했지만,

왠일인지 그 섬은 이미 페허가 되어 있었으며,그동안 이미 뉴질랜드,통가를 탐험하면서 가진 지식을 근거로 

이곳 라파누이 원주민들도,폴리네시아인들과 비숫한 피를 가진 종족이라는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당시의 쿡 선장의 항해 보고서에 의하면,모아이들이 일부는 그대로 보존 되어 그대로 서 있었지만 

또 일부는  무너져 엎어지고,깨어져 있어,모아이나,주민들에게 처참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3,모아이의 훼손


그러면 AD 800년경부터 무려 천년동안 무려 800여개나 세울 정도로 신성시 되던 모아이는 왜 나중에 

원주민들에 의해 증오와 원망의 대상으로 굴러떨어져,이렇게 모자가 없어지고,땅에 엎어져 깨어졌을까? 

우선 모아이는 지진같은 자연재해때문에 무너진것이 아니라 라파누이 사람들에의해 의도적으로 굴러 

떨어진것이라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가지 이론이 있다.

그중 하나는 식량부족으로  부족간의 전쟁중,모아이로부터 나오는 영적인 힘인 Mana를 적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하여서 였다는 설과,

또 하나는 그동안 그들이 종교적으로,의식을 통해 온 힘을 다해 숭배해왔던 모아이가 전쟁과 기근으로 

굶주리며 어려울때 그들에게 아무런 보호와,도움을 주지않느다는 사실을 알고,더 이상 모아이건설을 

중지함은 물론,이미 세워져 있는 모아이에게 조차도,원망으로 훼손을 시키는 불신앙 때문 이었다는 

이론이다.그렇게 해서 나타난 사건이 바로 Birdman 의식이다.


                                       (원망의 대상이 되어,쓰러지고 훼손된 모아이)


4,라파누이의 근세 역사.


이렇게 고립된 지리적인 위치로 라파누이 섬은 타국 정복자들의 쉬운 먹이감이 되는 섬이었는데,

라파누이의 역사가 송두리채 사라져버린 가장 힘든 시기는 1862년,페루 밀수업자가 이섬을 접수하여,

수천명의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고,많은 주민들을 비료의 원료가 되는 Guano 갈매기똥 채취를 위해

심지어 부족장까지도 페루 본토로 데려가 노동을 시켰는데,본토 페루와 오고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나중에 15명만 남은 사람도 전염병에 걸려 겨우 살아 섬으로 돌아 왔다고 한다.

1860년대 중반 도착한 유럽선교사들도,섬 사람들을 캐톨릭으로 개종시키기위해 그들의 오래된 토속신앙과,

버드맨같은 의식을 못하게 하는등,라파누이 문화의 퇴색을 가중시켰다.


                                                  (선교사들이 남긴 흔적)


1870년엔 프랑스 한 양모업자가 이 섬 주민들을 타히티 등으로 내 쫓고 양모 생산을 위해 섬의 토지소유권을

주장했는데,그가 죽은후에는 한때 14000 명이던 주민이 111명만 남게되었다.

이처럼 이스터 섬은,오랫동안 육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가치가 별로 없는 땅이라고 여겨져서,

당시의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유럽제국들로부터도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프랑스가 관심을 보이고,

잠깐 영국이 소유를 하려고 했지만,결국에는 칠레가 섬을  칠레의 부속 섬으로 편입을 한다.

1888년 이후 섬에 대한 소유권분쟁에서 칠레 정부와 원주민과의 다툼이 일어나고,1903년 향후 25년동안 

섬 렌트를 허락받은 칠레의 한 회사가 7만마리의 양을 자유롭게 섬에 풀어 놓고,양을 훔치지 못하도록 

모든 원주민은 항가로아에만 살도록 했는데,1936년 세계대전으로 영향을 받은 양모산업이 완전히 끝나고

1953년  칠레 해군이 접수한다.

하지만 해군은 원주민들에게 라파누이 말을 못쓰게하고,생활도 나아지지 않아 원주민들간에 칠레 정부로부터

점차 독립을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가까스로 섬 자치권을 획득 ,이제는 그들이 뽑은 시장에 의해 운영되고

라파누이 사람들만 토지 소유권을 가지게 되며 세금도 면제 받게 되었다.

이런 소용돌이 역사속에 1935년  섬 전체의 40%을 차지하는 땅이 라파누이 국립공원으로 선포되고 편입되어,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더 많은 funding을 받을수 있도록 1995년 UNESCO World Heritage 로 선포되었다.




                                                (Ahu Tahai)


항가로아 번화가에서 가장 가까운,섬에서 가장 오래된 AD700년에 세워진 Ahu Tahai가 있는곳.

전설에 의하면 가장 높은 지위의 부족장이 마지막으로 묻힌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닷가를 향하여 물고기잡는 바닷가까지 비스듬하게 내려간 언덕위에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볼수있는곳

이곳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서 언제나 어디서나 쉽게 들어가고 나갈수가 있어서 현지인 뿐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이 머믈다 간다.

특히 아침에 해가 떠올라 모아이의 얼굴을 비출때와,저녁 모아이를 배경으로 한 일몰 풍경이 좋다.


                                 (Ahu Ko Te Riku)


오후,캠프장에서 다시 Hanga Roa 로 걸어나와,어제 중간에서 발길을 돌린 곳에서부터 위로 올라간다.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Ahu Ko Te Riku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유일하게 모자를 쓴 모습인데,Puna Pao 돌산에서 가지고 온 붉은 돌로 쓴 모자는 Pukao라고 한다.

폴리네시안들에게 붉은 색은 신성함을 뜻하고,모자는 Mana라는 영적인 힘이 그 안에 담겨있어,

주로 부족의 가장 높은 사람을 뜻한다.

라파누이 섬 전체에서  눈동자를 가진,유일한 모아이로,흰색 산호로 만든 눈자위의 안에  검은색 흑요석으로 

눈동자 를 만들어 넣었다.

섬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지고,키가 5.1m높이인 이 모아이에 대해,유럽 첫 원정대가 이곳에 도착했을때는 

이 눈동자에 대한 기록이 없는것으로 보아,당시에 부족들과의 전쟁으로 눈동자가 훼손되는바람에  

없었을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중 1978년 발굴당시에 눈이 Anakena해변에서 발견되어 지금은 바로 옆 Sebastian Englert 

Museum.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google 사진)


건설당시 부족들은 언젠가는 이 모아이가 살아나서 눈동자로부터  Mana 가 나와 육지쪽에 있는 부족을 

보호할것이라고 믿었다.



닭을 가두어 놓고 키우던 곳으로,닭이 도망하거나 도둑맞지 않도록 작은 문을 만들어 놓았다.

오롱고 건축양식과 유사하며,혹은 주거나 창고,축사로 이용되었을것이라고도 한다.




주거지,피난처 혹은 은신처 로 사용된 동굴로 추정이 된다.동굴안은 제법 넓다.




비대칭 적으로 큰 머리에 긴 귀,넓은 이마,앞으로 튀어나온 강한 턱,큰 코로 특징지워지는 그들의 조상의 모습


모아이를 받치고 있는 석축 아래로는 물고기를 잡는 어선이 정박하는 포구로 연결된다.

주민들은 모아이 석상을 신성시 여겨 반드시 어떠한 건물이든 모아이 석상의 높이보다 낮게 짓는다고 한다. 

따라서 이스터 섬에서 가장 높게 건축한 건물의 높이는 3미터에 불과하다.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가장 작은 크기의 모아이 석상의 높이가 3.5m이기 때문이


용암이 바닷가까지 흘러 내려와 거칠게 굳어진 암석 사이를 파도가 거대한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드나든다.



또 다른 모아이를 보러 올라가는 도중의 낮은 야산이라도 모두 화산암으로 뒤덮혀 있다.


낮에 말을 돌담 안에 풀어 놓았다가,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말 떼.


                                            Ahu Vai Uri 와 Ahu Tahai
1200년경 세워진. 서로 다른 다섯개의 모아이 Ahu Vai Uri
맨 오른쪽의 단순히 돌 하나만 올려 놓은모양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맨 왼편 평평한 제단으로 보이는것은 또하나의 모아이가 얼굴을 아래로 향하고 엎어져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거리를 두고 오른편에 홀로 서있는 Ahu Tahai 는 AD700 년에 세워진,섬에서 가장 오래된 모아이로,
강력한 권위를 가진 Mana를 보내는 부족의 조상을 나타내며,부식이 많이 되었지만,4.5 m 키에 단단한 상체를 
가진모아이다.


부족중  지체가 높은가족들이 살았을것으로 추정되는 주거지 흔적.

보트의 모양을 따라 만들어진 초석위로 방과,풀로 덮은 지붕을 세우고,입구에 나무로 된 문을 하나만 냈다.




일몰이 다가 오면서,서핑과,스쿠버 다이빙을 하러온 젊은이 둘이서 물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오늘은 모아이 뒤로 넘어가는 황금빛 황혼을 기대 했는데,하늘을 반을 넘어 덮은 구름으로 실망스럽다.


캠핑장으로 들아오는길에,내일 하루 들러볼 차량을 빌리러,항가로아로 나갔다.

섬이 넓지 않아서,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쿠터나,4륜 산악 모터바이크를 이용해서,경제적인 요금으로 충분히 

편리하게 둘러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전거로는 좀 힘들것같고,스쿠터나 산악 모터바이크는 한번도 타본적이 없어 결국,

자동차를 이용하기로 했는데,하루 24시간 빌리는데,Automatic Transnmission 조그만 SUB 밴을,할인해서

80$ 로 빌리고 나중에 하루 Gas 값까지 약 100$ 정도 들었다.



렌트카를 빌린후,근처 wifi 이용이 가능한 카페에서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정전이 된다.

종업원말이 정전은 섬 전체가 수시로 일어 난다고 한다.

겨우 메일 쳌업만 하는중 이었는데,결국 캠프장으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Ahu Tongariki 로 일출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모든 준비를 해 놓고....

옆 텐트의 벨기에에서 온 청년은 약 일주일을 머믈면서,아래 지도에서 보이는 모든 트레일을 걸어서 

다닐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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