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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피추'로 가는 Salkantay Trek D5 (12 SEP 2019)
11/22/201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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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Tour to Machu Picchu(2430m) -back to Hydroelectric(2100 m) - Bus(7hr) via Santa Teres,

                            Santa Maria - Cusco(3400m)


새벽 3시반경,갑자기 방안에 불이 켜지며 잠이 깼다.

난생처음 외국인 처녀 둘과 합방을 하게 되었는데,같이 자던 이스라엘과,브라질에서 온 두 처녀가 간단히

세면을 하더니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밖으로 나간다.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여행사 가이드가 우리 모두에게,내일 아침 마추피추 입장권을 나누어 주었는데,

나는 입장시간이 아침 7시인데,이 처녀들은 아침 6시인데다,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올라가기위해

이렇게 아침 일찍 서두른 것이다.

마추피추 입구까지 가는 방법은,대부분은 왕복 24$을 주고 버스로 올라가지만,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이 두 처녀들처럼 그 높은곳까지 걸어 올라 갈수도 있다.

나는 어제 저녁에,오늘아침 7시 입장시간에 맞춘 버스표를 미리 끊어 놓아서 이렇게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었지만,이왕 이렇게 일찍 잠이 깨버린 바람에,좀 일찍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나가보았다.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입장시간에 맞추어 출발하는 버스에 탑승하기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버스 

안내원들이,입장권을 일일히 확인하며,임으로 버스탑승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버스탑승 장소 맞은편엔 어제 밤에 보았던 잉카 전사 암석부조 아래로 맑은 강물이 높은 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오고 있다.


버스를 이용하면,위 지도에서처럼 구불구불 여러번의 스윗치백 도로를 30분정도 타고 가게 되는데,만약 

두 처녀들처럼 하이킹으로 걸어 오르려면,지름길로,도로 한가운데를 직접 가로질러 수직으로 1시간반이 넘게

수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멋모르고 우습게 알고,걸어 오르다가 수없는 계단때문에  힘들어 혼이 났다는 사람들이 많다.

버스를 타고 혼자 올라간 나는 입구에서 가이드와,다른 일행들을 만나 드디어 마추피추 안으로 들어간다.

공식적으로는,수많은 여행객 관리를 위해,이곳에 머무는 시간을 4시간으로 제한한다고 하지만,다녀보니 

나올때 표를 검사하는사람이 없는것으로 보아,그 시간에 굳이 제한 받을필요는 없을것 같은 생각이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Sun gate 와 Inca bridge 로 가는 길 표시가 나타나는데,오늘중으로 버스를타고

쿠스코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늦어도 오후 1시까지는 이곳 아구아스 칼리안테스를 출발해야 하는고로,

이곳에서 머무는 3-4시간 가지고는 그 두곳까지 다녀 올수가 없을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트레킹 마지막 날은 버스로 돌아오는 여행사의 스케듈을 따르지 않고,75$을 더 내고라도 

오후 늦게 쿠스코행 기차를 이용한다면,좀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지낼수 있었을것 같은데,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었다.


우리는 제일먼저 마추피추 전경이 제일 잘 보인다는 망지기의 집으로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있다.





 



나도 드디어 이곳에 올라,그동안 사진으로만 수없이 보아왔던 마추피추 전경을 사진으로 담는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잡지,방송,블로그 등을 통해 접해왔던 그 전형적인 사진에 익숙해서 그런지 그다지 

큰 감흥은 없다.

그냥 상상속으로만 그리던 풍경을 한번 확인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가까이 클로스업을 통해 본 푸른 중앙 광장.

망지기의 집을 지나 좀더 높은곳으로 올라 앵글을 왼쪽으로 돌려 다시한번 촬영해도 비슷한 모습..

잉카 고유언어인 케츄아 말로,Old Peak 라는 뜻의 Machu Pichu.

혹자는 마추피추를 스페인 정복자를 피하기위한 비밀도시 였다고도 하고,혹은,복수하기 위한 군사도시 

였다고도 한다.

이 마추피추는 스페인 원정대가 1500년대에 잉카를 정복했을때도 발견되지 않았다는것 때문에,잉카의 

잃어버린 도시 라는 "Lost City of the Incas" 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1983년,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



우리 일행은 아래로 내려가 본격적으로 유적을 탐방 하기 전,빙 둘러앉아 가이드로 부터 마추피추의 역사와 

발견 과정등을 듣는다.


눈을 들어보니 멀리 '태양의 문' Sun gate가 보인다.

Inca Trail을 하는 사람들은 트레킹 마지막 날 저곳을 통해서 마추피추에 걸어서 입성하게 된다.

마치,신하들이 둘러맨  금으로 장식한 가마를 타고 쿠스코로부터 10일간에 걸쳐 도달한 잉카 왕이 저곳 

'태양의 문'을 통해 이 신성한 마추피추에 도달하듯이.

12월22일 동지에 해가 저 산 가운데 '태양의 문'위로 떠오르면서,태양 광선이 저 유적아래 태양의 신전

'Temple of the Sun' 가운데 창문으로 들어와 암석제단을 비추면서 드러내는 그림자 각도를 보고,

절기와 종자 파종시기를 알아채렸다고 한다.

유적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망지기의 집을 다시한번 지나며,사진 촬영을 하고

나는 이곳에서 파노라마로 전경촬영을 시도해 본다.


다시한 번 전경을 조망해 보며,이번에는 유적의 북쪽,우르밤바 강위의 좀더 가파른 절벽의 테라스와 바로 

그 위 귀족들의 거주지를 바라다 본다.

북쪽의 테라스는 폭이 유독 좁아서,농사를 짓다가 실족하여,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질수밖에 없을것 같다.


나는,테라스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유적쪽으로 내려가기 시작 하였다.






유적으로 들어가는 Main Gate: 

한번 들어가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 나올수 없으므로,들어가기전에 주변풍경을 충분히 감상하고 들어가야 한다.


Main Gate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입장객 때문에 기다리는 줄이 길다.

Main Gate 를 들어가면,약 200여 개의 삼각형의 지붕을 가진 주거용 건물이 보이는데,중앙의 평지 초원을 

경계로,왼쪽은 귀족과 신전 지역이고,그 아래는 평민지역이다.

즉,초원 평지를 사이에 두고,제사를 올리는 지역,귀족.평민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이곳 귀족들이 주거하던 건물들이 더욱 견고하게 지어져 있어,보존상태가 더 양호해 보인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이곳 우르밤바 강 주변으로 760 BC 경까지 사람이 살았을것으로 추정되는데,

1300-1500년 사이에 Manco Capac  정부가 들어서야 도시형태를 갖추게되고,이후 9대 잉카왕인 Pachucutec 

왕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일대인 빌카밤바가 왕의 통치영역안으로 들어오면서,1450년,파챠쿠텍왕때에 

마추피추가 왕의소유로 되어 잉카제국의 중요한 정치,종교,경제의 성지로 되었다.

당시인구는 300-1000 명 정도 였는데,대부분 파차쿠텍 왕 가계의 사람들이고,그 외에 종교적인 엘리트 계급,

'IIactas'리고 부르는 상위계층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멀리,어제 떠나온 Hydroelectrica 의 수력발전용 수로가 보인다.

이곳 마추피추는,바로 아래 우르밤바 강으로부터,수직으로 450 m 나 위에 위치해 강과,절벽으로 단절되어 

있어 이곳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태양의 문'을 통하거나,잉카브릿지를 건너 오는 두가지 방법밖에 없는데,

잉카브릿지의 경우,브릿지를 지탱하는 밧줄을 끊어 버리면 그나마도 길목이 차단 되어 버리는

잉카제국의 군사적인 천연 방어 요새라고 할수있다


이곳의 년간 강수량이 1800 mm나 되기때문에 농사에 충분한 강수량은 있고,오히려 물이 넘칠때를 대비한

시설이 보이는데,물을 잘 다스려 오염을 막기위해 물길을 땅에 숨기기도 하는등,1 km 가 넘는 물길이

이곳을 흐르고 있다.


평민 주거단지로 들어 오면서,벽의 형태가,돌틈새를 얼기설기 흙으로 막은것으로 보아 확실히 귀족들의 

주거 단지와는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슴을 알수있다.

잉카의 도로와 통신은 가히 로마의 그것과 비견될 정도로,놀랍고 광범위해서 무려 18000 mile 의 거리를

다리를 놓고,길을 만들어 2000 km 를 불과 5일에 주파하는 놀라운 통치술로 피차쿠티 왕이 정복 전쟁을 끝낸후,

이곳을 왕의 전용궁전으로 건립,잉카인의 제사나,의식을 위한 장소로 사용 한것으로 추정되는데 불과 100년도 

안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곳 잉카의 후예들은 지금까지도 Spanish 대신 Quechua 라는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지대가 높은 관계로 거의 매일 이곳을 안개가  띠로 두른듯 둘러싸고 있어,마추피추가 마치 구름위에 

떠있는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전설에 의하면,밤이 되면 사람들을 쫓아버리기 위해 정령들이 땅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트레일을 하는 포터들은 그런 땅의 정령들을 쫒아내기 위해,잠자리 밑에 거울을 두거나 혹은 

거울처럼 반질반질한 돌위에서 자곤 한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6월21일 하지날(낮의 길이가 가장 긴)에는,멀리 산너머 Sun Gate 위로 떠오른 태양빛이 이곳 중앙의 창문

안으로 들어와,돌 제단을 정확히 비추며 창문과 돌 제단,그리고 태양이 일직선이 되는데,그 햇빛의 각도를

통해,건기와 우기를 구분하며 파종시기를 알게되는등 고도로 발달된 농경기술로 인해,무려 4000 여 종의

감자를 재배하였다고 한다.

신전 아래에는 죽은 왕을 모시거나,제사를 지내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크게는 50톤이 넘는 돌들을 근처 산에서 캐어 운반,75%의 산화철을 함유한 해머타이트와 동물의 지방,

강가의 모래등을 이용하여 거치른 돌을 이처럼 반질반질하게 조각하여 모르타르를 이용하지도 않고

짜 맞추어 신전과 건축에 사용하였다.


지진에 매우 취약한 페루에서,이렇게 지진에 대비한 뛰어난 건축술로,지진이 일어날때는 건물들이 춤을 

춘다고까지 할 정도로 그동안의 지진에도 살아남은 견고함과,종이 한장도 들어가지 않는 틈새 접합의  

정밀함이 잉카의 놀라운 건축술을 보여주고 있다.


인티와따나(Intihuatana) : 

태양을 묶어두는 기둥이라는 뜻의 해시계 였다는 설과 혹은 천문관측소 였다 라는 말도 있다.

각 모서리들은 네 방위를 가르키고 있어,춘분과 추분에는 태양이 이 기둥에 가려져서 그 그림자로 기후와 

계절을 감지 하였다고 한다

이런 인티와따나는,페루의 여러곳에 있었는데,우상숭배를 못마땅하게 여긴 스페인 사람들에의해

모두 파괴되어 버리고,스페인군이 침입하지 않은 이곳에만 남아있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이처럼 스페인 군에의해 발견되지 않았기때문에 오래 보존 가능했다


이곳에서도 인신공양은 이루어 지긴 했으나,대규모로 이루어지지는 않은것으로 보이고 그보다는 동물,물,

진흙 같은것들이 더 보편적으로 신에게 바쳐진것으로 보인다.

평원을 가로질러,와이나피추 입구쪽으로 발을 돌렸다.






Young Mountain 이라는 의미의 와이나피추로 들어가는 문.

하루 인원을 400명으로 제한하기때문에,마추피추와 동시에 볼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마추피추보다도 약 400 m 나 높은 2800 m의 산으로,경사가 60도나 되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와이나피추 정상에서 발아래 마추피추를 내려다 보는 풍경 또한 일품일텐데,아쉽게도 예약을 못해서

올라가지 못햇다.

그 높고 좁은 곳에도 농사를 위한 테라스 농지가 있다고하니,당시 그 좁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식량확보에 힘을 기울였는지 알수 있을것 같다.


Sacred Rock : 

무슨용도인지 알수없으나,사람들이 이 돌에 손을 얹고 기도를하는모습을 보았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골을 분석해보면,뼈의 구성 성분으로 보아,먹었던 식량 종류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달랐던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생선,감자를 먹어서 해안가에 살던 사람들이 점차 옥수수만 먹은것으로 보아,저지대 사람들이 

올라온것 같고,4000m 나 되는 고지대에서 사는 라마나,알파카 등의 동물의 뼈가 발견된것으로 보아,

고지대에 살던 사람들도 내려 오는등,잉카 제국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어울려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시 건설을 위해 잉카전역에서 우수한 건축 장인들이 들어온것으로 알려져 있다.


3 m 높이의 계단을  3000 개나 만들고,사이를 흐르는 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지었던 이곳은 파챠쿠텍 왕 

사후에는 점점 그 중요성이 적어지고,그후계 왕들이 근처에 Ollaytantambo 라는 새 도시 건설을 함으로써,

점점 이곳의 중요성이 적어졌다.

그나마도,스페인과의 전투에서 패한 망코잉카가 빌카밤바로 숨어들은 이후로,마추피추는 오랜동안 역사속에서 

잊혀져 있었는데,1800년 후반에 탐험가 Antonio Raimondi 가 이곳이 어떤곳인지도 모른채 한번 지나간후,

1867년 Augusto Berns 가 금광 회사를 이 근방에 차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1911년 미국 예일대학교의 역사학자 Hiram Bingham 이 우르밤바 강을 탐사하면서,잉카인의 빌카밤바를

찾는중,근방에 사는 농부의 이야기를 듣고,소년 한사람을 고용하여,발견하게되었다.

하지만 그가찾던 빌카밤바는 그의 사후 1950년대아 되어 서야,빌카밤바가 이곳이 아닌 훨씬 서쪽이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발견된 약 5000여 점의 잉카유물들은 미국으로 건너가,예일대 박물관에 보관중이다가,마추피추 발견 

100주년을 맞이한 2011년이 되어서야,모든 유물이 페루정부에 돌아오게 되었고,그 유물들은 현재 쿠스코의

Casa Concha (Machu Picchu Museum) 에 전시되어 있다.



교통수단뿐 아니라,잉카의 의식주까지 제공 하는,스페인어로 야마(Llama),영어로 라마라고 하는 동물,

알파카와는 다른종류로 이곳에 사람이 살기전의 원주인은 이들이 아니었을까?

                    


콘도르 신전..

철이 함유된 돌을 갈아만든 거울 용도로도 쓰였거나,한편으로는 거울에 비치는 천기를 보고 날씨를 예측하기도

했다고 한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런 건축형태를 보면,이 마추피추가 그냥 건설된 도시가 아니라,아주 잘 계획된 도시같다.

하지만 이런 도시가 단 100년 동안만 사람이 거주한후 어느순간 흔적도 없이 모두가 사라져 버린 미스테리를

간직하고 있는데,아마도 천연두 때문이었을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잉카에는 문자기록이 없어 역사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창문 밖으로 좀전에 올라온 버스길이 지그재그로 우르밤바 강 아래까지 연결되어 있다


콘돌 신전안을 들여다 보면서..



마치 건물 자체가 새가 날아가는 모습으로 형상화 되어 보인다.

잉카가 숭배하는 콘돌 신전 안의 콘돌 머리문양.


600개가 넘는 이런 테라스들이 지진이나 홍수시 산위의 도시가 아래로 미끌어져 허물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견고한 지지대 역할을 하고있다. 

식량 저장 장소 꼴까 안의 모습.

풍성하게 걷어들인 수확을 오랫동안 저장하기 위해서,바닥에 환기구를 설치해서 습기 방지하고,사이사이에 

허브를 깔아 병충해를 막아,감자 와 옥수수,마른고기,소금절인 생선등 식량을 일년에서 수십년간 저장할수있는

곳간이다

이제 쿠스코로 돌아가야 할 시간.

광장의 파차쿠테 왕에게 작별을 고하고

버스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어제 왔던 Hydroelectrica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버스를타고 쿠스코로 돌아가게 된다.

만약 기차로 돌아가기로 했었다면 좀더 산 위에서 시간을 보낼수 있었을것 같은데,조금은 아쉽다.

만약 한번더 올수 있다면,못가본 와이나피추와,태양의 문,잉카브리지를 둘러보고 싶다.


다시 돌아가는길..

산타테레사,산타마리아를 거쳐 돌아오는 버스길은 꼬불꼬불 좀 위험하기도 하지만,또 창밖으로 보는 경치가

보상을 해준다.

오는 중간 휴게소에 들른 사이,저 멀리 첩첩산중 너머 황혼이 지고있다.

마추피추,쿠스코,와이나피추,남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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