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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시대의 발자취를 따라서 : 포트코치(Kochi,인도) 26 JAN 2019
06/05/2019 09:46
조회  923   |  추천   5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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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포트코치 만 볼려고 하면,그다지 넓은 지역이 아니라서,부지런만 하다면 꽉찬 하루면 다 들러 볼수 

있을것도 같다.하지만,이왕 이렇게 먼곳 케랄라까지 왔으면,여기를 기점으로,서너시간 거리의 유명한 차 밭인

문나르(Munar)나,야생동물 관광에 좋은 페리야르 국립공원(Periyar National Park)을 다녀오는것 도 좋을것 같고,

이와 관련된 투어 상품도 많이 보인다.

두군데 다 고산지라서,여름에도 서늘하고,빼어난 풍광때문에 알레피에서의 Backwater tour 와 함께 

신혼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나는 지난번 스리랑카의 하푸탈레에서의 세계적인 차 밭을 걸어본 경험이 있고,애초에 동물구경에는 그닥

흥미가 없어,코치 여행을 마친후 곧바로 마이소르(Mysuru)로 가는 계획을 세웠었다.

버스로 10시간 정도 걸린다는 코치에서 마이소르 까지의 일정은,주간 버스대신,야간 침대버스를 탄다면,

다음날 아침에 마이소르에 도착하여 당일로 마이소르를 둘러볼수 있을것 같아,나는 어제 미리 산타크루즈 

성당앞 여행사에 들러 버스표를 끊어놓았었다.

따라서,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전까지 오늘 하루 온전히 시간이 남아,어제 들러보지 못한 

마탄체리(Mattancherry)를 향하여 아침 일찍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많이 남은 하루지만,더워지기 전에 선선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우선 에르나쿨람과 포트코치를 오가는

부두를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북쪽으로 얼마 걷지 않아서 곧 바닷가가 나오며,멀리 페리보트가 부두를 향해 오고있다.

페리가 부두에 정박하자마자,맞은편 육지에서 타고온 많은 손님들이 우르르 밀려 나온다.


부두를 지나 계속 마탄체리로 가는길...

이 길,해안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Bazzar Road 만 따라서 가면 마탄체리가 나오는데,이른 아침이라서 사람들이

많지않고,마탄체리까지 좀 멀다고 느껴 지기도 하지만,어차피 이른 아침 산보삼아,한적한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기로 한다.

가끔씩 바닷가를 따라 식민지시대의 세워진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나타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떤 건물은 아주 고급 호텔로 개조하여 운영하고 있다.


곧 아침에 잠시 열린 동네 어시장에 다다랐다.

제법 큰 건물 사이 펼쳐진 공터..

갓잡아온 싱싱한 생선들이 임자를 기다리고 있고,

아주 활발한 거래로 시끌벅쩍 하다.


어시장을 지난후 다시 Bazza road 를 따라서 전진..

쓰러질듯 페허가 된 건물 벽에 공산당 기 와 체 게바라,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사진 포스터가 참 생경스럽다.

지난번 블러그에서 언급했듯이,케랄라 주는 첫번째 치루어진 주 의회선거에서 인도 공산당이 승리하여

집권한 이후로,우여곡절끝에 공산당계열인 Left Democratic Front (LDF) 연합 전선과 인도 국민회의가 

이끄는 United Democratic Front (UDF) 연합이 지금까지 양강 체제를 유지하며 번갈아가며 집권하며 

경쟁하고 있다


사진에서 보는대로,아직도 이렇게 열악한 생활상을 보여주고는 있지만,그래도 이곳 케랄라는 오랫 동안 

공산주의 계열의 정당이 집권한 만큼, 사회주의적 공공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으며, 1990년대 이후부터는 

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하여, 경제의 양적인 성장세도 보여주고 있다

1957 최초 집권 시부터 초대 주수상 남부디리파드(E. M. S. Namboodiripad) 실시한 과감한 토지 개혁 

정책과 교육의료  공공 시스템 확충  자원의 공정 분배 시스템 구축은 케랄라를 가난하지만 살기 좋은 

지역으로 변모시키는 출발점이 되었으며그의 후임자들 역시 이러한 방향을 고수하며 수십년에 걸쳐 점진적인

발전을 이룩하는데 공헌했다이러한 발전의 근간에는 부정부패의 근절과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보장되는 

투명한 정치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주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으며덕분에 실제 주민들의 정치 

의식 수준이나 사회 참여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그리고 카스트 문제나 여성 차별 문제도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한 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케랄라식 경제  사회 정책을 케랄라 모델이라고 부르며비교적 성공적인 사민주의 모델의  

종류로서대안 경제 체제를 논할 때만다 한번씩 언급되고 있다


산업구성의 경우 서비스업이 전체 GDP 63%, 제조업이 26%, 농업이 12%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농업 비중이 줄어들고 제조업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이지만주민의 상당수가 여전히 농업에 의존하고 있다

쌀과 같은 곡류와 코코넛커피향신료 등이 주로 생산된다또한 전통 수공업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으며

그중 야자 껍질 섬유로 만든 직조품(Coir Fibre) 유명하며,수려한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업도 활성화 되어 있다


포트코치 지역을 벗어나 남쪽으로 걸어오는 중에 바라다 보는,페허와 같은 빈집들.

그나마 내가 걷는 길이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길인것 같지만,이른 아침이라 아직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아서 

그런지,정말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주민들 수입의 20% 정도가 중동에서 일하고 있는 파견 근로자들로부터의 송금으로 매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중동 건설붐 때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걸어가다가 아주 조그만 예배당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그동안 타밀나두를 여행하면서,수많은 힌두 사원들만 보다가,케랄라에 오면서부터는 교회나,성당들이 많이 보인다.


이름하여 Holy Cross Chapel 

동네입구 길가에 아주 조그마하게 자리잡은 기도처로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 보는데,사람들이 십자가를 모신 단 아래 불을 피워 놓고,오며가며 간단히 예배를 드린다.

가까운 곳에는 이슬람 사원도 보이고,무슬림도 보이지만,이곳 케랄라가 다른지역보다도 유독 교회와 기독교 

신자가 많아 보이는것이,예수님의 12사도 한명인 토마스(Thomas) 기원후 52 인도 케랄라 지역에 

당도하여 기독교 전파를 시작했다고 하는 사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긴,이곳은 토마스 사도가 오기전인 기원전 1000 솔로몬 시대부터 소수의 유대인들이 케랄라 주의 코치에

자리잡기 시작했으며,기원전 573년부터는 유대인 상단이 해상 교역로를 통해 케랄라 지역과의 교류를 

이어가기도 했고,이들의 후손들이 20세기 이스라엘로 귀향할 때까지 인도 내의 주요 유대인 공동체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에 의하면,토마스 사도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본래 케랄라를 비롯한 인도 남부 지역들은 중동이집트 지역들과 해상 교역로를 통해 오랫 동안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시리아 기독교인들의 일부가  토마스 시대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인도로의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역사가들은 이런 전설을 토대로 인도 기독교의 본격적인 출발을 6세기  인도 남부 지역에서 

정착하기 시작한 시리아 기독교 공동체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인도 기독교 교파   토마스 교회(Saint Thomas Christians) 여러 분파들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케랄라도   하나이며현재 주민의 18%  토마스 교회를 포함한 카톨릭  기독교 

계열의 종교를 믿고 있다힌두교가 지배적인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크리스마스가 중요한 지역 축제로 여겨지는

곳이다

교회 바로 옆에는 무슬림이 운영하는 곡물가게가 있는데, 아침 신문을 읽고있는 무슬림 주인 어깨넘어 

아침햇살이 내려앉아있다

동네 안으로 들어가는 골목길..할머니 한분이 사진을 찍고있는 내게로 다가오며 포즈를 취해준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서,또다른 교회가 나온다.

Our lady of life church 라는 이름의 Jeevamatha Catholic Latin Church 이다.



아무도 없는 성당 주위를 둘러보며,닫힌 창문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근처에 있던 수녀님이 맞은편 

문을 가르키며 열려 있으니 들어가 보라고 한다.


곧 마탄체리 궁전이(Mattancherry Palace)있는 넓은 버스정류장 공터에 이른다.

이곳은 16세기 포르투갈 사람들이 전통적인 케랄라양식으로 건축한 마탄체리 궁전이 있다.


1555년 포르투갈사람에 의해,당시의 코치 왕에게 선물로 지어준 궁전인데 이후 1663년 네델란드사람들이 

개조하고 확장하여  Dutch Palace 리고 불리기도 하고,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당시 코치 귀족들의 Story 가 있는 그림들과,


식민지 시대 사용하던 가구,그리고 귀족들의 초상화 들이 전시되어 있다



마탄체리 궁전에서 유대촌인 (Jew Town)을 연결되는 도로 주위로는 많은 골동품 가게들과,호텔,음식점,선물가게,

향신료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식민지 시대의 건물을 잘 개조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호텔 식당이 보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유대인 촌(Jew Town) 으로 들어서 유대 회당을 찾아가 보는데,

문이 잠겨있다

1500년대 세워진 유대인 회당(Jewish Synagogue) :


이곳에 살던 유대인들이 오래전 이스라엘로  돌아간 후에도,주위는 당시의 유대인 촌(Jew Town)을 보존하고 

있어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물건,음식,기념품등이 그대로 진열되어 팔리고 있다.



우연히 들어가 본 골동품 가게 모습.

      

      



      

아직 향신료 가게가 문을 안 열어,창안에 진영해 놓은 향신료 재료 곡물들..

한 곳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인부를 볼수있다.


오전 중 마탄체리를 들러보고나니 밤 10시 다음 목적지 마이소르로 가는 버스를 탈때까지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숙소는 이미 check-out 을 해야 했기 때문에,오후내내 어제 들른 포트코치를 해변가를 따라 

다시 돌아보기로 한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거리에는 많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뒤섞여 흥청거리고 있고,



나들이 나온 젊은 여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모자가 가판대에 걸려 있다.

일몰이 시작 되면서,사선으로 거리에 떨어지는 햇빛이 한결 부드러워졋다.


현지인들의 고단했던 하루 삶도 이제는 내려 놓을 시간..

한 주일 끝자락,노동뒤의 담소도 한결 편안해 보이고..

감자칩 튀김장사 주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로테스크한 벽화 아래서 SNS 를 하는 젊은이들이 덩달아 위험스럽기도 하고..


나는 다시 Chinese fishing net 가 있는 해변으로 나왔다.. 


마침 여러대의 Fishing boat 들이 요란한 모터소리를 내며,들어오고 있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먼 바다에 나가 잡은 고기들을 손에 들고,밖에서 기다리고있는 상인들에게 다가온다.



           

갓 잡아 올린 참치와 오징어 들..


Fishing net 에서 고기잡는 인부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수백년 된 어망이 일몰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사진 배경이 되어 준다.


이처럼,일몰을 배경으로 한 Chinese fishing net 는 사진사들에게는 매우 인기있는 장소다.

나도 사진사 흉내를 내며,하나라도 건져 볼려고 이리저리 시도를 해본다.




해변이 굽어 지며 돌아 나가는곳에 오니,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다 넘어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주말을 만끽하고 있다


한쪽에서 음악 밴드 소리가 들려 가보니 넓은 광장 한쪽에 가설 무대를 설치해 놓고,중고생들이 밴드 음악회를

열었다.많은 사람들이 어울려서,어린 학생들의 음악 잔치에 어울려 참여하고 있다.

나도 한참을 그곳에서 어울리다가,숙소로 돌아와 숙소 주인이 불러준 우버 택시를 타고,마이소르행 버스정류장

으로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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