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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분쟁의 땅, 인도 카슈미르 (26-27 AUG 2017)
09/28/2017 05:37
조회  3577   |  추천   12   |  스크랩   0
IP 45.xx.xx.78

참,멀긴 멀다.

LA 에서부터 비행기를 네번 갈아타며,이곳 카슈미르 지역의 '스리나가르' 로 오기까지..

비행 시간만 24시간,Transit 시간까지 합하면 한 30시간 이상이 걸렸다.

작년 이맘때 오고자 했지만,당시 파키스탄과 인도군 사이에 발발한 교전때문에,스리나가르 시내도 저녁에는

통금이 시행되는등,여행 자제령이 내려져,부득이 목적지를 인도 중부를 거쳐 네팔로 변경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번 다시 오기를 열망하면서,틈만 있으면,주 인도 한국 대사관,미국 대사관 웹사이트를 들랑거리고,

스리나가르 Local News 를 인터넷으로 점검하면서,올해는 더 이상 충돌이 없기만을 바랐는데,역시 한달쯤 전에

국경 근처에서 또 한번 붙었다고한다.하지만 스리나가르에서 좀 떨어진 지역이라 여행 자제령은 

내려지지 않는것을보고 다시한번 시도해본것이다.

그래도,인도 델리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스리나가르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넌지시 공항직원에게

안전에 대해 물어보니 그들은 별로 관심도 없다.

Air India,Jet Airways 외 다른 저가 항공사까지도 스리나가르로 가는 항공편들이 거의  만석으로 

나가는것을 보면,특별히 위험할것 같지는 않다.

하긴,최근에 그리로 가는 도로가 무슨일인지 막히는 바람에,육로로 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대거,

항공편으로 몰린점도 있다고 듣긴 했지만..


델리에서 스리나가르까지는 버스나 기차를 이용한, 육상편으로 갈려면 거의 하루 이상이 걸리는관계로

편도 100$ 이내로 불과 1시간 남짓하면 도착하는 항공편이 훨씬 유리할것같다.

단,다람살라나,암리차르,쟘무를 거쳐 여행하면서 그곳으로 가고자하는 배낭 여행객을 제외하고는..

어쨌든,스리나가르 공항에 홀로 내린 나는 입국장에서 외국인 등록을한후(외국인은 반드시 도착장에서,

한장의 종이에 입국신고를 해야한다) 밖으로 나가니, 내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고있는 인도인이 보인다,

예약을 한 첫 숙박지에  600 루피(9$)에  Pick Up Service 를 부탁해 놓았기 때문이다.

공항은 그저 그런 조그만 시골 공항이지만,파키스탄 국경과 가깝고,분쟁이 잦은 지역답게,중 무장한

군인들이 바깥으로 가끔 보이는것으로보아,군 비행장 겸용인것 같다.

예약한 보트하우스로 가는 약 30여분 동안,길거리 모퉁이마다 무장한 군인들,혹은 경찰들이 많이 보여 

분쟁지역임을 실감케 했는데,역설적으로 이렇게 단단한 치안이 오히려 여행자에게는 안전하게 느껴진다.

내가 예약한 보트하우스는 유명한 Dal Lake의 한 복판에 위치해 있어서,택시 운전수가 숙소에 가장

가까운 선착장인 Gate 9 에 내려주면서,그곳에 정박해있던 조그만 보트(시카라 라고 함)에게 나를 

인계 해주자, 10분도 안되어,나는 보트하우스에 도착하였다.




내리자 마자,모하메드라고 자기를 소개한 주인이 Welcome 카슈미르 차를 내오며,내가 LA 에서 

온것을 알고,바로 옆 보트하우스에 미국 할아버지 한분도 같은곳에서 왔다고 소개 시켜준다.

사람좋은 풍채를 가진 할아버지는 또 나중에 우연히 레 에서 다시 만나 5 일동안 함께 여행을 하게되는

인연이 만들어지는데,그때 다시 언급할 예정이다


보트하우스에서 차를 마시며 바라본 바깥 전경들..



어쨌든 여기까지 오느라고 힘들었던 여정이지만,남은 오후를 마냥 쉴수는 없어,1시간 정도 혼자서 호수의

뒷골목인 Backwater Tour를 하는게 어떻냐는 모하메드의 조언을 받아들여,샤워를 하고나서 나를 숙소까지

태워준 보트 운전사를 따라,투어에 나섰다.

오늘 보트 투어와,내일 시티투어까지 합쳐서 2400루피(약 40 $)를 주기로 하고(보트하우스 1박에 12$)

가난한 배낭 여행자들은,나처럼 이런 황제 투어(?)를 할 필요없이,시카라를 타고(무료 혹은 50 cent)

타운으로 나가,직접 택시나 릭샤를 흥정하면서 다니면 정말 저렴하게 다닐수가 있다.


시카라는 곧,호수 뒤 좁은 물줄기를 타고 미끌어지듯 나아가는데,운전사가 유창한 영어로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가는도중 군데 군데 보이는 호수위 조그마한 마을에는 집시들이 산다고 한다.

인도에 웬 집시 ?

나는 집시는 스페인 같은 남유럽에 주로 사는사람들로 알았는데,알고보니 원래 집시들의 조상 혈통은 이곳 

북부 인도라고 한다.즉,이곳에 살던 토착 인도사람들이 오래전에 전쟁을 피해 유럽쪽으로 흘러들어가 

그곳에서 유랑생활을 하게된것이 유럽 집시들이라고 하여,정말인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그말이 맞다.


이처럼 듬성 듬성 위치한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목조 다리가 보이고,

그사이 사이를 시카라 라고 하는 작은 보트가 택시 역할을 한다.


가난한 집시들은,관광객이나 현지인들에게 구걸을 하면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하여, 이를 관리 하기위해

정부에서 이곳의 한지역을 지정하여,살게 하면서 자립할수있도록,세금혜택이나,보조금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아마도 미국의 인디안 보호구역과 같은 개념인것 같다.


호수의 깊이는 잘 해야 10 ft를 넘지않는데,오수로 오염이 되지 않도록 큰 파이프를 집집마다 

연결하여,처리를 한다고 한다.

지난번 미얀마 인레 호수와 비슷한 시스템인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달 호수는 매우 깨끗하여,많은 수초가 자라고있다. 


호수가 구멍가게..


위에 보이는 염소,양 떼 들은 여름내내 집시들이 산으로 몰고가 키우다가,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겨울을

마을에서 지내기위해 몰고 내려온것이라고 한다.








보트는 뒷골목을 얼마간 훑은후,얼마 안있어 다시 넓은 호수로 나왔다.

호수 주위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보트 하우스들이 정박해 있는데,저마다 개성있게 치장을하고 관광객을

맞이한다.

모하메드에 의하면 이곳 달 호수주위로 약 1500개 가량의 보트 하우스가 있는데,보트 가격은 크기와 상태에 따라

5-6만 $ 수준이며,외지인은 매매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보트하우스는 원래 영국 통치하에 있을때,주민들이 영국인들에게 토지를 팔지 않기로 함에따라,택지가 

부족한 영국인들이 호수에 보트하우스를 지었었는데,인도 독립후 영국인들이 물러가자 남겨진 보트를 

인도인들이 물려받아 사용하기 시작하여,주거용 혹은 관광객을 위한 Guest House로 사용중이라고 한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시카라를 타고다니며 이것 저것 행상을 하는 사람들이 거실에 앉아있는 나를보고

사라고 조른다.



근처에서는 보트놀이를 하는 관광객도 보이고,

환전을 하기위해 주인을 통해 환전상을 불렀는데,금방 시카라를 타고 도착한다.전형적인 수니파 무슬림이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은 인도 북부,라닥 지방을 보는것인데,라닥 지방이 대부분 3500 m가 넘는 고지대라서
델리에서 직접 레 공항으로 항공기로 온다든지,혹은 마날리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경우, 하루만에 
마날리(1950 m) 에서 Rohtang Pass(3890m) 와  Taglang Pass(5328m)를 넘으면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크던 작던 고산증으로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그동안 보고싶어했던 스리나가르를 볼겸,또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Zanskar 계곡을 여행하면서 고도적응을 마친후 레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이런 역 루트를 
택했는데,그래서 그런지 고산증으로 고생하지않고,수월하게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라닥 여행을 계획하고자 하는사람에게는 만약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이런 루트를 적극 추천한다.
이제 내일 하루더 스리나가르에서 머물면서,관광을 한후 모래부터 본격적인 라닥 관광에 나서기로 하고
자리에 들었다.



오기전,마침 내가출발하기 한 2주일전이 인도 독립 70주년이라는 내용으로 기사가 실렸길래,어떻게 해서
이지역이 어떻게해서 분쟁지역이 되었는가에 대한 요약을 볼수있어 발췌해 싣는다.

"독립 70주년 인도, 파키스탄 분쟁"


파키스탄과 인도가 각각 14일과 15일 독립 7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독립 70주년’은 ‘분할 70주년’을 의미하기도 한다. 독립과 동시에 영국령 인도는 힌두 중심 인도와

무슬림 중심 파키스탄으로 분리됐기 때문이다. 세계 언론은 이날을 맞아 아직까지 끝나지 않는

양국간 분쟁의 역사와 구원(舊怨)을 일제히 재조명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표적인 국경 관문인 와가에서는 매일 양국의 국기 하강식이 열린다. 

파키스탄 유격대와 인도 국경수비대가 우의와 경쟁심을 동시에 보여주는 행사로 매일 최대 관광객

2만여명이 이 행사를 지켜본다.
하지만 정작 이 관문을 실제로 통과하는 인원은 일주일에 수백명이 채 안 된다.

선린관계를 표방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사람과 물자 이동이 원활하지 않은것이 양국 관계를 

함축한다. 다른 국경 지역인 북부 카슈미르 지역은 최근 긴장도가 더욱 높아졌다. 

지난 12일에도 북부 카슈미르 휴전선 인근에서 총격과 포격으로 인도 군 1명과 민간인 1명이 숨졌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의 뿌리는 영국이 인도를 이슬람

세력과 힌두 세력으로 나눠 분리 독립시킨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 전후 인도와 파키스탄 양 측에서 발생한 이교도 공격으로 최소 50만명이 사망했다. 

탄압을 피하고자 상대 지역으로 넘어간 인도 거주 

무슬림과 파키스탄 거주 힌두ㆍ시크교도의 수는 약 1,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947년 분할’을 다루는 두 나라 교육 내용도 정반대다. 파키스탄에서는 “힌두교도가 이슬람교도에 폭력을

휘두르고 재산을 빼앗아 추방했다”고 가르치는 반면

인도에서는 “마하트마 간디가 통일 인도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무슬림연맹은 영국과 손잡고 분할독립을 시도했다”고 교육한다. 적대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15년 파키스탄을 방문하면서 양국관계가 일시 개선될 조짐이 보이기도 했지만 이후 빈발한 무장충돌로 대립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북부 파키스탄과 카슈미르에서 

활동하는 무슬림 극단주의 무장집단은 양국에 골칫거리다. 

인도는 파키스탄 정부가 배후에서 이들의 활동을 묵인, 이들이 발호하고 있다고 보고,

 “파키스탄 정부가 인도 카슈미르 지방을 공격하는 무장집단을 제어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남서부 발루치스탄을 중심으로 한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자국인을 향한 테러부터 막아야 하는 처지다. 12일에도 발루치스탄 중심도시 퀘타에서 이들의 

자살폭탄테러로 15명이 숨졌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파키스탄이 과거 무장집단을 

지원해 인도 측과의 ‘대리전’에 동원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최근 이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통제불능 상태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정치분석가 

하산 아스카리는 AFP에 “인도가 무장단체 문제를 선결조건으로 내건 이상 가까운 장래에 양국간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모두 핵 보유국으로 대립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두 나라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랜 대립구도는 양국의 내부 정치를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낀 카슈미르인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힌두민족주의의 지지를 업은 인도인민당(BJP) 정권은 최근 ‘카슈미르 분리주의자’를 향해 강경한

억압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고, 파키스탄 역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군부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어

관계 개선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AP> 

 아울러 현재의 분쟁을 가능케한 카시미르 분쟁의 역사에 대해 발췌해 놓는다.


카슈미르 분쟁은 대표적인 종교적 갈등으로서,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독립할 때 생긴 3개 토후국(:영국 보호 아래 있을 때 인도제국을 형성하던 작은 전제왕국)의 귀속문제를 둘러싼 분쟁이다.


한 나라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은 18세기 영국식민지로 전락한 뒤 힌두족과 이슬람족이 각기 분열된 독립운동을 벌였고, 1945년 종전과 함께 임시정부 구성을 둘러싼 종교갈등으로 1947년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람교의 파키스탄으로 분리독립하였다.

분리독립 이후 자신의 종교를 찾아 국경을 넘다 희생당한 국민이 많아지자 이슬람 주민이 대다수인 인도 북부, 파키스탄 북동부 국경의 카슈미르는 분쟁지역이 되었다. 분리독립시 종족구성상 파키스탄에 귀속되어야 했지만 이 지역의 힌두지도자가 인도에 통치권을 넘김으로써 1948년 제1차 인파전쟁이 일어났다.

1948년 전쟁은 1947년 말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카슈미르 무장부족집단이 수도인 스리나가르의 점령을 시도하고, 이에 대항하여 인도군이 뉴델리로부터 공수되면서 발생하였다. 인도측 자료에 의하면 당시 무장부족집단의 규모는 약 5만명으로, 이외에도 10만 명이 파키스탄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파키스탄은 전쟁 초기 자국의 연루 주장을 부인하였으나, 1948년 5월 정규군을 투입하여 양측간 전면전으로 확산되었다.

1948년 8월 유엔은 양측간 휴전을 중재하여 1949년 1월 휴전협정의 효력이 발생하였으나, 파키스탄은 전쟁 후에도 자국점령 카슈미르가 독립정부임을 주장하였고, 인도는 1963년 자국점령 카슈미르 지역을 자국의 1개 주로 편입하였다. 1949년 휴전으로 서부 아자드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으로, 나머지 잠무카슈미르는 인도령으로 분할되고 유엔이 통치권을 주민투표에 붙여 중재에 나섰지만 영토 다툼은 계속되었다. 

1965년 4월에는 쿠츠(Rann of Kutch)지역에서 양측간 충돌이 빈번히 발생하였는데, 1964년 네루의 사망 후 인도의 정국혼란을 기화로 파키스탄은 인도 점령 카슈미르에서 비정규전을 실시하여 카슈미르를 국제적 문제로 비화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양측은 3개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수행하여 상대방의 통신·보급로를 차단하는 한편, 인도는 파키스탄 점령지역인 라호르까지 진격하였다. 이 전쟁은 강대국의 압력으로 종결되었고, 소련의 중재로 1966년 1월 타시켄트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1971년 전쟁으로 방글라데시가 독립한 후 영국 및 세계 각국이 방글라데시를 인정하자, 파키스탄은 영연방회의에서 탈퇴하였는데, 1989년 부토(Benazir Butto) 총리 집권시 재가입하였다. 1987년 2월에는 인도측 카슈미르 국경지역에 파키스탄이 포격을 실시하여 약 100개의 마을주민들이 대피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후 양측이 합의하여 이 지역에서 철수한 병력은 각 5만명으로 분쟁의 강도 및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1990년 4월 양측간 교전이 빈발할 당시 카슈미르 주둔 인도군의 병력은 약 20만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0년대에도 카슈미르에서는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무장부족집단이 힌두교도에 대해 폭동·테러·게릴라전을 수행하거나 카슈미르의 독립을 주장하여, 인도군 또는 인도측 부족집단이 이에 대해 보복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1999년 7개월 간 카슈미르 지역의 양측 사망자는 1,300명으로 추정된다.

카슈미르는 면적 22만여 ㎢, 인구 500여만 명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인구의 60% 이상이 이슬람교도이다. 이곳은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등이 국경을 함께 맞대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두 나라 사이에 치열한 영유권 다툼은 앞다투어 핵무기개발에 진력해왔고 현재 잠재적 핵대결의 위험을 안고 있다.

분쟁은 근본적으로 종교집단간 투쟁으로서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힌두교와 범이슬람교간 세력경쟁의 양상을 보인다. 냉전기간 중에는 인도, 파키스탄의 우방인 소련, 중국이 경제·군사적 지원을 제공하여 분쟁을 심화시켰으나, 냉전 후에는 대체로 인도, 파키스탄간의 지원에 의해 전투비용이 조달되고 있다. 1996년 한국과 인도와의 교역액은 22억불이나 이 분쟁은 펀잡지역에 국한되어 있고, 인도대륙의 방대함으로 인해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50여 년간 계속된 갈등의 근본원인인 종교적 문제는 양측간 이미 합의된 정치적 협정 또는 주요국의 압력을 무효화시켰으며, 이 문제가 존재하는 한 카슈미르의 분쟁은 향후 지속될 전망이다.

양측간 카슈미르 국경충돌은 대부분 정규군간의 교전이기 때문에 교전수위 및 범위가 조절되는 편이나, 양측이 지원하는 무장집단 또는정규군에 의한 폭동·테러나 게릴라전이 빈발하게 발생하고 있고, 이로 인한 보복전이 자행되고 있어 평화적 해결전망은 매우 어둡다.

중국과 러시아는 과거와 같은 직접적 개입·지원을 자제하고 있으나, 각각 파키스탄과 인도에 무기 및 군사기술을 제공하여 양측간 체제경쟁에 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카슈미르 분쟁
발생시기주요사건

1947년 8월

인도, 파키스탄 영국으로부터 각각 독립.

1947년 10월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발발.

1948년 5월

인도 정규군이 전쟁에 투입되면서 국가 간 전면적으로 확산.

1948년 8월

유엔 휴전 중재.

1949년 1월

유엔 감시하에 정전협정 발효.

1963년

인도가 카슈미르 지역 일부를 독립된 주로 편입.

1965년 7월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발발.

1966년 1월

소련의 중재로 타슈켄트(Tashkent)에서 정전협정 체결.

1971년 12월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발발.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 분리 독립.

1972년 7월

심라협정(Simla Agreement) 체결 및 정전 통제선 설정.

1989년 10월

인도 수상 간디 파키스탄 공식 방문. 인도-파키스탄 정상회담.

1998년 8월

인도-파키스탄 대규모 포격전 발생.

1999년 4월

인도, 파키스탄 각각 미사일 시험 발사 성공.

2001년 7월

인도-파키스탄 정상회담.

2005년 10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에서 대규모 지진 발생. 인도가 파키스탄의 지진피해 복구 노력에 협력하면서 양측간 긴장완화.

2006년 7월

뭄바이 열차 연쇄폭탄테러 발생.

2008년 11월

뭄바이에서 파키스탄 테러리스트 LeT(Lashkar-e-Tayba)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테러 발생. 180명 사망, 295명 부상.

2011년 5월

파키스탄군,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인도군에 발포.

[네이버 지식백과] 카슈미르 분쟁 [Kashmir Conflict]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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