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대학살 추모관
12/14/201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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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첫 난징 방문에 갔던 추모관. 입구에 다가가자 크기만큼이나 큰 비애가 전해진다.


일본군에게 유린 당한 아내를 추스려 가며 죽어도 함께 죽자는 남편


어린 아기를 안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엄마.


생략된 묘사와 거친 터치로 긴박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죽은 엄마의 젖을 물고 빠는 아기의 모습에서는 콧끝이 시렸다.


죽은 자식의 눈을 감기는 아버지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전시장 문턱도 못 넘었는데 건물 주변 조각과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노래로 슬픔이 가득 찼다.


드디어 한무리씩 들여 보내주던 입구를 지나 추모관 안으로 들어왔다. 


전시 본관 격인 건물 앞에서 다시 줄서서 들어갔다.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실내 천장에 커다랗게 쓰여진 30만이란 숫자가 확 들어왔다.


난징대학살 희생자 숫자다.


벽에는 학살을 증명하는 빽빽한 사료. 그 못지 않게 충격적인 전시장 내 암매장 발굴지.


1만여 시신이 암매장 된 일대를 아예 추모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학살의 기간을 버텨 살아낸 생존자들로 학살의 크기를 증명하는 역설이 느껴졌다.


30만여 희생자 관련 파일.


납골당이 연상됐다. 


안식처라면 고작 한뼘쯤 되는 작디 작았지만 울림은 컸다.


이곳에선 12초 마다 불빛이 켜졌다 커지면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학살 기간 12초마다 한명꼴로 죽었단다.


당시 일본 아이들이 갖고 놀았던 보드 게임.


서양 열강에 휩쌓인 당시 중국 '시국도', 코리아 철자가 C로 시작한다. 


전시장을 나와 추모관 경내를 걷가 구석 다른 건물로 옮겼다.


이 건물은 통채로 암매장 발굴 현장에 세웠다.


저 많은 유골이 실제 사람의 것이라 믿고 싶지 않았다.


암매장지 출구에 쌓인 추모 물품과 메시지.


전시장을 벗어난 경내 곳곳에서 대학살의 비극은 묘사됐다.


매장된 몸에서 빠져나온 손을 연상케 했다. 그 손을 뒤로 하고 돌아 나왔다.


2016년 다시 난징을 방문했고 추모관에 다시 들렀다. 전철역을 나오자 눈에 익은 동상이 보였다. 


아뿔싸, 하필 문닫는 월요일 이었다. 


죽은 자식을 안고 울부짖는 엄마, 문득 맞으편 쑥쑥 오르는 고급 아파트가 겹쳐졌다.


2017년, 세번째 추모관 방문. 여전히 단체 관광객들이 줄을 이었다.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입구 위치가 건물 바로 앞으로 바뀌고 소지품 검사도 이뤄졌다.


물청소를 하다 쉬는 인부들 편안한 모습에 긴장이 잠시 풀렸다.


그렇지만 금세 먹먹하게 만드는 엄마와 아이.


다시 한번 아뿔싸, 본관은 수리로 휴관. 내가 다녀간 후 '리노베이션'을 했다고 해 기대를 했건만... 


할수 없이 암매장지 전시관을 둘러 봤다. 


변함없이 쌓여있던 추모객들의 종이학과 종이꽃.


차분하게 만드는 분위기. 슬픔이 커서 알면서도 당한다.


짧은 추모를 마치고 전시장을 빠져나와서야 우울함이 좀 가셨다. 


출구로 가다 중국 관광객들이 줄줄이 들어가는 전시관을 따라 들어갔다.


추모관과 달리 신분증을 보여주고 들어왔다. '항일 기념관' 쯤 되는 곳이었다.


역시나 빽빽하게 전시한 각종 사료들. 그리고 불길이 솟는 전시대.


옥고를 치룬 하일 투사들의 사진을 감옥 안에 전시했다.


뜬끔 없어 보이는 대형 칼에 당시 쓰였던 헬멧을 작품화 했다.


수통과 반합으로 앗상블라주(assemblage)한 전시품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는 항일투쟁을 주제로 한 미술 전시를 보고 나온 기분 마저 들었다. 


항일 투쟁(전시)의 끝은 현재로 이어졌다. 역사의 현재 의미는 관람자에게 맡겨뒀으면 어땠을까 싶다. 




*

처음 가 본지 3년 만에 여행기 아닌 여행기를 쓰게 됐다. 마음이 무거워 혼자만 안고 가려고하다가도 그래도 언제는 한번 아이들과 함께 가봐야지 하던 차였다.마침 1937년 12월 13일 학살이 벌어진지 80주년이 되었다.


300,000 그리고 12. 


기념관을 나오니 머리에 이 두 숫자가 선명하게 남는다.희생당한 사람의 숫자이고 학살이 일어난 6주간 평균 12초마다 한명씩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전시장은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동류 인간으로서) 거론하기 창피한 자료들과 실제 시신 발굴 현장으로 이뤄졌지만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 작품 혹은 예술적 디스플레이가 많았다는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런 효과 덕인지 순간순간 눈가가 촉촉해지고 또 일본이 중국을 향해 벌인 만행에 분노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야만임을 깨닫기도 했다.


기념관을 지은 이들의 말처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겠다. 특정 국가와 민족만이 아닌 인류사에 이런 비극이 다시 없기를 빌었다. 난징 대학살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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