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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카츄완으로 가는 길- 새로운 여행의 시작
05/21/20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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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은 내가 이제껏 살아보지 않았던 삶이

내 인생의 한 켠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멋진 순간들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는 이제껏 했던 여행과는 조금 다르다.

나의 오랜 친구를 만나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미니애폴리스에서 본 미시시피 강 -



3월 10일 애리조나의 내 집을 출발하여

45일간의 대륙횡단 종착지였던 시카고의 딸래미집에 도착하였던것이 4월 24일.

그동안 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는 손자손녀등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면서 충분한 휴식을 가졌었고,

그리고 드디어 캐나다의 사스카츄완으로 가서 친구를 만나기위해 또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 여정은 친구집에서 일주일 정도 지낸 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미국 오대호 연안을 둘러보는, 약 한 달간의 일정이다.


다시 길 위로 나서니 손자손녀들이 너무 서운해하였고,

딸래미는 여행경비에 보태 쓰라고 큰 돈을 내 체킹 어카운트로 입금하여주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었는데...고맙다. 딸아.


5월 17일, 시카고에서 출발하여 약 430마일을 달려 오후 늦게 미네소타주의 세인트폴에 도착하였다.

모텔에 체크 인 하고 약 30분 정도 침대에 누어 장거리 운전을 한 피로를 풀면서 휴식을 취한 후에

어두어지기전에 모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미니애폴리스의 미시시피 강가로 갔다.





쌍둥이 도시(Twin Cities)로 알려진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와 세인트 폴(St. Paul)은

미시시피 강(Mississippi River)을 따라 나란히 붙어 있다.

위 사진에서 강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세인트 폴, 왼쪽이 미니애폴리스이다.

미시시피 강은 길이가 2,320 마일(3,730km)이며 미국에서 두 번쨰로 긴 강이다.





미네소타주는 간혹 5월에도 눈이 내릴 정도로 겨울이면 매서운 추위가 몰아친다.

그 미네소타 북부의 이타스카 호수(Lake Itasca)라는 아주 작은 빙하호가 있는데

이 호수가 미시시피강의 주 발원지이며

'1만 호수의 땅'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미네소타주의 크고 작은 호수에서 흐르는 물이

미시시피 강의 지류와 합하여 길고도 긴 강을 이루고 있다.






미시시피강은 미네소타, 위스컨신, 아이오아, 일리노이, 미주리,

켄터키, 테네시, 알칸사스, 미시시피, 루이지애나를 거쳐 멕시코만으로 흘러간다.






지난 번 대륙횡단의 마지막 날은 미주리주의 한니발이었다.

한니발에는 미시시피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는데

한니발에 있는 B & B의 이층 내 침실에서 미시시피 강이 보였고,

그 다음 날 미시시피 강을 건너 일리노이주로 들어섰었는데,

우연하게도 이번 여행의 첫 시발점도 미시시피 강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세인트 폴을 출발하여 북쪽으로 약 280 마일 올라가

미네소타주에 하나 있는 Voyageurs National Park에 도착하였다.

원래 계획은 이틀을 이곳에 머무는 것이었으나,

친구에게 달려가고픈 마음이 앞서서 계획을 바꾸었다.

하룻밤만 국립공원 캠핑장에서 잔 다음에

 그 다음 날 오후에는 캐나다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5월 19일 오후에 국립공원을 나와 캐나다로 향하였고,

미네소타주 접경에 있는 캐나다 보더에 들어섰다.

이 때가 오후 6시 10분경.







국립공원에서 친구집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하니 750 마일이 나왔었다.

긴 거리라 사스카츄완에 도착하기전에 중간에 한 번은 자야한다.

붉고 강렬한 빛을 쏟던 커다란 해가 평원에 내려설 때가 오후 9시 21분이었다.

네비게이션에서 호텔을 검색하여

길 가, 이름도 모르는 도시에 있는 Days Inn에서 하룻밤을 쉬기로 하였다.


밤도 늦었고, 몸도 피곤한데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모텔에서 친구를 만날 생각을 하니 만감이 떠오르고,

언젠가 썼었던 글이 문뜩 떠올라,

옛날 글에서 찾아 내었다.


.

.

.





아래의 글은 2005년 8월 8일에 친구로부터 국제전화를 받고

그 다음 날인 8월 9일에 쓴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내가 왜 그 때 서울에 갔었는지가 하나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때 수녀고모님을 만나서 시아버지, 시어머니 산소에 갔었던 일과

친구가 자기 남편이 나에게 전해 주라고 했다면서 두툼한 하얀 편지 봉투 하나를 주었던것은 기억난다.

친구앞에서 그 편지를 열어보니 백만원이 들어 있었다.

다음에 시간나면 뱅기타고 또 서울에 오라고.....^^

그런데 그 뒤로 한 번도 서울에 갈 수 없었다.




2018년 5월 19일

사스카츄완으로 가는

캐나다 1번 하이웨이 길 위에서

느티나무










나에겐 오랜 친구가 하나 있다네


나에겐 오랜 친구가 하나 있다

그 친구는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밀던 해, 같은 회사에서 만났다.

그러니까 남들처럼 초등학교 동창도 아니고,

중학교를 같이 다닌것도 아니고, 여고 때의 단짝 친구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이름을 가만히 뇌이거나, 조용한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저절로 내 입가에 미소가 괴고 그리움이 절절이 가는 사람이다.


1972 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탐색전은 한 달도 되지 않았고

친구로서의 단합이 된 다음부터는 어디든지 붙어 다녔다.

내가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그녀가 있었고

친구가 가는 곳엔 항상 내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었다.

 

친구는 고향이 온양이라서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 집에서 같이 지내는 때가 많았다.

오랜 자취 생활로 음식을 곧잘 하던 친구가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해서 돌아다니고

그리고 친구의 집으로 같이 가서 지냈다.

 

티 셔츠나 잠바 같은 옷도

같은 모양이지만 색상만 다른 것을 사서 같이 입고 돌아다닐 때도 있었다.

 

친구가 여름 휴가를 다른 사람들처럼 산이나 바다로 가지 않고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혼자 농사를 짓고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고향을 찾아 갈 때도

나도 같이 휴가를 내어 그 친구를 따라 온양엘 몇 번 가 보았을 정도다.

나는 그 친구가 그렇게 좋았다.

 

내가 이성에 눈을 뜨게 되고

그리고 내가 자유분방함 속에서 아프고 성숙해져 갈 때에

그녀는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지켜 주었다.

그 때, 그 친구는 오로지 한 남자만 만나고 있었다.

 

친구가 데이트하러 나가면 난 쫓아갈 때가 많았다.

그 남자나 내 친구나 다 조용하고 숫기가 없었기에

나 혼자서 떠들고

나 혼자서 먹고 마시고

그러다가 중간에 슬그머니 사라져 준 적도 많았다.

그 둘이 결혼하게 된 데까지는

이러한 나의 공로가 많이 들어가있음을 부정하면 안될 것이다.

 

1984년 내가 미국에 이민와서도 여전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지냈는데

작년 11월 중순에 우연히 서울에 가게 되었다.

친구에게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알렸을 때

"잘됐다. 그럼 너 오면 김장해야지…." 하였다.

친구는 무공해 채소를 짓고 있다며

조그만 밭을 빌려서 농사짓는 법을 3년째 배우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마침 학교에 강의가 없다는 오빠내외랑 같이

용미리에 있는 친정 아버지 산소에 가서 인사를 드린 다음

친구 밭이 있다는 벽제 근처로 찾아 갔었다.

 

친구는 완전히 농부가 다 된 차림이었다.

몸빼바지에 갓 달린 모자에

자기 차의 트렁크에서 장화와 장갑을 꺼내어 나에게 주면서

"너 운 좋다. 네가 미국에서 이런 일 해보기나 하겠니?"

하면서 매우 자랑스럽게 말했다.

 

꽤 넓은 밭에 빽빽하게 심겨져 있는 배추들이었다.

아람차게 속이 들어차 있으면서도 

잎사귀에 군데 군데 벌레가 먹어 구멍이 뚫린 배추를 가리키면서

"이거.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래. 그런데 맛은 아주 고소하단다.

농사가 작년보다 올해 조금 괜찮게 되었어.

너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고추가루 조금 가져갈래?. 내가 농사 지었는데. 콩도 있구…"

 

나를 친구밭에 데려다주고 돌아가려는 오빠의 차에

친구가 재빠른 솜씨로 몇 포기를 뽑아 실어 주면서 말했다.

"언니. 맛있게 담아 드세요"

세월이 친구를 붙임성 있게 만들었나 보다.

 

바람이 몹시 부는 11월 어느 날,

따뜻한 햇빛이 언덕배기 밭의 새파란 배추에게 쏟아지던 날,

오후 내내 둘이서 배추를 다 뽑아 커다란 비닐 백에 여러 개 나누어

친구 차 트렁크와 뒤 좌석에까지 빽빽이 실어서 친구 집으로 갔다.

 

"얘. 너 오자마자 일 시켜서 미안하다. 피곤하지?

난말야 남편 출근한 다음에 집에서 이곳 밭까지 오다가

저만치서 밭이 보이기 시작하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단다.

내가 농사에 취미를 붙이고 나서는 사는 재미가 더 붙은것 같아."


그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친구 남편과 같이 모두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영희씨 보기가 너무 힘들어요. 자주 나오면 좋을텐데..."

산사춘을 같이 나누어 마시면서 친구 남편이 말했다.

'난 영희씨만 보면 그때 일이 잊혀지지 않고 생각나요."

"뭐가요"

"아. 있잖아요. 옛날에 장충동에 이 사람 살 때. 아마도 일요일 저녁이었더가?

영희씨가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왔다면서 고무신 신고 왔잖아요

나 그때 영희씨 다시 봤어요.

그 용기와 열정이 지금도 남아 있는지 모르겠네요."

 

아! …그 때~~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 나는 홍제동에 살고 있었고, 친구와 나는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 날 친구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져서

친구가 데이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의 집을 찾아갔었는데

저녁에 돌아오던 두 사람이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곤 기가 막혀 하던 모습.

그때가 꼭 30년 전이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를 이상하게 보지 말았음 한다.

우린 정말 순수한 우정,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한 친구일 뿐이다.

 

우린 모두 하하 웃었다.

세월이 훌쩍 사라진 것 같은데, 세월 저편의 추억들이 다 기억나네.

미국 이모가 너무 좋다며 자꾸만 내게 미소를 보내는 대학생인 친구 딸은

꼭 옛날의 친구 모습 그대로이다.


그날 저녁 친구집에서 친구랑 나란히 누워서 우린 밤이 지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말했다.

"난 앞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싶단다.

남편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이 회사에서

평사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월급 사장으로까지 오르긴 했지만

그는 실제로 70 살 먹은 노인처럼 가슴속이 너무 황폐해 있어.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이제는 남편을 쉬게 하고  싶단다.

다행히 그도 같은 생각이야. 그래서 주말농장에도 다니고 있단다.

내가 농사를 배우는것도 그런 이유에서야.

아들 하나, 딸 하나 다 컸으니 지들이 알아서 할거구

그저 우리 둘이서 채마밭 일구면서 살고 싶단다"


그 친구가 춘천 의암댐 근처에

주택이 딸린 1200평 정도의 밭을 구입했다는 소식을 어저께 받았다.

"아. 잘됐네. 그 집에 내 방도 있는 거지?

나도 노후엔 그곳에 가서 같이 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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