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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횡단 44일차]켄터키주 - 영원한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03/16/20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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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주의 트라피스트Trappist 시티에 있는 겟세마니 수도원을 떠날때는 정오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잠깐 둘러 볼 예정으로 찾아 왔었는데 거의 5시간 정도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으며

생각지도 않았던 주일미사까지 참례를 하고,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안고 겟세마니 수도원을 떠나게 되었다.


다음 목적지가 있는 루이빌Louisville까지는 이곳에서 약 75마일의 거리이다.

하이웨이를 만나기 위하여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데 사방이 온통 봄 기운으로 완연하였다.


조금 전에 겟세마니 수도원을 둘러보면서 느꼈었던 느낌들이 강렬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인지

아니면 앞으로 이 여행을 끝내고 내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보여서그런지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뭉실뭉실 가슴속에서 피어올라

주변의 푸른 초원과 싱그러운 나무숲에 눈길을 주면서 운전하는 몸이 날아갈듯 하였다.


내가 살아 있어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이렇게 운전을 할 수 있어서,

이렇게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을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였다.

무엇보다도 역경의 시련속에서 나를 강건하게 지켜주신 하느님의 돌보심이 감사하였다.






드디어 I-65를 만나고,

루이빌로 향해 운전을 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잠시 내려 늦은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초콜레이트 라바 케잌까지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고 밤새도록 뒤척거려서인지 

아침에는 입맛이 없어서 커피만 마셨으니 

점심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으니까.








그리고 오후 2시쯤에 루이빌에 있는

 '무하마드 알리 센터Muhammad Ali Center'에 도착하였다.


Muhammad Ali Center

144 N. 6th Street

Louisville, KY. 40202


무하마드 알리 센터는 비영리박물관이자 문화센터이며

루이빌 출신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에게 헌정된 도시인 루이빌에 있다.

건물은 총 6층(모두 96,750 평방피트)으로 되어 있으며

2005년 8천만 달러의 비용으로 지었다.


복싱을 뛰어 넘는 위대한 사람, 영원한 챔피언을 기리고 있는 문화 센터에는

 알리의 6가지 핵심 원칙Ali's six core principles인

 자신감 confidence, 신념 conviction, 헌신 dedication, 자선 giving, 

존중 respect 및 영성 spirituality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별히 그는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에 적극 저항하며 흑인해방운동을 위해 노력해왔다.

1998년에는 유엔개발계획(UNDP) 친선대사를 지내며 세계 각국에서 구호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에는 독일 UN 협회로부터 오토한 Otto Hahn 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무하마드 알리 센터'를 통해 전 세계의 기아. 빈곤 구제와 교육지원사업들을 전개했다.


무하마드 알리는 평생동안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수가 되고, 

자신이 믿었던 것을 옹호하고 헌신하기 위해

자신의 핵심 원칙을 따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하마드 알리 Muhammad Ali (1942. 1. 17 -2016. 6. 3)는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났다.

그의 원래 이름은 '캐시어스 클레이 Cassius Marcellus Clay Jr.'이었다.


지독하게 흑백 인종차별이 심했던 켄터키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참으로 우연하게 권투를 하게 되었다.

열 두살 때,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자전거를 밖에 세워두고 근처 극장에 들어갔다 나와보니 자전거가 없어졌다.

클레이는 경찰서에 찾아가 자전거를 훔친 사람을 잡으면 "한방 먹이겠다"고 큰 소리쳤는데

그 때 형사가 "한 방 먹이는 것을 배우려면 체육관에 가라"라고 농담을 던졌다고한다.


이 때 클레이는 차별대우 받는 흑인이 갈 길이란 어쩌면 권투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자전거 도둑을 혼내주려던 계획은 결국 큰 포부로 바뀌게 되었고

그의 인생길을 새롭게 열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라디오를 켰는데, 마침 권투 중계방송 중이었다.

라디오에서 "우리의 헤비급 세계 챔피언, 록키 마르시아노입니다" 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클레이의 온 몸에 전율이 일어 났다고한다.

이 경기는 바로 영화 <록키>의 소재가 된 경기 였으며, 훗날 클레이는 이렇게 회상했다고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뼈를 통과하는 싸늘한 기운을 온 몸으로 느꼈다. 

그 말처럼 나에게 큰 영향을 준 말은 없었다."







클레이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 미국 대표 권투선수로 출전하여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영광은 잠시였다.  

그는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햄버거를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주위에 있던 백인들의 싸늘한 눈초리와 함께 " 난 깜둥이한테는 음식을 안 팔아!" 라는 주인의 큰 소리를 들었다.

금메달리스트인 자신이 미국의 국가적인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클레이는 움찔하였다. 

또 한 번은 불량배 두목에게 금메달을 뺏길 뻔한 사건도 있었다.

그들을 물리치고나서 클레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오하이오 강으로 갔다.

클레이는 푸르고 넓고도 흑백을 차별하지 않는 강물에 미련없이 금메달을 던져 버렸다.

" 내가 로마에서 가졌던 '미국을 대표한다'는 환상은 그 때 사라졌다. 

나는 흑인으로서 멸시 받고 있는 켄터키의 고향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는 후에 지난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변 경관을 아름답게 꾸며 놓은 알리 센터의 맨 위쪽으로 올라가면,






클레이가 로마 올림픽에서 받았던 금메달을 던져 버린 오하이오 강 Ohio River이 보이며

저 다리를 건너면 인디애나주가 된다.







- 1964년 소니 리스튼과의 시합 -



클레이는 백인들의 변함없는 흑인 멸시와 조롱을 겪자 국가대표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같은 해 10월 프로선수로 전향하였다.


1964년 2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면서

소니 리스튼Sonny Liston으로부터 세계권투협회(WBA)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였으며

이것을 계기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타가 탄생되었다.

이후 이슬람교에 입교하면서 

1964년 3월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찬양받는 사람)으로 개명하였다.


 알리는 1967년 미군의 월남전 참전 징집에 대하여 

"나를 검둥이라고 부르지 않는 베트콩과 싸울 이유가 없다" 라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여 

징역 5년형을 선고 받고 권투선수 자격박탈과 함께 챔피언 벨트도 빼앗겼다. 

그러나 1969년부터 미국내에서 반전운동이 일어나자,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받고 3년만에 링에 복귀하여

조 프레이저 Joe Frazier의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였으나 선수생활 이래 처음으로 패배하였다.

그러나 다시 1974년 10월 프로복싱 최고의 펀치인 조지 포먼 George Foreman을 KO로 잡고

WBA 헤비급 챔피언 재탈환에 성공했다.







알리는 그 후로 세 번이나 WBA 헤비급 챔피언 자리에 올랐으나 

1981년 자메이카의 트레버 버빅 Trevor Berbick과의 판정패 경기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무하마드 알리는 프로복서 20년동안, 통산전적 61전 56승(37KO) 5패를 기록했으며

100년 복싱 역사상 최고의 복서로 칭송받고 있다.














알리는 1984년부터 심각한 권투 휴유증으로 뇌 신경계가 손상되는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했으며

1996년 제 26회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조지아주의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최종 성화 점화자로 선발되었다.


당시 TV로 올림픽 중계를 보던 나는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던 영원한 챔피언을 보면서 

얼마나 커다란 감동을 받았던가!

집념의 사나이 무하마드 알리의 파킨슨병은 권투를 오래 한 결과였지만

실제로 수많은 장애인들이 이 장면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한다.


애리조나주의 주도 피닠스에 있는 St. Joseph's 병원에는

무하마드 알리 파킨슨 센터(The Muhammad Ali Parkinson Center,MAPC)가 있는데

파킨슨병및 기타 운동 장애를 다루는 환자및 그 가족을 위한 종합자료 센터이다.

MAPC는 1997년 이래로 파킨슨병 연구의 최첨단에 올랐는데

이는 물론 무하마드 알리의 전적인 후원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32년동안 파킨스병으로 고생하던 알리는

 2016년 6월 3일, 74세의 나이로 애리조나주 스카츠데일에서 세상을 떠났다.
















6층으로 이루어진 무하마드 알리 문화센터를 층층마다 돌아다니면서

 알리의 삶을 볼 수 있었고,

알리의 권투 기념품과 역사적인 사진들을 보았다.







무하마드 알리 센터를 나오는데

한 사람이 알리 사진 앞에서 알리처럼 권투하는 모습을 취하면서 사진을 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다.

그의 삶 자체는 흑인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챔피언이고,

The Greatest이었다.








하마드 알리 센터에서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주소를 넣으니 약 270 마일을 달려야했다.

I-64W로 그냥 쭈욱 가기만 하면 되는데

 늦은 저녁에야 도착할 것 같다.


하이웨이를 계속 달리는데 하늘이 점점 잿빛으로 낮게 가라앉는가 싶더니
이내 얇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하다가 점점 더 거세진다.
차는 어느 덧 일리노이주로 들어섰고,
나는 굵어지는 빗방울을 잠시 피하느라  첫 번째로 만나는 레스트 에어리어로 들어섰다.







레스트 에어리어에서 화장실도 사용하고

잠시 빗줄기가 멈춘 사이에 휴계소 뒷 길을 다리 운동삼아 걸어 보았다.

일리노이주는 4월 중순인데도 아직도 한 겨울같은 느낌의 숲이다.







미시시피 강을 건너 

일리노이주 그래니티 시티 Granite City에 있는 KOA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2018. 4. 22(일) 

 대륙횡단 44일차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무하마드 알리 센터에서

느티나무



자료참조 : 위키피디아,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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