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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greencr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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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숨기고 싶지 않은 이야기
08/27/20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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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우채를 썰다가

살짝 강판끝에 손가락이 스치는 바람에 조금 베었다.

얼른 손가락을 페이퍼타올로 싸 쥐고는 소파로 걸어가서 잠시 쉬었다.

감촉이 부드러운 가죽소파에 등을 푹 들이밀고는 흔들의자로 만들어

몸을 흔들어가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 보았다.

 

유리창 넘어로는 맑은 햇살이 조금 비추어

고즈녁한 거실에서 제 멋대로 춤추고 있었고

김치 담그면서 들을려고 틀어놓은 CD에서는

복음성가가 잔잔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금씩 피가 멎어가는 손가락을 다른 한 손으로 꽉 쥐고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디밀어 놓고 노래를 듣고 있는데,

찹쌀풀을 쑤어 배와 양파와 마늘과 생강을 갈아 놓고 고추가루를 넣어 양념을 만들어 놓은 향이

 거실에 떠돌아다니면서 나를 아득한 기억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매주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

친구가 운영하는 24시간 문을 여는 한국식당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은행에 다니고 있었지만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파트타임으로 식당 부엌일을 도와주는 일을 하였다.

 금요일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서는

아이들과  그 때 같이 살고 있던 시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지어 먹은 다음에

두어시간 쉰 후에 그 식당으로 일을 하러 갔었다.


저녁 10시부터 그 다음날 아침 10시까지 부엌일을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그 때까지 나는 운전을 할 줄 몰라서

남편이 식당까지 데려다주고, 또 아침에는 데리러 왔다.

 

친구는 사실상 내가 필요하지 않았다.

주방장과 멕시칸 세 명이 있었던 부엌일을 내게 부탁하였던것은

그 당시의 내 상황을 알고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 때 내가 하는 일은 반찬 그릇에 반찬을 담는 일부터 시작해서

새벽녘에는 각종 야채를 다듬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 한 박스를 다듬고 배추를 썰다가 칼로 왼손 중지를 베었다.

깜박 졸았었던지 여지없이 칼날이 스친것이다.

순간 새빨간 피가 줄줄 흘러 나오고 베인 손가락을 앞치마로 싸 쥐고는 아픔에 잠시 주저 앉았다.

오랫동안 피가 멈추지 않고 베인 살이 덜렁거리는 바람에 주방장이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서

그 근처의 병원 응급실로 갔었다.

 

응급조치를 받기전 서류를 작성할 때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보험증을 내밀자 중년의 미국여자가 빤히 나를 보면서 물었다.

"새벽 3시에 부엌에서 배추를 다듬다가 베었단 말이니?"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다친것은 내 보험으로 카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일하다가 다쳤다고 하니까,

그렇게 되물어 오던 여자의 의심에 찬 눈초리.

한국인 간호원이 많이 있던 그 병원에서 혹시라도 아는 한국인 간호원을 만날까봐

조급한 마음으로 그렇다고 거짓 대답을 하던

나의 초라한 형상이 엊그제 일처럼 정확하게 보여진다.

 

그때까지만해도 자존심이 강하여서 내 험한 꼴을 사람들에게 보이기가 싫었었다.

1990 년도의 일이었는데도

그 눈초리는 여지껏 내 뇌리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구나...잊혀진줄 알았는데...

천장에서, 거실에서, 허공에서 되살아나 나를 쳐다보는것 같았다.

이제 나는 안다.

살아가기 위해서 자존심은 쓰잘데 없는 것임을...

다만 나 자신을 나 답게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 필요한것이라것을...

 

그 날 집에 돌아와

두 살난 아들을 껴안고 한 없이 울었었다.

6개월을 그렇게 일을 한 다음에 그만 두었다.

 


 

 

 

당신은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이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은

태양이 환히 비추는 곧은 길뿐이었나요?

바람이 불고 소나기가 쏟아지는 밤중에

홀로 길을 걸어 보신적은 없나요?

스러져가는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서

긴 밤을 새우며 기도를 하신적은 없나요?

절망중에서도

찬연히 빛나는 햇살속에서 살아 있음에 감사하여 본 적은 있나요?

 

 

 

2007. 12. 17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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