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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횡단 35일차] 빌트모어 하우스 돌아보기
06/27/20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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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트모어 이스테이트(Biltmore Estate), 즉 빌트모어 하우스는

노스 캐롤라이나주 애쉬빌(Asheville)의 역사적인 하우스 박물관이자 관광명소이다.


나는 이곳에 가기 전에는,

 마침 대륙횡단 여행길에 그 옆을 지나가니까 보는 것으로 계획을 하였고

 이 집이 미국에서 제일 큰 집이라고 하니까 한 번 둘러 봐야지 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집을 둘러보고 나서야

왜 이 집을 1963년에 U.S. National Historic Landmark(NHL)로 지정했는지를, 

 또 미국에서 이 집을 1966년 10월에,

 국립역사 유적지(NRHP, U.S.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 집은 단순히 그 시대의 한 부호의 집이었다는것을 넘어서서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였던 집주인 조지 밴더빌트로 인해서

그 당시의 많은 세계적 유물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또 보존해주어야만 할 가치가 있었고, 

나 역시 이 집에 대한 포스팅에 정성을 기울이기로 맘 먹었다.




- 측면에서 본 빌트모어 하우스 -



미국의 대부호였던 '철도왕'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를 할아버지로 둔 조지 워싱턴 밴더빌트는

1880년대에 그의 어머니와 애쉬빌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그곳의 경치와 기후가 너무 좋아서 그 지역에 자신의 여름 별장을 짓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형과 누이들은 뉴 포트, 로드 아일랜드, 하이드 파크, 뉴욕과 같은 장소에다

호화로운 여름 별장을 짓던때였다.

 그가 결혼도 하지 않은 26세의 나이로 이런 구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그는 집을 짓기 위하여 블루 릿지 마운틴 가까이에 있는 125,000에이커의 삼림지를 매입하면서

 50개가 넘는 농장, 5개의 공동묘지를 포함하여 700 여개의 토지를 구입하였는데

그 땅의 대부분이 매우 열악한 상태였기때문에 

많은 농부와 지주들이 그에게 땅을 판것에 매우 기뻐하였다고한다.


집을 설계한 사람은 당시 뉴욕의 유명한 뉴욕 건축가인 Richard Morris Hunt(1827-1895)였는데

그는 이미 이전에 다른 밴더빌트 가족들의 주택을 설계하였었기때문에 조지 밴더빌트가 신뢰하고 있었다.


조경을 담당하였던 사람은 미국 조경 건축의 아버지로 알려진 Frederick Law Olmsted(1822-1903).

옴스테드는 뉴욕 센트럴 파크(Central Park)와 미 국회 의사당 부지등을 설계하였으며

빌트모어가 그의 마지막 위대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고한다.


조지 밴더빌트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목제품공장과

 하루에 32,000개의 벽돌을 생산할 수 있는 벽돌가마를 현장에 건설하였으며

또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3 마일의 철도를 놓았다.

본관 건설에는 약 1,000 명의 노동자와 60 명의 채석공을 두었다.

또 그는 집안의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장식을 구매하기 위하여 해외로 여행을 갔는데

태피스트리, 카펫, 린넨및 장식용 물건을 포함한 새로 지어진 집을 위해 수 천 가구들을 구입하였다.


집을 설계한 헌트는 집을 설계하기전에 집주인 조지 밴더빌트와

1889년에 프랑스와 영국을 방문하여 여러곳을 둘러 본 후에

프랑스 르네상스 교회에서 영감을 얻어  샤토 추크(Chateauesque)스타일 맨션으로 설계를 하였기때문에

이 집에 들어서면 마치 유럽의 대성당에 들어서는 느낌이 든다.


 그는 7 년동안 이 집을 지어 189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픈하우스를 가졌는데,

그의 조상으로부터 받은 이름인 ' Bilt' 와 '더 많은 것'의 'more'를 결합하여 

Biltmore라고 집의 이름을 지었다.


총 대지 6,950 에이커(850만 8천평),

건평 178,926 스퀘어피트(5,028 평)

 샤토 추크(Chateauesque)스타일 맨션으로, 4 에이커의 바닥 공간과 250개의 객실이 있으며 

가족및 손님용 침실 35개, 욕실 43개, 벽난로 65개, 주방 3개, 

 온수 실내 수영장, 실내 볼링장, 당구장, 전기, 2대의 엘리베이터 등등이 있다. 

즉석 온수, 중앙 난방, 최신식 화장실, 냉장, 정교한 콜 시트템및 새로운 발명품인 전화가 자랑거리였다.


그 후 1898년 프랑스 파리에서 Edith Stuyvesant Dresser와 결혼하였으며

그들의 유일한 외동딸인 Cornelia Stuyvesant Vanderbilt는 

1900년에 이 집의 Louis XV방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라났으며, 

이 집에서 결혼을 하였고,

자기가 태어난 방에서 두 아들을 낳았다.








4층짜리 인디아나 석회암으로 지은 집을 동쪽으로 향하게 하여

375피트의 정면으로 뒤덮인 블루 릿지 마운틴 산악 지형에 맞추었다.

외관은 좌우로 열린 로지아가 있는 입구 탑에 연결된 두 개의 돌출된 날개와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겨울 정원을 보유하고 있는 창문있는 아케이드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현관에는 정문에서 4층에 있는 빌트모어에서 가장 잘 장식된 지붕 기둥으로 

이어지는 장식된 양들로 된 일련의 창문이 있다.


이 집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입장권을 예약할 때 입장 시간까지 배정받아야 한다.

나는 이 집에 가기 몇 달전에 온라인으로 아침 8시 30분에 방문할 것을 예약 하였고, 

방문하기로 한 날, 나보다 먼저 온 몇 사람들 뒤에 서서 기다리다가

입구에서 입장권을 체크하고 소지품 검사도 받았다.

집 안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후레시 사용은 안된다.









3층 높이 굴곡 난간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건축 조각인 칼 비터(Karl Bitter, 1867-1915)가 조각한 

오른쪽의 세인트 루이스(St. Louis)와

왼쪽의 조안 아크(Joan of Arc)동상이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겨울 정원을 보유하고 있는 창문있는 아케이드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 Entrance Hall -


입구에서 소지품 검색을 한 후 사진의 왼편에 있는 문으로 들어서면 
멋진 생화가 꽂혀 있는 제일 먼저 만나는 홀인데
사방에 정복을 입은 안내원들이 서 있다.



- Winter Garden -



대리석 입구 홀의 오른쪽에 있는 팔각형의 윈터 가든(Winter Garden)은 겨울에도 화초를 볼 수 있다.

천장의 유리가 윈터 가든 센터에 있는 대리석 분수 조각을 조명한다는데 

건축물로 조각된 나무와 다각적인 유리 천장이 있는 석조 건축물로 둘러 싸여 있다.







윈터 가든의 중앙 장식품은 

Karl Bitter가 만든 "Boy Stealing Geese(거위를 훔치는 소년)"으로 청동석으로 만들었다.

1924년 이 방에서 조지 밴더빌트의 외동딸이 결혼식을 했다.







이 안내판은 다음 방으로 이동하는 복도에 있었는데,

1912년 조지 밴더빌트 부부는 타이타닉호에 탈 것을 예약하였지만,

배가 출발하기 직전에 계획을 변경하여서 

타이타닉호가 침몰(1912. 4.14-1912. 4.15)하기전에 뉴욕에 도착했다고하는데,

운이 무척 좋았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 Banquet Hall -



웬만한 집의 7층 높이의 천장이 있는 이 집에서 가장 큰 방이다.

빌트모어에서 일하던 노동자및 그 가족을 위한 연례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기도 하였던 축하 행사의 방이다.

 연회장은 70피트 높이의 배럴 천장과 함께 

42피트 넓이와 72피트의 길이로

38명이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오크 테이블이 있다.









이 테이블에서 7-10 코스 식사를 할 때면 

우아한 린넨, 패밀리 실버와 더불어 1 인당 5 잔의 크리스탈 와인 잔이 놓였다고 한다.






이 Banquet Hall에는 3개의 벽난로가 있고,

파르테논 프리즈(Parthenon frieze)가 벽면에 조각되어 있다.







홀 옆 위로는 1916년 스키너 파이프 오르간(Skinner pipe organ)이 있는데 

이제껏 한 번도 울려 본적은 없다고한다.





- Breakfast Room -



소규모 브랙퍼스트 룸(아침식사 식당)이다.

조지 밴더빌트는 예술을 지극히 사랑해서 이 집에도 명화가 많다.


저 사진 오른쪽 벽면에는 르노아르(Renoir)의 그림이 두 점 있었는데

내 사진에는 테이블위의 꽃과 전구등에 가려서 액자 두 개만 조금 보인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찾아 보았다.






왼쪽 그림 : 'Young Algerian Girl(젊은 알제리아인아 소녀)'

오른쪽 그림 :  'Child with an Orange(오렌지를 든 아이)' 






천장의 색을 의자색과 맞추어 놓은것 같다.


가족들에게 아침과 점심 식사가 모두 이 방에서 제공되었기때문에

벽에는 조지 밴더빌트의 할아버지이자 가족 재산 창립자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초상화와

아버지 월리엄 밴더빌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Salon -


건축가 리차드 모리스 헌트는 

이 방을 미용실이나 프랑스 스타일의 정식 거실로 사용코자 하였는데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조지 밴더빌트의 평생에 한 번도 완성되지 않았다고하며,






1970년대 이래, 그의 자손들이 원래의 계획대로 거실로 장식했다고 한다.




-Music Room -






뮤직 룸은 빌트모어 하우스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유일한 방이었는데

현재 주인인 세실(Cecil) 가족이 1976년에 이 방을 완성하여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건축가 헌트가 디자인한 맨틀과 

신성 로마 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에 의해 위임된 Triumphal Arch가 있다.







벽난로 바로 옆에는 

1730년대와 1740년대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Hapsburg, 15세기에서부터 1918년까지 계속된 오스트리아의 왕가)의 

왕비 Amalia 와 Maria Theresa가 만든

12개의 마이센 도자기 사도(12 Meissen Porcelain Apostle figures)와 

12개의 촛대가 있다.





- Loggia -



2층 회랑에서는 넓은 언덕과 블루 릿지 마운틴 산맥의 환상적인 전망이 보인다.

밴더빌트와 그의 손님들은 햇빛이 흘러가는 이 쾌적한 야외공간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겼다고한다.







이 멋진 공간은 이 집의 조경가였던 프레드릭 로우 옴스테드가 디자인하였는데

그는 낡은 농지를 목가적인 장면과 숲으로 변형시켰다.

때로 저 아래에서 남자들은 사냥도하고 게임도 했다고하며,

여자들은 여기 회랑에서 내려다 보았다고한다.






나는 이 회랑에서 

눈 앞으로 펼쳐지는 블루 릿지 마운틴의 자락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며 쉬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보았던 것은 대리석 건물이

성인지, 집인지 모를 정도로 감탄이 되었다.

완전히 예술품이었다.





- Library -



이 집 주인이 가장 좋아했다는 도서실에는

미국과 영국의 소설에서부터 세계사, 종교, 철학, 예술, 건축등 다양한 분야에 이르는 

약 2만 2천권의 장서가 있다






3층 높이의 선반에 가득한 책들은

주인의 책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천정 벽화는 

이태리의 화가 지오바니 펠레그리니(Giovanni Pellegrini)가 1720년대에 그린

' The Chariot of Aurora'이다










도서관을 나오면 벽에 그려져 있는 초상화를 볼 수 있다.

 John Singer Sargent가 그린 조지 밴더빌트의 어머리 마리아 루이사 키삼 밴더빌트(왼쪽)

역시 John Singer Sargent 가 그린 집 주인 조지 밴더빌트(중앙)


그리고 결혼생활 12년이 지난 후의 부인 에딧 밴더빌트(오른쪽)은

Giovanni Boldini가 그렸다.





- Tapestry Gallery -



도서관을 나서면 바로 Tapestry Gallery이다.


한 번 찾아온 손님들은 대략 몇 달씩 머물렀었는데

90피트 길이의 이 방에서 손님들은 종종 다과와 음악을 즐겼다고한다.

갤러리 왼쪽 벽에는 

16세기에 만들어진 90피트 길이의 태피스트리(Tapestry, 무늬를 놓은 양탄자)가 걸려 있다.







 1530년경에 만들어진 플랑드로 태피스트리(Flemish Tapestries)에는

자선, 신앙, 신중함등 일곱가지 미덕의 승리(The Triumph of the seven virtues)를 나타낸다.








- 빌트모어 하우스에서 바라다 본 전경 -



Biltmore House는 1930년 3월, 애쉬빌 시의 요청에 따라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제 2차 세계 대전중에는 폐쇄되었고 

1942년에 62개의 그림과 17편의 조각품이 워싱턴 DC의 국립미술관으로 옮겨져 보호하였다.


 빌트모어 하우스는 그 당시에 환상적인 건축물이 틀림없었겠지만,

집주인 조지 밴더빌트는 

빌트모어에서 살고 일했던 수 백명의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하여서도 헌신하였다.


자급자족하던 미국 중남부에 있는 농촌 마을의 기능을 살려 주었으며

일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였는데

지금 현재에도 약 2,000여명의 직원이 빌트모어 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다고한다.




2018. 4. 13 (금) 

대륙횡단 35일차 
미국에서 제일 큰 집인 빌트모어 하우스에서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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