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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횡단 35일차]빌트모어와 밴더빌트 가문 이야기
06/25/20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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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제일 큰 저택인 빌트모어 하우스는

 노스 캐롤라이나주 안내 책자의 표지에 나오는 대표적인 명소다.


이 집 주인의 조상은 

1650년경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처음 들어 올 때는 계약직 하인으로 왔다.

그 당시 계약직 하인은 대부분 배삯이 없어 돈을 빌리는 대신 

미국에서 몇 년 동안 하인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고한다.


170년 후 그의 자손 중 한 사람이 미국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

 미국의 '철도왕'이라고 불려지는 코넬리우스 벤더빌트.




- 코넬리우스 벤더빌트 -



밴더빌트 가문의 역사를 쓴 코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 1794-1877)는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 부둣가에서 인부로 생계를 잇는 

전형적인 노동자 가정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궁핍한 유년 시절을 보낸 코넬리우스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술꾼에, 가족을 학대하던 아버지 밑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다.

유난히 총명했던 어린 소년의 눈에 부둣가를 오가는 보트는 

억지로 해야만 하는 노동의 대상이 아닌, 큰 돈을 벌 기회로 보였다. 


당시 뉴저지와 맨해튼을 오가는 보트들은 일정한 손님의 수가 확보되어야만 운항을 했다.

16살이 되던 해인 1810년, 

코넬리우스는 어머니에게 100달러를 빌려 

조그만 배를 사서 스탠튼 아일랜드에서 뉴욕까지 사람과 짐을 나르는 일을 시작하였다.


코넬리우스가 내건 전략은 페리의 정시운항이었다. 

손님이 확보되지 않으면 보트를 운항하지 않던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는 코넬리우스의 보트는 승객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코넬리우스의 정시운항 페리 서비스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술주정을 부리며 아들을 학대하기 일쑤였던 아버지마저 

아들의 사업 파트너로서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어린 소년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코넬리우스는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눈치가 빨라 금방 돈을 벌었다.

승승장구하는 페리 산업을 이끌던 코넬리우스는 

산업화를 가속하는 미국 사회에서 물류산업이 필수적으로 될 것을 간파했다.

그는 더 큰 배들을 사들여 경쟁업자들보다 운임을 싸게 받았다.

그의 아내는 여인숙을 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 지도에서 초록색이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사들인 땅 -



1803년 미국정부는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매입을 하였는데

이 사건은 미국의 역사상 가장 잘 한 일중의 하나가 되었다.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미국은 땅의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땅을 가지게 되었고

1800년대 중후반이 미국의 경제가 미친듯이 폭풍성장하던 떄였다.


미국 땅에 철도가 놓이기 시작했을 때 

그는 가지고 있던 배들을 모두 팔아 철도 사업에 뛰어 들었다.

동부에서 사람들이 서부로 가고,

 서부에서는 농산품과 공업용자재들을 실어 날랐다.

기찻길이 거미줄처럼 늘어날 때 그는 뉴욕지역의 철도 노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시기 시카고에서부터 뉴욕 노선이 황금 노선이었고

뉴욕으로 가려면 그가 소유한 알바니 다리를 지나야했다.


어느 날 그는 그 다리를 막고 뉴욕으로 가는 기차를 가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은 짐을 들고 수 백미터를 걸어가서 뉴욕행 기차로 갈아 타야 했다.

그렇게 해서 뉴욕 노선은 밴더빌트의 손에 들어가고, 

그는 거대한 뉴욕 센트럴 역을 지어 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무섭게 사업을 늘여 철도가 대륙을 횡단하기 시작할 때 철도를 소유해 미국 제일의 부자가 되었다.


미국 철강왕의 카네기, 석유왕의 록펠러, 금융왕의 제이 피 모건등이 이 때 생겨났고,

이들도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카네기나 록펠러가 대학이나 도서관, 병원, 공연장등에 엄청난 금액을 기부하고

그 이름과 영향력이 현재도 미국 땅 곳곳에 남아 있는 것과 달리

'철도왕'이었던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후손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뉴욕과 미국 동부 곳곳에 

화려한 저택들을 경쟁적으로 지었다.





- 윌리엄 밴더빌트 -



1877년 코넬리우스 벤더빌트가 죽으며 

13남매중에서 장남인 윌리엄 밴더빌트에게 95%의 재산(그 당시로 1억불)을 남겨 주었고

윌리엄 밴더빌트는 8년 후 죽을 때까지 재산을 더 늘여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의 두 배로 늘였으며,

그 재산이 미국 정부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윌리엄 밴더빌트(William Henry Vanderbilt, 1821-1885)에게는 

4남 4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빌트모어 하우스를 지은 사람은 윌리엄 밴더빌트의 막내아들 

조지 워싱턴 밴더빌트(George Washington Vanderbilt, 1862-1914)이다.




조지 워싱턴 밴더빌트 -



조지 위싱턴 밴더빌트는 할아버지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로부터 백 만불, 

21세 되었을 때 아버지 윌리엄 밴더빌트로부터 백 만불,

아버지의 사망으로 오 백만불을 상속받아 호화롭게 잘 살았다.


그는 부잣집 아들답게 이렇다할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세계를 돌아 다니며 여행을 하면서

예술품과 책을 사들이며 취미생활을 즐겼다.

한마디로 그는 버는 것보다는 멋있게 쓰는 생을 누렸다.








이 집은 미국 최고의 건축가 헌트에게 부탁해 지었고,

정원은 뉴욕 센트럴 팍을 디자인한 옴스테드가 만들었다.


그 당시 결혼도 하지 않았던 27세의 조지 밴더빌트는

1889년에 집짓기를 구상하여 

1889년부터 시작하여 1895년에 완공하여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픈하였다.


 빌트모어 하우스는 샤토 추크(Chateauesque)스타일 맨션으로 

미국 최대의 개인 소유 주택인데

4 에이커의 바닥 공간과 250개의 객실이 있으며

가족및 손님용 침실 35개, 욕실 43개, 벽난로 65개, 주방 3개, 전기 엘리베이터 등등이 있다.


하지만 이 집을 지은 조지 밴더빌트는 

1914년 51세때 수술 합병증으로 갑자기 죽게 되었다.

남편이 죽고 그의 아내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져 빌트모어 집에서 가까이 있는 

자신의 소유지 90,000에이커를 연방정부에 팔았다.

그 산이 지금은 피스가 내셔널 포레스트(Pisgah National Forest)로 국가가 보호하는 산림지구다.


 조지 워싱턴 밴더빌트 부부에게는 외동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외동딸은 1924년 결혼해 두 아들을 이 집에서 낳은 10년 후에 이혼을 했다.

이혼후 이 집에서 나간 그 녀는 다시는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한다.


얼마전에 들렸었던,

 조지아주의 컴벌랜드 섬에 있었던 프럼 오차드 맨션(Plum Orchard Mansion)이야기와 비슷하였다.

미국 철강업의 거물이었던 토마스 카네기가

 아들 조지 카네기에게 결혼 선물로 지어주었던 그 집을

조지 카네기가 1921년,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2 년후 재혼한 그의 부인 마가렛은

그 집을 떠나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지내다가

나중에는 아프리카 케냐로 이주해 살다가 죽었었다.


카네기나 벤더빌트나 자녀들이 결혼하여 오래오래 잘 살으라고 멋진 집을 지었지만,

그렇게 된 것들을 보고

인생에 돈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조지 워싱턴 밴더빌트의 외동딸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결혼하고, 그리고 이혼하고 나간 이 집에는 

그녀의 전 남편과 아들(윌리엄 세실)이 남았으며

현재는 그 아들의 손자(빌 세실 주니어)가족이 잘 운영하여 

빌트모어 하우스 주변에 최고의 호텔을 짓고,

또 호텔 주변으로 와이너리등으로 거대한 사업체를 일구었다.


이 빌트모어 하우스는 1830년경부터 일반인에게 오픈되기 시작하였는데,

일 년에 평균 140만 여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간다고 한다.


( 자료 안내 : 위키피디아, 다음, CEO &, 오마이뉴스)







이곳을 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미리 시간대로 예약을 하여야한다.

나는 몇 달 전에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하는 티켓을 온라인으로 신청하였다.

내가 신청한 것은 Self -Guided Visit of Biltmore House. 

가격은 $55.00 플러스 텍스($58.85)


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일찍 도착하여 아직 문이 열려 있지 않아 

튤립과 수선화 주위를 돌아보았다.












빌트모어 하우스로 들어가는 입구.

여기에서부터 약 3마일을 들어가야 집이 나온다.






게이트에서 입장권을 보여 준 다음

 3 마일을 달려 주차장에 차를 파킹한 다음에 

다시 이런 길을 약 5분 정도 걸어 가야한다.











 현재 빌트모어 하우스는 밴더빌트가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매년 140 만명 가량 이 집을 찾아와서 눈 호강을 하고 돌아간다.

나 역시 그 중의 하나.

다음에는 빌트모어 하우스 내부를 소개하려고한다.



2018. 4. 13 (금) 

대륙횡단 35일차 
미국에서 제일 큰 집인 빌트모어 하우스에서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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