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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횡단 15일차] 알라모여, 영원하라!
10/06/20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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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이었는데도 샌 안토니오에 살고 있는,

딸래미 집 앞에 있던 장미 나무엔 벌써 장미가 피어 있었다.

딸래미 집앞에 내 차는 주차시켜 놓고, 우리는 딸래미 차를 타고 알라모로 향하였다.

어차피 내 차는 조수석을 비롯해서 뒷 좌석, 뒤 트렁크까지 여행 짐으로 가득하니까

세 사람이 탈 수는 없었다.









아침 10시쯤 도착하였는데 벌써부터 알라모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더러는 가이드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다!

샌 안토니오의 여행은 알라모에서부터 시작한다고들 한다.






한참을 서서 기다려도 사람들이 계속 밀려들고 있기때문에

알라모의 정문을 사람들 없이 담기를 단념하였다.



- 알라모를 둘러 싸고 있는 돌담 -



먼저 알라모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보는것이 좋겠다.


알라모의 유래






17세기초, 스페인에서 건너 온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자들에 의하여

 샌 안토니오 강 유역을 따라 5개의 미션이 설립되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설립된것이 바로 지금 현재 '알라모'라고 불리는

 샌 안토니오 데 발레로(San Antonio de Valero)이다.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San Antonio de Valero은 1718년에 세워졌는데

 안타깝게도 1793년에 이 지역에 대한 전도를 포기했고 문을 닫았다.


그 후 1801년부터 이곳을 스페인 군대가 이따금씩 사용하였는데

그 당시 성당 주변으로 미루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서

'알라모'라는 이름을 얻었다고한다.

그래서 '알라모'는 스페니쉬이고

영어로는 미루나무(Cottonwood)이다.





-알라모 주변의 미루나무들 -



그 당시 스페인에서 온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사들에 의하여 지어진 미션은

샌 안토니오 강가 주변으로 모두 5개가 지어졌다고한다.

제일 먼저 지어진 미션은 위의 샌 안토니오 발레로(알라모)이며,





왼쪽은 미션 산 호세(San Jose -1720년), 그 옆은 미션 산 후안(San Juan -1731년)






왼편은 미션 콘셉시온(Concepcio -1731년), 오른쪽은 미션 에스파다(Espada -1731년)

이 네 곳은 참고로 구글에서 찾아보았다.



알라모 전투 (Battle of the Alamo)





알라모 전투(Feb. 23~March 6, 1836)는

텍사스 혁명에서 매우 중요하다.


18 세기초,

텍사스에는 각지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가 많이 살고 있었지만, 멕시코땅이었다.

이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미국인들과 이주민들로 만들어진, 일명 텍사스 결사대가

멕시코로부터 텍사스를 독립시키기위해 싸운 역사적인 전투를

알라모 전투라고 한다.





텍사스의 독립을 위하여 알라모에 모여 있던 약 189여명의 텍사스 결사대는,

제임스 보위(James Bowie)와

윌리엄 트래비스(William B. Travis)가 공동 지휘를 하였고

유명한 데이비 크로캣(Davy Crockett)도 이 결사대의 일원이었다.


텍사스 결사대가 일어서자,

멕시코는 산티 아나 장군을 앞세워 약 3,000여명의 군대를 이끌고 알라모로 쳐들어왔다.

1836년 2월 23일부터 3월 6일까지 약 13일 동안에 크고 작은 접전이 있었으나,

마지막 날인 3월 6일 이른 아침에,

알라모 안 마당 외벽의 무너진 틈을 통해 멕시코 군대가 물밀듯 들어와 텍사스 결사대를 덮쳤다.

멕시코의 산티 아나 장군은 단 한 명도 살려 두지 말라고 명령했고,

189 명의 텍사스 수비대는 전원 몰살당헀다.


그러나 알라모 요새의 함락직후인 1836년 4월 21일,

텍사스군 사령관인 샘 휴스턴이 이끄는 민병대가,

샌 하신토(San Jacinto)전투에서 "알라모를 기억하라!" 라는 구호를 외치며,

승리에 취해 해이해져 있던 멕시코 군대를 물리치고 산티 아나 장군을 사로잡으면서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알라모 전투는 영화로도 여러편 제작되었다.






텍사스인들은 승리후 독립을 선언하고

곧바로 헌법을 제정하고 샘 휴스턴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텍사스 공화국이(1836-1845)이 되었다.

그러나 텍사스 주민들은 독립국가보다는 미국 연방에 속하기를 더 원했고,

1845년 텍사스는 28번째 주로 미국 연방이 되었다.







그리하여 텍사스주의 역사를 보면,

알라모 전투및 텍사스 공화국 100주년(1936년),

텍사스 합병 100주년(1945년)을 볼 수 있다.





알라모는 텍사스인들에게 '영웅적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알라모와 그 부근의 건물은 복원되어 역사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UNESCO World Heritage Site (2015)

U.S.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1966)

U.S. National Historic Landmark (1960)







알라모 안에 들어오니

눈에 띄게 잘 다듬어져 있다는것이다.






알라모 담장 너머로 보이는 Crockett Hotel.

아래의 사진들은 알라모를 돌아보면서 담은 것들이다.





1860~1870년대의 알라모 전경.

당시는 미군의 보급부대가 사용하던 시절이다.








텍사스 결사대 복장을 하고 있는 봉사자들이

당시에 사용하였던 권총들과 대포들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고 있었다.









곳곳에 쉴 수 있는 장소가 있어

둘러보던 사람들이 다리가 아프면 쉬면서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특히 우물가에 있던 거대한 고목- Oak Tree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20 세기초, 샌 안토니오에 살고 있던 많은 주민들은

충분히 성장한 나무를 옮겨다 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선원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영국인 Walter Whall(위 사진)은

샌 안토니오에서 첫 번째로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을 하면서

그들의 믿음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1912년경, 40여년 동안 자라고 있던 옥나무를 정성들여 뽑아내어

네 마리의 노새가 이끄는 왜건으로 운반해서 지금의 이 자리에 심었다고한다.

그 나무가 지금까지 아주 잘 자라왔는데

지금 나무의 둘레는 12피트이고, 나무의 중요한 가지의 길이는

50피트 이상 자라났다고한다.






1718년부터 미션 알라모에서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사용하였던 제구들.








-전시관에 진열되어 있는 당시의 병기들 -












더러 깨지고 금이 간 곳도 있지만,

300 여년이 된 스페니쉬풍의 고성당 건축물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제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알라모에는

알라모의 전투가 있었던 장소를 실제로 보기 위하여 찾아오는 관광객과

선조들이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과거를 기억하기 위하여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텍사스인들로 넘치고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알라모여,

앞으로도 영원하라!




2018. 3. 24 (토)

대륙횡단 15일차

텍사스주 샌 안토니오의 알라모에서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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