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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기도하는 집이냐, 강도의 굴혈이냐? ①
03/26/2020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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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기도하는 집이냐, 강도의 굴혈이냐?

(마태복음 21:12-17)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하시니라. (21:12-13)

 

요한복음은 이 성전 청결 사건을 설명하면서 이 때에 제자들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69:9)고 예언한 말씀이 응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셨다. 그런데 이 성전에서 장사치들이 행하는 작태를 볼 때에 도저히 묵과하실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쫓아내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라고 무섭게 책망하셨다.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그런데 기도하는 집이 되지 못하면 강도의 소굴이 되고 만다는 엄숙한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라고 간판을 붙이고 화려하고 웅장하게 잘 지어놓은 예배당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혹시 그곳이 강도의 소굴이나 아닌가를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 중간은 없다. 둘 중의 하나다. 방심하지 말고 잘 살펴보아야 하겠다. 기도하는 집이 되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마는 혹시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지나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전이 어디일까? 교회라고 간판을 붙여놓은 곳인가? 물론 교회들이 하나님의 전이다. 그러나 작게는 우리 모두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라는 사실을(고전 3:16; 6:19) 결코 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도 기도하는 집이든지, 아니면 강도의 소굴이다. 당신은 이 말에 동의하실 수 있는가?

 

1. 당신의 성전은 혹시 강도의 소굴이 아닌가?

 

1) 예수님이 왜 강도의 소굴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셨을까? 너무 지나치신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인간들이 보기에는 오늘의 교회가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착각 속에서 살고 있지 않는가? 구원도 받지 못할 사람이 아주 넉넉히 구원받을 줄로 알기도 하고, 지옥 특등석에 들어갈 사람이 천국의 특등석에 앉을 줄로 착각하고, 주님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주님을 가장 잘 안다고 자랑을 한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자기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본의 아니게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면서도 천국으로 가고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인간들이 볼 때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세상이 온통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바르게 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에는 그 사람은 강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남의 재물을 몇 푼 강탈한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영혼을 불 구덩이에 던져 넣는 것이고, 또한 지옥에 빠뜨리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강도란 누구일까?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누가 강도인가를 두 가지로 설명하셨다. 첫째는 1절에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 둘째는 8절에 나보다 먼저 온 자라고 하신 말씀에 나타난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다. 정당한 방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떳떳하게 하지 아니하고 남몰래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5:11-12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가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라고 하였다. 후진국일수록 어두운 일들이 많다. 절대 권력이 판치는 곳일수록 어두운 일들이 많다. 선진국이 되려면 밝아져야 한다. 투명해야 한다. 누구 앞에서나 떳떳해야 한다. 로마교가 지배하던 구라파의 중세기를 왜 암흑시대라고 하는가? 교황권이 절대 권력이 되니까 빛을 가장한 어둠이 판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강도가 된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러했다. 오늘의 우리들도 바로 깨닫고, 우리의 교회들도 더 밝아져야 한다. 투명해야 한다. 또한 주님만이 절대 권력자가 되셔야 한다. 인간이 주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곳에는 반드시 타락이 오고, 강도가 판치는 세상이 된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는데, 넓은 문으로도 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다. 또는 담을 넘어서도 얼마든지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얼마든지 주님을 따라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가르치셨는데,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다. 그러니까 자기들끼리의 영광은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예수님을 바르게 믿을 수 없는 것이다”(5:44).


예수님은 당신이 양의 문이라고 선포하시면서 양들이 이 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는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정문으로 드나들 때에만 참된 양식을 먹게 된다. 만일 정문으로 다니지 않으면 참된 양식을 먹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먹게 될 것이다. 양식을 잘못 먹으면 죽을 수가 있다. 양식을 잘못 먹으면 성격도 달라진다. 어린아이들이 모유를 먹지 않고 우유를 먹게 되고 육식도 많이 하게 되니까 체격도 커지고 튼튼하기는 한데 이상하게도 성격이 짐승을 닮아가고 있다고 한다. 부모도 몰라보는 사람이 되고, 생명을 존중할 줄 모르게 되고, 난폭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있다.


옛날 모세 때의 유대인이나, 예수님 때의 유대인들도 모두 그러하였다.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났어도 전혀 아브라함을 닮지 않은 자들이 되고 말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자라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머릿속에 넣어두는 말씀은 열심히 먹었으나, 마음속에 담아두는 신령한 말씀은 전혀 먹지 못했다. 그러니까 결국 교만해지고 강팍해지며 나아가 마귀의 자식들이 되고 만 것이다. “내 귀에 듣기 좋고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말만 먹지 말라. 나를 책망해주고, 찔림을 주고, 일깨워주어 마음에 양식이 되고, 마음에 새기게 되는 말씀을 먹어야 한다”(딤후 4:3 참조). “주님이 우리에게 이르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다”(6:63). 참된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우리 영혼에 만족함이 있고, 더 새로운 양식을 사모하게 되며, 참 생명이 우리 속에서 약동한다.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가 다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가 누구일까? 구약의 선지자들인가? 물론 아니다. 그러면 누구일까? 먼저 온 자란 형이요, 선배요, 선생이다. 예수님의 형 노릇하려는 자, 예수님의 선배 노릇을 하려는 자, 예수님의 선생 노릇을 하려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자기들이 예수님보다 더 잘났다고 하고, 더 옳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높이지 않는다. 높이는 척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더 높인다. 예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척하면서 실은 무시한다. 자기의 생각을 내세워 주님의 말씀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변질시킨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오늘의 우리 교회들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나 않는가?


예수님도 탄식하셨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15:8-9; 29:13). 그런데 그때에만 그랬을까?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이 예언의 말씀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성령으로 깨닫고 그 말씀을 행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했지만, 오늘날에도 이런 강도들은 교회 안에도 가득하여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집이 강도의 소굴이 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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