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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스라엘의 충만함이냐, 넘어짐이냐?
03/22/202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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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스라엘의 충만함이냐, 넘어짐이냐?

(로마서 11:11-12)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오?

 

본문의 11절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말한다. 그리고 12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충만함을 말한다. 이 두 말은 상반된 의미를 가진다. 물론 국어사전적인 의미로만 생각한다면 넘어짐의 반대는 일어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빌립보서 4:1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라고 말하는데, 이 때의 서라라는 말은 어떤 환난과 핍박과 위험이 와도 두려워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라는 뜻이다. 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설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스라엘의 넘어짐의 반댓말은 이스라엘이 굳게 서는 것인데, 그 말을 다른 말로 충만함이라고 표현하였다. 이스라엘은 굳게 서지 못하고 넘어졌다. 그러나 완전히 넘어져서 버림받은 것은 아니라고 바울은 말한다. 동시에 그들이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서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상상하면서 아쉬워한다. 또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너희가 넘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새 일을 이루신다. 그러나 넘어지지 말고 굳게 서면 얼마나 좋겠느냐?”라고 묻는다. “너희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복이 기다리고 있는지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 두 말은 상반되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이 말씀들의 의미를 살펴봄으로 우리들의 신앙을 다시 새롭게 세워야 하겠다.

 

1.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가지고온 결과는 무엇인가?

 

1절에서 제기한 문제를 11절에서 다시 제기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영원히 소망이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할 때에 그 복음을 방향을 돌려서 이방인들에게 보내셨다. 유대인들이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이방인들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에도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10:11)고 하셨다. 이 말은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안에는 제자들이 머물 수 있는 합당한 자가 반드시 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실제로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에 주님은 밤에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18:9-10)라고 하셨다. 그뿐이 아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구하기를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언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였더니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라고 함으로 그의 간청을 거절하였다. 그 부자의 형제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모세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그가 기록한 성경이 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고, 선지자들이란 어느 시대에나, 어느 곳에나 하나님이 보내시고 쓰시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들을 숨겨두셨다. 선지자가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다는 핑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야 한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찾아보아야 한다. 왜 선지자가 없다고 어리석게 탄식만 하는가?

 

1) 이스라엘은 넘어졌어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넘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된다.

요한 웨슬리의 묘비에 세 마디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첫째는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말씀이고, 둘째는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 셋째는 하나님은 일꾼을 장사하시나, 그의 사역은 멈추지 않으신다.”이다. 훌륭한 목사님이 한 분 돌아가셨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역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또다시 새로운 일꾼을 일으키셔서 더욱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 세례 요한이 죽으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니까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과 같은 일들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넘어지면 하나님은 이방인을 들어서 쓰신다. 에서가 복을 못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주셨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복을 빼앗기지도 않지만, 남들이 받아야 할 복도 빼앗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남의 재물을 빼앗는 것은 죄가 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보화를 빼앗는 것은 죄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큰 복이 된다.


순교자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혹한 속에서 10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수장시켜 죽이는데, 한 명이 두려워서 변절하고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그때에 그 형을 집행하던 군인이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에 천사들이 면류관을 가지고 와서 순교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씌워주는데, 그만 한 천사는 임자를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병사는 곧 자기가 예수님을 믿겠노라고 하면서 변절자를 대신하여 물속에 들어사 얼어죽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예레미야 23:2030:24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라는 말씀이 반복하여 나온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마귀가 잠깐 이기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다른 데로 옮겨서라도 그 뜻을 이루신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니라. 그러고나서 나를 따르라.”(19:21)라고 하셨다. 하늘의 보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사모하고 결단을 통하여 받게 된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둘째 사람이요, 또한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를 예비하셨다. 더 좋게 되었다. 그러나 아담 본인에게는 엄청난 손해가 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죄를 지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손해를 보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더 좋은 일을 이루신다. 마귀는 우리를 쓰러뜨리면 자기가 승리할 줄로 알았지만 그는 비참한 패배자가 되고 만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해서 마귀가 승리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자기만 망할 어리석은 짓을 하면 안 된다. 진리에 서야 한다. 은혜에 들어가야 한다.

 

2)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다.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남으로 성도들이 두루 흩어져 곳곳마다 복음을 전함으로 오히려 더욱 큰 부흥이 일어났다(8:1).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브라함 때에 큰 흉년이 들어서 아브라함은 애급으로, 불레셋으로 이사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 나라의 왕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


유대 나라가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였고,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니엘이나 에스더 등을 통하여 이방에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


엘리야가 탄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던 일을 생각해 보자.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하였더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었나?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11:3-4)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이 넘어졌다고 해서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포기하실까? 인간의 생각에는 낙심이 되고,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새 일을 이루신다.


이스라엘이 넘어져도 이방인 구원의 새 길이 열리는데, 하물며 이스라엘이 충만하게 된다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이 이루어질 것인가?

 

3) 이스라엘이 시기하게 됨으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된다.

이방인 구원은 하나님이 예언하시고 예정하신 구원의 섭리다. 마태복음 4:15-16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2:31-32에는 선지자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말하기를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하였다.


복음이 전파된 경로를 추적해 보자. 이 생명의 복음은 유대에서 출발하여 먼저 구라파로, 다음엔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와서 활짝 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다시 태평양을 건너 극동 아시아로, 그래서 지금 제2의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한국에서 크게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중동을 지나 다시 유대로 돌아가게 될 일만 남았다. 이렇게 이방을 두루 돌아오는 데 벌써 2,000년이 걸렸다. 그 돌아오기까지 유대인들은 고통을 당하게 되며, 그들 중에는 그런 고통을 통하여 깨달음을 받게 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유대인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로마서 11:14에서 바울은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라고 말하였다. 곧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시기 나게 된 유대인들만 깨닫게 되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찾게 되고, 그리하여 영의 사람이 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시기(猜忌)난다는 말은 물론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쁜 시기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기도 있다. 유대인들 중에서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복을 받는 것을 보고 시기심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분명 좋은 시기심이다. 이런 깨달음은 아무에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의롭게 살겠다고 노력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그 뜻 알기를 간구하는 사람,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귀중한 깨달음이다.


우리는 나쁜 시기심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나쁜 시기심은 작게는 자기를 멸망시키고, 크게는 나라와 민족을 멸망시킨다. 가인이나 에서의 시기심은 작은 것이었다. 그들은 동생을 죽였거나 죽이려고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의 시기심은 매우 악하고 그 영향력이 강한 것이었다. 그 시기심이 메시야를 죽였다. 오늘날에도 그런 시기심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다. 의인을 시기한다. 은혜가 많은 사람을 시기한다. 능력의 사람을 헐뜯고 죽이려고 이를 갈며 대든다. 진리의 사람을 미워하고 대적한다. 그러다가 자기들은 물론, 나라와 민족 전체를 멸망케 한다.

 

2. 이스라엘의 충만함이란 무슨 뜻인가?

이스라엘의 충만함이라는 말이 12절에 나오는가 하면, 조금 더 나아가다가 25절에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라는 말이 나온다. 12절에서는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오?”라고 하였고, 25절에서는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때에 사용되었다. 여기에 사용된 충만함이란 단어의 헬라어로 플레로마인데, 우리말로는 충만, 완전, 성취등 세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 단어다. 논지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충만해진다면 얼마나 큰 구원이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이런 소망을 가지고 기도에 힘써야 한다.

 

1) ‘플레로마가 충만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경우를 보자.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기쁨이 충만하다”(3:29; 15:11; 17:13; 16:24; 2:28; 2:4; 요일 1:4; 요이 4)는 것이고, 다음에는 성령이 충만하다”(4:1; 6:3,5,8; 7:55; 13:52; 5:18),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1:14), “믿음이 충만하다”(6:5; 11:24), “지혜가 충만하다”(6:5) 등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충만이란 무엇일까?

인구의 충만 - 교회의 부흥이요, 참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아지는 일을 말한다.

사상의 충만 - 거짓과 어둠의 교리가 쫓겨나고 복음 진리가 충만해져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충만함(31:34; 8:11)을 말한다고도 하겠다.

 

2) ‘플레로마가 완전하다는 뜻으로 번역된 예를 보자. “율법을 완전케 한다”(5:17),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13:32),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6:1-2)라고 할 때에 사용하였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완전함이란 무엇일까? 첫째로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넘어짐과 실패를 버리고 도덕적으로도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며, 셋째는 신앙적이고 영적인 면에서 완전해지는 것이다.

 

3) ‘플레로마가 성취한다는 뜻으로는 예언을 이룬다, 성경을 이룬다는 뜻으로 마태복음에서만도 11번이나(1:22; 2:15,23; 3:15; 4:14; 8:17; 13:35; 21:4; 26:54,56; 27:9) 사용되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무엇이 성취되어야 할까? 첫째는 이스라엘과 맺은 바 복 받을 약속이 성취되어야 하고”(28:14; 12:3; 18:18; 22:18; 26:4; 3:14), 둘째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되어야 하며”(28:15; 1:23; 28:20), 셋째는 천국이 성취되어야 한다”(10:7; 21:6).

 

3. 이스라엘의 충만함이 가지고온 결과는 무엇인가?

충만함,’ 굳게 섬이 가지고 온 결과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는 항상 인생을 승리롭게 살아간 위대한 성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지혜다. 디모데후서 4:7-8에 인생을 가장 승리롭게 살았던 위대한 한 전도자의 힘찬 찬송이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 이스라엘의 충만함이 가지고 온 결과는 먼저 아브라함에게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때에 하신 약속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12:2-3)라는 말씀이었다. 이 놀랍고 복된 일이 이루어진다.

 

2) 둘째는 신명기 4:5-6에서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에 나타난다. “너희가 하나님이 명하신 규례와 법도를 그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 되면 세계 열국이 모여들게 되고 존경하게 되고 영화롭게 된다.

 

3) 셋째는 신명기 28:1-14에 나타난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라고 약속하신다. 들어가나 나오나 복을 받고, 하나님의 성민이 되며,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며,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라.”고 하였다.

 

4.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충만함을 이루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충만함이라는 말은 영적인 의미로는 그리스도인들의 충만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넘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은 더 좋은 일을 이루신다. 하물며 우리가 충만하게 된다면 얼마나 복된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 충만함이란 헬라어 플레로마의 뜻 그대로 충만, 완전, 성취등 세 가지를 우리가 이루어야 하겠다. 그러면 무엇이 충만해야 하며, 어떻게 충만할 수 있을까?

 

1) 사랑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늘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 사랑을 마음에 거듭거듭 새겨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3:16). 여기의 이처럼이라는 말이 얼마나 되는 분량인지 측정할 수 있는가?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셨다. 하물며 그 아들과 함께 그 무엇인들 우리에게 아까워하시겠는가”(8:32)? 우리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야”(3:18-19) 한다. 이 은혜가 충만해져야 하겠다.


나아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만, 문제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이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22:37).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셨다(21:15-17).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사랑이 충만하면 모든 것이 성취되고 완전해진다.

 

2)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충만은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놓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에 낙심과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던 제자들이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능력의 사람들로 바뀔 수 있었을까? 이는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된 일이다”(4:6). 우리도 조금 어려운 일이 있다고 쉽게 낙심하지 말고 더욱 힘써 기도하면서 성령의 충만을 받자. 그때에 기적이 일어난다.


성령이 충만하면 권능의 사람이 된다.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 비로소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다. 성전 문앞의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다. 귀신들이 쫓겨났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굴복하였다. 예수님을 대적하여 박해하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뒤집어졌다. 그가 드디어 위대한 사도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무엇이 이렇게 하였을까? 과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오직 성령께서 하신 일이었다.


성령이 충만하면 각종 은사가 따라오고,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다.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 된다. 생명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가 말로는 도저히 다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우신 분이다. 그분이 오늘도 여러분들 속에서 새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마음을 열어 성령을 모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자.

 

3) 진리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진리가 충만하면 거짓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마귀는 온갖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고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진리의 사람은 결코 넘어뜨리지 못한다.


진리가 충만하면 참 자유가 있다(8:32).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라고 찬송하지 않는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된다(11:38).


진리가 충만하면 하나님의 깊은 세계에 나아가게 된다. 그때에는 우리도 바울처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라고 감탄하며 찬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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