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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땅히 두려워할 일 ②
02/08/202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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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땅히 두려워할 일

(히브리서 12:14-17)

1.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해야 한다.

 

1) 교회에서는 은혜가 있다, 없다는 말을 많이 쓴다. “설교에 은혜가 있다, 찬송에 은혜가 있다, 기도에 은혜가 있다, 목사가 은혜가 있다등이다. 미국 사람들이 목사에게 하는 욕 중에 가장 나쁜 욕은 성령 없는 목사가 되어라.”라는 것이라고 한다. 은혜 없는 목사가 되라는 것이다. 목사가 은혜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은혜가 있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은혜가 있으면 마음이 행복하다. 부부가 화목하다. 가정이 천국이 된다. 교회생활이 즐겁다. 가난해도 속상하지 않다. 물론 부자가 부럽지 않다. 늘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기쁘게 산다. 천국이 환하게 보인다.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분하거나 노엽지 않다. 하나님이 더 좋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더욱 감사하게 된다.

 

2) 개신교의 기본적 원칙 가운데 세 가지 ’(only)이 있다. 성경으로만, 믿음으로만, 은혜로만이다. 그러니까

성경만이 진리다. 우리는 신구약성경 66권만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그리고 이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바른 척도임을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이외의 어느 책도 성경과 같은 권위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어떤 이론이든지 성경에 비추어보아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요, 당연히 우리가 배척하는 것이다.


구원은 믿음으로만 된다. 이것은 인간의 어떤 선행이나 예배 행위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거절하는 교리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교리를 믿는다고 해서 모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거듭거듭 책망하셨고(6:30; 8:26; 14:31; 16:8; 17:17), 또한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8:25)라고도 책망하셨다.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라고 명한다. 야고보서는 네 믿음을 내게 보여달라”(2:18)고 요구한다.


셋째로는 은혜만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말씀도 믿음만의 경우와 같이,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믿는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은혜가 있어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이제까지 산 것도 주님의 은혜요, 건강한 것도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러나 그것으로 영생의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은혜에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는 일반적인 은혜가 있고, 주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고 회개하여 용서 받음으로 그 은혜 안에 거하게 되는 특별한 은혜가 있다. 이 특별한 은혜를 받아야 비로소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예배 시간마다 목사님들이 두 손을 높이 들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하옵나이다!”라면서 복을 빌어주는데 아직도 은혜가 없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 율법이 모세로 말미암아 왔듯이,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1:17). 그러므로 바울 서신은 모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원하노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바울이 축복하는 첫째는 항상 은혜였다. 구약의 인사는 솰롬 솰롬평강, 평강이었지만, 신약의 인사는 은혜가 먼저이고 그 다음에 평강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은혜를 받지 않고 산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주신 값진 은혜를 필요 없다고 하면서 받지 않는다면 과연 구원이 이루어질까?

 

4) 은혜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구원의 감격도 확신도 없고, 그러니까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다. 따라서 신앙생활이 무거운 짐이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마음으로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하게 된다. 그것이 자기를 외식하는 자로 만든다.


보라.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한 마디로 외식하는 자라고 하셨다. 오늘날엔 어떤가? 예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령님을 모독하고 배척하지 않는가! 교회의 역사를 보면 가장 보수적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교회들일수록 오히려 성령의 역사를 불필요하게 알고 배척해 왔다. 넬슨 달비(John Nelson Darby, 1800-1882)라는 영국 사람은 성령의 은사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성령의 은사는 신약성경 27권이 정경으로 확정되기까지에만 필요하였고, 그 후에는 성령의 은사가 필요 없게 되었다. 따라서 요즘에는 방언이나 신유 같은 것들이 필요 없다.”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그의 종말론과 함께 미국에도 가득하게 퍼졌다. 더 놀라운 것은 성령의 역사를 가장 강조하는 미국과 한국의 오순절교회나 성결교회에서도 이 세대주의의 성령론의 이단성은 간과하고, 성령의 감동이 없이 나온 거짓된 종말론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자기네 교단의 교리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아이러니다.

 

5) 무엇이 참 은혜인가? 성령의 은사가 임하면 참과 거짓을 분별하게 된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은혜가 있었던 시므온과 안나 같은 사람들은 아기 예수님을 보고도 그가 누구신지를 금방 알아보았던 것처럼, 은혜의 사람은 예수님을 바로 볼 줄 알고 바로 섬길 줄 알게 된다. 교회에는 은혜 있는 성도들이 많아야 한다. 우리의 자녀를 바르게 길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일류 대학을 나오고 돈을 많이 벌고, 빨리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은혜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천국에 가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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