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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초상집과 잔칫집 ③
01/24/202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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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초상집과 잔칫집

(전도서 7:1-4)

 

2. 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은가?

 

악인의 잔치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잔치요(30:9), 의인의 잔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잔치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잔치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지혜다. 왜 그런가?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되기 때문이요,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되기 때문이라고 본문은 설명한다. 이런 말씀들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1) 출생은 과거의 일이고, 사망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물론 우리에게는 과거도 중요하고 미래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나님은 나의 과거를 일일이 캐물으시는 분이 아니라, 나의 밝은 내일을 위하여 복된 일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어제와 오늘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은 있어도, 내일에 해당되는 말은 없다. 그래서 내일(來日)이라는 한자말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미래가 없는 백성이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에 집착하거나 과거에 붙잡혀 사는 인생은 불쌍한 사람이다. 누가 그렇게 살까? 일반적으로 현재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때가 좋았고 지금은 나쁘다고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일제 때가 더 살기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인생이 고달파지면 그렇게 과거를 동경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걸핏하면 애급에서 살던 때가 더 좋았다고 하면서 옛날을 동경하였다. 하나님은 이것을 제일 싫어하셨다. 애급생활은 종살이하던 생활이었는데, 왜 그것을 동경하는가?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옛날 불신자 시절이 더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술 담배를 마음대로 했고, 주일날 자기 마음대로 놀러 다녔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제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힘이 든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불신자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왜 교회에는 다니면서 그런 망발을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법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항상 미래지향적이다.

a) 첫째로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이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지도 않으신다고 하였다. 히브리서 8:12에서는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하셨고, 10:17에서는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다.


b)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미래지향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시므로 제자들이 모두 성령이 충만하여졌을 때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즉흥 설교를 하였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라는 요엘서의 예언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였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자. 성령이 임하시면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 모두가 미래지향적이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다. 성령이 있는 사람은 미래지향적이 되고, 성령이 없는 사람은 과거집착형의 사람이 된다.


c)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국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천국이라는 개념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저 세계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나라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족장이라고 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살면서 저 하늘에 있는 본향에 가기를 사모하였다(11:10,16).

 

2) 출생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가는 것이고, 사망은 결정된 운명의 장소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에 출생하여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은 여러 가지의 선택이 있고, 또한 그의 운명은 열 번, 백 번도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잠깐의 일로 쉽게 좋아하고 쉽게 슬퍼하면 안 된다. 아직은 잘 모른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든가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부자와 나사로를 보라. 우리가 보기에는 부자가 부럽고, 거지 나사로는 혐오스럽지만, 그들의 최후의 운명은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하나님의 비밀의 세계를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겸손히 자기를 낮추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는 지혜롭고 신중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3) 출생은 인생의 의미를 살펴보지 못하게 되지만, 사망은 인생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였다. 새로 출생한 아기는 장차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흉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직 그 아기로부터는 인생의 어떤 깊은 교훈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그가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면에서 깊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고, 그가 악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깊은 각성을 준다. 과연 어느 것이 더 나을까? 지혜로운 사람은 늘 새로운 교훈을 얻고 자기의 삶을 새롭게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를 살필 줄 모르고 헛된 욕심만 추구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자리로 나아간다.

 

4) 출생은 사람을 대면하는 것이고, 사망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 이 세상에 출생한 사람은 일생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험한 생존경쟁의 싸움터에서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또한 자기 한 목숨 먹고사는 일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실로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아감 같다”(5:7).

그러나 죽은 사람은 이제까지의 모든 사람들과 상대하여 살던 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심판대(14:12; 고후 5:10) 앞에 서야 한다


누가 감히 그 심판대 앞에 어엿이 설 수 있을까? 여기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은 늘 새롭다. 그러나 한시라도 심판을 망각하면 우리는 방자해지기 쉽다. 교만해진다. 남을 멸시하면서 자기가 잘난 줄로 착각한다. 잠언 29:18에서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전도서의 이 결론의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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