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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기(grace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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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복과 저주를 선포하라. ①
01/15/202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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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복과 저주를 선포하라.

(신명기 30:15-20)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너에게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30:15-18)

 

1. 이 말씀이 왜 중요한가?

 

1) 교회에서 목사가 복 받는 설교를 많이 하면, 성도들이 다 복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할 수 있는 대로 복 받는 말을 많이 해야지, 결코 저주받는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성도들도 복 받으라고 하면 기분이 좋지만, 저주받는다는 말을 하면 기분 나빠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 받는다는 말만 하지 말고, 저주받는다는 말도 해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신명기 11:29에서는 그리심 산에서는 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라고 하셨다. 그런데 신명기 28장에 보면 1절에서 14절까지는 복 받는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15절부터 68절까지 무려 54절에 걸쳐서는, 그러니까 복 받는다는 말씀의 네 배나 되는 많은 분량의 말씀이 저주받는다는 말씀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저주를 받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우리가 복 받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첫 사람 부부를 만드시고는 곧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사랑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1:28). 우리는 본래 이러한 엄청난 복과 함께 태어난 사람들이다.

 

2) 그런데 왜 이렇게 저주에 대한 말씀을 복에 대한 말씀보다 네 배나 많이 하셨을까? 저주받기가 복을 받기보다 네 배나 더 쉽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저주받는 사람이 복을 받는 사람보다도 네 배나 더 많다는 것도 암시해준다. 사람마다 복을 받기 원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저주의 길로 간다. 사람마다 생명 얻기를 사모하지만, 실제로는 네 배나 되는 사람이 사망의 길로 간다.


하나님이 복을 선포하라시는 것은 이 복을 받으라는 것이고, 반대로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시는 것은 너희는 제발 이런 저주를 받는 자리에 가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 저주가 얼마나 충만한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되고 극심한 저주 아래에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경고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에게 이런 저주가 임하거든 얼른 깨닫고 회개하여 다시 복을 받는 자리로 돌이켜야 한다. 그러므로 저주를 선포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엄청난 복이 되는 것이다.

 

3) 복과 저주는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다. 항상 같이 다니는 것이지 결코 따로따로 다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복을 안 받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복을 안 받으면 저주가 임한다. 대기권에 진공(眞空) 상태는 없다. 복도 저주도 없는 상태란 있을 수 없다.


에서가 장자권의 복을 못 받았더니 어떻게 되었는가? 에서는 이삭에게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라고 하고는 소리를 높여 울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인가? 그러나 이삭은 축복할 말이 없었다.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27:38-40). 이 말씀 하나하나 아무리 뜯어보아도 축복하는 내용이 아니다. 이미 복을 잃으면 이렇게 저주 아래에 떨어진다. 이삭이 에서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것이 이삭 마음대로 되는 일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칙을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 복을 박차버린 에서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셨던 때의 일을 보자.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러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어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가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10:11-13). 예수님의 말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려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0:14-15).

제자들을 영접하면 평강이 임하지만, 만일 영접하지 않으면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복과 저주는 항상 같이 다닌다. 문제는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귀신들의 경우를 보자. 내 속에서 귀신을 쫓아냈으면 그 다음에는 성령이 충만히 거하셔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비워두면 얼마 가지 않아서 쫓겨났던 귀신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그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훨씬 더 나빠진다고 예수님이 경고하셨다(12:43-45). 영적 진공상태는 없다. 우리의 마음에는 귀신이 주는 나쁜 생각과 세속적인 욕심이 있고, 성령께서 주시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생각이 있다. 그 중간이란 없다. 자신을 늘 살펴서 나쁜 생각을 추방하고 거룩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천국만 말씀하시지 않고 지옥도 많이 말씀하셨다. 특히 마태복음에 잘 나타난다. ‘천국이라는 말이 42번 정도 나오는가 하면, ‘지옥이라는 말씀도 7번이나 나타난다. 천국은 우리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지만, 지옥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참으로 무서운 곳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지옥에 대한 경고를 결코 주저하지 않으셨다. 또한 지옥이 너무도 무서운 곳이기에 이 저주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셔야만 했다. 그밖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4:12에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라고 선언한다. 마음에 천국이 없으면 지옥이 있게 된다. 그 중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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