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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한 나라(1) - 두 개의 선민
07/04/20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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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개의 선민

(창세기 10:21-3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웹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그들이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면 이스라엘이라고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창세기 9:20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노아가 포도 농사를 시작하였는데,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함이 노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두 형제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아들 함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는데, 이어서 한 말은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라고 하였고, 다시 말하기를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1. 아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가볍게 여기고 넘어가서는 안 될 중요한 몇 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첫째는 창세기 10:6을 보면 함에게는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라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창세기 9:22에서는 함을 가리켜 넷째 아들인 가나안의 아비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함이 잘못했는데 저주는 함의 모든 자손이 받은 것이 아니라 넷째인 가나안이 받았다는 것도 기이한 일입니다. 또한 셈과 야벳이 함께 옷을 취하여 아비의 하체에 덮어주었는데, 두 사람이 받은 복은 달랐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야벳의 종이 되라고도 했지만, 셈의 종이 되리라는 말씀을 거듭거듭 말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시지만, 그는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 함의 아들이 모두 함의 아들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셈의 아들도 모두가 셈의 아들이 아닙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오면 어떻게 됩니까? 아브라함에게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본부인인 사라의 몸종인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있는데 그는 서자(庶子)였습니다. 그 다음에 태어난 아들이 사라가 낳은 적출자(嫡出子)인 이삭이었습니다. 나중에 사라가 죽은 후에 그두라라는 후처(後妻)를 통해서 6명의 아들을 더 낳았습니다. 물론 그들도 우리나라 식으로는 적출자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삭만 아들로 인정됩니다. 이것이 이삭에게 오면 또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통하여 쌍둥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곧 에서와 야곱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버림받아 아들의 지위에서 떨어지고, 야곱이 참 아들로 인정됩니다.

 

2) 이런 이야기를 보면 아들이라는 말은 첫째로는 왕자들 중에서 왕이 되는 사람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나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는 왕에게 아들이 많이 있어도 후계자로는 맏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해 놓지 않으면 왕자들 사이에 왕권 다툼이 일어나서 서로 죽이게 되고 나라를 멸망시키게 되기 때문에 장자를 후계자로 못박아 놓아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맏아들이 왕위를 사양한다든지 병약(病弱)하여 왕권을 물려받지 못한다든지, 능력이 부족하여 왕에게 인정받지 못할 경우에는 왕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나에게 아들이 열 명이 있다고 해도 육신적으로는 그들이 모두 나의 아들이라는 것이 틀림없는 일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오늘의 본문 21절에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셈의 육신의 아들은 다섯 명입니다. 22절에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 중 셋째가 아르박삿인데, 24절에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르박삿도 여러 아들을 낳았겠지만, 다른 아들들은 다 빼고 셀라라는 아들만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이 에벨입니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선민의 계보요, 선민은 곧 여러 아들들 중에서 뽑힌 왕이라는 말이 됩니다.

에벨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창세기 11:16-17에 보면 에벨은 34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43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하였으니, 아들도 많이 낳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민의 계보에 올라갈 아들은 벨렉과 욕단, 두 사람뿐입니다.


우리가 다 잘 아는 아브라함은 벨렉의 5대손입니다. 벨렉의 후손들도 수없이 많았겠지만, 오직 5대손 중에서 아브라함만이 택함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의 후손들 중에서도 야곱이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고,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민의 조상이 됩니다.

그런데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하였으니, 벨렉 계통에만 선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욕단 계통에도 선민이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상한 것은 벨렉의 아들들의 이름은 다 나오지 않는데 욕단의 아들들 이름은 본문에 무려 13명이나 다 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웹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입니다.


3) 이런 사실을 전제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도 새롭게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하나님도 우리 모두를 아들이라고 생각해 주실까요?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살펴서 내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가?” 자문하면서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찾아와서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려라.”라고 시험합니다. 그러나 가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는 너는 하나님의 분명히 아들이다. 확신을 가져라.”라고 속여서 방심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마귀의 이 고등수법을 잘 깨닫고 속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참 아들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이스라엘 외에 또 하나의 선민이 있습니다.

 

1) 욕단과 그의 후손들은 메사에서부터 **로 가는 길의 동편 산에 거하였습니다.

성경학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지명(地名)들이 현재의 어디인가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메사는 어디이고, ‘**은 또 어디일까요? 일반적으로 **시베리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라랏 산에서 내려온 노아의 후손들 중에서 욕단의 후손들은 동쪽 해 돋는 곳을 찾아 수많은 산들을 넘고 넘어 시베리아까지 왔다는 말입니다. 많은 산들 중에서 세 개의 산맥이 가장 크고 중요합니다. 첫째는 파미르 고원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천산(天山)산맥입니다. 셋째는 알타이산맥이라는 것이지요.


이들의 첫째 특징은 해가 돋는 곳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밝은 것을 찾는 민족입니다. 근원을 찾는 민족입니다. 둘째 특징은 무수한 산을 넘어야 하는 고생과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민족입니다. 일찍이 함석헌(咸錫憲) 선생님은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책을 쓰셨고, 나운몽(羅雲夢) 목사님은 동방의 한 나라라는 책을 통하여 우리 민족이 욕단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역설하였고, 따라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 원한다면 마땅히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데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근래에 유석근(兪昔根) 목사님은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이라는 책을 통하여 우리 한민족이 제2의 선민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겉에 드러난 선민이고, 우리 한민족은 감추어져 있던 선민이라는 것입니다. 겉에 드러났던 이스라엘은 실패하였고, 이제껏 감추어두셨던 우리 민족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님의 재림 직전에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은 로마서 11장에 예언된 것이지만, 많은 성경학자들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하겠습니까? 기독교국이라고 자랑하던 미국도 이제는 더 이상 기독교국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국이 하겠습니까? 독일이 하겠습니까? 그 나라들은 이미 기독교국이기를 포기한 나라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이슬람에게 잡아먹힌 형국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인류 역사에서 주역이 될 민족은 바로 우리 한민족밖에 없습니다. 실로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는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미국이 도와준 나라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 성공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해 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그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2) 역사를 되짚어 봅시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다, 하나님의 선택이다.”라는 말을 구원과만 연결시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거나 안 믿거나 모두 구원을 받는다고까지 말합니다. 특히 예정론을 강조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사상이 더 짙게 나타납니다. 그 사람들은 나는 택함 받은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고, 따라서 구원을 받았으며, 한 번 받은 구원은 절대로 상실될 수 없으므로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이미 받은 구원은 확고하며, 반드시 천국에 가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로마서 3:1에서는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라고 묻고는 2절에서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라고 대답합니다. 선민의 많은 유익 중에서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이 곧 선민입니다. 교회에 잘 다니고, 열심히 잘 믿는 척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 없다면 선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성경은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에 새겨놓지는 않았습니다. 말씀을 지키되 형식적으로만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무섭게 책망하시기를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8:11-12)라고 하셨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21:43)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의 나음은 또 무엇일까요? 로마서 3:1-2에 이어서 9:4-5에서 설명합니다.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선민은 양자(養子)입니다. 친아들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집에서 자란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과 존경과 신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선민에게는 그리스도가 그들로부터 나시는 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3) 참된 선민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마귀는 겉에 드러난 선민인 이스라엘을 집중 공격하여 마침내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귀에게 결코 지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또 하나의 선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제2의 선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십니다. 그것이 누구입니까? 욕단의 자손 중에 있는 선민입니다. 벨렉의 경우를 보면 그의 5대손인 아브라함이 선민이 되고, 더 나아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선민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욕단 계통의 후손 중에서도 5대손쯤 되어야 그 선민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욕단에게 아들이 13명이나 있었으나 그 중에서 누가 또 하나의 선민의 조상인지 그것은 하나님이 감추어두신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면서 서서히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습니까? 우리 한민족은 예로부터 천손민족(天孫民族)이라고 해 왔습니다. 곧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군신화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을 환인(桓因)이라고 했는데, 여기의 환()푯말 환자로서 옛날 역참(驛站)의 표지로 세워 놓았던 나무를 뜻하는데, “굳세다, 위엄이 있다, 크다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자는 하늘과 땅 사이에 해가 있고, 그 옆에 나무가 서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의 나무는 곧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늘과 땅과 해와 사람,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는 글자가 환()이라는 글자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그 글자의 음이 이 아니라 이라고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라고 할 때에는 환하다는 의미이고, ‘이라고 할 때에는 크고 바르고 하나라는 뜻을 가집니다. 또한 인()이라는 글자는 원인(原因)이라고 할 때의 자인데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고도 크시며 유일하신 창조주이시고, 인생의 표지판이 되시며, 만물의 원인이요 근본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늘님에서 온 것이지요? 옛날에는 하늘이라고 할 때에 아래 아()’자를 써서 하날이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하느님도 바른 표현이고, ‘하나님도 바른 표현입니다. 서양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와서 전도하면서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에 우리 백성들은 조금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잘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나라마다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가 있지만, ‘하나님이 가장 훌륭한 단어입니다. 우선 이런 것에서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선민이 된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표면적 선민인 이스라엘과 이면적 선민인 한민족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살고 있는 지역도, 언어도, 풍습도 모든 것이 다릅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한민족은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영접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었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셔 들였으며, 그리스도를 가장 사랑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거의 같은 말이 되지만, 이스라엘은 신약성경이 없지만, 한민족은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지만, 한민족은 성령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3. 셈의 참 자손의 복을 받읍시다.

 

1) 하나님이 어느 민족을 택하셔서 역사하시는 뜻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왕들도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애급의 바로도 물론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한 왕만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왕도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인간들은 왕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왕이 되려고 기를 쓰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세우십니다. 바로를 왜 세우셨다고 했습니까? 출애굽기 9:16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하 만민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헛된 우상을 섬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여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왜 택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목적은 항상 동일합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이 곳 저 곳 유리하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고달픈 삶을 살았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을 나타내 주시고 모든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이삭이나 야곱의 경우에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모두가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인생이 나그네임을 깨우쳐 주시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 정을 붙이지 말고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라고 하심이요, 또한 발길 닫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하라고 하시는 깊은 뜻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왜 택하셨을까요? 로마서 3:1-2에 있는 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져 있습니다. 엄청난 약속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이 놀라운 일들을 먼저 이루고, 나아가 이 큰 복을 천하 만민에게 전하고 나누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의 핵심은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만 나타내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말은 그의 십자가와 부활, 그의 보혈과 성령을 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우리들의 삶에도 있지만, 우리들에게는 부활이라는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오늘도 우리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찬송가 1865절에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 됩니다.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의 보혈이 우리 속에서 흐르고 있을 때에 우리의 기도는 다 응답됩니다. 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느냐고 항의하고 섭섭하다고 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의 보혈이 자기 마음속에 흐르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와 계십니다. 그래서 항상 성령의 감동을 받고,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성령께서 스승이 되셔서 우리를 깨우쳐주셔야 합니다. 이런 기쁨과 감사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행복이 넘칩니다.


3) 우리가 어떤 복을 받아야 할 것인가를 세 가지만 소개합니다.

출애굽기 19:5-6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우리는 이 복이 얼마나 놀랍고 엄청난 것인가를 알아서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신명기 28:1-14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라는 말로 시작하여 재물의 복, 자녀의 복, 우양의 복, 음식의 복을 받으므로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원수가 일어나 우리를 치려고 하지만, 그들이 한 길로 쳐들어왔으나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더욱 큰 복은 12-13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寶庫)를 여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라.”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소개할 복은 이사야 60장입니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게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합니다. 장차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임하시고, 그의 영광이 우리 위에 나타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라고 하십니다. 천하만국이 다 우리에게 모여듭니다. 멀리 떠났던 아들도 딸도 다 찾아옵니다. 그때에 기쁨이 충만해지고, 마음에 놀라움과 감격이 넘치게 됩니다. 마음에 새로운 해가 솟아오릅니다. 이렇게 되면 바다의 풍부와 열방의 재물이 우리에게 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지경이 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조국을 보세요. 작년에 극심한 경제 불황으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플라스 성장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국내에서는 정권을 빼앗긴 좌파들이 광우병이다, 뭐다 하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만들어 난동을 부렸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여러분들도 믿으십니까?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우리는 항상 오뚜기처럼 벌떡벌떡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면서 힘차게 전진해야 하겠습니다. (200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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