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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하나님의 해석이냐, 인간의 해석이냐?
06/27/202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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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하나님의 해석이냐, 인간의 해석이냐?

(예레미야 29:11-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느니라.

 

인생에는 너무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 중 대부분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가 해석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불교에서는 그 기본적인 것으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네 가지를 말한다. 왜 태어나는가? 왜 늙는가? 왜 병이 드는가? 왜 죽는가? 석가모니는 평생 이것을 알려고 수도하였다. 그래서 불교라는 것이 생겼다. 철학이라는 학문도 바로 이런 문제들을 알아보겠다고 하는 학문이다. 인생은 무엇인가? 왜 태어났는가? 왜 죽는가? 등등 우리 인생은 근본적으로 문제투성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해석에 따라서 학파가 갈리고, 이념이나 사상이 달라진다. 나아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지고 최후의 운명이 달라진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유일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셔서 우주와 인생을 주관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과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무신론자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모든 것을 우연이라고 설명한다. 우주가 생긴 것도 우연이고, 인생이 태어나는 것도 우연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생은 육신의 죽음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인생을 사는 방법이나, 그 가는 길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이단과 정통이 갈라진다. 일반적으로 이단들은 자기의 생각을 따라서 성경을 해석한다. 심지어는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든지, 자기를 재림주라고 하면서 성경 말씀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여 자기를 신격화한다. 뿐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에 좋도록 해석하면 그것도 이단이다. 우리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들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니까, 빼버리고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축복의 말씀들만 전하면서 우리가 다 이런 복을 받는다고 선포한다. 예레미야서에 똑같은 말씀이 반복하여 나오는데 곧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하는데,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하나 평강이 없도다.”(6:14; 8:11)라는 말씀이다.


이사야도 자기 백성들을 보면서 탄식하였다.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여라,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켜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30:9-11)라고 하였다.

특히 말세에 이런 무리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디모데후서 4:3-4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라고 하였다.


특히 고난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낙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비참하게 일생을 마친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고난을 오히려 형통의 기회로 만들어 크게 성공하는 사람이 된다. 1997년 말에 한국에 경제 위기가 오면서 환란(換亂)이 일어났습니다. 800:1 하던 달러 환율이 2000:1이 넘어서기도 했다. 실직자가 갑자기 많이 생기게 되고, 중소기업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때에 자살하는 사람, 이혼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비관적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오히려 그런 역경을 변화의 기회로 삼아 더욱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영적인 변화를 이룬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이 타락하여 교회를 떠났는가 하면, 반대로 그때가 하나님을 만날 호기로 알아서 더욱 뜨겁게 기도하고 주님을 만나 더욱 사랑하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성경에서도 인생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묻고 있다. 그리고 항상 인간의 해석과 하나님의 해석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준다. 해석을 바르게 하면 성공하고 천국에 가게 되지만 해석을 잘못하면 인생을 실패하고 구원도 상실하여 멸망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5장 첫머리에 팔복의 말씀이 나온다. 예수님은 그 첫째 복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고, 마지막 복으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런 말씀은 인간들의 상식으로 볼 때에는 터무니없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복 받은 사람인가? 당연히 부자가 되어야 한다. 또 박해를 받는 사람이 어찌 복된 사람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그 해석이 달라지지 않는가? 그런데 성경에는 몇 가지 가장 기본이 되는 해석 방법을 말씀한다. 우리가 그것들을 잘 배우고 익혀서 우리 삶에 승리와 형통을 받아야 하겠다.

 

1. 그 첫째 원리는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받는다는 것이다.

 

1) 이것은 누구나 잘 아는 자연계의 기본적 이치요, 하나님의 섭리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이치는 인정해도 우리가 행한 대로 받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칙은 애써 부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행한 대로 받는다는 말씀과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최소한 50번 이상 나타난다. 특히 인생의 지혜를 말하는 시편과 잠언과 전도서에 많이 나타나고, 예언자의 글 중에서는 에스겔서에만도 18번이나 나타난다. 신약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라고 하였고, 갈라디아서 6:7자기를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하였다.


또한 계시록에도 네 번이나 나타나는데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2:23; 18:6; 20:13)는 대 원칙을 세 번 말하고 계시록을 마치기 직전인 22:12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22:12)라고 약속하신다.


그런데 이것은 문자상으로 그렇게 쓰인 것만 세어본 것이고, 실제로 성경의 모든 가르침은 이 사실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모든 설교가 그러하다. “지혜로운 사람이냐, 미련한 사람이냐?”라고 물으신다. 그리고 그 기준은 행함에 있지 않은가!

 

2)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정확하다.

누가복음 12:5에서 예수님은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라고 경고하시고는 이어서 7절에서는 우리를 보호하심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너희는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5:26에서 살인죄에 대한 설명을 하시는 중에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라고 하셨다. 지극히 작은 죄라도 다 갚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닌가? 하나님 앞에서는 적당히 대충대충 넘어가는 법은 없다. 더구나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세상에서는 용케 죄가 발각되지 않고, 벌 받지 않고 넘어갔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사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짓는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 우리가 잘 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자. 십계명을 기록한 출애급기 20:5-6에서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4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1000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죄를 멀리 버리고 의를 행하여 자손 천대까지 반드시 복을 받아야 하겠다.

 

3) 행한 대로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말도 씨앗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말한 대로 되고, 기도한 대로 되고, 마음에 소원한 대로 된다. 이 세상의 심판도 법대로 된다. 물론 부패한 사회에서는 억울하고 불공평한 재판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원칙은 법대로 하는 재판이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인류의 역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완성될 것이다. 이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법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하물며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고 잘 익혀서 죄를 짓지 않고 형통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 이사야 55:10-11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내가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일곱 가지의 천국 비유는 씨 뿌리는 비유로부터 시작된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밭은 우리의 마음이다. 길바닥 같은 마음이나, 돌짝밭, 가시밭과 같은 마음이 되지 말고 우리 모두 옥토가 되어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다.

 

2. 그러나 예외적인 것도 많아서 인생이 모든 것을 다 일 수 없다.

 

1) 욥은 엄청난 재난을 당했다.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그에게 회개하라고 했다.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죄를 짓지 않고도 망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4:7)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 친구들과의 쟁론이 37장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욥은 자기의 죄를 찾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그리고 욥에게 말씀하신다.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욥이 무슨 죄를 지어서 그렇게 무서운 재난을 당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단지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네가 다 깨달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인간이 어찌 자기의 좁은 생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마침내 욥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고백한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미워하면서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42:3,5-6). 그래서 전도서 8:17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라고 하였다.

 

2)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요한복음 9장에 나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의 부모오니이까?”라고 물었다. 그들은 이 두 가지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9:2-3). 예수님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말씀하시고,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말씀하셨다.

 

3)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것을 가리켜 소위 불가지론(不可知論)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어차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알려고도 할 필요가 없고, 깨달으려고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저 넓은 바닷가에서 조그만 조개껍질 하나를 줍는 일 같아도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 보고, 그 이치를 알려고 하는 일이 아름답지 않은가!

 

3. 셋째 원칙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복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깨달을 수 없다. 우리의 작은 머리와 마음으로 온 우주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세계와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에 분명하게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더욱 좋게 된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본문이 그것을 잘 설명해 준다. 유대 나라는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그 나라에서 종처럼 살아야 했다. 다시는 고국에 돌아갈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을 보내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1)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아무리 큰 환난이 와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사야 40:27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은 쉽게 낙심하며 원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40:28-31).


시편 42편과 43편에 같은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하여 나온다. 42: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의 얼굴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씀이다.


하박국서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망국의 설움과 회복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한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1:12-13)?


하박국은 파수하는 곳, 성루에 서서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그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기다렸다. 그랬더니 마침내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3-4).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욱 좋은 일이 일어난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겠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8:28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다. 이 사실에 대한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많이 있다.


믿음이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 사람들의 특징을 본문이 두 가지로 말씀한다. 그 첫째는 기도하는 것이다. 부르짖으라고 하셨다. 그 둘째는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신다고 하셨다. 곧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사람을 만나주신다. 그래서 예수님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7:7-8)라고 하셨다.

우리가 잘 아는 욥기 8:7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하신 말씀도 먼저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말씀이다. 5-6절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라고 하셨다.

 

3) 하나님을 만나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요,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12:2-3).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복을 받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믿음이 없고, 기도하려고 하지 않기에 복을 받지 못한다.


모세도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하여 그는 위대한 민족 지도자가 되었다. 성경에 기록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장차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


다윗도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나이에도 나라를 구하고, 나아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다.

 

4)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면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 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이번에는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를 찾아오셨다. 그래야 인간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선언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또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그의 십자가가 바로 그 길이다. 히브리서 10: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라고 말씀한다. 주님의 육체가 찢겨질 때에 성소에서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던 휘장이 둘로 찢어졌다. 곧 우리가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또한 성령을 부어주심이 바로 그 길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고,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날마다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 베드로전서 2:24이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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