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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기(grace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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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영에 속한 사람이냐, 육에 속한 사람이냐?
05/27/202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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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영에 속한 사람이냐, 육에 속한 사람이냐?

(고린도전서 2:10-16)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2:14-16)

 

영에 속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신령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한편 육에 속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모두 본래 육에 속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혈과 육은 천국을 상속받을 수 없다.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1. 육에 속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1)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성령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육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다. 교회에는 다녀도 세상적인 재물과 명예와 권세와 쾌락을 더 탐한다. 성령의 일에는 체면상, 또는 겉치례로 관심이 있는 척만 한다. 옛날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들이었는데도, 성경이 증언하기를 그들은 불량자라,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더라.”(삼상 2:12)라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조금도 노력하지 않았고, 또한 하나님을 알려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초대교회로부터 이런 사람들은 항상 많이 있었다. 소위 세대주의라고 하는 학파가 있다. 그 학파를 시작한 영국의 달비(J. N. Darby)는 신약성경 27권이 확정되기까지만 성령의 역사는 필요하였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성령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성경이 있으니까 성령의 어떤 계시도 지금은 필요하지 않으며, 기도하여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라는 것도 역시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방언이나 예언 같은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들은 성령의 역사를 거절한다. 그들은 신도들이 성령을 받으면 위험하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오래 목회를 하면서 보았더니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나중에 다 잘못되더라.”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 없는 목회를 하고, 성령 없는 설교를 하고, 성령 없는 기도를 한다. 결국에는 어떻게 되는가? 형식적 신앙이 될 수밖에 없다. 외식하는 자들을 양산(量産)하는 교회가 되고, 인본주의적인 신앙인이 되게 한다.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면은 강조할지 몰라도 영적인 면에는 전혀 깜깜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것을 좋아한다.

 

2) 14절에서는 성령의 일을 미련하다고 비웃는 자들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사람들이 성령의 계시를 비웃는다. 그러나 자기가 받은 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다. 남이 받으면 이단이고 마귀의 역사지만, 자기가 받은 것은 정통이고 성령이란다. 꿈을 꾸어도 자기의 꿈은 성령으로 꾼 것이고, 남이 꾼 것은 마귀가 준 것이란다. 물론 이 세상에는 잘못된 계시나 지식이나 영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요한일서 4:1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a)라고 하였고, 예수님도 말세에 가장 주의해야 할 일로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을 것”(24:4)을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다 마귀다, 이단이다.”라고 하며 배척하고 의심해야 할까? 예수님도 그래서 핍박을 받으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으며, 제자들도 모두가 하나같이 이단 소리를 들으면서 핍박을 받았다. 그것은 기독교 2,000년의 역사도 잘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분별력이 없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성경에 있지 않고, 자기의 생각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들로부터 떠나 계신다. 우리가 깨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돌이켜야 한다. 지혜를 받아야 한다. 생명의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이 말씀을 알아야 예수님이 살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하신 말씀 중에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5:22)라고 하신 말씀을 깨닫게 된다. 누가 미련한 자일까? 성령으로 역사하는 제자들을 미련하다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자들이 아닌가?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러니까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이라고 비웃고 배척하는 자가 바로 육에 속한 자다. 23절에서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은 거리끼는 것으로 알고, 이방인들은 미련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교회에는 다녀도 육에 속한 자는 이방인이다.

 

3)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받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받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12:31-32).


성령으로 하는 말씀을 마귀의 소리라고 배척하고 대적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에 내 살을 먹어라, 내 피를 마셔라라고 하셨다. 그러자 구름같이 몰려왔던 그 많은 무리들이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서 먹게 하겠느냐?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6:52,60)라고 하면서 다 떠나고 말았다.


갈라디아서 3:3에서는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라는 무서운 책망이 나온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신령한 사람이 되었으나, 얼마 가지 못하여 다시 육체로 돌아가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것을 베드로는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벧후 2:22)라고 표현하였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이단이라고 무섭게 정죄한다. 그리고 기이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다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보자. 해방 후에 기도원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기도원에서 병을 고치고 방언을 하고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러자 소위 보수요 정통임을 자처하는 교단들은 앞다투어 그들은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교인들에게 그런 집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금지시켰다. 그러다가 조용기 목사님의 순복음교회가 일어났다.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자 또 일제히 기성 교회들은 조용기 목사님과 순복음교회를 이단이라고 정죄하였다. 그 이후에 많은 분들이 일어나 능력을 행하고 신유의 역사를 일으키고, 은사를 받는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그러나 그 사람들 대다수가 이단이라고 정죄를 받았다. 누가 그렇게 했을까?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정죄하기에만 급급했다. 역시 육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2. 신령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1) 성령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영적 갈급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엄마의 젖이다. 배가 고프면 사정없이 울어댄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면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영의 양식을 사모하고, 성령의 은혜를 갈구한며 신령한 말씀을 사모한다. 영적으로 배가 고프니 소리소리 지르면서 울부짖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어서 넷째 복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영적 갈증을 느끼는 사람, 영적인 만족이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이다. 드디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됨으로 만족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바울의 옥중서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이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내가 감옥 안에 있다고 말하여 자기의 괴로움을 나타내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고 말함으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함을 나타내었다.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요한복음 15: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한다. 영의 양식이 풍족하여 항상 만족함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때에 비로소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2)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다.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죄를 사함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깨끗해지고 하나님을 보는 눈이 열린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불의한 것을 미워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난다. 기도가 이루어지고, 갈수록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이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된다.


성령이 충만하면 영에 대한 새로운 소원이 생기고, 성령과의 교통을 제일로 기뻐하는 사람이 된다.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참 편안과 영적 만족을 느낀다. 진리를 사모하여 성경 말씀을 사랑하여 날마다 열심히 읽고 듣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이 가장 잘 안다. 그런데 그 영이 우리에게 임하시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된다. 곧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 욥기는 욥과 그의 친구들 모두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욥의 고난이라는 문제를 놓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에 골몰하는 이야기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을 찾고 계신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는 사무엘을 일으키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삼상 2:35). 사울 왕 때에는 다윗을 찾아내셨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13:22).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하셨다. 이 세상에서는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면최고로 생각한다. 가장 신령한 사람인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러면 과연 이 세상에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한단 말인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3) 신령한 사람은 전심으로 주님만 구하는 사람이다.

사람마다 자기의 영광을 추구한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보시니 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였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자기들의 영광만을 구하였다. “너희가 너희들끼리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5:44)라고 무섭게 질책하셨다. 아마 그들을 펄쩍 뛰면서 우리가 언제 우리들의 영광을 구했느냐?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만 구한다.”라고 대답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히 자기의 모습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바로 그렇게 하지나 않는가?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먼저 나의 영광을 구하는 세속적인 못된 마음부터 뽑아내야만 되는 것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말하기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라고 대답하심으로 마귀를 물리치셨다(4:8-10).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영광이 아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었다”(2:14). 만일 당신이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 된다면 당신의 탄생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영광은 저 나라에 가서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라고 하였다. 베드로도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벧전 5:4)라고 격려한다. 우리가 이 복된 약속들을 마음에 새기고 차라리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하고 박해를 받아도 저 나라에 대한 소망을 확고하게 가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3.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에 속한 사람이 될까?

1)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 철저히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전도 제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이 신약을 열어주는 말씀이요, 복음을 열어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이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말씀이요,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말씀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고기잡이 이적을 체험하게 되자 곧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얼른 떠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불러 당신의 수제자로 삼으시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다.


누가복음 7:47에 매우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입술로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세상을 훨씬 더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사함 받은 일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한다. 그래야 예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 사함 받은 기쁨과 감격이 적으면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강도도 줄어들게 된다.

 

2)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가를 깨달아 늘 자신을 살펴야 한다.

로마서 8:5-6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하였다. 내가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를 늘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참 평안이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로마서 7장에서는 우리 마음에 두 개의 법이 있어서 서로 싸운다고 하였다. 곧 마음의 법과 육신의 법이 싸운다. 의의 법과 죄의 법이 싸운다. 성령의 법과 악령의 법이 싸운다.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이 싸운다(7:22-23). 그런데 누가 이기는가? 바울같이 신령한 사람도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니 죄의 법이 이기더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비통하게 외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라고 하였다. 우리는 자기의 힘으로는 죄의 법, 육신의 법, 사망의 법을 이기지 못한다. 오직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셔야만 우리가 이길 수 있다.


로마서 8:13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늘 자기 몸의 행실을 죽이기에 힘썼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육체의 소욕이 일어난다. 그것이 성령의 소욕을 이긴다. 그래서 그는 늘 자기 몸을 쳐서 복종케 하며 살았고(고전 9:27), 또한 날마다 죽는 생활(고전 15:31)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사람이 한 번 죽었으면 되었지, 왜 날마다 죽어야 하겠느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2:20)라고 하였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의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5:24)라고 선언하였다. 정말 그렇게 되었다면 더 죽을 것도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하였다. 도무지 어리둥절할 말씀뿐이다. 한번 죽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체험이다. 그러나 날마다 또 죽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의 법이 다시금 살아난다. 그래서 우리를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아 간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 지혜와 참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이다(1:7; 9:10). 이 지혜와 지식을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1:27; 2:2)가 누구신지를 알게 된다.


이사야 11:2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라고 하였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지혜롭고 총명하며, 모략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아는 거룩한 지식의 사람이 되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된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을 잘 살펴보자.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것인가를 배우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경외란 무엇인가? 창세기 28장에 야곱이 형을 피하여 외갓집으로 도망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허허벌판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다가 신기한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다. 만일 당신이 이런 꿈을 꾸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나 같으면 뛸 듯이 기뻐했을 것이고,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야곱의 태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야곱이 잠이 깨어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그리고는 그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28:16-17).

바로 이것이다. 이 두려움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만 임하는 거룩한 두려움이다. 이것이 곧 경외(敬畏)라는 말의 뜻이다.

 

4) 전심으로 주님을 구해야 한다. 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성령의 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신령한 사람은 이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6:33).


욥기 8:7에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5-6절을 보아야 한다. 그 첫째가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둘째는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셋째와 넷째는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이라고 하였다. 먼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레미야 29:12-13에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그렇다. 우리도 힘써 부르짖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사야 55:6에서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불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시지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없기에 만나주시지 못하신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대하 16:9). 누가 있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할 것인가? 그래서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까닭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3:7-9)라고 말하였다. 이런 사람이 신령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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