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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생명의 부활이냐, 심판의 부활이냐?
04/07/2020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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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생명의 부활이냐, 심판의 부활이냐?

(요한복음 5:25-29)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인해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두 가지의 부활이 있다. 곧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다. 생명의 부활을 받으면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되지만 심판의 부활을 받으면 영원한 형벌과 저주에 떨어지고 만다(25:46). 그런데 오늘날 어리석은 자들은 이 부활과 심판을 의심하고, 나아가 부인한다. 천국의 영생(永生)은 좋지만, 지옥의 영벌(永罰)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거짓말을 달콤하게 생각하여 그것이 옳다고 따라간다. 마지막 때이기에 그렇다.

 

1. 누가 생명의 부활을 받을까?

우리의 간절한 소원은 생명을 부활을 받는 것이다. 이 부활을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만일 이 부활을 받지 못한다면 천국의 영광이 그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1) 선을 행한 자라고 하셨다. 그러면 선이란 무엇일까?

율법사요 부자였던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니라.”라고 하시고는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19:16-17)라고 대답하셨다. 하나님만이 선하시다. 하나님을 닮는 것이 선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선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하셨다. 선한 목자는 삯꾼과 어떻게 다른가?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일까? 위로는 하나님을 위하여 목숨도 바칠 수 있는 것이고, 아래로는 맡겨주신 양무리를 위하여 이리들과 피 흘려 싸우다가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어야 선이 아닌가!


고난주간이 시작될 때에 예수님께 와서 머리에 향유를 부어드린 여인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가리켜 이 여자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26:10; 14:6)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의 좋은이라는 말이 헬라어 원어로는 칼로스인데 선한 목자라는 말에 사용한 선하다는 말과 같은 단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한 일의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셨다. 첫째는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한 것이요, 둘째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26:13)는 것이다. 물론 이 여인은 예수님이 단 며칠 후에 돌아가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고,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하여서 자기에게 있는 가장 귀중한 재산인 이 향유를 부어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한 것일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나아가 성령의 감동에 즉시 순종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생명의 부활을 소망할 수 있다.

 

2) 누가 생명의 부활을 받을까?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깨우침을 준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하여 마리아의 집에 가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실 것을 믿지 않았다. 나사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고, 시신에서는 악취가 나며, 벌써 매장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니, 죽은 나사로쯤 살려내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더 쉽다고 하신다. 당신은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는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그 자리에서 다시 살려내실 것도 믿는가?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렸던 일을 가리켜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1:19)라고 설명한다. 진정으로 부활을 믿는다면, 또한 예수님이 부활이심을 믿는다면 독자까지도 바칠 수 있다. 물론 자기의 생명도 드릴 수 있다. 하물며 하찮은 재물쯤이겠는가? 재물에 인색한 자는 아무 것도 드리지 못한다. 따라서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왜 그런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믿음이 없는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부활의 부당함을 역설할 때에 예수님은 한 마디로 그들의 악한 태도를 일축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22:29-32). 성경을 아는 것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모든 답이 부활에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 곧 당신을 부활시키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다. 낙심도 없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더욱 좋은 일을 이룬다(8:28).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져야 부활의 소망이 확실해진다.

 

3) 또 누가 생명의 부활을 받을까? 부활이란 먼저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활이라는 말이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의 육신이 죽어야 육신의 부활을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옛 사람이 죽어야 새 사람으로의 부활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의 육신의 생각이 죽어야 영의 생각이 살아난다. 우리의 세상 욕심이 죽어야 천국을 향한 거룩한 소욕이 일어난다. 그런데 죽어야 할 것이 죽지 않고 있으면 우리는 부활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불행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우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죽자.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2: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다”(5:24).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아니고, 물론 구원도 받지 못하고, 생명의 부활을 기대할 수 없다.

 

2. 누가 심판의 부활을 받을까?

물론 생명을 부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 심판의 부활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마귀는 간교하게도 우리들을 속인다. 심판의 부활이 없다고. 혹은 부활을 하더라도 심판을 받아서 죽어버리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도 최고의 형벌은 사형이 아니냐? 그러니까 저 세상에서도 최고의 형벌은 사형이다. 따라서 지옥불에 던져지는 순간에 모두 타서 없어져버림으로 형벌은 끝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마귀의 속임수다. 그렇게 해야 천국 가기를 포기한 많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죄를 짓고, 실컷 악을 행하다가 죽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지옥이 없다고 목청을 높여 외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러므로 지옥 같은 것은 만들지도 않으신다.”라고.

 

1) 지옥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은 분명 심판의 부활이 있다고 하셨고,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려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려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로 범죄케 하거든 빼버려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9:43-49)라고 거듭거듭 경고하셨다. 이 말씀들을 보면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지옥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 나온다. 지옥이 없다고 하는 자들은 그 이야기는 하나의 비유일 뿐이고, 실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실제도 아닌 것을 예수님이 일부러 지어내서 제자들에게 겁을 주었다는 말인가? 마귀는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부인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어야 마귀의 말을 따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지옥을 어떻게 설명하셨는가? 누가복음 16:24,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하나이다.” 물 한 방울 구할 수 없는 뜨거운 불 속인데, 기이한 것은 몸이 타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고 하신 것이다.


생명의 부활이거나 심판의 부활이거나 부활한 몸은 같은 질을 가진다. 곧 현재의 우리의 육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현재의 육체는 약하고 병들기 잘하고 늙고 피곤하고, 또한 영원하지 못하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강하여 병들지 않고, 늙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다. 그리고 다시는 죽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천국에 가면 한없는 영광이지만, 지옥에 가게 되면 한없는 고통이다.

 

2) 악을 행한 자가 심판의 부활을 받는다. 그러면 악이란 무엇인가?

악은 선의 반대다. 일반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악을 말한다. 마가복음 7:21-22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인데,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불신자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모든 종교가 악을 행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사람의 양심이 이것을 증명한다. 어린이들도 악을 행하면 부끄러운 줄 알고, 얼굴이 빨개지고, 두려워할 줄 안다. 또한 벌을 받아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에서도 그런 도덕적인 악이나 가르친다면 그것은 불신자의 세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악은 대인관계(對人關係)보다고 먼저 대신관계(對神關係),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것을 말한다. 첫 사람 아담의 죄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짐승에게 지은 것이 아니었다. 선악과 한 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 깨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를 짓밟는 행위였다.


예수님은 일반 백성들을 책망하시지 않으셨다. 자칭 거룩한 척하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무섭게 질책하셨고 그들에게 저주를 퍼부으셨다.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척하면서도 하나님 알기를 거절한 인간들, 가장 크고 고귀한 사명을 받고도, 그것을 자기의 권력으로 악용하는 인간들,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 되었고, 항상 백성들을 선동하여 의인을 죽이고 참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다. 그것보다 더 큰 악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는 천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문 밖에 있게 될 자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22:15)라고 하였다. 이방인들 이야기가 아니다. 교회 지도자라는 탈을 쓴 악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성령이 충만하다고 자칭하는 자들도 있다.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던 자들도 있지 않는가?

 

3)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에 악인이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온다.

첫째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있다. 곧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을 일컫는데, 그 사람은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주님은 왜 그를 악하다고(25:26) 무섭게 책망하실까? 하나님이 주신 돈을 땅에 묻어두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혹시 자기가 받은 달란트가 너무 적다고 불평을 하지나 않는가?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한 번 헤아려 보라. 왜 남의 것만 보고 부러워하는가? 당신의 것이 그 사람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좋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바로 그것이 악이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당신의 마음에 심어준 씨다. 그것을 뽑아내자. 그러면 당신의 마음에 선이 가득하게 된다. 감사가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가득하게 비치게 된다.


가라지 비유에도 악인이 나온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13:38)고 하셨다. 알곡들과 함께 자라지만 전혀 엉뚱한 열매를 맺는다. 악한 자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물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내지만, 독사가 마시면 독을 낸다. 똑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사람은 통곡하면서 회개하는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이를 간다. 왜 그럴까? 먼저 당신의 소속을 바꾸어야 한다. 언제까지 악인으로 남아 있으려는가? 결단을 내려라. 주님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야 한다(15:13).


마태복음 18:21-26에 나오는 용서에 대한 교훈에도 악한 자가 나온다. 임금님이 10,000 달란트 빚진 신하를 불쌍히 여겨서 전부 탕감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100 데나리온 빚진 친구를 용서하지 않고 감옥에 가두었다. 임금님은 10,000 달란트나 탕감 받았던 신하를 악한 종이라고 무섭게 책망하셨다. 남을 용서해 줄 줄 모르는 사람이 악인이다. 왜 용서하지 못할까? 주님의 용서에 감사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좋은지를 모르고 자기의 욕심대로만 행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장은 말세에 될 일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내용인데, 그 끝에도 악한 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48절에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라고 하였다. 곧 악한 종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거나, 그 재림이 더디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깨어 있지 못하고 동무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신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많은 표적을 행하셨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하시며, 앉은뱅이을 일으키시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고치시며,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려내시는 것을 보면서도 또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12:39; 16:4)라고 대답하셨다. 보여줘도 믿지 않는 자들,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고, 하나님을 잘 믿는 척하면서도 예수님을 헐뜯으려는 불순한 태도를 가진 자들이 악한 자들이다.

 

3.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심판의 부활을 피하고, 생명의 부활을 받을까?

1)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악한 자임을 깨닫는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의로운 줄로 착각하고 있다. 더구나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믿기만 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가르치니까, 자기의 행위와 생각과 말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오히려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이미 자기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다고 말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으니 어떡할까? 대관절 누구 마음대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인가?


예수님을 가까이할수록 우리는 자기의 추하고 더러움을 발견하게 된다. 빛이 밝으면 작은 먼지까지도 다 보인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자기의 행위만이 아니라, 자기의 말과, 마음의 생각까지도 환하게 보여서 더욱 가슴을 치게 되고 부끄러운 줄을 알게 됩니다. 특히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면 자기의 적나나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한 자는 눈이 멀어서 자기의 마음은 물론이고, 자기의 말과 행실이 얼마나 더러운가를 전혀 깨닫지도 못한다. 우리는 먼저 자기의 모습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 행한 것 죄뿐이니라고 찬송하지 않는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때에 주님은 가까이 찾아와 주시며,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주신다.

 

2) 이렇게 회개할 때에 드디어 성령이 오신다. 어떤 사람은 한 번 회개했으면 그 다음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6:1-2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래서 답답한 일이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지 않는가? 한 번 회개했으면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말아서, 다시는 회개할 필요가 없도록 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그래야 완전한 데 나아간다. 이미 회개한 죄를 다시금 반복하고 있다면 어떻게 전진하겠는가?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용서 받고 거듭남에 머물러 있지 말고 거룩함에 나아가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라고 축원하고 있다. 진정 우리가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따르게 된다. 물론 그 결과는 멸망이다.

 

3) 그러므로 늘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자기의 부족을 크게 깨닫게 되고, 자기의 부족을 깨달을수록 주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을 깊이 깨닫게 되며, 더욱 큰 믿음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어떤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킴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찬송하면서 주님을 따르게 하는 신기한 능력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라고 하셨다. 주님 안에 거할 때에 비로소 참된 기도가 가능하다.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4) 여기까지 이루어지면 드디어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게 된다. 말씀의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성경을 읽을수록 오히려 곡해하고 아전인수격으로 이해하여 그 말씀이 자기를 죽이는 불행을 가져온다. 예수님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그런데 누구든지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버릴 것이다”(118:22; 21:42,44; 12:10; 20:17-18; 4:11; 벧전 2:7-8).


성경 말씀이 곧 로고스이신 예수님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자기를 건축자라고 뽐내는 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크게 오해하였구나.”(22:29)라고 책망하셨다. 그들은 성경을 가장 높이는 척하지만, 실은 성경을 버린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시듯이 성경도 우리 신앙의 머릿돌이 되게 하신다. 그런데 악인들은 이 돌에 걸려 넘어지고, 이 돌에 부딪쳐 정신을 잃는다. 또한 이 돌에 떨어져서 깨지고, 이 돌이 그들에게 떨어지면 가루가 되고 만다.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신다. 세상적으로 무엇이 좀 되었다고 교만하지 말자. 당신은 아직 아무 것도 된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진리의 깊은 세계에 들어가기를 사모해야 한다. 성경 말씀으로 인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리의 세계는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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