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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하나님의 뜻이냐, 사람의 뜻이냐?
07/03/202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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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하나님의 뜻이냐, 사람의 뜻이냐?

(마태복음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리라.”

 

누가 천국에 가는가? 예수님이 엄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라야 한다고 하셨다. 오늘의 본문이 잘 보여준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와 집 밖에 있다는 전갈을 받으셨을 때에도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라고 물으시고는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12:48-50)라고 말씀하셨다.

 

1) 곧 첫째로는 예수님이 오신 것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요한복음 4:34에서 예수님은 이르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6:38-40에서도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10:7에서 시편 40편에 있는 말씀을 인증하여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예수님에게 이루어진 말씀이라고 설명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6:39,42; 14:36; 22:42)라고 하셨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려고 하시는 주님의 각오와 소원이 들어 있지 않은가?


예수님이 친히 그런 소원을 가지고 사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가 잘 알고, 늘 외우는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은 나라가 임하게 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2) 둘째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못하였다.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착각하지도 말고, 방심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인지를 잘 반성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말을 함부로 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뜻대로되기를 소원하는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결혼했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도 이혼을 쉽게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장로가 된 사람이 왜 그렇게 쉽게 자기 교회를 떠나서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리는가?

그들은 말한다. “바울도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내가 목사가 되었다, 장로가 되었다 하는 것이 어찌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느냐?”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만일 당신이 사도 바울같이 훌륭한 신앙의 사람, 사명에 불타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바울에 견줄만한 사람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바울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여서는 안 된다.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나 아닐까?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해 놓고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마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했을 것이다. 또한 그 모든 것을 자기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했다고 하여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면서 감사했고,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자타가 공인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심판날 주님 앞에 이르러서 보니, 이게 웬 일인가? 그 모든 일이 전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니 말이다. 그러면 대관절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그 사람들이 행한 모든 능력과 설교가 다 마귀의 장난이었다는 말인가?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하였느냐?”가 아니다. 돈이 많으면 인격도 고상해지고, 지식이 많으면 저절로 정직해지고, 지위가 높으면 사람이 거룩해지는가?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능력이 많다고 또는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가지가 긴밀히 상관되어 있는 줄로 착각을 한다.

 

1. 우리가 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1)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천국에 가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치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주여, 주여라고만 하면 다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지옥에 가게 된 것일까? 구원의 확신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큰 감격과 함께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어떤 사람이 가르쳐주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믿어라, 믿어라.”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거짓된 구원의 확신 속에서 거짓된 평안을 가지고 살면 참으로 무서운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항상 자기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쁨과 감격이 충만해야 한다.

 

2) 이 세상에서도 기도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소경으로 태어났다가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된 청년이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9:31)라고 하였다. 아무리 무식한 사람의 말이라도 진리가 아닌가? 잘난 바리새인들도 이 말에는 감히 비판하거나 대적하지 못하였다. 옳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사도 요한도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라고 했다. 먼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의인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지리라.”(15:7)라고 약속하셨다. 주님의 말씀이 충만한 사람, 곧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사람의 기도는 100% 응답되는 기도다.

 

3) 하나님의 약속들이 그 사람에게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10:36).

성경에 약속한 모든 복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신명기 28장의 엄청난 약속도 모두가 1절에 명시한 사람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오늘 하나님이 명하시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들에게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는 복의 약속이 시작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복의 조건은 무시해버리고, 약속하신 복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는 그것을 믿는다고 합창을 한다. 그러나 참 복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억만금의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전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의 모든 약속은 이루어진다.

 

4) 영원히 거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는 다 사라진다는 말이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한다. 얼른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산다, 죽는다.”는 말의 의미를 우리 육신의 생명에 대한 말과 같은 뜻으로 생각하기에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영원히 거한다, 영원히 산다.’는 말은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말하지 않는가? 반대로 지옥의 생명은 영원한 고통이기에 그것에는 산다거나 거한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산다고 해도 사는 것이 아니요, 거한다고 해도 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바로 행하지 않으면 바깥 어두운 데 던져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될 것이다. 영원한 고통과 형벌이 있을 뿐이다. 땅을 치며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을 어찌할까?

 

5) 하나님이 존귀하게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일찍이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지만,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하지 않으니까 결국 그를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13:22)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땅을 굽어보시면서 다윗과 같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혹시 당신이 그 사람은 아닐까? “주여!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리고는 이 땅에 새 역사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2.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1) 사울은 아말렉 사람과 짐승까지도 진멸하라시는 명령을 듣고도 진멸하지 않고 왕을 살려주었고, 짐승들도 좋은 것은 남겨두고 나쁜 것만 다 죽였다. 왜 그렇게 했을까?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겼던 것이 첫째가는 이유일 것이겠고, 또한 인정에 끌려서, 짐승들이 아까운 마음에서, 또는 이만하면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책망은 너무도 무섭다. 결국 그는 왕위를 자손들에게 계승하지 못하고, 자기도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 두려운 것은 사울에게 회개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잘못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회개가 없었다. 죄가 쌓여 하나님과 나 사이에 담이 생기면 성령이 떠나시고, 성령이 떠나시면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가 되지 않는다. 갈수록 힘겹고, 고달픈 삶을 살다가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게 된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불행이 닥치지 않도록 마음의 자세를 바로 해야 하겠다.

 

2)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종교 지도자들의 선동에 넘어가서 민란과 살인으로 인하여 옥에 갇힌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고, 그들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였다”(23:25). 그것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이 아닌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으며, 힘겨운 노동을 해도 먹고 살기조차 힘들게 되었는데, 오늘날 우리들이 이렇게 죄악이 가득 찬 세상에 살면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하고 배척하면서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거짓된 말에 속지 말고 깨어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에 힘쓰면서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벧전 4:7-8).

 

3) 바울은 아시아에서의 전도가 자꾸 막히자, 왜 그런지를 몰라서 더욱 애를 썼지만, 하나님의 뜻은 마게도냐로 가라시는 것이었다(16:7). 바울같이 신령한 사람도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하여 고생을 많이 했다. 오늘 당신의 발걸음은 어떤가?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내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살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4)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에 선지자라는 사람들이 그를 만나 예언하기를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가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죽음도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5)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시옵소서!”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잔을 옮겨주시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히시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십자가를 달게 지고 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3.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1) “이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18:14).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찾으시려고, 바로 당신을 찾으려고 오시지 않았는가? 주님은 마지막 기도에서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라고 하시고는 이어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았습니다. 단지 멸망의 자식뿐이온대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17:9,12)라고 하셨다. 우리가 이 멸망의 자식에 속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겨주신 양들이 되어야 하겠다.

 

2)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라고 말씀한다. 거룩함이라는 말은 제사법을 설명하는 레위기의 주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11:44-45)라고 거듭 말씀하신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12:14). 성경에서는 이렇게 강조하고 있건만, 현대 교회에서는 이 말씀을 무시하고 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만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 교인들의 삶 속에는 거룩함이 없고, 온갖 죄악이 가득하지 않은가?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주일날 교회에 가느냐, 안 가느냐 밖에 없는가?

 

3)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겠다. 더럽게 살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4)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벧전 3:17). - 선을 행한다, 의를 행한다 하면 반드시 칭찬이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성경에서는 왜 그와 정반대로 박해가 온다고 가르칠까? 당신도 의를 행하다가 박해를 받아본 체험이 많이 있는가? 만약 그것이 없다면 당신은 의를 행한 일이 없는 사람이다. 인간의 칭찬을 바라지 말고, 주님의 칭찬을 바라면서 의를 행해야 한다. 인간들의 비방과 박해를 달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4.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을까?

 

1)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져야 한다. 이 소원이 있어도 바람만 불면 자꾸 흔들리는데, 이런 소원도 없다면 어떻게 주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거룩한 소원을 가지자. 그래야 하나님이 그 중심을 보시고 그 마음에 찾아오신다.

 

2)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도 잘못 가는 수가 많다. 성경을 많이 읽고도 잘못 깨닫는 수도 많다. 마음에 거룩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 육성은 강하고 영성은 약하다. 마음에는 원해도, 육신이 따르지 않는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늘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을 하자.

 

3) 어린이같이 낮아져야 하고, 빨리 회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나아가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의 잘못을 빨리 깨닫는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복이 아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위신과 체면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다. 특히 교회에서도 중직을 맡은 사람이 될수록 교만해지기 쉽고 완악해져서 회개하지 않는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을 보자. 그들은 요한이 베푸는 회개의 세례를 비웃고 거절하였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누가복음 7:30에서 그들을 정죄한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가?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 혹시 나의 이야기는 아닐까?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늘 고백하면서 순간순간 주님만 의지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고라신과 벳세다와 가버나움이었다. 그런대도 그 고을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교만하고 강팍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에 예수님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11:25-26)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이같이 되어야 하늘의 비밀이 깨달아진다. 겸손히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게 된다.


세상에 있는 헛된 것들로 인해 교만해지고, 완악해지면 안 된다. 세상 것은 신기루와 같은 것,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재물이 있으면 얼마나 있고, 권세가 크면 얼마나 큰가? 그 모두가 마귀의 속임수가 아닌가? 정함이 없는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그런 것들로 인해 마음 아파하지도 말고, 늘 저 높은 곳, 저 아름다운 곳, 그리고 저 영원한 곳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묵묵히 전진해야 한다.

 

4)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마음이 새롭게 변해야 한다.

에베소서 5:17-18에서는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라고 말씀한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기에”(고전 2:10) 그러한 것이다.

성령이 오셔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이렇게 변화를 받으면 로마서 12:2에 있는 말씀대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된다.

 

5) 나아가 우리는 기도에 더욱 힘써야 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다.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며, 오히려 거꾸로 해석하게 된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어 겟세마네 동산의 베드로처럼 애꿎은 사람의 귀를 잘라내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 말고의 귀를 잘라서 예수님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그런 일은 아무리 많이 해도 결코 예수님을 구해내지는 못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능력이 없어서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묻기를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할 때에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9:28-29)라고 대답하셨다. 능력이 없으면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한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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