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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하나님의 지혜냐, 인간의 지혜냐? (2)
07/02/202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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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하나님의 지혜냐, 인간의 지혜냐? (2)

(신명기 4:5-6)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말씀이다. 모세가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다. 지혜라는 말과 지식이라는 말은 항상 이렇게 동행한다. 지식 없는 지혜나 지혜 없는 지식도 불가능하다. 우리도 지혜와 지식을 모두를 받아야 한다.

우리말 국어사전에서는 지혜를 이렇게 설명한다. 「①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불교에서, 미혹을 끊고, 부처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을 이르는 말.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란 무엇일까? 지혜문학이라고 분류되는 욥기와 잠언에서는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28:28; 9:10)이라고 말하고, 또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라고 말한다(8:30). 그리고 신약에 오면 지혜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고전 1:24). 그러므로 지혜를 가졌다는 말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가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어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4:7)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원한다고 해서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더욱 지혜의 가치를 깨닫고 더욱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인간의 지혜는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태어났다든지, 후천적으로는 많은 공부를 통하여 남들이 갖지 못한 지식으로부터 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은사로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지혜를 받게 되는 구체적인 예를 성경에서와 우리 주변의 인물로부터 찾아 살펴보자.


5절에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 사실 자체가 지혜요 지식이다.

 

1. 지혜로운 기도

 

1) 솔로몬을 지혜의 왕이라고 하지만, 그의 지혜는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후에 얻은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 증거는 그의 기도에 나타난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서 일 천 번제를 드렸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꿈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물으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그러자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그는 금방 지혜를 달라고 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먼저 자기의 아버지인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주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사 자기를 왕으로 세워주신 일을 말씀하면서 감사를 드렸다


다음으로 그는 그러나 자기는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고 겸손하게 고백하였다. 그런데 그의 겸손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자기의 아버지와 비교하여 자기가 작은 아이라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이스라엘 나라의 백성들이 자기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차도록 많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는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이렇게 그의 기도에는 정성된 제사와, 진실한 마음의 겸손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백성을 위하여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른 재판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간구했던 것이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2) 지혜로운 기도는 여호사밧 왕에게서도 나타난다. 역대하 20장에 나타난다. 유대 나라에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자손 곧 에돔이 쳐들어왔다. 그때에 여호사밧은 먼저 온 백성에게 금식하라고 영을 내리고는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기도했다. 그런데 그의 기도가 참으로 아름답다.

그는 먼저 신앙고백을 하였다.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다음으로 그는 하나님께서 침략군들을 물리쳐주셔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말씀드렸다. 곧 첫째 이유는 하나님이 일찍이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함으로, 옛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상기시킴으로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할 것을 말씀하였다.


둘째 이유는 옛날 솔로몬이 이 성전을 짓고 기도했던 일을 상기시킨다. 곧 솔로몬이 성전 봉헌 기도를 하면서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라고 하신 약속을 하나님께 내미는 것이었다.


셋째 이유는 더 옛날 모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급 땅에서 나와 광야에서 살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이 이스라엘의 길을 가로막고 지나가지 못하게 했을 때에 모세는 그들을 진멸시키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싸우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모세도 그들을 떠나 먼 길로 돌고 돌아서 가나안 땅에 갔던 일을 말씀하였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들을 진멸시키지 않고 살려주었는데, 오늘에 와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그들이 오히려 유다 나라를 침략하였으니, 그 책임을 누가 져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유다 나라를 구해 주셔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말한 후에 여호사밧 왕은 고백하기를 우리에게는 우리를 치러 온 이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하면서 이 전쟁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김으로 기도를 마쳤다.

입장을 바꾸어서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이 기도를 어떻게 하시겠는가? 꼼짝없이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지혜로운 기도는 바른 신앙고백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드리는 기도다. 마침내 하나님은 선지자 야하시엘을 보내어 승전을 예언하시고 적군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멸망하여 패퇴하고 말았다.

 

2. 지혜로운 전도

 

사도 바울은 신약에서 가장 우뚝 솟아나는 위대한 전도자다. 스테반의 경우에도 그를 대적하던 자들이 스테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능히 당하지 못했다.”(6:10)고 했는데,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승복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핍박으로 대적하였다. 그런가 하면 이방인들은 더욱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보려고 친근하게 하였던 것을 보게 된다.


사도 바울의 전도 설교 중 그의 지혜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그의 아레오바고 연설이다. 사도행전 17장에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지 않았기에 그 설교는 실패작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18절에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였다.”고 했고, 32절에도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라고 하였으니, 비판자들의 비판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이제 바울의 아레오바고 연설을 보자.


바울은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라는 말로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독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우상들을 보면 속으로부터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바울도 어찌 울분이 치밀어 오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는 자신을 억누르고 부드러운 말로 시작하였다.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라는 칭찬은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지혜로운 말이 아닌가! 그는 이어서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라고 하였다. 여기까지가 서론 부분인데, 이렇게 함으로 그들의 호기심을 지혜롭게 불러일으켰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말하였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여기까지만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에서 그친다. 그러나 바울은 그 창조주가 지금도 우리를 섭리하고 계심을 역설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그렇다. 인간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있고, 각 족속의 땅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온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고, 이로 인해 9.11 사태는 물론이고, 나아가 세계를 멸망시키게 될 것인데, 하나님이 정하신 거주의 경계를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를 일깨워주지 않는가!


바울은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가를 또 설명한다.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은 획기적인 설명이다. 보통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설명이다. 이는 마치 옛날 모세 때에 광야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셨던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는(8:3) 설명에 비견할 수 있는 놀라운 설명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그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생의 최대의 과제는 우리 곁에 계신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을 찾아 만날 수 있는가? 그는 아덴의 어떤 시인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고 한 말을 인용하여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함으로 우상 숭배가 잘못된 것임을 공격한다.


그리고는 복음으로 방향을 돌린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들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라고 하였다. 여기에 회개와 심판,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언급한 것이다.


설교의 지혜와 지식, 이것은 모든 설교자들이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다. 또한 설교를 듣는 사람들도 이렇게 지혜롭고 바른 지식에 입각한 설교를 들어야 믿음이 자라고, 은혜 안에서 강건하여진다. 우리가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하겠다.

 

3. 오늘날에도 주시는 지혜와 지식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시고는 또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며. 또 너희가 나로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갈 터인데,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는 것으로, 너희를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10:16-20)라고 하셨고, 또한 말세에도 큰 핍박이 일어나서 제자들을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그때에 무슨 말을 할까를 미리 궁리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실 것”(21:12-15)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실례로 나운몽 목사의 청년 때의 체험기 두 가지를 보자. 이 간증은 나운몽 목사님의 살기도 싫고 죽기도 싫었다.라는 책에 있는 간증이다.

일제 말엽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경찰에 잡혀가게 되었다. 유치장에 가보니 어느 목사님도 잡혀와 있었는데 다음날 잡혀온 어느 장로님과 앞으로 심문 받을 일에 대하여 상의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여호와 신과 천조대신 중 어느 것이 크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의 요지는 여호와나 천조대신(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이나 다 같은 하나님이지만 언어상 차이로 어음(語音)이 다를 뿐이지 어의(語義)는 같다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대답이 별로 좋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 다음날 나는 고등계 주임 앞에 끌려 나갔다. 그가 한참 협박을 한 뒤에 다짜고짜로 묻는 말은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와 너희가 말하는 여호와 신과는 무엇이 다르며 어느 신이 크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대답할 말을 미리 준비나 해 두었다는 듯이 나도 모르는 순간 불쑥 대답이 나오기를,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는 일본의 시조신이고, 여호와는 온 우주 만물과 인간을 지으시고 생사화복을 좌우하시며 천지를 주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안다고 대답하지 않고, ‘그렇게 배웠다고 대답했는지 지금도 신기하기만 하다. 형사가 즉시 되물었다. “누구에게 그렇게 배웠느냐?”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가 그렇다는 것은 학교 교과서에서 배웠고, 여호와 신이 그렇다는 것은 성경에서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하니, 한참 동안 무엇을 생각하며 말을 못하고 있던 형사가 그러면 여호와 신이 더 크다는 말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것은 당신이 더 잘 압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형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나를 다시 유치장으로 보내고 말았다.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은 인간이 감히 변박할 수 없는 놀라운 지혜를 주신다. 나운몽 청년의 다른 간증을 더 들어보자. 이번에는 공산군에게 붙잡혀 죽을 뻔했던 때의 일이다.

거기에는 까맣게 얼굴이 탄 20대 괴뢰군이 따발총 한 자루를 책상 위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뙤약볕에 탄 얼굴에는 빨갛게 핏발이 선 눈알만이 드러나게 보인다. 머뭇거리며 들어서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이쪽으로 와서 서.” 하고 손가락으로 총부리 앞을 가리킨다.


그때 나는 이제 죽었다하고 마음이 덜컥했다. 그 순간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전도하겠다던 결심도 기도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무감각한 로보트가 돼 버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명령대로 총부리 앞 정면에 가서 섰다. 벙어리같이 되었던 내 입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어질 예()자외다.” 하고 좌우 팔을 들어 어질 예자 형으로 X자를 만들어 보였다. 그는 약간 놀라면서, “그게 뭐야?” 하고 이상한 눈초리를 하고 묻는다. 오른팔을 들고 팔굽에서 손끝까지 왼손으로 쭉 훑어 손끝을 가리키며, “여기는 하나님이 있다 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고,” 또 왼팔을 가리키며, “이 길은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외다.”하고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있는 곳으로 가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는 곳으로 갑니다. 그러나 양편 길에 교차점이 한 곳 있습니다.”하고는 두 팔이 만나는 교차점을 보여주면서 여기는 양편 사람이 다 같이 지상 낙원을 이루어 보겠다는 공통된 목적인데, 이는 곧 이상향(理想鄕)을 그리는 마음의 초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하나님 없다 하는 사람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길을 택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된다는 믿음 길을 택합니다. 결국은 하늘의 뜻이 이루어진 곳이 천국이니 지상에서도 천국이요, 죽어서도 하나님 계신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라고 말하고는, 오른손 끝을 가리키면서, “여기가 천당이라면 여기는 어디일까요?”하고 왼손 끝을 바꾸어 가리켰다. 그랬더니 그는 성난 어조로 옳지. 너희들은 천당에 가고 우리들은 지옥에 간단 말이지?”하고 이를 악물고 당장에 무슨 변이라도 낼 듯이 바르르 떨며 눈을 똑바로 뜨고 쏘아본다. “지옥이 있기는 있습니까?” 하니까, “지옥은 무슨 지옥이 있어 …… 천당 만당이 있거나 ……하며 말끝을 흐린다.


없는 지옥에 간다는 것이 뭐가 그리 화날 것이 있습니까?” 하니까 그 때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당장에 쏠 듯이 총을 잡는다. 그 순간 내 마음에는 평안이 왔다. 어떻든 5분만이라도 달라고 기도한 대로의 5분 전도, 어질 예자 진리 강론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청년 나운몽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런데 이 간증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상식과 지혜를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다. 우리가 이런 간증을 들을 때마다 지혜의 은사를 더욱 사모하게 되지 않는가? 인간의 지혜로는 인간을 이기지 못한다. 따라서 자기의 힘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고야 만다. 비록 성공 같아도 실은 실패다.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만 사모하면서 지혜를 사모해야 한다.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더욱 겸손하여서 말씀만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4. 이 지혜는 언제 받게 될까?

 

이상의 경우에서 볼 때에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 몇 가지의 중요한 비결을 깨닫게 된다.

첫째로 하나님의 지혜는 그 지혜의 가치를 알고 그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한다. 지혜보다 더 귀한 은사가 세상에 있을까? 야고보서는 첫머리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라고 말한다. 이어서 4:3에서는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깨우쳐준다. 우리가 세속적 야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은사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고, 오직 기도라는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기도는 우리 성도들의 최상의 무기요, 우리 삶의 최고의 능력이다.


둘째로, 지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이 지혜, 곧 자기 자신을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이 목적을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우리 마음에 숨어 있는 죄가 드러나고, 진심의 회개가 이루어진다. 회개가 되면 마음이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이렇게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다. 지혜도 지식도 모두가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령을 대적하는 자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라고 말씀하시고는 이어서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10:16)고 하셨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 겸손하고 순결해야 한다. 인간의 헛된 야심과 간교한 지혜를 버리고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이다. 따라서 자기를 살펴볼 줄 모르는 사람은 이미 마귀의 소속이 된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지혜는 평안할 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핍박이 있고 고난이 있을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핍박을 두려워하여 회피하는 자에게는 그런 지혜가 결코 오지 않는다. 본문 말씀을 다시 보자.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규례와 법도, 그 자체가 지혜요, 따라서 그 법을 마음에 새김으로 그 법을 사랑하여 목숨 걸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에게 지혜가 있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핍박을 받는다. 그것이 성경 말씀이요, 또한 그것이 이 세상의 참 모습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영광 받을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동시에 그 핍박의 때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지혜와 지식을 받게 되는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다. 나의 마음을 바쳐서 사는 것이고, 목숨을 바쳐서 사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삶의 악세사리가 아니다. 진실로 우리의 생명이요, 사명이다. 바른 믿음에 바른 지혜가 임한다. 이 은혜가 충만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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