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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기(grace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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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전쟁이냐, 평화냐? (1)
04/04/202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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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전쟁이냐, 평화냐? (1)

(사무엘상 7:5-11)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8)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이스라엘 나라에 불레셋이 쳐들어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 “전쟁 때에만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생 사는 동안 어느 것이 가장 좋은 길인지 알지 못하고 산다. 그래서 자기 생각에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라고 하는 대로 행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물론 가장 좋았을 수도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그것은 잘못된 방법이었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 만약에 그 생각들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면 우리는 모두 가장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자기의 일생을 만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생은 허무하고 너무도 짧다. 하루하루의 생활에 최선의 길을 가지 않으면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자기의 일생을 후회해 보아야 이미 너무 늦었고, 돌이킬 수도 없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길을 찾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상의 길을 보여주시려고 애를 쓰신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서는 그 결론으로 더욱 복된 일을 약속한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길이라고 말씀하시는가?

 

1.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해야 한다.

 

사무엘은 불레셋보다도 훨씬 우월한 군대를 양성하려고 하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방법은 내가 강할 때에는 한 번 취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 방법엔 많은 위험이 따른다. 또한 아무런 보장도 없다.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 아무리 우월하다고는 해도 아군도 많이 죽어야 한다.

 

1) 사무엘은 온 백성을 미스바에 모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겠다.”고 했다. 기도란 내가 어떤 계획을 세워서 일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문을 열어서 들어오시게 하는 일이다. 계시록 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하셨다. 그가 들어오시면 나와 식사를 같이 하시면서 내 사정을 들으신다. 내 형편을 이해하신다. 그리고 나를 도와주신다. 그런데 주님 앞에 마음 문을 열지 않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그들은 주님과 교통이 안 된다. 그러니까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도란 또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맡겨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너희의 힘이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나에게 가지고 와서 기도해라. 내가 해결해 주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운 문제를 맡아서 해결해 주시기를 아주 기뻐하신다.

a) 시편 37:5-6에는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겨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약속하신다.

b) 시편 55:22에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려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11:28)고 초청하시면서, 또한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신다. 무거운 짐에 짓눌려서 괴로워하지 말고 주님께 맡겨버리면 편안하지 않은가?


c) 잠언 16:3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라고 하신다. 맡김으로 형통하는 성도들이 되자.

d) 로마서 12:19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겨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라고 하신다. 원수가 있어서도 안 되지만, 원수를 내가 갚으려고 하면 비극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도 다 주님께 맡겨버려야 한다.

e) 베드로전서 5:7에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려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라고 하신다. 맡기자. 그리고 기적을 체험하자. 이것이 성도의 생활이다.


기도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다. 은사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2장의 결론이 31절이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사모하는 사람은 기도한다. 그러나 사모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고, 혹시 기도를 한다고 해도 형식적인 기도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예레미야 5:1을 보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라고 하신다. 진리를 아는 자도 아니고 단지 구하는 자! 이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에 예루살렘은 멸망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찾기 힘들다.

우리가 잘 아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욥기 8:7의 말씀을 보자. 저절로 창대해질까? 아니다. 그 방법이 5-6절에 기록되어 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이라고 하였다. 첫째가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는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 29:12-13에서도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라고 약속하셨다. 전심으로 사모하면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2)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비결을 두 가지로 약속하셨다.

첫째는 내 이름으로 구하라.”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4:13-14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14:13-14)라고 약속하셨다.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서류엔 도장으로 찍어야 법적 효력이 있다. 그런데 그 도장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특별히 신임하여 모든 일을 맡긴 사람이라야 한다. 우리가 주님과 한 가족이 되든지, 주님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요한복음 15:7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이루어지진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말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말씀이 거하시지 않는다.

 

3) 사무엘은 이 기도라는 방법을 통하여 나라를 구했다. 나라를 새롭게 만들었다. 백성들도 모두 새로워졌다. 이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기도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노인도 어린이도 할 수 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 할 수 있다. 목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도 다 할 수 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기도할 수 있다. 또한 건강하거나 병들었거나 모두 기도할 수 있다. 심지어 벙어리도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목소리를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들으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신다.


기도는 언제든지, 또한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쉬운 방법을 주셨는가? 그런데 인간들은 가장 쉬운 길은 얕보고 자꾸 어려운 길을 찾으려고 하니까 오히려 그 길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4) 기도를 통하여 나라를 살려낸 예는 수없이 많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초기에 홍해를 건너고 처음 만난 적은 아말렉이었다. 그때에 모세는 산에 올라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였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졌다. 그러나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자꾸 내려왔다. 이것을 본 아론과 훌이 모세를 바위에 앉혀놓고 양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잡아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었다(17:10-13).


유대의 여호사밧 왕은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자손인 에돔족의 침입을 받았을 때에 성전에 나아가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복병을 일으켜 적군을 물리쳐 주셨다(대하 20:22).


히스기야 왕 때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큰 군대를 끌고 쳐들어왔다. 그는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사 하루 사이에 185,000명을 쳐서 멸하셨다. 앗수르 왕은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였으나, 아들들이 그를 칼로 죽였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기도하면 당신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승리를 맛보게 된다(37:36-38).

 

2.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해야 한다.

6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하니라.”

 

1)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깨닫고 솔직하게 회개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 요나의 전도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왕으로부터 어린이까지 모두가 회개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니느웨성을 멸망시키려던 뜻을 돌이켜 용서하셨다. 그뿐이 아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장차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라.”(12:41)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이렇게 크게 보신다.

 

2) 회개란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회개는 세례다. 그런데 그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벧전 3:21)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인간들은 회개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왜 그럴까? 마귀가 우리의 방향을 돌이키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3) 회개란 자기 속에서 죄를 몰아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때에 단단히 다짐을 받아놓으셨다. 곧 그 땅의 원주민들을 다 진멸하라는 것이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그 땅을 취하여 거기 거하라”(33:51-53). 만일 다 몰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 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55-56). 얼마나 무서운가? 그래도 이스라엘은 실패했다. 결국 그들의 침략을 받아 끝없이 고통을 당해야 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과의 문제로 편할 날이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는다.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의 마음속에도 가나안 일곱 족속과 같은 죄악들이 가득하다. 만일 우리가 이것들을 다 몰아내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죄들이 계속하여 우리를 괴롭히고, 나아가 하나님이 그것들을 진멸하시려던 계획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우리가 진멸을 당하는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4) 누가 회개하기를 제일 싫어할까? 교만한 자들이다. 자존심이 강한 자들이다. 잘난 자들이다.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하는 자들이다. 인간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다. 세상적인 것을 자랑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 서기만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우선방향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교만하고 자존심이 강한 자들은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어느 곳에 가든지 높임 받기를 좋아하고,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고, 천국은 자기들의 전유물인 양 생각한다. 특히 그들은 자기들만이 옳다는 거짓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 2:5에서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이런 무리들이 메시야를 가장 싫어하였고, 어리석은 백성들을 선동하고, 정치 지도자를 협박하여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말세가 될수록 인간들은 더욱 강팍해지고 교만해진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 말의 인플레이션이 심해진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써야 한다. 옛날에 간호원이라고 하던 것을 이제는 간호사라고 해야 한다. 운전사는 기사로, 식당의 웨이터는 아가씨에서 언니, 그리고 결혼한 여자들에게는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개역성경 개정판에는 소경을 맹인으로, 절름발이를 다리 저는 사람으로, 문둥병자를 나병환자로, 귀머거리는 청각장애자로 바꾸었다.

 

5)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 말도 귀 담아 들어야 하는데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들으면 어떻게 될까? 문제 해결의 길, 우리가 생명을 얻는 길은 아주 쉬운 곳에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어리석어서 그 길을 발견하려고도 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만 찾고 있다. 지난 2002년 고국에서 그 11년 반 전에 실종되었던 개구리 소년 다섯 명의 시신을 찾았다고 해서 한참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 집에서 십 리도 안 되는 산에서 발견되었다. 가까이 두고도 오래도록 찾지 못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 자기를 낮추는 것이 겸손한 사람에게는 가장 쉬운 길이다. 그러나 교만한 자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길이다.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다(4:6).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야 자기를 낮출 수 있다. 사람 앞에 서면 절대로 자기를 낮추지 못한다. 잘난 사람을 보면 질투하게 되고, 못난 사람을 보면 멸시하게 되는데, 어떻게 자기를 낮출 수 있겠는가? 하나님 앞에 선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들고 자꾸 읽어야 한다. 이 말씀 앞에서 자기를 비추어보아야 한다. 성경은 거룩한 경전()”이지만, 또한 거룩한 거울()”이기도 하다. 성경이 아니면 인간은 결코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아야 우리는 자기를 낮출 수 있다. 찬송가에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붙은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라고 하였다.


성령을 받아야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성령이 오시면 제일 첫째로 하시는 일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16:8)이다.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살 때에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고, 지혜가 생기고, 죄가 무엇이고 의가 무엇인지 깨달음이 온다.

 

3.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영적 지도자인 사무엘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백성들은 왜 기도도 제대로 못했는가? 그들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사무엘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도 들으셨다. 그러나 그 사무엘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은 한다. 그도 늙으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우리가 영적 지도자 한 사람만 바라고 자기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항상 위험 속에 버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영적 부흥이 필요하다. 내가 먼저 변화를 받아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 2003, 미국은 이락과 전쟁을 하였다. 미국의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막강한 군사력을 믿고 이락 같은 나라들을 응징하겠다고만 할 것이 아니었다. 먼저 이 나라의 도덕적 영적 타락상을 회개해야 한다.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어리석고 교만한 자는 남을 원망하고 복수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히 자기를 살피고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긍휼을 간구한다. 미국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영적 부흥을 일으키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 땅에 만연한 죄악들을 회개하고 몰아내는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신다. 그런데 미국이 회개할 수 있을까? 영적 부흥을 일으킬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 이 문제와 종교를 연관시키지 말라는 목소리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유대교와 회교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미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그런데 최선의 길은 가지 못하고 차선의 길로 택한 것이 전쟁이다.

 

2) 그러나 이 전쟁이 장차 얼마나 더 엄청난 불행을 몰고 오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밝히 보여주고 있다. 곧 계시록 16장에 아마겟돈 전쟁이 나오지 않는가? 세상은 지금 그리로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16:12-14).

그런데 회개하기는 싫고 전쟁하기는 쉽다. 전쟁을 하자고 하면 다 수긍하지만, 회개하자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회개도 하지 않고, 전쟁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테러범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미국을 얕보아 곳곳에서 미국인들에 대한 테러와 살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인들은 결국 최선의 길은 버리고 차선의 길을 찾게 되는데, 이것이 전쟁의 길이요, 결국 이 세상은 멸망을 향해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이 우리를 왜 미국에 보내셨는가? 미국을 살리라고 보내신 것이 아닌가? 미국이 살면 세계가 산다. 그러나 미국이 무너지면 세계가 무너진다. 먼저 우리 한국 사람들부터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 이 세상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처녀들도 모두 졸며 자고 있다. 과연 누가 깨어서 이 나라를 지킬 것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자. 그 위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그 위에서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그 위에서 들려주시는 진리의 음성을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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