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nah
사랑하며 살기(gracenah)
Washington 블로거

Blog Open 07.07.2008

전체     456774
오늘방문     29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55 명
  달력
 
15. 하나님의 의냐, 사람의 의냐?
03/24/2020 01:51
조회  229   |  추천   3   |  스크랩   0
IP 73.xx.xx.127

15. 하나님의 의냐, 사람의 의냐?

(로마서 10:1-4)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은 특심했지만, 그 열심이 지식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몰랐다. 대관절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주기도문에는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중요한 말씀들이 나오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의라는 중요한 단어를 추가해야 하겠다. 하나님의 의를 알고 그 의를 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였기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불행한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도 마땅히 이를 경계로 삼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승리로운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다.

 

1. 하나님의 의의 중요성

 

1) 하나님의 의를 모르면 큰 불행을 초래한다. 본문을 보자. 이런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세가 될수록 더 심해진다. 어떤 불행이 오는가? 첫째로 사람들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한다. 강팍해지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적군과 아군을 분별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과 마귀를 분별하지 못하였다. 마땅히 따라야할 하나님을 배척하고, 절대로 따라서는 안 될 마귀를 오히려 추종하였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요, 또한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2) 호세아 4:6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을 때에 어떻게 불행하게 되는가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곧 첫째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하셨고, 둘째는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라고 하셨고, 셋째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식이 있는 백성이 되면 그 말씀과 반대로 복들이 임하지 않겠는가? 더욱 흥하게 되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거룩한 직무를 감당하게 되고, 자녀들이 하나님께 기억하신 바 되어 형통하는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3) 예수님은 의식주 문제보다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6:31-32에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하시고는 이어서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하셨다.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분별하여 순서를 바르게 하면 지혜로운 사람이요, 복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순서를 잘못하기에 예의를 잃고, 사랑을 잃고, 버림을 당하게 되지 않는가?

 

4)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의인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 소돔에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하였다(18:32). 말이 열 명이지, 실은 한 명도 없었다. 또한 예루살렘에는 의인 한 명이 없어서 멸망하였다. 하나님은 그 한 명이라도 찾아보라고 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5:1). 그러나 불행하게도 의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의인이 있어야 나라가 견고해진다. 의인이 없으면 나라는 저절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2.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는 어떻게 다른가?

 

1)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도록 훨씬 높다. 이사야서 55:8-9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라고 하였다. 하늘과 땅으로 다르다. 곧 인간의 의는 땅에 속한 것이고, 하나님의 의는 하늘에 속한 것이다. 인간의 의는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의는 온 인류를 위한 것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2) 사람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 이사야서 64:6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찬란한 태양 광선처럼 눈부시게 비친다. 그 의가 변화산 위에서 밝히 나타나지 않았는가! 예수님이 입으신 그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17:2). 장차 주님이 백마를 타고 임하실 때에 그를 따르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19:14) 예수님을 따른다고 했다. 역시 의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의의 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이것을 깨달은 다니엘은 기도할 때에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입니다”(9:18). 그렇다. 우리 인간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한다. 오직 주님의 의를 힘입어 나아갈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되는가?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그리고 엄청난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에 주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렸다. 그리고 간청하였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 한편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난 후에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하게 되면서 더욱 깊이 자기의 악한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라고 부르짖지 않았는가?

 

3) 사람의 의는 자기를 옳게 보이는 것이다. 곧 자기를 과시하는 일에 목적을 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의 문제를 물었던 율법사다. 누가복음 10:29에는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하였다고 했다. 또한 멋진 기도를 드리던 바리새인이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8:11-12)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계하시기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6:1)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6장에 이 외식하는 자들의 태도를 한 마디로 하여 사람에게 보이려고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일들이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나타난다. 곧 구제와 기도와 금식이다. 이런 일들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만 보이도록 은밀히 해야 할 일들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의 의를 나타내 보이려고 공공연하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한다. 그러면서 자기를 알아달라고 한다.

 

4) 또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다를까? 인간의 의는 율법을 겉으로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율법을 마음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부자 청년을 보자. 이 청년이 주님께 와서 묻기를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였다. 예수님이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라고 대답하시자, 그가 다시 묻기를 어느 계명이오니이까?”하였다.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라고 대답해 주셨다. 그러자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며 반문하였다. 자기는 다 지켰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다 잘 지켰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어라.”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이 청년은 마음으로부터 지킨 것이 아니었음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두 그렇게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들을 무섭게 책망하셨다. 예수님이 그들을 책망하시던 그 음성을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늘 살펴 주님 앞에 회개하며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23:25-28).


산상수훈을 끝내시면서 예수님은 경고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리라”(7:21-23), 주의 이름으로 큰일들을 많이 했어도 나의 의가 나타나면 안 된다. 나는 죽고 항상 그리스도만이 나타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나의 의가 죽을 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또한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1:17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하였고, 3:21-22에는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시려고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를 옮겨 죄로 삼으시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의를 옮겨 의로 삼으셨다. 고린도후서 5장 마지막 절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라고 말씀한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의 일곱 마디 말씀 중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씀을 기억하는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정말로 예수님이 버림받았을까? 그렇다. 왜 그렇게 버림 받으셔야 했을까? 우리의 죄를 온통 뒤집어쓰신 모습을 상상해 보라. 하나님이 보실 때에 예수님에게서는 죄로 가득한 것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버림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1:29). 당신의 죄를 주님께 드려라. 그분이 지고 가시는 짐 속에 당신의 죄 짐도 있어야 한다. 그분이 아니면 아무도 우리의 죄 짐을 짊어질 사람이 없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11:28)라고 부르시지 않는가? 그분께 드리고 나면 당신은 아주 홀가분해진다. 날아갈 듯이 가벼워지고 기뻐진다. 그렇게 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렇게 되어야 신앙의 경주를 잘 할 수 있다. 무거운 짐을 지고는 경주를 할 수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1:30에서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 선언하였다.

 

3.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의를 옷 입는 사람이 될까?

 

1)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사는 사모하는 사람에게만 주신다.

시편 107:9에는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을 채워주신다.”고 하였고, 시편 34:10에서는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하였다. 또한 고린도전서 12:31에서는 너희는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라고 약속하였다.


사모하는 마음이 언제 들어오는가? 남들이 그 좋은 것을 가진 것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껴야 한다. 운동선수들은 자기보다 뛰어난 선수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아 더욱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물론 공부를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또한 남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본다든지, 남이 좋은 집에 사는 것을 보면 나도 그런 차를 사야 하겠다, 나도 그런 집을 사야 하겠다고 마음먹게 되지 않는가! 자극을 받아야 한다. 물론 그 자극이 세속적인 것일 때에는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간다. 그러나 그 자극이 신령한 것일 때에는 우리는 거룩한 은혜의 자리로 이끌어준다.


가치를 바로 알아야 사모하게 된다. 개돼지 같은 짐승들은 가치를 모른다. 사람의 탈은 썼어도, 또 교회에는 다닌다고 하여도 가치를 모르는 짐승 같은 자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7:6)라고 말씀하셨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진정으로 사모하는 사람은 희생할 줄 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바라고 예수님께 왔지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하시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근심하며 떠나갔다(19:21). 왜 그랬을까? 재물에 대한 욕심이 첫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의 속에 진정으로 영생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앙은 결단이다.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9:62)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시면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13:44-46)라고 하셨다. 아니,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지만 살 수 있단 말일까? 절반만 팔면 안 될까? 그러니까 부자는 천국에 가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듣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결단하자. 하나님이 주시는 이 모든 은혜를 가볍게 알지 말자. 참으로 귀하게 알아야 한다.

 

2) 회개해야 한다.

회개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누가복음 7:29-30에 보면 요한의 세례를 받은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시려고 오신 분인데, 예수님의 말씀을 받으면 하나님의 의를 입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입을 수 없다.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은 회개함을 통하여서만 가능한 일이다(딤후 2:25).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도 진리를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담을 넘어가는 자요, 강도다. 회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정문이다. 자기의 의가 얼마나 초라하고 더러운 것인가를 깊이 깨달아서 회개해야 한다. 그때에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진리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의를 알게 된다.


모기는 사람의 살에 자기 주둥이를 박아 피를 빨아먹고 대신에 독을 넣어준다. 그러므로 모기에게 물리면 병에 걸리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뇌염 아닌가? 사실은 모든 인간들이 그와 비슷하다. 사람을 잘못 사귀면 이렇게 큰 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죄를 가져가시고 대신에 하나님의 의를 넣어주신다. 언제 우리의 죄를 가져가실까? 내 죄를 주님께 내놓고 드릴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 집의 쓰레기를 청소차가 와서 가져간다. 그러면 우리는 먼저 쓰레기통을 길가에 내놓아야 한다. 내놓지 않으면 차는 그냥 지나간다. 결코 우리 집에 들어와서 가져가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이왕이면 청소부 아저씨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다 치워가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쓰레기통을 길가에 내놓는 작은 수고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바른 양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놀고먹으려고만 하면 되겠는가?

 

3)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곧 의식주의 문제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라고 약속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자. 하나님이 반드시 주실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을 얼마나 강조하셨던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일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7:7-11)?


예레미야 29:12-13에서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도 기도다. 당신은 하나님을 만나 보셨는가? 이런 모든 약속들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힘써 부르짖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도 나를 아신다고 하시지 않는다.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거룩한 지식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꼭 기도해야 하느냐, 그렇게 부르짖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칙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주시는 것이다. 물론 부르짖지 않아도 주시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하늘의 신령한 것은 부르짖지 않아도 주시는 일이 없다. 귀한 것일수록 그 가치를 바로 알고 기도에 힘써야 한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다”(25:2).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비밀의 세계에 들어가게 될 때에 그 기쁨과 감격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기도는 우리에게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인도해 준다.

 

4)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이 오시면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16:8)이다. 우리말의 책망이라고 번역한 헬라어의 원래 뜻은 깨닫게 하는 것인데, 꾸짖어서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인간들은 죄를 모른다. 의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야 모든 것을 밝히 깨닫게 된다.


성령의 충만을 다른 말로는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라고 말한다(13:14). 그리스도로 옷 입으면 나의 의는 나타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 나타나지 않겠는가? 나의 속에는 성령이 충만하고 겉에는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된다.

이것을 고린도후서 5:2에서는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하였다. 또한 계시록 19:8에서는 우리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는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였다.


 


"성경 공부 (나균용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블로그의 인기글

15. 하나님의 의냐, 사람의 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