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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의인의 길이냐, 악인의 길이냐?
03/19/20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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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의인의 길이냐, 악인의 길이냐?

(시편 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은 구약의 찬송가책이다. 하나님은 찬송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시편 22:3에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하였다. 시편에는 다윗의 시가 가장 많이 들어 있다.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면서 항상 찬송을 불렀다. 그가 작사 작곡하여 부르던 찬송이 후에 시편이라는 성경이 되었다. 우리도 늘 찬송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그런데 그 시편을 시작하는 첫 편의 노래가 오늘의 본문이다. 이 시는 너무도 유명하여서 거의 모든 성도들이 암송하고 있지 않은가! 이 시를 통해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살펴보자.


시편을 시작하는 첫마디는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시작하는 팔복의 모든 설명들이 복이 있나니라는 말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을 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시는 누가 복이 있다고 말하는가? 그렇다. 의인이다. 반대로 악인은 저주를 받는다. 그래서 이 시의 결론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한다.”라고 하였다.

 

1. 의인과 악인을 비교하여 보자.

 

1) 의인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악인은 복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눈과 사람이 보는 눈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곧 의인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복이 있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복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악인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복이 없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복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착각한다. 악인이 더 잘되는 것 같고, 의인이 망하는 것 같다. 성경에도 악인의 형통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37:7; 73:3; 21:4; 23:17; 24:1,19). 그러니까 겉으로만 보아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왜 악인이 형통할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그렇게 된다. 신명기 28:43이다.: “너의 가운데 우거하는 이방인은 점점 높아져서 네 위에 뛰어나고 너는 점점 낮아질 것이라.” 오늘날 미국에 왜 이렇게도 원수가 많아질까? 미국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그 죄가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복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는 한참 지나보아야 알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 복을 받은 사람에게는 자손 천 대까지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고, 악인들은 자손 3,4대까지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다(20:5-6; 34:7). 그러니까 금방은 잘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히브리서 13:7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아라.”라고 하였다. 교회의 선생이라고 하여서 무조건 따르지 말고, 그들의 종말을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복을 받는 길로 가야 한다.

 

2) 의인은 좋은 친구를 사귀고, 악인은 악한 친구를 사귄다. “친구를 보아 사람을 안다.”

의인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의인은 의인을 찾는다. 의인은 겸손한 사람을 사귄다. 의인은 참 믿음의 사람을 가까이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의인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그 뜻을 행하기를 기뻐한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다. 악인과 사귄다. 악인들의 꾀를 즐겨하고 죄 짓는 일을 따라간다. 모이면 오만한 말을 하고, 자기 자랑에 열을 올린다. 그러니까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자기를 높여주는 자리만 찾아간다. 그러나 그 종국은 멸망이다.

 

3) 의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며 멀리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 1:18).


의인과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르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생활에 힘쓰지만,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그 말씀을 대적하며, 그 말씀을 없애려고 애를 쓴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부정하고, 창조주는 없다고 하면서, 인간도 저절로 생겼다고 믿든지, 원숭이가 진화되어서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런 거짓된 가르침을 세상 사람들은 더욱 좋아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에 육신을 기쁘게 해 주는 소리만 찾아간다. 그러니까 진리에는 어두워지고, 이것이 계속되면 진리를 대적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본의 아니게 악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무슨 악한 행동을 하여서 악인이 아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는 이미 악인이다.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는 이미 마귀의 종이 되어 있는 것이다.

 

4)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아서 그의 행사가 다 형통하지만악인은 그렇지 아니하여 마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된다.

과실이 맺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열매가 맺히게 되면 큰 형통이 있다. 그러나 악인은 근본적으로 열매가 없든지, 또는 나쁜 열매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더 잘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결국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하신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가볍다는 말이다. 무게가 없고, 깊이가 없어서 경박하다. 시편 62:9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라고 하였다.


허무하다는 말이다. 평생토록 애쓰고 힘써서 쌓아놓은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만다. 부자가 평생토록 고생하여 모아놓은 재산이 자식들의 유산 싸움으로 인해 다 날아가 버리니 재산도 없어지고, 자식들은 서로 원수가 되고 만다.


가치가 없다. 겨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거짓되다. , 또는 뉘에는 알맹이가 없다. 겉으로만 보면 알맹이가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속을 보면 알맹이가 없다. 그러니까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진다고 하셨다.

 

5) 의인은 심판을 받지 않으나,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 예수님이 친히 부활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전장에 보내 죽게 했다. 그가 비록 사람들에게는 자기의 죄를 감출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을 행하셨다. 불륜의 자식이 죽고 말았다. 그의 자녀, 이복 남매 사이에 간음 사건이 생겼다. 조금 지나서는 아들들 간에 살인 사건이 생겼다. 조금 더 지나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반역을 일으켰다. 나중에는 아들들 사이에 왕권 경쟁이 일어나서 한 아들은 죽어야만 했다. 죄는 잠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저지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 인생의 지혜를 가르치는 전도서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12:14)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하나님의 심판에 다음 세 가지의 중요한 원칙이 있다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 또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무슨 일을 행하든지 그대로 갚음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의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16:27)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2:6)고 선언하였다. 또한 자기를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6:7)라고 경고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은 공정하게 찾으신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12:47-48).

세상의 법으로도 돈을 많이 번 사람은 누진세율(累進稅率)을 적용하여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적게 번 사람은 적게 낸다. 하나님의 법도 마찬가지다. 부자와 권세자라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뽐내지 말고 하나님 앞에 더 큰 책임이 있음을 늘 기억하여 더욱 많이 드리고, 더욱 충성해야 한다. 그러기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신 것이다.


선생에게는 더 큰 심판이 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3:1).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우리에게 먼저 하신다”(벧전 4:17). 나아가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신다”(9:6).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선생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목사는 평신도들보다 훨씬 더 큰 심판을 받는다. 목사니까 저절로 천국에 가는 줄로 알면 큰 착각이다. 장로도 마찬가지다. 어린이같이 되어서 항상 은혜를 사모하고 배우기에 힘써야 한다.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더욱 진리를 사모해야 한다. 그런데 잘못된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이고 다 아는 척하면서 함부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한다. 예수님 당시에 제사장들은 물론이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두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독사의 자식들”(23:33)이라고 무섭게 책망하셨다.

 

6) 6절이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니까 망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정하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하나님이 알아주신다는 말이다. 한식(寒食)이라는 날이 있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45-6일쯤 된다. 자손들이 조상의 산소를 찾아 성묘하는 날이다. 옛날 진()나라의 현인 개자추(介子推)라는 사람이 큰 공을 세웠건만 당시 중국을 통일한 한 나라의 유방이 논공행상을 할 때에 깜빡 잊어버리고 그에게 아무런 상도 주지 않았기에 마음에 상처를 받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숨어 지냈는데, 나중에 황제가 그를 불러내려고 하였으나, 끝내 나오지 않자, 그를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는데, 그래도 나오지 않고 불에 타서 죽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이 한식일에는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알아주지 않는 일이 이렇게 상처가 되는 일이다. 그런데 심판날에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하여도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신다면 어떻게 될까? 주님의 이런 대답은 미련한 다섯 처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하였다(25:11-12).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기고 그 법을 사랑하여 지켜야 한다. 내 마음대로 신앙생활하면 반드시 무서운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이 옳다고 평가해 주신다는 말이다. 역사상에 수없이 많은 의인들이 이 세상에서는 모진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행동이 옳은 것을 굳게 믿고서 살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의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악인들은 자기의 생각에 자기가 옳은 줄로 여기고 산다.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사람들의 평가에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칭찬에 좋아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착각 속에서 산다. 잠언 14:1216:25에 똑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는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라는 말씀이다.

그뿐이 아니다. 잠언 4:19에는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악인은 자기가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지만, 실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며, 그의 일을 이루어주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멀리서 그를 옳다고 평가해 주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옳은 사람들을 지켜보시며, 그들과 동행하신다. 하나님은 의인들이 고난을 당할 때에도 지켜주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신다. 그러므로 의인들은 기도생활을 즐겨한다. 기도할 때에 항상 새 힘을 받는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귀신들려서 점을 치는 여자를 고쳐주었다. 그러자 그 여자의 주인이 매우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실컷 두들겨 패고는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큰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하였다. 그랬더니 한밤중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면서 옥터가 움직이고, 감옥문이 열리고, 그들을 매어두었던 것이 벗겨졌다.

악인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늘 의식하면서 살지만, 의인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믿음으로 산다.

 

2.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의인의 길을 갈 수 있을까?

 

1) 의인이 되면 의인의 길을 가지만, 악인의 상태에 그대로 있으면 악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의인이 되어야 한다.


죄를 깨달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은 나의 죄를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다. 전도서의 결론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12:13-1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어야 한다. 그가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믿을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은혜에 늘 감격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인간의 죄는 도저히 사함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리하여 내가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나를 위해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 성령을 받아야 거듭나게 되고 새 사람이 된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옛 사람 그대로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에서는 두 가지의 변화가 있다고 말한다. 곧 물리적 변화 (物理的變化)와 화학적 변화(化學的變化). 물리적 변화는 모양의 변화요, 위치의 변화다. 그러나 화학적 변화는 질적인 변화다. 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떤 약품 같은 것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영적 변화(靈的變化)를 말한다. 그러니까 영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도 약품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 약품이 바로 성령이다.

 

2)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은 의인의 길을 가지 못한다. 어린아이가 자라가는 것을 보라. 적어도 세 가지 방면에서 자라야 한다.


첫째는 육신의 성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음식을 잘 먹어야 한다. 그리고 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사람이 된다. 둘째로는 지식적 성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젊어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나중에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셋째로는 인격적 성장이다. 이것은 훌륭한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사귀면서 그들의 인격을 배워야 한다. 또한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들의 삶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영적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첫째는 음식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한다. 특히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음식도 자연식을 하자는 말이 많이 힘을 얻고 있다. 가공한 음식보다는 자연식이 좋다. 특히 fast-food라고 하여 요리하기 쉽고, 빨리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음식은 우리 건강에 해롭다고 한다. 오늘날의 설교도 그렇다. 귀에 듣기 좋은 것은 우리의 영적 건강을 해치는 설교다. 설교도 자연식이어야 한다. 순수한 말씀이어야 한다. 이 순결한 말씀을 들어야 눈이 밝아진다(19:8). 그러니까 가장 순수한 말씀은 성경 그대로를 읽고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요, 내 발의 등이며, 내 길의 등불이다(119:105). 돈을 버는 일과 자기의 쾌락을 위해서는 시간 아까운 줄을 모르고 펑펑 다 쓰면서도 자기의 영혼의 건강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인색하고 게으른 자가 된다면 그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


둘째는 운동이다. 교회에 출석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된다. 봉사도 하고 전도도 하고, 영적인 활동을 위하여 힘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적 병자가 된다. 이 영적인 병자에도 두 종류가 있다. 외관상으로도 나타나는 불구자와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속이 병들어 있는 사람이다.

육신은 건강해 보이지만, 영적인 소경, 영적인 귀머거리, 영적인 앉은뱅이가 얼마나 많은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할지 못하는 사람들이 영적인 불구자들이다. 또한 겉으로만 보면 건강한 것 같은데 속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암병이 만연해 있다. 어린아이들도 성인병에 걸린다. 전에는 없던 새로운 병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가 깨어서 영육 간에 건강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셋째는 배우는 일이다. 성경을 배워야 한다. 진리를 사모해야 한다. 기도를 배워야 한다. 전도를 배워야 하고, 봉사도 배워야 한다.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먼저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확실히 아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안다는 말은 머릿속의 지식이 아니다. 체험적인 지식이고 마음속의 지식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고전 8:1)고 한 말은 머릿속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머리통만 커지면 안 된다. 지식이 마음에 들어가서 마음이 커져야 한다. 욥기 38:36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물으신다.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넷째로는 인격적 성장을 위해 훌륭한 신앙인들과 잘 사귀어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 성경에 능한 사람, 인격이 고상한 사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들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간들 중에서만 찾으려고 하지 말고, 주님과 직접 사귀면 얼마나 더 좋을까? 성경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 사귀면서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성령과 사귀어야 한다. 항상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여기의 책망한다는 말은 깨닫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늘 우리 마음에 죄를 일깨워주시고, 의의 길을 알아서 그 길로 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면서 악인의 길을 버리고 거룩한 길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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