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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기(grace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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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빛이냐, 어둠이냐?
02/17/202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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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빛이냐, 어둠이냐?

(요한복음 3:16-21)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3:19-21)

 

빛이냐, 어둠이냐? 당신은 어느 것을 택하려는가? 물론 어둠을 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말로는 빛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을 보면 어둠을 택하고 그 가운데서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우리들 자신을 겸손히 돌아보면서 어둠을 버리고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이전에는 이 우주가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가득하였다. 드디어 하나님의 창조의 대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창조의 첫날에 하나님은 빛을 만드셨다. 그리고는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그런데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창조란 이 빛이 비치는 역사다. 공허와 혼돈과 흑암 위에 빛이 비치면 가치와 의미가 생기고 질서가 생기며 기쁨과 아름다움이 생긴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는 이 세상에 빛이 왔으나 인간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여 빛으로 나아오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빛을 미워하고 배척하여 스스로 멸망에 빠짐을 깨우쳐주고 있다.


어둠이란 단지 햇빛이 없는 자연계의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에는 더욱 깊은 뜻이 들어있지 않은가? 모든 죄와 불법이 다 어둠이다. 부끄러운 일들이 어둠이다. 남에게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이 어둠이다. 남에게 감추고 사는 일들이 모두 어둠이다. 위정자들의 부정부패가 자꾸 탄로되면서 사회가 시끄러워진다. 뇌물을 받아먹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힌다. 그것이 다 어둠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요행히 탄로 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시고 심판이 이루어지는 그날에는 아무 것도 감출 것이 없고, 또한 숨길 수도 없게 된다. 예수님은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10:26)라고 말씀하셨다.

 

1.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이 받을 복은 무엇인가?

1) 빛의 자녀가 된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오신 것을 빛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1:9-12)라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2:36에서 예수님은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어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8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라고 말한다. 또한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한다.”(살전 5:5)라고 말씀한다.


빛의 자녀는 역시 빛이다. 세상의 빛이다. 인류 역사에 빛을 남기는 사람이 된다. 장차 천국에 가서도 빛이 된다. 그러므로 다니엘 12:3에서는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치리라.”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빛에는 두 가지가 있다. 곧 태양과 같은 발광체가 있고, 달과 같은 반사체가 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빛이시다. 그런데 그 빛은 발광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고로 발광체는 아니다. 우리들은 반사체다. 그러므로 진리는 아주 명백하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야만 이 세상에서 빛이 될 수 있다. 만일 그리스도를 멀리 떠나면서도 빛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올수록 그 빛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2) 빛 가운데 거하면, 실족하지 아니한다. 실족한다는 말은 발을 헛디딘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고,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심청이의 아버지 심 봉사가 아무리 조심하며 걸어간다고 해도 개울에 빠지지 않았는가?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밤에 운전을 하게 되면 얼마나 조심스러운가? 그런데 그렇게 조심해서 간다고 해도 사고가 날 확률은 훨씬 더 크다. 예수님은 물론이고 우리도 이 세상의 빛임을 가장 강조하고 있는 성경은 요한복음이다.

9장에서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되었던 청년을 고쳐주시기 전에 먼저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9:4)라고 하시고는 소경을 고쳐주셨다.


또한 11장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시기 전에는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11:9-10)라고 하신 후에 나사로를 살리려고 떠나셨다.


12장에 가면 예수님의 죽음이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마리아에게 향유 부으심을 받으신다. 호산나 찬송 가운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예수님에게 위험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헬라인 몇 사람이 찾아와서 헬라로 가시자고 권한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라는 위대한 진리를 말씀하셨다. 이어서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12:35)라고 하셨다. 세상이 어둠에 다니기에 자기가 가는 길을 모르고 있지 않는가?


예수님은 말세에 일어날 현상을 이렇게 예언하셨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할 것이라”(24:10). 왜 그렇게 될까? 진리를 떠나서 어둠 가운데 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잘못된 것을 전혀 깨닫지도 못한다. 우리가 깨어야 한다. 성경을 깊이 상고하여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3) 빛 가운데 거하면 밝아진다. 무엇이 밝아지는가?

먼저 표정도 밝아진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된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세상을 밝게 살아간다.


마음이 밝아진다. 슬픔과 우울함은 물론 분노와 근심 걱정이 모두 물러간다. 혹시 이런 것들이 여러분들에게 있거든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는 다니지만, 실은 아직도 빛 가운데서 살지 않기 때문이로구나.”라고 빨리 깨달아야 한다. 마음이 왜 밝아질까? 천국의 빛이 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천국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14:17). 의롭게 살고 죄를 멀리하여 마음이 평안하며, 어려운 일이 있어도 주님이 아시고 더 좋게 해 주실 것을 믿으니 항상 기쁘다.


생활이 밝아진다. 남들에게 숨기고 감추거나 속이는 것이 없다. 나의 사생활을 남에게 공개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내 전화를 남들이 도청한다고 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한다. 개인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고, 개인의 인권도 지켜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부끄러운 것이 없어야 함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의무다.


영혼이 밝아진다. 영혼이 밝아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불타게 된다. 기도하기를 즐겨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즐기고, 그 말씀을 잘 깨닫게 된다. 호세아 14:9이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4) 빛 가운데 거하면 세상을 밝게 만든다. 이사야 60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60:1-3). 세상을 밝게 하니 온 세상이 다 모여온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꿈이다. 분명히 누구에겐가 이루어주실 것인데, 이스라엘 나라는 이미 그 자격을 상실하였고, 미국이 한때 그런 꿈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 영광도 스러져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 이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즘 우리나라에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 말씀들이 우리나라에 이루어질 것이 확실해진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드실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일을 설명하면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4:16)라고 하였다. 한편 바울을 불러 사도를 삼으신 주님은 그의 사명을 설명하시면서 그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26:18)라고 하셨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복된 역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아름답게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한다. 아멘.

 

5) 빛 가운데 거하면 빛의 열매를 맺는다. 반대로 어둠 가운데 거하면 어둠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잠언 9장 끝에는 어리석은 자가 지혜 없는 자에게 말하기를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고 말한다고 하였다.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음이 자기 옆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9:16-18)고 탄식한다.

에베소서 5:9에서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말씀한다.


또한 요한일서 1:7에서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라고 말씀한다. 빛 가운데서 서로 사귐으로 천국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영생의 복을 명하신다(133:3). 천국의 영광스러운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또 어떤 열매를 맺는가? 그 사람들 속에는 하나님의 씨가 있기에 그들이 의인이 된다. 지혜자가 된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 된다. 복되지 않은가?

 

2. 빛이란 무엇일까?

1) 하나님이 빛이시다. 이사야 60:20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라고 하였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라고 선언한다. 천국에는 해나 달이 필요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천국을 밝게 비추시기 때문이다(21:23).

 

2)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1:9)라고 말씀한다. 또한 예수님이 친히 이르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라고 하셨고,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12:46)라고 선언하셨다. 그뿐이 아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예루살렘에 살던 선지자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보자 곧 성령의 감동으로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그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2:31-32)라고 하였다.

 

3)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편 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노래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는 곳에 죄가 드러나며 모든 악한 것이 찔림을 받고 멀리 쫓겨난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는데, 그가 참 빛이시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빛이요, 그 말씀이 세상을 밝게 만든다. 우리가 그 말씀 안에서 살면 실족하지도 않고 영생을 받으며,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된다.

 

4) 성도들도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5:14)라고 말씀하셨다. 진실로 인류 역사상에 큰 빛을 남겼던 많은 사람들은 그 대다수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우리가 성경에서 그런 사람들의 예를 좀 찾아보자.

사도행전 13:47에는 주께서 바울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라고 하셨다.


에베소서 5:8에는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말씀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5에는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은 임종을 앞두고 자기의 일생을 회고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셨던 말씀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말하는데 저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삼하 23:4)라고 말하였다. 과연 그 말씀대로 자기의 삶이 이루어진 것을 감사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자기를 빛으로 착각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말씀도 있다. 로마서 2:19-20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라고 하였다. 그들은 자기를 과대평가하여 자화자찬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으니 딱한 일이다. 혹시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나 않을까? 빨리 깨달아 어둠에서 나와야 한다. 빛 가운데 거해야 하겠다.

 

3. 세 종류의 거룩한 빛이시다. 우리들도 이 빛이 되어야 한다.

1) 생명의 빛이다. 요한복음 1:4-5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하였다. 또한 8:12에서는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하셨다. 구약에도 이 생명의 빛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욥기 33:30그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을 그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였고, 시편 56:13에는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하였다.

 

2) 진리의 빛이다. 시편 43:3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간구한다. 또한 시편 119:105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친히 자기가 진리이심을 밝히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14:6)라고 선언하셨고, 빌라도 앞에서는 내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고 왔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소리를 듣느니라.”(18:37)라고 하셨다.

한편 예수님은 마귀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다.”(8:44)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귀와는 적대 관계에 있으셨다. 이를 바울은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가 되겠느냐?”(고후 6:15)라고 묻는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이 진리의 빛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을 이기고, 거짓을 분별하여 물리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될 것이다.

 

3) 의의 빛이다. 시편 37:6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였고, 잠언 4:18에서는 의인의 길은 돋는 햇빛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또한 잠언 13:9에서는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그 결론으로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어라.”(13:43)라고 하셨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에서는 영혼의 빛 예수여 가까이 비쳐 주시고 이 세상의 구름 일어나 가리지 않게 하소서라고 노래한다.

 

4. 어떻게 해야 빛 가운데 거할 수 있을까?

 

로마서 13:12이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바울은 캄캄한 밤 같은 나날을 보냈지만 늘 새 아침의 햇빛을 보면서 살았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

 

1) 먼저 우리는 빛을 향하여 문을 열어야 한다.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이 우리 문 앞에 오셔서 문을 두드리신다(3:20). 누가 빨리 문을 열어 주님을 맞이할까?

문을 연다는 말은 주님의 책망을 달게 받는 것이다. 주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신다(3:19). 책망과 징계를 통해 겸손히 회개하여 자기를 고치고 주님 앞에 어엿이 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문을 연다는 말은 기도한다는 말이다. 주님과 한 식탁에 둘러앉아서 나누는 대화는 모두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려는 주님의 따뜻한 사랑의 발로다.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쏟아서 부어드려야 한다. 그때에 주님이 기뻐하시며, 그 모든 것을 처리해 주신다.


동시에 이 말은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새로운 진리를 깨닫고, 주님의 말씀 위에 튼튼히 서게 되는 것을 말한다. 주님이 오셔서 이루어진 식탁은 밥을 먹는 식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먹는 식탁이다.


문을 연다는 말은 자기를 부인한다, 또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이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주님이 살아나시게 되기 때문이다. 빛이 살아나면 마음이 밝아지고 영혼이 맑아진다.

 

2)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그래야 영의 사람이 된다. 영의 사람이 되어야 영적인 일을 깨닫고 주님을 바르게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오히려 주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다. 성령이 오셔야 하나님의 말씀이 새록새록 깨달아진다. 깊은 은혜의 세계,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찬란한 새 세계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더욱 충성스럽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화된다.

 

3)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두 명 이상이 합심하여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 화목이 아닌가? 하나님과의 화목, 이웃과의 화목, 나아가 원수와의 화목이 이루어져야 한다. 좋은 신앙의 친구를 가진 사람은 늘 새 힘을 얻고 바른길을 갈 수 있지만, 좋은 친구가 없는 사람은 그 자리에 나쁜 친구가 모이게 된다.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자(고전 12:31). 이 성 안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이 있다(18:10).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야 한다. 귀를 기울여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훈련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것을 따라가지 말고, 진심으로 주님을 사모해야 한다. 주 안에서 늘 생명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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