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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람이냐, 짐승이냐? ②
01/25/202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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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람이냐, 짐승이냐?

(시편 49:12,20)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 사람과 짐승이 무엇이 다른가?

 

1)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2) 사람에게는 영이 있지만, 짐승에게는 영이 없다.

3) 사람에게는 이성(理性)이 있지만, 짐승에게는 이성이 없다.

성경에 이성 없는 짐승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첫 번은 베드로후서 2:12에서 옛날 노아 때와 롯의 때에 멸망당했던 사람들을 가리켜 말한다.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였다.”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될 때에 이 세상이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이 된다고 일찍이 말씀하셨다(17:26-30).


또한 유다서 10절에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라고 하였습. 이성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함부로 훼방한다고 하였다. 본능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모두를 배척하고 정죄하고 함부로 훼방한다.


사람들은 이성을 잘 발달시키고 활용함으로 철학을 비롯하여 모든 과학 문명을 발달시켰다.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사리를 판단하고 인생의 방향을 세워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성은 어떻게 해야 바르게 될까? 답은 간단하다. 성령이 함께하셔야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받아야 한다. 요한복음을 시작하는 말씀인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말씀은 헬라어로는 태초에 로고스가 계시니라.”이다. 로고스를 우리말 구역성경에서는 도()라고 번역하였는데 철학적으로는 이성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신학적으로는 우주의 원리다. 그 로고스가 우리에게 와야 우리가 드디어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만일 로고스가 없으면 우리의 이성은 방향을 잃고 만다.

 

2.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만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의 문제다. 짐승은 깨닫지 못한다. 오직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까? 사람이 아무리 존귀한 자리에 있어도 그 자리나 계급장이 사람을 존귀하게 해 주지 못한다. 오직 깨닫는 사람이 될 때에 참으로 존귀한 사람이 된다.

 

1) 죄를 깨달아야 하고, 그 결국인 하나님의 심판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의 죄를 깨달아 회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의 죄는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보고 비판하다가 스스로 멸망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7:3)라고 책망하셨다. 자기를 볼 줄 아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자기를 발견한 사람은 가장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이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허무함과 함께 참된 지혜가 무엇인가를 깨우쳐주는 책인 전도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12:13-14).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누구나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은 심은 대로 거둔다.” 또는 행한 대로 받는다.”는 원칙이다. 선을 행한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고, 악을 행한 자는 반드시 화를 받는다. 물론 일시적으로만 볼 때에는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좀 더 오랜 세월을 두고 보면 그 원칙이 어김없이 이루어짐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도 다 그렇게 가르쳤다. “사람이 선한 일을 행했다고 해서 복이 금방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가 스스로 멀어진다. 또한 사람이 악을 행했다고 해서 금방 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복이 스스로 멀어지게 된다.”고 했다.


세상의 역사도 이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왕과 백성들이 법을 잘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면 그 나라는 점점 더 부강하게 되었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힘없는 백성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르며 자기를 법 위에 세울 때에는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백성의 원성이 그치지 않으며, 나라에 죄악이 들끓게 되고 결국에는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그러면 성경은 인과응보(因果應報)만을 말하는가?”라며 반문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성경이 인과응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고난에는 죗값으로 당하는 고난도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연단시켜 더욱 정결하고 아름다워지게 하는 고난도 있고, 예수님의 고난처럼 남의 죄를 대신하는 고난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원칙이다. 그리고 그 원칙은 짧은 시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의인들은 모든 것을 이론적으로 따지지 않고 자기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산다. 내 길을 맡기고 살면 편안하고 든든하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니 항상 행복하다. 우리가 이런 깊은 은혜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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