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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초상집과 잔칫집 ①
01/24/202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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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초상집과 잔칫집

(전도서 7:1-4)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1. 인생살이의 두 기둥 - 초상집과 잔칫집

 

1) 이 세상에는 잔칫집이 많이 있다. 결혼잔치, 환갑잔치, 개업잔치, 대통령 취임잔치와 여러 가지 축하할 일들이 생겼을 때에 벌이는 잔치가 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특히 아기가 출생한 일을 말하고 있다. 모든 잔치는 근본적으로 출생이다. 아기의 출생, 새 가정의 출생, 새로운 단체의 출생, 새로운 임금의 출생 등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초상은 그러한 잔치의 종말이다. 이별이다. 또한 죽음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영원히 떠나보내는 것이다.

 

2)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웃의 경조사에 반드시 찾아가 인사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때에는 반드시 부조금을 드리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다. 그렇게 하여 상부상조하는 정신을 길렀다. 여기에서 계()라는 것도 생겼다. 옛날 가난하게 살 때에 갑자기 초상이 나든지 하면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날 한시에 초상집과 잔칫집 두 곳 중 한 곳에 꼭 가야만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느 집으로 가겠는가? 체면상으로는 나와 더 가까운 집에 가야 하고, 또는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집에 가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체면치례 말고 우리의 본심을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은 잔칫집을 택한다. 그러나 나이가 든 사람들은 초상집을 찾아간다. 왜 그럴까? 남의 일같이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도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한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정말 그럴까? 글쎄... 지옥에 갈 사람이 죽는 것이 어찌 복된 일이겠는가? 천국에 갈 사람이 죽어야 복이 아닐까?

 

3) 3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우리 교회 청년들의 여름수양회에서 자기들이 만든 순서 중에 유언 쓰기라는 것을 했다. “만일 오늘밤에 내가 죽는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각 사람에게 유언을 쓰도록 하였다. 내가 처음 느낄 때에는 그런 프로그램이 청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사람씩 나와서 자기가 쓴 유언서를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대다수가 자기들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말로 시작하였다. 자신을 돌아보니 잘했다고 남에게 자랑할 일보다는 잘못했으니 용서를 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부모에게 유언을 한 사람, 동생에게 유언을 한 사람, 친구에게 유언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까 남편이나 아내에게 유언을 한 사람은 없었지만, 기혼자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면 배우자들과 자녀들에게 유언을 할 것이다. 그렇게 유언할 말씀들을, 죽기 직전에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질까? 여하간 그 시간은 엄숙한 시간이었다. 재미있게 웃고 즐기기만 좋아할 것 같았던 청년들에게 이 시간은 자기의 삶을 돌아보며 인생의 문제를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청년들의 발표 태도도 매우 좋았다. 마음들이 심각해 진 것 같았다. 우리도 종종 더 늦기 전에 좀 심각한 마음, 엄숙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유언서를 작성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할 수 있는 대로 여러 사람들에게 한 번 써 보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우리는 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한다. 오늘 이 시각에 우리 중에서 자기의 일생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참 아름답게, 그리고 보람 있게 잘 살았다.”라고 기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혹시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좀 더 솔직해 보는 일이 얼마나 복된 일일까?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의미 없이 왔다가 의미 없이 간다. 의미 없이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속이면서,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산다. 뒤늦게 깨달아서 후회해 보지만 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도 없게 될 것이니 어찌할까?


나는 미국에서 살고 있다. 미국에는 왜 왔는가? 잘 살아보자고 온 사람은 많아도 잘 죽어보자고 온 사람들은 찾기 힘든다. 모두가 잔칫집만 바라보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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