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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벌리힐스 6000만달러 저택에 사는 한인 갑부
05/18/2014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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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벌리힐스 6000만달러 저택에 사는 한인 갑부[미주중앙] 입력 2011.07.09 00:54

              

코리홍(한국명 홍성수·55·사진) 유니콤시스템스 대표는 베벌리힐스 '픽페어(PickFair)'에 산다. 픽페어는 저택에 붙여진 이름. 리스팅 가격만 6000만 달러에 방수는 22개, 면적은 2.7에이커다.

'이런 집도 있구나' 입이 벌어졌다. 홍 대표는 현재 18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소유 부동산 가치만 따져도 1억 달러다. 미국땅을 밟은 지 35년 만에 맨손으로 시작해 이룬 성과다. 소유회사들의 총 매출은 계산하기도 버겁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감탄했다.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 비결은 없다. 성공과 돈을 위해 일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니 되더라며 웃는다.


무성영화시대 최고 배우였던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사들여
'서부의 백악관'이라 불렸던 2.7에이커 면적·방 22개집


◆이런 집도 있구나

홍 대표의 저택 '픽페어'는 20세기 초 무성영화시대 최고 스타였던 더글러스 페어뱅크스가 여배우인 메리 픽포드와 결혼할 때 사들이면서 유명해졌다. '서부의 백악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윈스턴 처칠 윈저공 찰리 채플린 등 유명인사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집의 외부는 모두 이탈리아산 석회암으로 돼 있다. 거실과 바닥은 대리석 욕실에는 일일이 손으로 그려 구운 타일이 붙여있다.

크고 작은 방이 22개. 전체 전구 숫자만 5000개가 넘는다. 집을 전부 구경하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린다. 작은 박물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홍 대표는 2005년 전액 현금으로 이 집을 구입했다. 거래를 하는데 1년2개월이 걸렸다. 전 주인이었던 유대인 사업가 메슐럼 리클리스씨는 다른 수많은 오퍼들을 뒤로하고 홍 대표의 끈질긴 요구에 결국 손을 들었다.

LA타임스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픽페어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신문은 LA최고 부촌인 베벌리힐즈의 대표적인 저택 픽페어의 주인이 인기 영화배우에서 유대인 사업가 아시안 IT업체 대표로 바뀐 사실에 주목했다. LA경제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픽페어 외에도 LA와 샌디에이고 중간에 위치한 테미큘라에 대저택 '윙스윕(Wingsweep)'을 소유하고 있다. 윙스윕은 처음 입주가 시작된 1990년 미국의 10대 건축물로 꼽혔던 명물이다.

친환경 컨셉트로 수영장 축구장 야구장 배구장 테니스 코트 카약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과 헬기장까지 갖춰져 있다.

홍 대표는 주중에는 주로 픽페어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갖는다. 부동산투자와 M&A를 위한 중요한 결정들이 대부분 픽페어에서 이뤄진다.

날씨가 좋을 때는 LA다운타운에서 샌타모니카 바닷가까지 한눈에 보이는 픽페어 정원에 손님들이 모여든다. 으리으리한 저택이지만 홍 대표의 소탈함이 묻어있는 픽페어는 사람 냄새가 나는 홍대표의 스위트 홈이다.

1990년 미 10대 건축물 뽑힌 테미큘라 대저택 '윙스윕'까지
소유 부동산 가치만 1억달러…LA타임스·IBM 등서 특집다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는 세계적인 컴퓨터업체 IBM은 이번달 자사 발간 잡지에 홍 대표의 성공 스토리를 2개 면을 할애해 실었다. IBM의 100년에 홍대표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1976년 20살 때 미국에 왔다. 컴퓨터가 좋아 그저 공부를 더하려는 욕심에 낯선 땅을 밟았다.

피어스 칼리지에서 컴퓨터를 배우며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달렸다. 컴퓨터의 문제점을 찾고 고치는 일은 곧 사업으로 이어졌다. 대학교 2학년 때 사회로 나가 1981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유니콤시스템스를 설립했다.

맨손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팔러 다녔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홍 대표를 문전박대하는 사람들 보다 막무가내식으로 도전하는 한인 젊은이의 뛰어난 실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아졌다.

"하루 2~3시간씩밖에 못 자면서 일했습니다. 컴퓨터 메뉴얼북을 찾는 시간이 아까워 아예 다 외워 버렸죠. 판매한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주말이건 밤이건 직접 찾아가 고쳐줬어요. 부지런한 거 한국사람들이 제일 잘하잖아요"

홍 대표는 1985년 초대형 컴퓨터 메인프레임의 결점을 보안하는 AUTOMON/CICS를 개발했다. 당시 업계는 30명이 5년 걸릴 연구를 한 사람이 7년 만에 해냈다고 평가했다. 이 제품으로 주류업체와 1000만달러 로열티 계약을 성사시켰다. 1988년 서울올림픽 컴퓨터 시스템 기반사업에도 참여했다. 홍 대표의 집념이 이룬 결과다.

홍 대표는 현재 18개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LA를 거점으로 뉴욕과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스위스 등 유럽 7개국까지 지사가 뻗어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외에도 부동산투자 파이낸셜.기업서비스 M&A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대학 2학년생이 시작한 사업은 현재 포춘 500대 기업 세계 2000개 기업을 상대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성공과 돈 위해 일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하다보니
컴퓨터 좋아했던 20살 청년, 미 주류가 주목하는 거부에


◆성공의 비결은

홍 대표는 성공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영어를 못해서 한국인이라서 장벽이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죠"

홍 대표는 한국에서 한양공고를 졸업하고 히트레코드사에서 작곡과 프로듀싱 일을 했다. 기타를 치고 건반을 두드리며 미래를 꿈꿨던 젊은이다. 그리고 당시 더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대한 애정은 그를 미국으로 이끌었고 겁없는 도전을 하게 만들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땅을 밟는 다른 이민자들의 삶과 시작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이룬 성공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홍 대표는 성공의 과정에 난관은 많지 않았다며 많은 사람이 비결을 묻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라고 쉽게 말한다.

사업은 해가 갈수록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일을 해 볼 계획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재를 돕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훌륭한 기업과 인재들이 한국에 수없이 많지만 방법을 몰라서 인맥이 없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어떤 수준의 발판에만 올려놓으면 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뻗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퇴 계획에 대해 물었다.

"리타이어가 뭐죠?"라며 되묻는다. 일을 하는 것이 좋은데 왜 좋은 일을 그만두느냐며 웃는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이라는 말이 귀에 꽂힌다.

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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