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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를 저술한마가렛 미첼하우스 (Margaret Michell house)를 방문하다
11/27/2015 11:32
조회  1683   |  추천   9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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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타를 여러번 방문했으나,늘 미루어왔던 미첼하우스(michell' house)를 큰 맘먹고 가기로 결정하고 들렀습니다.이 길을 가는 곳이 Peachtree 라 시내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풍수가 좋은 자리였나요?예전에 읽었던 "김원우씨의 소설 그 허름한 자리가 지금은 너무비싼 지역(압구정동)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리뷰를 읽어보니 입장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갔는데,입장료가 성인 13불입니다.그 집을 방문한다면 글에 대한 영감이 팍팍 올라가서 ,혹 작가에 대한 어떠한 감성이라도 배울것이 있지 않을까?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온 곳이었습니다.





아틀란타시내는 숲속빌딩사이로 길이 상당히 복잡합니다.마치 뉴욕거리를 연상케합니다.3번로,4번,18번 ,,휴 복잡,네비게인션보야지,운전하는 분옆에서 분위기도 맞추어야지,(길이 복잡하고,힘들수록 저도 모르게 미안해지는 심정)왼쪽인데 굽어진 길,게다가 아틀란타는 길이 막히네요?8차선 도로인데도,게다가 주말인데도 이정도 인데,주중에는 어떻게 될까요?



지나는 길에 에모리 대학간판도 보입니다.

일요일이라 뒷길에 무료주차를 할 수있으리라 예상하고 갔더니,다행히 주차할 공간이 있었습니다.미첼하우스 바로 앞에 어떤회사주차장과 같이 공유하는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자  눈앞에 푯말과 보이는 벽돌하우스가 한 채 있습니다.



약간 실망이 보일듯,말듯,우선은 한 작가의  박물관이라면 좀 더 크고, 거닐수 있는 공간도 있고,차라리 공원이 더 나을까요?그래도 명색이 한 세대를 흔든 작가인데,,

마침 문을 열고가니 가게가 있네요.계산을 하고 나니,투어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미첼의 일대기를 말하는데요?

영어가 짧아서 무시.....

아는 것만 들립니다.



좁은 방과 작가가 쓰는 침대와 재봉틀,그리고 타자기,게다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에 눈에 들어옵니다.

침대가 하나 놓여있습니다.이불은 새로 장만해서 덮어놓았는데,베게잇은 까먹었나봅니다.때가 끼고 낡아서,어쩌나///(제가 빨 수도 없고,잔소리 할 수도 없고,그냥 역사적인 유물이라고 치부하면 되겠죠)

저는 베겟잇을 보았는데,같이 따라온 어떤 여자는 묻더군요?



전화기아래에 있는 책은 미첼이 읽은 책이냐고요?

그냥 진열한 것이라고,(당황한 듯),같은시대에 있는 책이라고..


좁은 방을 따라 지나가니 복도에 미첼에 대한 일대기를 진열해 놓았습니다.

Michell( 1900-1949)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며,그녀의 대표작품"Gone with the wind"이며 1937년 플리쳐상을 받습니다.

1926년 Lost Laysen 나중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10대에 쓴 책이라고 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첫번째 남편이 술을 몰래파는 밀주업자였고,정신적으로 힘들어서 2년만에 이혼하고,같은 룸메이트였던(아틀란타 저너럴일요일 잡지사에 근무) 존 마쉬랑 결혼하여 평생을 함께 합니다.처음에는 대학에 들어갔지만,엄마가 죽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2년뒤 잡지사에서 근무하여 일주일에 25불이라는 월급을 받으며 글을 씁니다. 하지만 몇년후에 몸이 아파서 집에서 쉬게됩니다.



그 때 저술한 책이 "Gone with the wind"입니다.그녀는 이책으로 엄청나게 유명해지게 되죠.그리고 미첼은 이차세계대전중에는 전쟁을 위한 배기금조성모금을 하여 단 6일만에 65밀리언을 거둡니다.


이 책이 플리쳐상을 받은 이유가 어떻게 Civil war(1861-1865)가 전통 남부사회에 어떤영향을 주고,또 당시의 인종편견과 잃어버린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으로,그 당시 시대상을 잘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미첼이 어릴때 Civil war에 참가한 이웃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파티를 열여서 그냥 춤추고,싸우고 ,질투하는 것으로 풀어놓았지만,파티내용목적이 "battle of Gettyburg"기금마련입니다.


이 박물관을 지나고,밖으로 나와서 다시 건물로 들어가니,영화를 만들기까지 다큐멘터리 필림이 돌아가고,비비안리의 거대한 초상화가 걸려있었습니다.



흑백필림이 돌아가는 티비앞에 앉은 할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닦으며,이미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구부정한 어깨사이로 고개를 자꾸만 끄덕이며 보고 있었습니다.현실은 이미 늙은 몸이지만 그 티비를 보면서 한 없은 애정과 마음은 그 당시로 돌아가있는지, 우리가  올때 부터 보고 있었고,떠날때도 그 자리에 앉아서 홀로 보고 있었습니다.


이 필림을 보다가 저도 일어섰는데요/여기서 저도 알았습니다.크라크 케이블이 처음에는 거절하더군요.이렇게 유명한 책에 어떻게 자신이 연기를 할 수있나구요?모든사람이 가지는 편견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바람과함께 사라지다를 만든 장본인,투자의 귀재인 DAVID ,O,SEIZNICKS 입니다.미첼작가에게(1936년) 50.000불에 판권을 사서 영화를 만들고,그 뒤에도 책은 8,000,000이 더 팔립니다.영화는 3,85밀리언을 투자해서,390밀리언을 벌어들입니다.



모든 일이 쉽지않듯이,투자자인 데이비드는 겨우 클라크 케이블을 결정하고도,각본자와 씨루고,여배우결정을 앞두고,전국에서 1400명과 인터뷰하고,돈도100,000불을 소비합니다.여배우결정이 미루어져 2년간이나 시간을 끌고,나중에는 영화를 하던 안하던 하루에 50,00불씩 지불해야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최종여배우에서 비비안 리와 폴레트 고다드를 고민하는 중,폴레트가 챨리 채플린과 결혼하는 바람에 데이비드가 마음을 바꾸어 비비안 리로 결정합니다.각고의 노력끝에 탄생한 작품,자 열자말자 역사를 바꾸는 대기록이 되었습니다.



주소는 990 Peachtree st NE,Atlanta,GA 30309. 

전화번호-404-249-7015

미첼여사  박물관을 돌면서 또 한 번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인생은짧고 예술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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