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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섬에 있는 제승당과 이순신장군
10/21/20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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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지금이라도 존재하게 한 분이라면 누구라도 알고계시다시피,조선시대  이순신장군을 떠 올립니다.

470여년이나 지난 지금도 한국인에 남아있는 명장군이자 우리의 자랑스러운 영웅의 숨결을 찾고자 제승당을 찾아갔습니다.


그 역사의 순간을 담고자,김종대재판관님의 책과 함께 역사속으로 가볼까요?

한산도에 있는 제승당을 찾아가기 위해 통영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에 가면 꼭 가고 싶은 목록중에 하나였는데,고속시외버스를 타고 내려서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도착했습니다.





배를 타기위해 입장료를 끊어려고 하니,광고판이 보입니다.

아름다운섬과 바다와 역사의 물결이 흘러가는 장소입니다.

다음에 오실계획이 있으시다면?이 코스를 한 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펄펄끊어넘치는 주체사상,21세기를 살면서도 아직도 권력세습이라는 것에 맹종하는 현대의 아수라판역사

우리는  지금  영웅이 필요합니까?

강경화의 발언으로 한국도 제재대상이라는 절명의 단어가 물위로 떠올랐습니다.

이미 예견한 일이 아닌지요?

게다가 탄핵대상으로 김무성,유승민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노라니,인생살이 묘합니다.

때아니게 정치권에서는 박근혜대통령과 종가를 놓고 다투고 있다니 참,일년만에 세상많이 변해갑니다.

블로거에서도 시도때도 없이 박근혜대통령악의만 올리시는 분들도,지금 한국이 이렇게 되어가기를 기도하셨는지..


박근혜대통령의 몸무게가 38그램이라고 합니다.

박근혜대통령의 권위회복,,기다립니다.

어찌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나요?

21세기의 대장금의 재현인지?

그러나 현실은 일어나고 있으며,백두산천지까지 요동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발발은 일본인 토요토미 히데요시(1536년생)가 1587년 봉건영주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나서 ,큐슈전체를 통일하여 막부시대를 연 인물입니다.

그는 명을치기위해 길을 빌려달라는 명분을 내세워,아주 조선시대의 현실세를 파악한후 침입합니다.

아직도 일본은 그를 존경하여 신사참배를 하고 있으며,임진왜란때 베어간 전리품 코무덤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통신사인 황윤길과 부사인 김성일을 파견하였습니다.(1590년)

이 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막 낳은 애를 데려와 기저귀를 가는 행동을 했다는,일본역사연속극에 나오는 장면)연출한 것을 보면,상대방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계략을 엿봅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들이 없다가 50이 다 되어서  아들을 얻습니다.

돌아와서는 김성일이 일본은 침입에 대한 준비가 없다는 것을 발표를 하는 역사를 회오리속으로몰고가며,안일한 정부는 전쟁을 말하는 것은 민심을 흔든다는 것으로 발표하고,각 도시마다 찾는 축성마저 페지를 합니다.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남북분단 지뢰제거하죠.

기름저장고를 불태우죠.

해군훈련을 산에서 하죠.

군대기간을 짧게하죠.

한국여성은 여성인권에 대해서 말하지 힘에 대해서 말합니까?

해안선방어력을 없앴죠.세월호를 들먹이며 나라힘만 쏙빼아갑니다.

보수인사들은 하나둘씩 잡혀갑니다.

오랑캐무리들이 날뛰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최강인 조선소는 어떻습니까?

날마다 파업으로 힘을 잃은 날개죽지입니다.

인터넷에서 이순신장군을 조회하다가 ,너무 놀라운 글을 읽었는데요?이순신장군이 환생해서 나라를 다시 구해달라는 글도 제법있습니다.

제2의 박정희 장군을 기다리는지..



이율곡이 이조판서로 있을때,유성룡을 통해서 이순신을 만날려고 했는데도 ,이순신은 만나지 않았다는 놀라운 역사적인 진실을 보았을때,이순신은 얼마나 강직한 인물이었는지,알게됩니다.

하..하..이럴수가..

"나와 율곡은 같은 집안사람이라,서로 만나보는 것도 좋지만,그가 인사책임자인 전상의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옳지 못하오."라고 하며 끝끝내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미래에서 온 사람입니다.

"장군님,,그러나 이율곡선생님은 만나야 하시지 않았습니까?"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지만,스스로 길을 개척해 운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이율곡 선생님을 보노라면,깨달은  자의 슬픈운명을 보는 듯 합니다.

대세는 막지 못하지만,선조를 위해 삼년동안 정자에기름을 부어 선조를 살려낸 위인이며,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나,결국은 단어하나만 우리역사에 남겨서 호롱불처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당시 당파를 만들어내는 서당도 만드시지 않았네요.


이순신이 화살통을 좋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병조판서가 화살통을 달라고 했습니다만,

이 순신은 "화살하나 드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이 것하나때문에 이름을 더럽힌다면 그 얼마나 미안한 일이겠습니까?

그리고는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주위에 적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23년간 군인생활에 세차례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을 겪습니다.



우리에게는 잘알려지지 않은 역사이야기가 있습니다.

1583년 전라좌수사 이용이 함경도 남병사로 가게되어서 이순신을 추천하여 두번째로 함경도로 가게됩니다.

@이용-이순신이 발포만호로 있을때 죄를 덮어 씌울려고 했던 인물이지만,나중에 호의를 갖게 됩니다.

10월에 건워본의 권관으로 옮겨졌는데,이 곳이 동북쪽 두만강 건너편 만주였으며,1000미터이상의 고원지대여서 여진족의 침입이 잦은 곳이었습니다.

쉽게 전투에 이겼지만 그의 부친의 죽음으로 3년간 탈상을 하게 됩니다.

42세에탈상을 끝내고  처음에 받은 일이,사복시주부라하여 말가 수레를 맡은 업무를 맡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여진족의 침입으로 조산보의 만호로 승진되어 갑니다.

보세요?힘든일이 있으면 시킵니다.

정말 강직하게 의에 살고 의에 죽는다는 철학이  없으면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리요?


여진족을 대비하라는데 고작 병사는 10여명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백성60여명을 구출하고,이순신은 다리에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면서 몰래 화살을 뽑아버리고 태연히 전투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순신장군이 피를 흘리며,고작10여명의 병사로 지킨 땅은 지금은 러시아땅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전투가 녹둔도 전투라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막힌 것은 말입니다.

싸우다가 조선장수가 죽었으며,주민들이 납치를 당했는데, 병사 이일이 여진족이 물러가자,곡물을 탈취당한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순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첫번째 백의 종군합니다.(고문까지 포함해서)

그러나 다음해에 1월14일 북방의 산하가 얼어있을때 공격하는 것으로, 한양군과 지역군의 합동작전때 이순신이 출전하게 됩니다.(맨앞에 선두에 직책을 두었습니다)

눈물없이 읽을 수 없는 이야기인가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세상은 어지럽고 국운이 흐려갑니다.

1587년 선조20년 전라도 손죽도를 침입하였는데,여기서 이대원장군만이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를 했으며,조선수군의 상당수가 납치를 당했습니다.

이 순신은 시전전투(두만강에서 여진족과 싸움)에서 승리를 이끌고, 44세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공은 없습니다.

왜구의 침입이 심상치 않은가운데에, 46세에 군관을 다시 시작하고,  정읍현감으로 8개월재임하고도수없는 발령과 좌천을 겪다가,47세에  유성룡의 천거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1년전에 전라좌수사로 임명됩니다.

정읍현감으로 처음 발령받아서 간  곳(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진산동에 있는 유애사)에는  이충무공비석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럼 유성룡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이 순신생가터는 현재 서울 인현동 (옛 건천동)이라 하여 비석하나만 남아있는데요?유성룡과는 어릴때부터 죽마고우였습니다.

실제적으로 이 순신은 명문가문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21세에 이순신이 결혼한 외가 초계변씨의 장인은 보성군수를 지낸 부호였으며,외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지방부호로 알려져있습니다.

결혼한후부터 10여년 넘게 공부하여 32살에 무과급제를 합니다.

당시 무과급제 평균연령이 34살이라고 합니다.


전라좌수사란

품계는 정3품이며,방답,여도,사도,녹도,발포의 5포에 있는 수군5개부대를 직접지휘하고,순천,보성,광양,흥향,낙안의 5관을 관할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부임하자 말자,이순신은 앞날에 있을 재난에 대비해서 국난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 순신장군과 함께 우리에게 남아있는 난중일기는 임진년 1592년 1월부터 시작됩니다.

난중일기 1592년 3월5일 유성룡이 보낸'증손전수방략"책인데,수전,육전,화공전,모든싸움의 전술이 낱낱이 설명되어 있는데,진실로 만고의 훌륭한 책이라고 적혀있다고 합니다.

임진년 1월부터 4월까지 활쏘기대회를 30회나 열정도로 만반을 대비했으며,그 중에 하나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벅차오르는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

천하의 요새라,,이곳이 물을 먹을 수있는 우물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버려진 제승당도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이 둘러보시고 증축하여 오늘에 이릅니다.

예전에 기억도 가물거리는데,이 순신장군이 차고 있었던 큰 칼..

와,,얼마나 큰지..

이번에 그 큰칼을 찾으러 보러 왔는데,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칼은 어디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조총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육지전에서는 정말 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거북선은 언제 완성되었을까요?

겨우 일년하고도 2개월밖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기를 거슬러 보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전쟁발발전 64일

거북선에 달 돛배 29필을 받아들였으며,

전쟁15일전

처음 포쏘기를 시험했으며

전쟁2일전

거북선에 돛배를 만들어서 달았으며

전쟁1일전

자자대포와 현자대포를 시험발사합니다.


거북선이라는 이름은 180년전에 같은 이름의 전선이 있다는 기록은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순신이 선조임금한테 올린 장계문에

"신이 일찍이 왜적이 난리가 있을것을 걱정하여 특별히 거북선을 만들었사온데....."

그리하여 거북선은 거의 이순신장군의 지휘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수있습니다.


제승당

통영에서 직선으로 대략 7킬로미터 떨어진,한산섬이라,배만 유일하게 도달 할 수있는 지역입니다.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이 삼도수군을 지휘하는 곳으로 이순신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일명 해군작전참모실이며,3년 8개월을 지낸곳입니다.1592

2차 백의종군까지 여기서 작전과 군사를 지휘한 곳입니다.

백의 종군을 당한 이 부분에 후손들은 음모론을 많이 제기합니다. 

그러나 이 백의종군 대목은난중일기에 있습니다.

1594년 10월,16일

새벽에 밀지가 왔다.

임금께서 수륙여러장수들이 팔짱만 끼고 서로 바라보며,한 가지도 계획을 세워 적을 치는 자가 없다"라고 하셨지만,3년동안 바다에서는 그런일이 없었습니다.

여러장수들과 함께 죽음을 맹세했으며,원수를 갚으려 하지만,적이 험난한 소굴에 웅거하고 있으므로,경솔하게 나가 칠수가 없나이다."

"이 부분,나가 칠수 없나이다"이 글로 제승당에서 끌려나가 백의종군하게 됩니다.

이순신장군이 백의 종군하는 사이에 일본은 전선을 재정비합니다.

충무공의 해전인 노량해전,사천해전,한산대첩을 그림으로 그렸으며,진중생활도를 그린 다섯폭의 해전도와 현자총통,지자총통,작은 거북선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592년 4,13일 부산포에 침입하여 임진왜란이 시작

신화적인  해전의 역사를 만들다.

1.옥포해전-정박중인 28여척을 함포;소규모로 7차례전투

2.부산포전투-적선100여척 공격

3.사천해전-이순신장군이 관통상을 입어서 고생하였으며,첫 거북선이 출정하여 112척을 파손

6년간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전투를 원균이 160여척을 칠천량전투에서 패배

배설이 도망쳐온 배 12척만 남게 됩니다.

4,1597년 9월16일진도 울돌목에서 명량대첩

 일본배가 130여척이 에워싸고 있는데,물살시간을 기다리면서 이순신자신이 직접선두에 나서서 30분에서 한시간가량 버티는 작전을 합니다.

역사상 함대대장이 직접전투하는 전투가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90여척을 파괴합니다.

33:1누가  영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5.1597년 12월16일

노량해전(남해사람들은 이락포라고 한답니다-이순신이 떨어진 갯가)

"싸움이 급하니,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떠나가십니다.

7여년의 임진왜란이 끝을 맺습니다.





고독한 장군의 마음을 읽게 하는 대목입니다.

장군에서 영웅에서 성웅이자 고뇌하는 모습을 엿보이게 합니다.

이 시는 영조때 김천택의 청구영언에 수록되어 있는 진중시라하여 더욱 유명합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난중일기를 보노라면 수 많은 주역점을 치며 하늘과 지세와 날씨를 예측하며 고뇌하는 장군

누구에게 물어볼 것입니까?

자명등처럼 스스로 불을 밝혀 난세를 타개해나가야하는 장군


거북선에 관한 자료는  유득공이 저술한 이충무공전서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1.모양이 거북이와 같다.

2.판옥선보다는 조금 작다.

 2010년 통영에서 건조한 자료에 따르면

150여명이 승선할 수 있으며,절반가량은 격군으로 아래층에서 노를 젓고,나머지는 위층에서 포와 활을 쏘는 형태이다.

3.앞은 용의 머리이고 입을 통해 대포를 쏟다.


4.뒤는 거북이 꼬리처럼 만들고 ,꼬리밑에도 총구멍이 있다.

5.등은 판자를 덮었는데,총총이 쇠못을 박았다.

6.싸울때 적이 위로 뛰어오르지 못하도록 선체상단부에 굵은 쇠못을 박았다.

7.좌,우에 각각6개씩 총포구멍이 있었다.

8.적이 달려들면 전후좌우에서 총탄이 터진다.


10.안에서는 밖을 볼수있으나,밖에서는 안을 볼수없다.

11.조선적송으로 건조되어 견고했다.

12.주요부분은 철판으로 두른 철갑선이었다.

13.건조된 배는 3척정도로 추증한다.

거북선의 창조성에 대해서 김종대선생님은 말했습니다.

거북선 창제는 그이 창의력과 자조정신산물인 동시에,용기와 열정이 빚은 조선최고의 기념물이다.

게다가 나라사랑에 대한 지극한 정성때문에 용출되는 무한 책임의식의 소산이라고 했습니다.

지금현재 거북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조지아대학에 임진왜란으로 추정되는 400여년전의 그림한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국방티비에서 제작한 이순신다큐에 있었던 장면입니다.

이 전투에서 보면 거북선은 3대였으며,우리가 알고 있었던 2층이 아니라 3층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현재 역사연구와 모형은 3층으로 연구로 진행되어지고 있으며,이에 관련된 논문들도 발표되고 있다고 합니다.



두번째 백의종군하는 시절에 수군페지론까지 들먹이며,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와서 싸우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에 이순신장군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싸운다면 아직도 할 수있습니다.

전선이야 비록 적지만,신이 죽지 않았으니,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도 원균은 전쟁에서 패했으며,이순신은 외관상 이길수 없는 환경이었는데도 명량해전에서 이겼습니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이겼다는 승전소식을 듣고 선조는 이순신장수들에게는 승진포상을 하였지만,정작 이순신에게는 하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사실도 알게됩니다.

"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죽을려고 싸우는 자는 살것이다"라는 명량해전전투앞에서  지독한 환경과 나라에 대한 사랑하나로 처절한 생존을 앞두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노량해전을 앞두고는 '저 원수들을 무찌른다면,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내 걸고 전투에 임하였습니다.이런 단어를 내걸고 전투에 임했는데도 무례한 후손들이 이 순신에 대한 갖은 음모론을 들이댑니다.


지금보이는 정자에 서 있으면 아래사진에 보이는 활터가 보입니다.

활시위를 당기는 곳이라 하여 사대라고 합니다.

 강하다,강인하다,건강하다,힘,여자의 미모만 예쁜 것이 아니라,강인함도 특출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정자에서 사정거리가 145미터이며 ,활을 쏘는 곳으로 유명하며,이순신이 장계문을 올려서 이 곳에서 무술시험을 치른 곳으로 100여명이 합격을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한산대첩.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를 남겼습니다.

1592년 7월 8일 수많은 질투와 시기속에서 나라사랑 그 한마음으로 조선수군은 73척의 배중에서 12척을 사로잡고 47척을 불태웠습니다.

견내랑의  좁은만에 있는  적을 끌어내어,당포앞에 있는 한산도까지 유인하여 전멸시킨  학이진 진법은,현재 미국해전교과서에 실려있다고 합니다.

 

이순신의  강직한 성품,그 횃불이 조선을 일으키고 나라를 세웠습니다/

우리는 지금 영웅이 필요합니까?

부단한 박해와 시기속에서도 나라사랑일념으로 피어오른 정열의 구국정신,장군을  향해 묵념을 올려봅니다.




참고문헌,이종대 저자 이순신,이순신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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