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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십일조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십일조의 허상과 진실은?
10/27/20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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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https://bit.ly/2PlRWek 

[Noah Bak 시작말]


한국 개신교와 독립교회 개혁 차원의 방대한 자료를 최대한 압축한 자료입니다. 십일조와 각종 헌금은 다른복음(갈라디아서 1:8)및 성경가감죄(요한계시록 22:18~19)임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전체자료를 정독하기 원하는 분들은 맨 하단의 원출처를 클릭하시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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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스크랩]


십일조를 내야하는가?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민하고 있다. 나는 단호하게 말하건대, 십일조는 내지 않아도 된다. 일단, 십일조는 원래 구약의 제도이고, 타락한 중세 교회가 부활시켰던 것이고, 그것을 폐지한지 오래이며, 현재는 구약 율법의 철저한 준수를 요구하는 여/호/와/의/증/인/ 마저도 없애 버렸다. 남아있는 곳은 미국의 소수 개신교 교단(주로, 오순절)과 대한민국의 다수 개신교 교단(장로회, 오순절 등) 뿐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1) 낼 곳도, 받을 사람도 없다.


십일조는 원래 세금으로 국가에 바치는 것이었으며, 그것의 사용처는 레위 지파였다. 13번째 레위 지파는 성직자 그룹으로, 다른 12지파와 달리 땅도 받지 못하고 일도 하지 못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든 성직 업무를 담당하는 대신에, 12지파에서 1/10을 떼어 그들에게 생활비를 댔던 것이다(1차 십일조). 또 바치는 사람을 위해 따로 떼어 놓아 바치는 사람을 즐기게 해주는 것이었으며(2차 십일조), 또 그것은 과부와 고아 같은 소외된 계층을 위해 사용되어야만 했던 제도이다(3차 십일조). 이는 구약의 율법이었다.


따라서,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인에 의해 무너져 이스라엘 유다 국가 자체가 지구상에서 없어진 후에 유다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이 약 1,900년 후에 전쟁으로 땅을 빼앗아 현대 이스라엘을 건국했지만, 그들에겐 성전이 없고 레위지파가 없다. 현대 유다교는 1세기 중반의 성전 유다교가 아니라, 1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랍비 유다교다. 따라서 내야될 장소도, 내야될 의무도, 받을 사람도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십일조를 개신교에서 걷고 있는데, 내는 곳은 교회(예배당)이다. 하지만 내야될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며, 교회(예배당)도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다. 더구나 세금은 국가에 내는 것이지, 교회에 내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십일조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신정국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정국가도 아니고, 교회는 국가가 아니다. 개신교 일부 사람들은 목사를 성직자라 부르며, 교회 건물을 종종 성전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그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다.


첫째, 종교개혁자들은 만인제사장설(특별한 성직 계급은 없고, 그리스도인 모두가 제사장이며, 유일한 최고의 대제사장은 예수님 뿐이다)을 받아 들였고, 그에 따라 설립된 것이므로 목사는 레위지파 처럼 특별한 성직자가 아니다. 아울러, 장로회의 경우 목사의 직위는 성도인 장로 중에서 '가르치는 장로' 이므로 성도이다. 


둘째, 성전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제사가 있거나 성전에서만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만,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다. 예배당 자체도 비성경적인 것으로 초대교회는 집에서 모였다. 더구나, 개신교의 예배 및 기도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굳이 예배당이라는게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성전이 아니다. 성전이라는 표현 역시 잘못된 것인데,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를 경우 예수의 구속사역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므로 이단보다 훨씬 심한 표현이며, 신약 자체를 폐기하겠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셋째, 세금은 국가에 내는 것이며 교회는 국가가 아니다. 십일조를 거두었던 고대 이스라엘 유다는 신정국가 였다. 그러기에, 율법이 곧 법이어서 국가에서 십일조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넷째, 십일조를 거두었던 서양 그리스도교들은 전부 폐지한지 오래되었다.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이라는 말을 한국 개신교에서는 입에 달고 살지만, 원조인 서양은 비성경적이라며 폐지한 것에 주목하라! 십일조는 아니나, 교회세를 걷는 외국의 경우 1~2% 정도 세금을 부과하여 교회에 주는 것이지, 교회가 직접 걷는 것이 아니다.


2) 내야 한다는 근거가 너무나 빈약하거나 사기를 치는 구절들이다.


A) 예수께서 십일조를 언급했다고 주장한다.


복음서에 나오는 십일조는 총 3회 등장한다(누가복음 18:12, 누가복음 11:42 = 마태복음 23:23). 하지만, 뒤의 두개는 말한 배경은 다르나, 내용이 같은 병행구절이므로 언급은 2개이다. 2개 중에 1개는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바리새인이 '자신이 율법을 이렇게 지키는 사람' 이라는 것을 기도 중에 드러내기 위해서 한 말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십일조의 근거가 될 수 없고, 예수님의 언급인 눅 11:42(= 마 23:23)을 살펴보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지만, 이것들도 마땅히 행해야 했다.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예수님께서 "율법은 철저히 지키면서 율법의 진정한 의미는 쏙 빼 먹는다! 십일조를 하면서 정의. 자비. 신의 같은 의미를 되새기랬지, 언제 그것만 지키라고 했느냐?" 라고 마태복음 23:1~36 까지 바리새인을 비난하는 것 중의 일부이다.


이것을 무작정 십일조 하라는 구절로 받아 들여서는 곤란하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당시에는 '구약시대'이며, 예루살렘 성전도 있었고, 레위지파도 있었으므로, 낼 장소와 받을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신약시대'가 시작된지 40년 후 성전이 무너졌으며, 나라 자체가 없어져 버렸으므로, 예수님 당시에는 내는 게 맞았고, 지금은 낼 곳이 영원히 없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고 죽어야 신약이 시작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22:20에서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


B) 마치 없는 상황에서도, 헌금 전부를 내야 하는 정도의 것으로 생각한다.

(누가복음 21:1~4 = 마가복음12:41~44)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거기에 렙돈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다 넉넉한 가운데서 자기들의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이 구절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예수님이 '액수나 비율이 중요한게 아닌, 헌금을 내는 마음가짐이 올바른 과부'를 보고 칭찬한 것 처럼 보인다. 이는 상당수 성경 주석이 그렇게 적고 있는 것에도 한 몫을 한다. 그러니, 신자들은 자연스레 "000 목사님이 주석 단 거니까" 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유명한 외국의 성경 주석들도 그렇게 적고 있다. 

이 구절의 최대 실수는 '문맥을 무시하고 읽었을 때'에 발생한다.

C) 십일조하면 복 받는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 필수로 알아야 할 사항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의 '하나님의 것을' '나의 것을'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문에 없다. 히브리어 원문은 '하나님을' '나를' 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의 것을'은 자의적인 해석이다. 표준새번역(1993)과 그의 개정판인 새번역(2001)도 위와 같이 번역하고 있는데, 헛소리 번역인 것이다. 오역일 뿐만 아니라, 내 생각에는 일부러 이용해 먹으려고 이렇게 번역한 듯 싶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개신교 성경 전부 ('000000 개역한글, 개역개정,(표준) 새번역, '000 000' 현대인의 성경, '000' 우리말 성경, '000' 쉬운 성경) 일부러 오역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동번역성서(1977)은 가톨릭의 눈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나를' 이라고 옳게 번역했으나, 8절에서 '소출에서 열의 하나(십일조)' 만 언급하고 '예물(헌물)'을 빼먹는 실수를 했다. 공동번역 개정판에서도 개정되지 않았다.


현재, 이 단락의 제일 옳은 한글번역은 가톨릭 성경(2005)이다. (※ 참고로, 대표적인 영미권 성경 NIV, KJV, NASB, NJB, RSV 모두 옳은 번역을 했다.) 따라서, 이 부분 만큼은 가톨릭 성경을 사용할 것이다.


(가톨릭 성경 말라키 3장)


6 나 주님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7 너희는 조상 때부터 나의 규정에서 벗어나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나에게 돌아오너라.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는 “어떻게 하면 저희가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고 말한다.


8 사람이 하느님을 약탈할 수 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약탈하면서 “저희가 어떻게 당신을 약탈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십일조와 예물이 아니냐! 9 너희 온 백성이 나를 약탈하고 있으니 저주를 받으리라. 10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하늘의 창문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넘치도록 쏟아 붓지 않나 보아라.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 떼를 꾸짖으리라. 그래서 그것들이 너희 땅의 소출을 망치지 않고 너희 밭의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12 그러면 모든 민족들이 너희를 행복하다고 하리니 바로 너희가 기쁨의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말라기 3장의 해석은 너무나 중요한데, 왜냐하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며, 안 내는 사람은 도둑질하는 사람" 이라고 가르치면서, 신자들의 마음에 죄를 심어줌에 있다.십일조 이야기만 나오면 거품 물고 들이대는 구절이 이 구절이기 때문에 가장 잘 이해해야 한다. ~의 것 이라고 해석하는 목사나 신학자가 있다면 당당하게 배틀을 신청하라. 가톨릭의 성경을 보는 개신교 목회자는 거의 없을테니, 영미권 개신교 성경 NIV나 KJV만 들이대어도 할말이 없다. 문장도 간단하기 때문에, 누구나 해석이 가능하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된 NIV 성경(개신교)으로 해당 구절을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다. "Will a man rob God? Yet you rob me. "But you ask, 'How do we rob you?' "In tithes and offerings. You are under a curse--the whole nation of you--because you are robbing me.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신을 강도질 할 수 있느냐? 그러나, 너는 나를 강도질 했다. "하지만 너는 '우리가 당신을 강도질 할 수 있나요?' 하고 묻는다" "십일조와 바치는 예물이다. 너는 저주 아래 있을 것이다. 너희 나라 모두.. 왜냐하면, 너는 나를 강도질 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3장의 이 단락을 쉽게 말함과 동시에 당시의 이 말이 나온 시대 배경과 말라기 전체의 내용을 괄호속에 집어 넣어 함께 설명하겠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4장 밖에 안되는 말라기를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말라기 3장 요약(야훼께서 바라시는 말씀)은?  "내 백성아 제발 내게 다시 돌아와라"


개신교의 관점에서는 '돈'의 십일조를 하면 뻥튀기 시켜 자신의 재산이 몇배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미국 석유왕 록펠러 이야기를 든다. 심지어,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 록펠러' 라는 책도 있는데, 자신이 처음엔 회계 장부를 쓰면서 십일조를 하다가 재산이 많아지자 40명의 회계팀을 구성해 십일조를 냈다고 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본문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말라기 3:10에서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왔으니 터전도 도구도 제대로 없고, 농사도 제대로 안되고 하여 먹고 살 길은 막막하니까 하나님께 바칠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고 남은 것들로 근근히 살아갔던 것이다.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대하여 여호와께 실망스러움을 보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진짜 농사가 잘 되게 해주는지 "나를 시험해 보아라" 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절인 11절에 대해서 거의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예, 본문을 10절 까지만 읽고 십일조 설교를 하는 설교가 대부분이고, 한 단락인 12절까지 읽기는 하나 11절과 12절에 대해선 침묵하는 설교가 소수이다. 그 이유는 현금 십일조에 대해 독이 되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말라기 3: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 떼를 꾸짖으리라. 그래서 그것들이 너희 땅의 소출을 망치지 않고 너희 밭의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 라고 한 것이다. 개신교의 논리라면, '돈'을 뻥튀기하는데 왜 뜬금없이 메뚜기 떼로 인해 농사가 망쳐졌으니, 메뚜기를 통제하여 농사가 잘 되게 해준다는 것인가? 왜냐하면, 개신교의 논리로는 이 구절은 빠져 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


메뚜기, 땅, 포도나무, 열매 같은 명사들은 전혀 다른 것에 비유한 것이 아니다. 십일조의 대상은 '농산물' 이기 때문에 농사가 망쳐졌으니 농사가 되게 해주는지 안해주는지 십일조 제대로 하고 하나님을 시험해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십일조를 제대로 안해서 생계가 곤란했던 레위지파 사람들이 성직 업무를 때려치우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느헤미야 13장).


※ 번외로 이 구절의 오역에 대한 자세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말라기 3:8~10 (사용한 성경은 개역개정판. 개역한글에서 '도적 -> 도둑' 으로 개정했을 뿐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구절을 아무 생각없이 읽다 보면 십일조와 봉헌물은 '하나님의 것'인데, 사람이 도둑질 한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이 구절을 대한민국 개신교 성경들('000000' 개역한글,개역개정,(표준)새번역, '000 000' 현대인의 성경, '000' 우리말 성경, '000' 쉬운 성경)이 단체로 변개한 구절이다! 특히, 8절과 9절에서 굵은 글씨로 표시해 둔 '~의 것'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은 물론이거니와, 기타 다른 나라말 성경 모두 그런 표현은 없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신을 속일 수 있느냐?" 그러나, 너는 나를 속이려 했다! 너는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속이나요?" 하고 묻는다. 십일조와 예물이다. 너에게 저주가 내릴 것이다, 이 온 나라에게! 왜냐하면, 나를 속이려 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번역자의 몫은 개인적 의견(또는 교단, 교파의 의견)을 번역할 때 다는 것이 아닌, 원문 그대로의 느낌과 의미를 얻을 수 있도록 언어에 맞게 번역하도록 노력함에 있다. 이를 지키지 못했으면 번역자의 자질이 좋지 못함은 분명하다. 


아울러, 대한민국 목사들이 심심하면 강단에 서서 히브리어 원문이 어쩌고 원어가 어쩌고 언급하는데, 이런 것이야 말로 "히브리어 원어는 이런데, 원어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고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명사를 히브리어로 말하면서 자신이 잘 아는 척 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 중에 목사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봐라! 대부분 히브리어, 그리스어 사용은 쓸데없는 명사에다 대고 하지, 중요한 동사에 하지 않는다.


D) 십일조는 율법 이전부터 존재한 것이라 주장한다.

E) 십일조를 낸다고 하더라도 사용처가 잘못 되었다.

F) 십일조를 낸다고 하더라도 매달 걷는 것은 잘못 되었다.

G) 십일조를 낸다고 하더라도 돈을 걷는 것은 잘못 되었다.

H) 신약의 돈개념은 십일조가 아니라, 공동재산이다.

I) 사도 바울은 마음에 정한대로 각자 연보를 하라고 했다.


※ 십일조의 진실


 1차 십일조  -> 레위인과 레위인 중에서도 제사장 계통을 먹여 살리기 위한 신정국가의 세금. (이것이 한국 개신교가 흔히 알고 있는 십일조의 개념이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전체의 십일조를 받을 권리가 있던 대신에, 조상으로 부터 재산을 상속받지는 못하였다. 십일조를 받은 것으로 먹고 살아야 했다.



 2차 십일조  -> 십일조 바치는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 준 십일조. 1차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이 또 2차 십일조를 행해야 했는데, 그것으로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것을 사서(독주 마저도) 레위인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종과 함께 하나님을 생각하며 먹고 즐기는 것이었다. 이 십일조 규례는 먹고 마시며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어디에다 내는 것이 아니다.


 3차 십일조  -> 별로 받지 못한 레위인과 소외 계층(떠돌이, 고아, 과부)을 위해 3년마다 1/10을 베푸는(어디에 '내는' 것이 아님) 십일조. 평균적으로 매년 약 3.3% 정도.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주어 먹게 하는 것이다. 


(신명기 14장) 28 당신들은 매 삼 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 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29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이나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이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위와 같은 1. 2. 3차 십일조가 철저하게 있었지만, 실상은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었다.


(이하생략)


원출처: https://militantatheism.tistory.com/1    전체자료 정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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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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