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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반론] 성경을 우롱하는 목사들의 행태
01/25/201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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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출처 : 사랑그리고편지(목사), http://boxs.kr/PS9DK

 

  성경을 우롱하는 목사들의 행태

이들이 자주 애용하는 구절이 과부의 두 렙돈이다.

과연 그럴까?

누가복음 (Luke) [개역한글] 제21장

[과부의 헌금]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 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예수께서 부자들이 헌금 넣은 것을 보시고 이어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셨다고 기록하였다. 예수께서 매일 성전안에 들어 가신 것이 아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경우에 들어 가셨는데 이번에 우연찮게 부자들과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셨다는 것이다.

당연히 함께 있었던 제자들도 보았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 하신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이 부분을 문자적으로만 보는 목사들은 자랑스럽게 헌금을 강조하는 것으로 악용을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목사들의 의도와 같이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보이는 참 성전의 실체이시다. 지금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성전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형인 성전인 것이다. 실체가 오시면 그림자와 모형은 의미가

없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 제단도 제사장들도 사라져야 한다.
예수님이 오셨지만 아직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이다. 십자가에서 모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셔야만 참 성전으로서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성전과 제사장들과 제단과 연보함과 헌금과 율법과 규례들이 사라

지는 시점이 아니다.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시면 사라져 가야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그림자와 모형들은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 다 사라졌다.

그럼에도 한국 기독교에만 버젓이 존재하는 기이한 현상들이다.

유대인들조차 십일조를 말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랍비들의 견해로 보면 성전이 없어졌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사라졌기에

구약의 율법에 따라서 십일조를 드릴 곳도 없어졌고 대신 받아야할 제사장들도 없기에

십일조를 누가 하며 누가 받느냐 하는 주장을 한다. 그러므로 오히려 십일조를 주고

받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와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도대체 뭔가?
자기들이 설마 이스라엘

이라도 된다는 것일까? 혈통적으로 이스라엘도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인들도 인정하지않는 십일조를 유독 강조하고 시행

하는 나라와 기독교는 대한민국 뿐이다. 천주교에서 조차 십일조를 폐지한지 오래다.
물론, 다른 용도로 대체하기는 하였다. '교무금" 제도이다.


성당이라는 건물유지와 교회운영은 신자들이 내는 교무금과 헌금으로 유지하게

됩니다. 교무금은 교회운영에 동참하는 하는 뜻으로 운영금의 일부를 납부하는

의무금(구약의 십일조)입니다. 신자는 교회의 유지를 위하여 일정한 금액(가족

월 총평균 수입의 1/10, 1/20, 1/30, 1/40 등 기준으로 산정)을 일정한 날에 납부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무금의 뜻은 교회생활과 자신의 생활을 구분하지않고 하나로 묶어서 자기

수입금의 지출을 분배하여 자신의 종교 생활비로 자기의 본당에 낸다는 데 그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교적단위로 내는 의무금 납부의 실천은 본당에 속해있는

자신의 신앙생활과 교회와 조직 사회적으로 정당한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지닌 우리집이 교회와 일치되는 기초인 교무금 납부에 빠짐없이 동참

해야 됩니다. 교무금은 대림시기부터 매년 초까지(신 영세자는 영세 받은 익월)

책정해야 하며 책정과 변경은 본당 신부님과 면담을 통해 정하게 됩니다. 교부금

납부방법은 사무실에서 통장을 발급받아 사무실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납처 - 성당사무실,
성당사무실 수납시간 - 주일, 토요일 09:30 - 20:00 평일(화~금) 09:30 - 17:00

☞ 밀린 교무금의 정리 : 분명히 말하자면, 냉담자, 조당자도 교무금 의무에 적용

된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밀린 교무금도 마땅히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담을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이 조정할 수 있다.


# 해가 바뀌며 누적된 교무금 - 전년도 12월까지의 밀린 부분은, 많고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일시에 낼 수 있는 일정금액을 스스로 정하여 청산한다(일시납).


# 당해연도에 누적된 교무금 - 1월부터 책정하되, 차후 납부도 어려울 경우에는

월 책정액을 하향 조정하고, 당월부터 정식 조정토록 한다.


결국 포장과 이름만 살짝 바꿨을 뿐, 개신교의 십일조와 동일한 용도일 뿐이다.

예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과연, 헌금을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싹싹 털어서

낸 과부의 행위를 칭찬한 것인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돈만 좋아하는 저급하고 몰상식

한 우상신으로 만드는 자들이 누구일까

성경을 철저하게 우롱한 목사들(신학자)이라는 결론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과부의 행위를 본받으라고 말씀 하셨을까?
그렇다면 제자들이

왜 편지를 써서 그리스도인들과 초대교회에 보냈을 때 단 한 곳도 헌금이나 십일조를

하라고 가르친 곳이 없었을까?

예수님께서 그 현장에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신 것인가?
과부의 헌금하는 행위

를 본받으라고 하신 것인가? 당시 성전안에는 많은 부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돈 자랑에

여념이 없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두 렙돈을 만지작 거리다가....그것이 사실 오늘 먹을

수 있는 생활비 전부였지만...그것을 할 수 없이 연보괘에 넣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시 강론으로 밥 벌어 먹던 랍비들이 설교할 때 오늘날 목사들처럼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니 도적질 하지 말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떼어 먹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연설 했을것이다.

 

그렇게 해야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실 것이라는 말라기서를 인용해가면서 하나님을

시험 해보라고 감동(?)적인 설교를 했을 것이다. 그런 설교에 익숙해진 과부가 어쩔

것인가? 당시 유대 사회에서 그나마 생존하려면 유대교인이 되어야만 한다.

유대인으로서 성전을 출입하고 할 수 있는 의미적인 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부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겠는가?

유대 랍비들은 성경(모세오경)을 읽고 연구하고 해석한다는 자들일진데 유대공동체

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가난한 자들"을 모른척 하지 말고 그들을 위하여

제도적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및 보호해야 하는 것을 명시하였다는 것을 모르는가?

매 삼년에 십일조와 토지 소산물을 따로 모아서 가장 소외된 이웃들과 힘 없는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들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습게 여긴 것이다. 그리곤 한다는 것이 성전 쌓는 일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과 뜻은 화려한 성전 건축이 아니다. 예수님의 뜻과 관심 역시 성전

건물의 어떠함 따위가 아니다. 다음 구절을 보자.

누가복음 (Luke) [개역한글] 제21장

[성전이 무너뜨려질 것을 이르시다]

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

께서 이르시되

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한마디로, 예수님 당시 썩어빠진 유대종교 지도자들이나 오늘날 목사들이나 신학자들

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썩어질 "돈" 에만 환장했지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들의 궁핍한 생활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생활비 전부를 다 넣은 과부는 그다음에 어떻게 살아갈까?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만 말씀하셨다.

3.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단지,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당장에 그 과부는 굶는 일만 남은 것이다. 쓸쓸하게

돌아서 성전을 빠져 나가는 과부를 제자들이 보고만 있었을까?

제자들이 제정신이라면 한 두명이 과부의 뒤를 따라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보다가...아마도 두렙돈 이상의 가치가 있는 돈을 자루에 담아서

몰래 과부가나중에 확인할 수 있도록 두고 나왔을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지시해서도 아니고 생각이 있는 제자라면 당연히 해야할 도리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께 칭찬 받으려고 보고하지도 않을 것이고

예수님도 아시지만 모른척 하실 것이다.

그러나, 목사들은 주보란에 십일조 낸 사람 이름을 표기하도록까지 해가면서 난리들을

친다. 또 주보란에 이름하나 빠지면 시험들고 생난리치는 교인들도 있다.

이런 자들이 대부분 성경을 우롱하는 자들이라는 필자의 주장에 불만 있는가?
성경을 읽고 있을 사람들에게 이 기록이 과연 무엇을 가르치는 것일가?
나도 과부를 본 받아서 십일조와 헌금 생할을 철저하게 해야겠다고!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또 이렇게 말씀을 읽으면서...다음 주 설교 제목으로 삼고 흐뭇

하게 십일조와 헌금 강요를 마치 복음인양 착각하면서 주일날 설교시간만을 기다릴

것이다. 누가 과연 성경을 우롱하는 자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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