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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주제는 십일조가 아니다
10/15/20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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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한 십일조인가, 모든 십일조인가? (말 3:10)    글 김문수 /  09-09-03


(말 3:10, 개역)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킹흠정)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되 그것을 받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KJV) Bring ye all the tithes into the storehouse, that there may be meat in mine house, and prove me now herewith, saith the LORD of hosts, if I will not open you the windows of heaven, and pour you out a blessing, that there shall not be room enough to receive it.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분들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성경 말씀은 아마도 말라기 3장 말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라기 3장은 얼핏 읽기에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안 내는 백성들을 저주하고, 십일조를 바치면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말라기 3장은 십일조를 하면 복받고, 십일조를 안 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교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말라기 전체 말씀들을 자세히 잘 읽어보면 이 말씀들이 "거듭난 성도들이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주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 대언자 말라기를 통해 하신 말씀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말라기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안 내면 저주를 내리고, 십일조를 잘 내면 복을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가로채는 타락한 제사장들을 저주하셨고, 이제는 그런 제사장들과 율법 대신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실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1. 온전한 십일조인가, 모든 십일조인가?
 
(말 3:10, 개역)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킹흠정)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되 그것을 받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KJV) Bring ye all the tithes into the storehouse, that there may be meat in mine house, and prove me now herewith, saith the LORD of hosts, if I will not open you the windows of heaven,  and pour you out a blessing, that there shall not be room enough to receive it.
 
개역 성경에는 "온전한 십일조"라고 되어 있고, 킹제임스흠정역에는 "모든 십일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일단 어느 번역이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원어 분석을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두 번역을 비교할 목적으로 한 번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개역 성경의 "온전한"과 킹제임스흠정역의 "모든"은, 히브리어로는 "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에 등장합니다.
 
(창 1:30, 킹흠정)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과 속에 생명이 있어 땅에서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채소를 먹을 것으로 주었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30의 "모든"이 바로 히브리어 "콜"이며, 개역성경도 여기에서는 "모든"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위의 구절을 "온전한 짐승", "온전한 날짐승", "기는 온전한 것", "온전한 푸른 채소"라고 하면 말이 됩니까? "콜"이 들어가는 구절을 말라기 안에서만 찾아도 제법 많은 구절들이 나옵니다.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말 2:9)

우리 (모두)에게 한 아버지가 계시지 아니하냐? (말 2:10)

(온) 민족이 내 것을 강도질하였기 때문이라. (말 3:9)

(모든) 민족들이 너희를 복 받은 자라 하리라. (말 3:12)

교만한 자와 악하게 행하는 자가 (다) 지푸라기가 되리라. (말 4:1)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모세의 율법을... (말 4:4)
 
이런 성경 말씀들에 나타난 용례를 살펴볼 때, 말라기 3:10의 "콜"은 "온전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킹제임스성경은 이것을 "all"로 번역했고, 킹제임스흠정역도 "모든"으로 정확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개역 성경이 번역을 잘못하여 "온전한 십일조"라고 하는 바람에, 여기서 수많은 거짓 교리들이 나왔습니다.

어떤 이는 조금도 모자라지 않게 정확히 10분의 1을 떼어야 온전한 십일조라고 가르치고, 어떤 이는 소득뿐만 아니라, 장학금-은행이자-주식 상승분- 용돈-길에서 주운 돈-아파트값 상승분 등도 모조리 10분의 1을 떼어서 바쳐야 온전한 십일조라고 가르칩니다.

심지어 주택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4천만원을 대출받았는데, 그것도 어쨌든 통장에 돈이 들어왔으니 400만원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의 논지는 "온전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계산을 철저히 해서 십일조를 정확히 바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실수로 정규 소득 외의 부수입 등을 십일조에서 누락시킬 수 있으므로 아예 넉넉하게 10분의 2, 10분의 3을 드려야만 우리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지 않게 되며, 안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올바른 교리는 올바른 성경 말씀에서 나오는 것인데(딤후 3:16), 성경 번역이 저렇게 되어 있으니 하나님 말씀과는 전혀 무관한 엉뚱한 교리들이 등장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계산한 십일조를 원하신다면, 근채(나물) 하나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고 정확히 계산해서 십일조를 드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왜 책망을 받았습니까?
 
(마 23:23a, 킹흠정)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도다...
 
말라기 3:10 말씀은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라, "모든 십일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제사장들에게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이 나쁜 제사장들아, 너희는 백성들이 바치는 십일조와 헌물을 감추고 빼돌리고 착복하지 말고,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가지고 와서 성전 창고를 채워라. 그래서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을 레위인과 과부, 아버지 없는 자, 나그네들에게 나눠줘라" 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이 말씀을 가르치면서, 부패한 제사장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모른 척 눈감아주고, 성도들을 향하여는 "모든 수입들에서 십일조를 정확하게 떼어서 바쳐야 온전한 십일조가 되니까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해라, 안 그러면 저주를 받는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무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잘 알고 있면서도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말씀을 왜곡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잘못된 성경 번역 때문입니다. 목사-장로-집사들이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온전한 십일조"라는 엉터리 번역에서 나온 거짓 교리들에 다들 속아 넘어가는 겁니다.

2. 복을 주나 안 주나, 하나님을 시험해봐도 되는가?
 
(말 3:10, 킹흠정)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되 그것을 받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KJV) Bring ye all the tithes into the storehouse, that there may be meat in mine house, and prove me now herewith, saith the LORD of hosts, if I will not open you the windows of heaven, and pour you out a blessing, that there shall not be room enough to receive it.
 
"십일조를 내면 복 받는다"고 가르치는 분들은, 말라기 3:10에 와서는 더욱 더 열띤 목소리로 말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쏟아부어 주십니다. 이것을 못 믿습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꼭 한 구절 바로 말 3:10에서 십일조와 연관해서는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 내면 복 받는지 못 받는지 먼저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을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로 이런 식으로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주장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해도 될까요? 성경 말씀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약 1:13에는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험은 tempt가 사용되었습니다.
 
(약 1:13, 킹흠정) 아무도 자기가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3, KJV) Let no man say when he is tempted, I am tempted of God: for God cannot be tempted with evil, neither tempteth he any man: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시험하지(tempt)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 4:7,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또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마 4:7, KJV) Jesus said unto him, It is written again, Thou shalt not tempt the Lord thy God.
  
예수님께서 마 4:7에서 인용하신 말씀은 신명기 6:16 말씀입니다.
  
(신 6:16, 킹흠정) 너희가 맛사에서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한 것 같이 그분을 시험하지 말라.

(신 6:16, KJV) Ye shall not tempt the LORD your God, as ye tempted him in Massah.
 
마 4:7과 신 6:16의 시험하다는 tempt, 신약에서는 헬라어 "페이라조", 구약에서는 히브리어 "나싸"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말 3:10의 시험하다는 KJV에서 영어로 prove, 히브리어 "바한"이 사용되었습니다. 두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다음 구절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두 단어가 같은 구절 내에서 동시에 사용되었고, 신구약 성경에 모두 등장하는 구절을 골랐습니다.
 
(시 95:9, 킹흠정) 그때에 너희 조상들이 나를 시험하여 입증하고 내가 행한 일을 보았느니라.

(시 95:9, KJV) When your fathers tempted me, proved me, and saw my work.
 
(히 3:9, 킹흠정) 그때에 너희 조상들이 나를 시험하여 입증하고 사십 년 동안 내가 행한 일들을 보았느니라.

(히 3:9, KJV) When your fathers tempted me, proved me, and saw my works forty years.
 
우리는 위 두 말씀들을 통하여 시험하다(tempt)와 입증하다(prove)가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tempt = 헬라어 페이라조 = 히브리어 나싸 = 시험하다
prove = 헬라어 도키마조 = 히브리어 바한 = 입증하다, 확증하다
 
고린도후서 13:5의 "입증하라"에서 사용된 prove가 말라기 3:10의 시험하다(prove)와 같은 의미입니다.
 
(고후 13:5, 킹흠정)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 13:5, KJV) Examine yourselves, whether ye be in the faith; prove your own selves. Know ye not your own selves, how that Jesus Christ is in you, except ye be reprobates?
 
말라기 3:10의 시험하다(히, 바한)라는 말은 "하나님을 시험하라(tempt)"는 뜻이 아니라, "입증하라"는 것입니다. 아래 시편의 말씀에 나오는 "시험하다"는 마음의 상태를 입증하는 것을 말하며, 창 42:15은 요셉의 형제들이 막내동생 베냐민을 데려와서 그들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 17:3a, 킹흠정)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셨나이다.

(시 17:3a, KJV) Thou hast proved mine heart;
 
(창 42:15, 킹흠정)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말을 입증할지니라. 파라오의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동생이 여기에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에서 나가지 못하리라.

(창 42:15, KJV) Hereby ye shall be proved: By the life of Pharaoh ye shall not go forth hence, except your youngest brother come hither.
 
에베소서 5:10의 "입증하라"(헬, 도키마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입증해 보라는 겁니다. 11, 12절에 나오는 열매없는 어둠의 일인지, 9절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인지 입증해 보라는 겁니다.
 
(엡 5:10, 킹흠정) 주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무엇인지 입증하라.

(엡 5:10, KJV) Proving what is acceptable unto the Lord.
 
킹제임스흠정역에서는 말 3:10에 나오는 KJV의 prove를 "시험하다"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유혹하다(tempt)의 의미로 읽으면 안 되고, 눅 14:19의 "시험하다"와 같은 의미, 즉 "그 본성, 상태, 능력 등을 드러내다"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눅 14:19, 킹흠정) 다른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사서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니 원하건대 나를 용서하라, 하며

(눅 14:19, KJV) And another said, I have bought five yoke of oxen, and I go to prove them:I pray thee have me excused.
 
말라기 3:10 말씀은 "내가 이렇게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이 복을 쏟아부어 주는지 안 주는지 시험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이 복을 주나 안 주나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말라기 3:7에서 하나님은 부패한 제사장들에게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려면 당연히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시인하고 마음을 낮추고 죄에서 돌이키겠다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 보이고 마음의 상태를 입증해야 합니다. 또한 그렇게 십일조와 헌물을 주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이 주님되심을 확증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부패한 제사장들아, 너희는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와 헌물을 강도질하지 않았느냐?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그러려면 너희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빼돌리지 말고, 백성들이 바친 모든 십일조륻 다 가지고 와서 성전 창고에 들여놓아서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여 그것으로 레위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십일조를 나누어 줌으로써 너희가 죄에서 돌이키고 회개하는 마음을 입증해 보여라" 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그렇게 모든 십일조를 주께로 가져옴으로써 주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입증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 3:10은 prove me 라고 되어 있으므로 후자 쪽의 해석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그들이 십일조를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집행함으로써 주께서 신명기 14:28,29에서 약속하신 복을 부어 주시는 분임을 입증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율법에서 정한 의무에 따라 레위인들에게 십분의 일을 드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복도 약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십일조에 대해서 언급한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서는 분명히 십일조와 연관하여 아무런 복도 약속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구약시대가 다 끝나가는 말라기에서 느닷없이 복 타령입니까? 설마 하나님께서 십일조가 잘 안 들어오니까 구약시대 막판에 복을 경품으로 내걸고 "십일조 잘 내기" 이벤트라도 하시는 겁니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말 3:10의 레위인들을 위한 십일조를 바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복이 약속되어 있지 않지만, 세번째 십일조, 즉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 십일조에 대해서는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신 14:28,29, 킹흠정) 너는 삼 년이 끝날 때에 그 해 소출의 십일조를 다 가져다가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 / (너와 함께 나누는 몫이나 상속 재산이 없는) 레위 사람과 네 성문 안에 거하는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가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할지니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
 
부패한 제사장들은 그 동안 이 세번째 십일조를 떼어먹고, 이를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과부와 아버지 없는 자를 학대하며 타국인을 쫓아내어 그의 권리를 빼앗았습니다(말 3:5). 그래서 주께로부터 오는 복을 누리지 못한 겁니다.

부패한 제사장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강도질하지 말고, 모두 다 가지고 와서 성전 창고에 채우고, 주께서 명하신대로 제대로 나누어주면 신명기 14:29에서 약속하신대로 복을 부어주실 겁니다.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신명기 14:28,29에 약속된 복은 십일조를 드려서 받는 복이 아니라, 주께 드린 십일조를 주의 뜻대로 잘 분배하고 마땅히 써야 할 곳에 쓸 때 받게 되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말라기 3:10 말씀을 가지고 "십일조 내면 복 받는다"고 가르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거리가 먼 엉뚱한 주장이 되는 겁니다.

3. 이제부터라도 십일조를 잘 드리면 저주를 벗게 되는가?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분들은, 대개 "십일조를 안 드리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한 죄로 저주를 받게 된다"고 하면서 "이제부터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해서 저주를 벗고 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교회 예배에 빠졌다고 하늘에서 벼락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며, 십일조 안 낸다고 저주를 내려서 집안이 망하거나 가족들이 죽을 병에 걸리게 하는 분이 아니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말라기에서 하나님은 "너희들이 십일조를 안 내고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지 않고, "너희가 이미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 2:2, 킹흠정)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만일 너희가 들으려 하지 아니하며 그것을 마음에 두려워 하지 아니하여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심지어 저주를 보내어 너희의 복들을 저주하리라. 참으로 내가 이미 그것들을 저주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말 3:9, 킹흠정)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으니 이는 너희 곧 이 온 민족이 내 것을 강도질하였기 때문이라.
 
제사장들은 주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하였고(말 1장),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주의 사자로서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말 2:7,8).

그들은 주의 것을 강도질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말 3:9).

이제 이런 연약한 제사장들과 불완전한 율법 대신에 이 모든 것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주께서 갑자기 자신의 성전에 임하실 겁니다(말 3:1).

그 분께서는 오셔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다시 회복시키실 겁니다(말 3:3,4).

그리고, 그 분께서는 죄인들을 심판하실 겁니다(말 3:5).
 
이는 실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주의 말씀의 엄중한 부담입니다(말 1:1).
물론, 말라기를 읽고 이것을 "십일조 내면 복 받는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분들에게는 엄중한 부담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말라기는 참으로 부담되는 말씀입니다. "십일조 내면 복 받는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너희가 저주를 받았다" 라는 심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저주를 받았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겁니까? 이제부터 열심히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겁니까? 이제부터 주의 단에 깨끗하고 좋은 것만 드리면 된다는 겁니까? 이제부터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와 헌물을 가로채지 않으면 된다는 겁니까? 지금까지 강도질한 십일조와 헌물 도로 갖다놓고, 네 배를 물어내면 된다는 겁니까?
 
말라기 말씀 어디에서도 "십일조를 열심히 내서 하나님의 저주를 피하라"거나 "최상급 희생예물을 드려서 하나님의 기분을 풀어드려라", "율법을 철저히 지켜서 죄에 대해 용서를 받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게 되면,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희생예물을 드릴 일이 없으니 제사장과 레위인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위한 십일조도 필요가 없게 됩니다. 주께서는 율법을 완성하심으로써 그것을 폐하십니다.
 
그런데도 십일조를 드리고 율법을 지킴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저주를 피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고 가르치시겠습니까? 그런 것으로는 절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저주를 피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주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 4:5,6, 킹흠정) 보라,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대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 그가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며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여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치지 아니하게 하리라.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이,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자가 어떻게 하면 주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면 하나님의 진노 대신에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요 3:36, 킹흠정)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갈 3:13, 킹흠정)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리는 모든 자는 저주 받았느니라, 하였느니라.
 
이제는 십일조, 희생예물 등과 같은 율법을 통해서는 우리의 죄와 악을 속할 수가 없고, 오직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하나님께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말라기는 바로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요 5:39, 킹흠정) [39]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이래도 말라기의 내용이 "십일조를 드려라", "십일조를 안 내면 하나님 것을 강도질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잘 드리면 하늘에서 복이 쏟아진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왜 말라기를 기록하셨는지, 주께서 말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말라기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소개하고 있는지,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말라기를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말라기의 주제는 "십일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십일조를 비롯한 구약의 제사와 율법이 폐지되므로, 이제는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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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주제는 십일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