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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폴 목사] 다른 나라들 십일조 폐지
04/19/201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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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십일조를 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 다른 나라들 십일조 폐지

 

 십일조, 아직도 하십니까?  

 진정한 교회개혁은 바로 이 십일조 폐지운동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newsdaybox_top.gif입력 : 2007년 09월 29일 (토) 03:38:10 [조회수 : 113]윤전 btn_sendmail.gif yjun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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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청난 제목으로, 어떻게 쉽게 독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습니다. 본 제목을 소화해 내기 위해서는 (1) 성서적, (2) 역사적, (3) 신학적인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다루어야 하겠지만, 위의 요소들을 일체 생략하고, 저의 개인적인 신앙성장 (Personal Testimony) 배경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소위, 모태 신앙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엄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십일조와 주일 성수는 물론, 돼지고기와 피가 묻어있는 고기까지 먹는 것을 금했습니다. 심지어 주일날은 굴뚝에서 연기 나면 안된다 하여 금식을 하면서 성장했는데, 율법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굳어진 기존의 신앙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 입니다. (참고로 저는 그리스도의 교회, 개혁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오순절 교회, 성공회 등에 장기간 출석하고 공부했거나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다.)

 

십일조와 헌금바구니 없는 영국교회

 

유학을 떠날 때가 1985년 7월이었고, 한 영국 침례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예배 중 헌금바구니를 돌리지 않더군요. 처음엔 “특별한 날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헌금시간과 축복기도도 없는 겁니다.

 

몇 주 후에야 안 일이지만, 헌금바구니 대신 조그마한 편지통 모양의 상자 [헌금함] 가 교회 뒤편 코너에 놓여 있어, 원하는 사람은 아무 때나 자유롭게 헌금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신앙의 척도로 간주되는 십일조, 작정 헌금, 건축헌금 등 각종 헌금도 없었습니다.

 

 [게시자 '들을귀' 사견입니다!!] 헌금함은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돈을 바친다는 제물 형태의 개념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복채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신약교회인 개신교회들에게 연보함이라는 용어 사용하는 것을 권장해도 무리가 아니며, 이는 매우 바람직 합니다.

 

주일 성수 없는 영국교회

 

[게시자 '들을귀' 사견입니다!!]  주일성수는 주일을 지켜야만 구원받는다는 비성경적 율법주의 이지만, 주의날 예배로 모이는 열심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예배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의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울수록 권면하여 더욱 예배로 모입시다" 라고 사도 바울은 권면했습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형식적 예배가 되면서 예배를 취미 중 하나로 즐길 것입니다.

 

그 다음해 봄이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부터는 300 여명이 모이던 교인들이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어느 화창한 봄의 주일날은 20여 명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목사가 웃으면서 예배시간 전에 한 멘트입니다: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봄 나들이 나갔군요, 모두 즐거운 시간 갖기를 기도합니다.”

 

가족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고 공원을 찾는 것에 대하여, 그는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예배에 참석한 내가 민망할 정도였으니까요.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영국교회가 망했다더니 정말이구나.”

 

다른 교회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의문이 일기 시작했고, 그래서 한 달에 한 번만 본 교회에 출석하고, 다른 교회를 순회/방문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교회를 찾기도 했습니다.

 

십일조 없는 유럽 교회

 

영국을 벗어나 유럽 다른 나라들의 예배형식이 궁금해졌습니다. 그 해 여름방학은 프랑스에서, 겨울방학은 독일에서, 이듬해 여름방학은 독일의 학생들과 합류하여 유럽 16개국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주일 예배형식, 헌금방식, 십일조 제도에 관해서 리서치를 수행했습니다.

 

오순절 교회, 희랍 정교회, 어떤 영국교회나 감리교회서는 헌금바구니를 돌리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교회가 헌금바구니 대신 헌금함을 배치했고, 십일조나 각종 헌금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학문의 세계로

 

일단 유럽교회들은 십일조 제도가 없고 헌금함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여기에 대한 성서적 근거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석사과정에서는 조직신학이었지만, 박사과정은 구약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관련학과목인 고대 근동학, 고대문헌학, 고고학, 문서비평학, 성서언어학, 문화인류학, 고대역사학, 사회학 등에 거침없이 도전했습니다.

 

세계 구약학회 회장이기도 했던 원로 지도교수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연구분야가 요구됨으로 학위논문의 방향을 바꿀 것을 여러 차례 제시했지만, 6년 동안 하루 평균 3, 4시간의 수면으로 버티어 내는 열심에 감탄을 하더군요.

 

중간에 경제적, 학문적인 어려움으로 포기할 위기를 몇 차례 넘기며 외롭고 긴 유학 여정이 끝나면서, 암흑 속에 가리어졌던 기독교의 실상 (죄악상) 이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고, 십일조 제도나 각종 헌금갹출은 종교적 범죄행위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박사학위 심사가 끝나던 날 지도교수는 나를 끌어 않으며, “이 분야에서는 자네가 세계적 권위자라네”하며, 이젠 학자로서의 동등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몇 가지 팁

 

* 이미 58호에서 언급했듯이, 아하스 왕을 포함한 역대 이스라엘 왕들이 자녀를 잡아 신께 바치는 가증한 짓을 한 것처럼(상하 16:2-3),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십일조를 바침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 16세기 천주교의 속죄권 판매를 거부한 종교개혁의 산물이 오늘날의 신교입니다. 그런데 정작 타락했던 천주교는 발전적으로 개혁이 되고 (물론 교리상 차이는 있음), 개혁의 결과로 태어난 신교는 타락하여,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고 말았습니다.

 

* 종교개혁 이후 유럽교회에서 십일조 제도가 사라지자 유럽의 교회들은 교회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교회는 운영난 때문에 한때 십일조 제도를 눈감아 주기도 했습니다.

 

* 오늘날은 미국산 오순절 교회가 영국을 포함한 유럽으로 파고들고 있는데, 이들은 방언, 능력, 축복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십일조나 헌금을 강요하는 추잡한 냄새를 풍기는 집단들입니다. 어떤 오순절 교회에서는 예배중에 헌금바구니를 3번 돌리는 곳도 있더군요.

 

목사 공화국 대한민국

 

[게시자 '들을귀' 사견입니다!!] 국내외에 개신교회와 신학교가 많고, 설교자인 목사와 교사가 많으며, 전도자인 장로와 집사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은 매우 복되며 좋은 일입니다. 다만, 우후죽순으로 난립하는 신학교 일부에서 엄격한 검증을 통해 선발된 사람들을 사역자로 세우지 않는 점이나, 일부 신학교의 경우에 복음의 핵심 보다 설교의 기교에만 실력을 쌓게 하여  죽 수준의 영의 양식을 본인이 즐겨 먹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나누어 먹이는 일이 많다는 점입니다. 성경에는 직분의 높고 낮음이 없으나, 종교인들이 계급화와 서열화로 만든 목사에 매력을 느껴 직업적인 목사로 뛰어든 경우도 많을 것으로 봅니다. 종교다원주의, 신복음주의, 칼빈주의등에 빠져 버린 목사가 늘어나고 있는 개신교회 현실을 볼 때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있는 대목입니다. 개신교회 회개와 개혁을 해야 할 이유로 삼아야 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이 개신교회를 떠나면 사단이 만들어 놓은 세상종교나 이단 사이비 종교 교리에 신속하게 빠져 유황불 지옥에 들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위를 받고 바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유럽문화에 오랫동안 길든 탓인지 한국에서의 생활은 질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부패한 정부, 무질서한 사회, 타락한 종교지도자들, 동서남북 어느 곳을 돌아봐도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목사를 섬기고, 목사는 교회를 장사하는 회사로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실상들을 느끼거나 보지 못하고, 종교지도자들에게 세뇌되고 맹종 당하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볼 때 충격이었습니다.

 

종교적 부는 반드시 타락과 부패를 부릅니다.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돈이 지나치게 많은데 있다고 판단하고, 잘못된 십일조 폐지운동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선 여러 대학에 교수임용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놀란 것은, 교수를 이미 내정해 놓고 광고만 내든가, 그렇지 않을 경우 1,2억을 요구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더군요.

 

십일조 제도 폐지운동

 

3년간 세 곳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동안 한국교회의 타락상과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다가 두 대학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경험을 했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학과마다 이사장이 심어둔 요원(?)들이 있더군요.

 

십일조 제도 폐지운동의 많은 효과를 얻기 위해, 신학 대학교수들을 상대로 몇 차례 십일조 제도에 관한 공개토론을 제의했지만, 아무도 나서주는 상대가 없었습니다. 원고를 작성하여 각 기독교 신문사와 잡지사에 발송했으나 단 한 곳도 원고를 실어 주지 않았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조선일보를 포함한 일반신문사와 인터넷을 통하여 십일조 폐지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때가 1996-1998년이었는데, 그 당시 쓴 원고들이 책 2권의 분량이 됩니다.
십일조 제도 폐지라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층에서 서서히 반응이 일기 시작했고, 많은 격려와 문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들로 부터는 수 없는 협박이 끊이지 않으면서 신상에 위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에 있는 한 선교사는 죽인다는 이메일을 거의 매일 보내왔으니까요.
3년 가까이 한국에 있는 동안 그야말로 생사를 건 투쟁이었습니다. 철벽같은 한국교회에 십일조의 파문을 불러 일으켰고, 지금은 소신있는 젊은 후배들이 나타나 그 바톤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가족을 잃고

 

다시 영국으로 귀국(?)하게 된 동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타락상을 접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동안 영국에 남겨두었던 가족을 잃게 되었습니다.

 

홀로되었으나 찢긴 상처들이 많이 회복되었으며, 지금은 교회, 선교, 교육사업 등과 관련하여 뛰고 있습니다. 재혼할 상대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오랫동안 준비한 학문은 결국 3년의 십일조 폐지운동에 불을 붙임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문적 자만을 꺾기 위하여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주셨고, 나의 삶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간섭해 주심에 감사들이며 겸손히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400년 전의 유럽교회

 

지금의 한국교회 모습은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의 유럽교회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한국교회는 유럽교회에 비해 400년이 뒤떨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복사판입니다. 교회가 자본주의 사상에 물들게 되면 망하게 될 징조입니다. 미국교회는 완전히 자본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고, 교회의 부패와 타락상이 한국교회보다 10년을 앞서가고 있습니다.

 

한국에 교인 수가 많은 이유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유럽교회가 망했다는 설교를 즐겨 하더군요. 이것은 무식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교인 수가 많이 감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신앙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제가 볼 때 한국교회는 5% 정도만 거듭났으나, 유럽의 교회는 98%가 거듭난 성도들입니다.

 

한국에 교인 수가 많은 또 다른 이유는, 아직 한국인들의 삶의 질이 낮고 가난하며 사회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이 잘사는 시대에 무슨 말씀이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인간이 종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이 어디나 잘 되어 있고, 사회복지제도가 완벽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갖는 그런 불안의 요소들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한국에서는 교회에서 감당하고 있는 요소들을, 유럽에서는 사회복지제도가 모두 해결해 주기 때문에 반드시 교회를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유럽교회들은 십일조 제도가 없을까?

 

이 글을 통하여 어떤 위대한 신학이나 고상한 학설이나 지식으로 십일조 폐지의 정당성을 주장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신앙적 배경을 자랑삼아 늘어 놓은 이유는, 단 한마디의 질문을 드리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왜 유럽교회들은 십일조 제도를 단죄하여 교회로부터 추방한 것일까요? 유럽교회들이 폐지하고 있는 십일조 제도를, 왜 한국교회들은 그토록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관하여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남기고 싶은 한마디

 

십일조 제도는 한국의 돌팔이 교수, 삯꾼 신학자들이 빵 한 조각을 얻어내기 위하여 침묵으로 일관하고, 3대 근성 (명예-권위-탐욕) 에 눈이 먼 목사 집단들이 만들어 낸 종교적 범죄행위입니다. 신앙이나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 이글은 영국에 계시는 김폴 목사님의 글입니다.] 
 http://me2.do/F4cZ8A4X 

출처:네이버

 

한국교회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 역사적 맥락이 결여된 십일조 논란  한국교회에서 십일조 논쟁이 여러 차례 있어 왔다. 그러나 결정적인 논박을 필자는 어디서도 보지 못했는데 이는 십일조가 한국교회의 매우 독특하면서도 권위적인 측면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한국교회의 탁월성의 한 기초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 사회가 서구에 보조를 맞춰 물질적으로 풍부해짐에 따라 - 10만원 가운데 만 원과 1000만원 가운데 100만원은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 십일조는 한국교회에 두 양가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로 부정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 분명한 부정과 부패는 우리 몸에서 잘라내야 하겠지만 과연 이 책이 묘사하는 것처럼 십일조가 그토록 비성경적이고, 율법적이고, 유독 한국교회만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잘못된 신앙의 구습인 것인지를 살펴보자는 것이 본 서평의 목적이다.

 

 

십일조 문제는 아직도 한국 개신교계에서는 뜨거운 감자같은 논란거리인 것 같습니다. 사 실 이 문제는 서구 기독교계에서는( 카톨릭은 물론이고, 개신교에서도) 이미 신학적, 신앙적 정리가 끝나서 지금은 어느 국가의 교회에서도 시행하지않는 종교행위인데, 유독 한국-특히 개신교계에서만 아직도 살아 남아서 여러가지 신앙적 혼란과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선 이 십일조 논쟁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논란이 있어왔던 것이므로 여기서는 다만 간략히 그 논란의 요점을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십일조 헌금은 결코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십일조 헌금은 성경에 따른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므로 신자라면 마땅히 지켜야하는 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입니다. 한 번 살펴봅시다.


1).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참고구절 : 신명기 14장 / 26장)

-- > 하나님의 명령도 한시적인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습니다. 만일 그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시대를 초월하여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도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제사도 드려야하고, 오징어도 돼지고기도 먹으면 안되고, 할례도 다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주장은 말이 안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 이유는 그런 율법들은 모두 다 한시적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후, 신약시대 이후는 그런 것은 다 지나간 구시대의 법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일조 법도 성전과 제사제도가 존재했던 구약시대에만 필요했던 하나님의 명령이요 율법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는 레위 지파라는 특수 지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임무를 위해서 따로 구별된 지파입니다. 그들에게는 먹고 살 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11지파가 분배받은 땅에서 난 소출중에서 10분의 1을 거둬서 그들에게 준 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 법의 기본 근거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AD 70년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지고 모든 백성들이 다 풍지박산난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이란 국가자체도 없어지고 성전도 제사도 없어진 마당에 당연히 레위인도 십일조도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다시말하면 십일조는 그것을 거두어 나눠줄 대상이 있을 때 필요했던 한시적 율법이란 말입니다. (물론 십일조 정신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나눔의 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다시 설명하지요)

어떤 사람은 지금의 성직자가 레위인들 아니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전혀 아닙니다. 지금의 개신교회에는 신분상 제사장이란 직분은 없습니다. 목사란 똑같은 신자로서 다만 직무에 따른 구분일 뿐이지요, (오히려 교리적으로 신분상 성직자를 인정하는 카톨릭조차도 십일조란 명목의 헌금은 걷지 않습니다.)


2).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바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말라기 3장 8절에 대한 해석):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라기 3장 8절)

--> 이것도 역시 그 문맥과 의미를 세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는 그 당시 제사장들의 부패한 행태를 질책하고 경고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선, '도적질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일반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백성이 아니라 십일조를 관리하고 분배하는 책임을 맡은 제사장들입니다. 그 당시 그들은 그런 헌물을 그 본래의 뜻대로 잘 나눠주고 잘 쓰지않고 제멋대로 자기들 뱃속에 착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도적놈들이지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그러면, '하나님의 것'이 뭐라구요?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헌물'이란 의무적으로 바쳐야하는 것이 아니지요? 즉 헌물은 본래부터 '하나님의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저 스스로 자발적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일단 바쳐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소위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왜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실까요? 그 뜻은 '하나님의 것'이란-- "곤궁한 자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서 가난한 백성들과 레위인들에게 마땅히 분배되어야 할 헌물들"-- 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하나님의 "소유권"이 아니라 그것이 마땅히 쓰여져야할 데 쓰여져야만 한다는 데, 즉 "올바른 사용"을 강조하려고 "하나님의 것" 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쉽게 풀어보면, "그것들은 도적놈들 너희가 마음대로 먹어치워도 좋은 '너희들 것'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바로 '내 것'이니라!" 라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이 구절을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것'이란 십일조 그 자체가 아니지요. 따라서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하나님 자신의 것이라고 하셨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다는 주장에 대하여: (누가 11장 42절에 대한 해석):

 


"화 있을 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눅 11장 42절/ 마태 23장 23절)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우리 역시 십일조를 드려야 하다는 주장이지요. 과연 그런 뜻입니까?

--> 여기서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도 그 당시 시대적인 조건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책망하기 위해 여러가지 왜곡된 신앙 행위들 중에서 특별히 십일조를 한 예로 드신 것 뿐입니다. 결코 십일조를 잘하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라"고 하신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당시에는 아직까지 제단과 성전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레위인도 있었지요. 또한 다른 문맥을 보면 예수님도 제단과 성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은 십일조가 필요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즉 이것 역시 그 시대에 국한된 말씀이란 뜻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무조건 시대를 초월하여 지켜야 한다면, 예수님이 할례를 받았으니 우리도 할례를 받아야 하고,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셨으니 성전이 없는 지금도 성전세를 내야 할 것이며 그리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으니 우리도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게시자 '들을귀' 사견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또, 십계명을 다 지켜야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신약시대에 토요일이 안식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십계명 폐지가 안되었고, 구약의 안식일인 토요일이 일요일로 안바뀌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습니다.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면,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는 제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되므로 비성경적이 됩니다. 안식교나 안상홍교에서 주장하는 십계명과 안식일에 대한 주장은 이단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포교 작전 교리가 따로 있기 때문에 매우 주의하고 경계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아야 할 점은 로마 천주교에서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꾸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찾아 자세하게 파악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르면 약도 없고, 무식하면 덮어놓고 용감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옷을 오래 입다 보니, 어느새 내옷 처럼 익숙해진 일요일을 토요일로 바꾸기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시행령이면서 시행세칙과도 같은 신약성경의 복음서에 나오는 말씀들은 새계명의 실천사항들 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예수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고 부탁하신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종교다원주의나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영혼들은 십계명을 무시하며 살려는 표면적인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러면, 전도하러 가는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대로, 지금도 전도하는 사람은 돈주머니도 두벌 옷도 두벌 신발도 없이 달랑 샌들 하나 신고 단벌 옷에 돈도없이 다녀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산상수훈의 명령들은 어떻게 지키지요? 과연 그대로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렇게는 하지 않으면서 왜 십일조만은 반드시 예수님의 말씀대로 드려야 한다는 것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주장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런 성경구절을 들어서 십일조의 성경적 근거를 주장하는것은 너무나 웃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 신약시대 이후에는 십일조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이유는 십일조는 성전체제와 제사 제도에 종속된 것이기 때문이며 그런 제사 제도와 성전이 필요 없게 된 이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4). 십일조가 율법 이전에도 이미 있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주장하기를 십일조는 이미 율법 이전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그 증거로 아브라함과 야곱의 경우를 들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 먼저, 아브라함은 가나안과의 전쟁 후 전리품 중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는데, 이는 아브라함을 멜기세덱이 축복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준 것이지 이를 율법의 십일조로 생각할 근거가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에 의하면, 그렇게 전승자가 다른 사람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을 준 것은 다른 역사적 사건들에도 종종 있어왔던 것이라고 합니다. 즉 십분의 일을 준 것은 그저 당시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른 것이지 어떤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개입된 것으로 봐야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만일, 그렇지않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율법의 십일조의 효시라면 이 사건 이후에도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십일조를 드렸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은 전혀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요.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행위는 단순히 감사한 마음에서 고대의 관습을 따라 십분의 일을 주었던 단회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창 28:20-22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자기 소원을 이루어주시면 십분 일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하는데 이것은 소위 '조건부 십일조'라 할 수 있는 바, 이것은 결코 올바른 행동이 아니지요. 이것이 어떻게 율법의 십일조 정신에 부합될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주고 받기" 식의 거래일 뿐이지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야곱역시 그런 약속을 한 이후에 가나안으로 돌아와서도 한번도 십일조를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그것을 도대체 누구에게 바친단 말입니까?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들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와같은 행위를 가지고 십일조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니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과 야곱의 행위에서 십일조의 기원을 찾는 것은 억지일 뿐이며 절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2.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일체의 의무적 율법은 폐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신 일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율법을 폐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갈 5장). 그러므로 이제는 신약시대의 신자에겐 율법적 의무란 없습니다. 다만 자발적 순종만이 있을 뿐이지요.

사도행전 15장에서 초대교회 최초의 공의회가 열리는데 거기서 결정된 것은 할례를 포함한 일체의 율법적 의무를 폐지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유대인들에게 율법적 의무였던 십일조도 폐지된 것이지요.

십자가사건 이후 모든 율법을 폐지하는 것은 당연히 십자가의 뜻을 안다면 마땅한 결론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율법적 규정을 존속시키려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사건이후에 모든 율법은 없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시켰다"는 말씀은 과거의 것을 폐지하고 더 좋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셨다는 말입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로 폐지하시고 더 좋은 자유로운 사랑의 구제헌금인 "연보"로 대체하신 것입니다. 이 연보란 개념속에는 결코 율법이나 의무개념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사랑의 자발적 헌금이지요.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안식일은 주일로, 할례는 세례로, 유월절 만찬은 성찬식으로 등등, 다른 율법들은 다 바꾸면서도 유독 십일조만은 아직도 존속시키려고 하는지 그 속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3. 셋째, 십일조 제도의 폐해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십일조 할 사람은 하고 자유롭게 놔두면 되지 않냐고..아니지요. 잘못된 것은 고쳐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잘못된 것들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자칫 더 나쁜 결과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다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나쁜 종양은 빨리 도려내는 것이 좋듯이.

 


십일조가 일으키는 문제점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십일조를 그냥 두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다시 포기하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그것은 마치 지금도 그냥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괜찮치 않느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역사를 부정하는 것이지요. 복음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다시 율법적 신앙으로 회귀시키는 일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갈 2:18) 고 갈파하는 것입니다.


2). 교회가 재물에 대한 잘못된 욕심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십일조를 잘못 걷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제대로 쓰지않고 쌓아두거나 엉뚱하게 건물짓는데 쓴다는 둥, 하게 되면 교회가 부를 인하여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돈의 유혹을 과소평가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돈과 하나님은 겸해서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것이지요. 사실로 현재의 한국교회의 실상을 돌아보면 자명하지 않습니까?

오늘의 한국 개신교는 점점 중세의 카톨릭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 원인 중에는 교회에 돈과 권력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되는 데 십일조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쌓이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잘 모르고 십일조 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이러한 부패를 조장시켜주는 일에 동참하는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업은 무슨 돈으로 하냐구요? 교회는 사업을 위한 조직이 아닙니다. 다만 신자들 하나 하나가 빛과 소금으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밖의 일들은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구분할수 있어야 합니다. 돈 없어도 교회는 존재합니다.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흥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돈이 없을 때 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듯이 교회도 재산이 많아지면 본질을 잃어버리고 타락할 가능성이 훨씬 많습니다. 이미 중세의 기독교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3).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질주의적인 신앙심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흔히들 이 구절을 들어 십일조 잘하면 복 받는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에게 십일조를 떼어 먹지 말고 제대로 잘 나눠주라는 말씀이지 백성들에게 십일조 잘하면 복 받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십일조 잘해야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다른 속셈이 있다고밖에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마치 순전히 그리스도인들의 유익을 위해서 강조하는 것처럼 그럴듯한 말로 속이는 것입니다.

목사들은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속이고 모르고도 속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무 약효도 없는 가짜약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 파는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사기치는 것입니다.

또한, 장로-집사-목사들의 경우에도 십일조를 함으로 더 많은 물질 축복을 얻어내고자 하는 잘못된 욕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거래하자는 것이지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실상은 많은 신자들이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과 거래하고자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그게 지금의 교회 현실입니다.

참고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십일조를 하는 행위자체가 아니라 그 십일조를 거둬서 가난한 자들과 곤궁한 이웃을 위해서 전액 제대로 쓰여질 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신명기 26장). 그러므로 진정 복을 받고 싶다면 그렇게 제대로 쓰는 일에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4). 잘못된 죄책감만 조장시키고 형식적, 외식적 신앙행태를 조장합니다.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도 않은 신자들에게 자꾸만 십일조를 강요하다시피 강조하는 것은 자칫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으로 만들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아니면 그것을 제대로 못한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들기도 합니다. 결국 쓸데없는 죄의식때문에 즐거워야할 신앙생활이 잔뜩 무거운 짐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도대체 지금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기껏 벗겨놓으신 짐을 또다시 걸머지고 가려는 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4. 마지막으로, 올바른 십일조 정신을 구현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구약의 십일조 법에는 과부와 고아등 그 지역안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3년마다 십일조를 거둬서 나눠주도록 되어있는데, 이 정신은 참으로 본받아야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명기 26장)

지금도 사회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헌금의 명목은 구제금이나 사랑의 헌금 등의 명목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신약에 의하면 그런 것을 일컬어 "연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연보의 의미는 "자기 것을 버려서 남의 부족한 것을 메꾼다"는 뜻입니다. 또 그렇게 거뒀다면 당연히 그 전액을 다 그 목적으로만 사용해야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도 이와같은 십일조의 정신을 살리자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 헌금이어야 하는 것이지 '십일조 법' 같은 어떤 종교적 의무로 규정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의무가 되어버리면 그 순수한 정신이 훼손되고 왜곡되어 외식적이고 형식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처럼.


이제 요약하면,

 

1) 이미 말했듯이 십일조라는 규정보다는 사랑의 헌금인 "연보"를 강조하고 그 정신을 더욱 고취하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연보(사랑의 연보)는 그 정신에 따라 전액을 구제와 구난을 위해 사용해야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십일조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십일조를 여전히 지키겠다는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그것은 십일조를 폐지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도 하고, 모든 율법을 폐지하시고 새로운 사랑의 법으로 대치해 놓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결과적으로 교회와 신자들을 기복신앙과 물질숭배로 치닫게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개혁은 바로 이 십일조 폐지 운동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 http://me2.do/59c3yqso

 

[펌] 십일조는 이미 폐지된것임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인간사회의 모순을 정화해야할 사회적 책임을 가진 교회가 자기들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현실에 놀랐읍니다. 헌금에 대하여 성서의 바른 진리를 알고싶어 깊이있게 공부하고 얻은 결과입니다. 그 동안 잘못 인식되어 온 십일조가 모든 그리스도인들(독자들)에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도록 시원하게 넣어드립니다 !!!

 

제목: 십일조는 이미 폐지된것임

 

 

 

1,현황파악:

 

 

가, 구약 성경당시 사회상황

 

BC 1400년경, 율법서가 씌어질 당시 고대 이스라엘국가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고 종교를 건국이념으로 하여 종교가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였음. 십일조는 당시 나라의 세금제도 형태로서 소득의 1/10을 세금으로 내게 한 것이며 요즘 교회에서 말하는 헌금이 아니었음(십일조에서 “조”자는 세금조자임)

 

나,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있는 유럽의 십일조 사례

 

현재 유럽과 같이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십일조를 시행하지 않고 소득세액의 8%를 종교세로 징수 할 뿐이고, 희망자에 한하여 별도의 헌금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음*프랑스에서는 1789~90년 프랑스대혁명과정에서 십일조폐지 되었고, 영국에서는 1648~88년에, 독일에서는 1807년에 각각 십일조폐지 되었음(자료출처:동아세계대백과사전)

 

 

2,문제점:

 

 

가, 현재 개신교회는 돈 없으면 교회도 못다는 분위기임. 일부 개신교 목사들은 성직을 자기직업으로, 자기사업으로 매우 상업적으로 생각함. 그러면 성직 그만두고 세탁소를 하던지 재벌회장이 되어, 돈 많이 벌어 호화생활 하면 될 것인데, 굳이 예수님 빙자하여 성스런 교회 내에서 상업적 영업활동은 왜 하는가?

 

나, 일부 사이비 목사들은 구약시대 제사장 들먹거리면서 성전에서 일하면 성전에서 나오는 것 먹고 산다고 자기들 행위를 합리화 하면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쳐야 복 받고 천국 간다고 일반 신도들을 부추기고 유혹함(혹세무민 죄에 해당).

 

다, 일단 그리스도인들로 부터 십일조가 들어오면, 목사 호화 생활비, 대형 호화교회 건물 신축비, 은행융자 원리금 변제 등에 다 쓰고, 정작 성서의 연보 용도에 대한 예수님 가르침인 극빈자 구제비용은 우리나라 개신교 총예산 중에서 평균 1%도 안됨(기독교 방송)

 

 

3,성서적 고찰

 

 

가, 구약성서에서 당시 하나님이 십일조를 명하신 진실 된 뜻은 당시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11지파에게는 분깃이 있었지만, 예배와 제사를 담당하던 레위지파에게는 아무런 분깃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레위지파가 삶을 영위 할 수 있도록 레위지파를 도우라는 뜻으로 말씀 하신 것이며, 또한 가난하여 삶을 영위 할 수 없는 과부나 고아 등 어려운 극빈자 이웃을 도우라는 것이지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대형 호화교회 건물 신축 등 교회를 위하여 십일조를 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은 결코 아님.

 

나, 하나님과 유대인간의 율법계약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신 후 광야에서 그들과 맺은 계약이었고 (출애굽 19:3-8)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적으로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므로 폐해질 것이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된 것임 (예레미야 31:31-3

 

 

 

3)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로 새 계약을 중보 하셨고 (누가 22:20) 바울은 예수께서 고통의 기둥에 죽으심으로 유대인들을 정죄하던 율법 계약을 도말하셨다고 누차 강조하였으며 (로마 10:4; 갈라디아 3:24, 25; 에베소 2:14-16; 골로새 2:14-17) 예언의 성취대로 새 언약이 율법 언약을 대치했음을 알려 주고 있음. (히브리 8:8-13). 십일조는 폐하여진 율법 언약의 일부이며,

 

 

모세의 율법 중에서 자기들(개신교목사들)에게 필요한 것만 뽑아서 유효하다고 하는 것은 비이치적이며 비성서적인 입장이다. 바울은 할례를 받는 자는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하였다. (갈라디아 5:1-4) 마찬가지로 십일조를 지키려면 죄 지을 때마다 양이나 염소를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것이고 간음하는 교인은 돌로 쳐 죽여야 할 것이다.

 

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는 예수님 말씀(마태22:37~40)의 뜻은 631가지 구약율법을 농축하여 예수님의 계명인 “사랑” 하나로 완성하신다는 의미임(마태22:37~40). 신약시대에서는 결국, 예수님 계명인 “사랑”만이 <율법의 완성품>으로 존재하며, 631가지 구약율법은 예수계명 "사랑"의 농축물속 ingredient에 불과함. 그래서 당시 율법학자였던 사도바울은 법률적 표현을 빌려 율법폐지로 표현한 것임(에베소2:14~16)

 

 

4,결론

 

 

가, 십일조는 폐지되어야 함. 교회 내에서는 그냥 연보하면 됨. 연보는 삶에 부담이 없는 범위 내에서 각자 마음이 정한대로 하면 됨(사업해서 돈 많이 번 사람은 50%도 낼 수 있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1~2%도 낼 수 있어야 함)

 

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예수님 가르침에 바탕을 둔 진리중심으로 세상사는 것이며 삶이 기독교적 이어야 함. 그리고 신앙생활은 죽을 때 까지 자기수행을 계속하는 것이며, 사후구원은 자기 믿음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는 것임.

 

 

다, 복을 미끼로 구원을 미끼로 십일조를 강요하는 집단은 기독교는 아니며 무당, 사이비 집단임

 

 

라, 그리스도인들은 사이비교회 교회, 목사들로부터 착취당하지 말고 그 돈으로 노부모 용돈 넉넉히 드리고, 건강보험 재해보험 복지보험 등에 가입하여 여러 국민과 함께 노후보장을 위해 사전 대비하는 것이 더욱 성경적임을 알아야 할 것임.끝 
http://me2.do/xbhm1uaP    출처: 네이버

 

 

들을귀
국내외 개신교회 대부분 & 미국의 남침례교회와 오순절교회 일부만 십일조 헌금을 성경적이라고 하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저 역시, 30년 넘도록 철저하게 준행하려고 한 <십일조주의자>였습니다. 이제부터는 각자 형편대로 자발적인 연보(기부금)를 권장합니다. 주의날 예배연보나 월정연보 낼 형편이 되면 자원하여 하시고, 형편이 안되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안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영육간 다양하게 많으니, 이를 잘 활용하여 하나님 아버지 영광 드러내시면 될 것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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